화두라고 하는 것은
그 의심 의심이 간절해서 의심 밖에 어떠한 것도 거기에는 눈을 팔아선 아니 된 것이고, 의심이 간절해야지 의심 없는 화두는 그것이 화두가 아니다 그 말이여.
그 화두 우에 의심이 간절해서 끊어지지 아니해야 그것이 참 의심이지, 의심이 화두를 들 때는 의심이 쪼끔 있는 것 같다가 금방 그 의심이 없어져버리고, 또 화두를 들면
그때 쪼끔 의심이 있는 것 같다가 또 일 분도 못가서
또 의심이 끊어져버리고 이러헌 것은 진심발의가 아니다 그 말이여.
정말 진심으로 의심이 난 것이 아니고 이것은 주작이여.
억지로 지어서 헌 것이니,
그렇게 억지로 지어서 허게 되며는 혼침과 산란이 결국은 번갈라가면서 침범해 들어올 수밲에는 없는데,
그렇다고 해서 진심발의가 아닌 사람은 어떻게 허느냐?
진심발의가 아닌 사람이라 할지라도
계속해서 의심이 없어지면 다시 들고 혼침산란이
일어나면 또다시 정신을 채려서 또 들고, 그렇게 해서
어쨌든지 간절한 마음으로 애써나가면 자연히
진심발의가 될 때가 오는 것이다 그 말이여.
혼침(昏沈)과 산란(散亂)이 침범해 들어오며는
몸을 단정허니 허고 떠억 좌정을 해가지고,
수마가 오면
수마가 침범해 들어오면 정신을 바짝 챙기고 허리를 쭈욱 펴고서 수마가 아무리 허리를 펴고 정신을 챙겨서 화두를 들어도 계속해서 수마가 침범, 물러나지 아니헐 때에는 가만히 옆에 정진대중에 장애가 되지 않도록 조용허니 일어서서 밖으로 나가가지고 한 오 분가량 포행을 일직선으로 길을 딱 정해놓고 왔다갔다 허면서 포행을 허며는
안두(眼頭)가 청명해지거든 다시 또 자기 자리로 돌아와서 단정허니 앉아서 화두를 떠억 들고, 그렇게 해서 항상 자기가 자기에게 경책을 가하고 정신을 채려서 간절한
마음으로 의심을 일으켜서 오래오래 공부를 지어나가면
마침내는 결정코 공부가 순숙해져가지고
공부가 순숙해지며는 자연히 힘을 덜게 되는 것이다
그 말이여.
억지로 헐랴고 안 해도 저절로 화두가 들어지고 화두가 저절로 잘 들어지며는 몸도 편안해지고 머리도 깨끗해지고, 그것이 바로 힘을 더는 것인데 힘을 던다고 허는 것이 그것이 힘을 얻는 것이여 그게.
그렇게 애를 써나가서 화두를 들랴고 허지 안해도 자연히 화두가 현전해서 경계와 신, 몸과 마음이 그렇게 청쾌
하고 그렇게 잘 되아 가며는
꿈속에서도 화두가 들려지는 때가 온다 그 말이여.
꿈속에도
여전히 이 생존시와 같이 꿈속에서도 화두가 그렇게
들려진 단계가 오며는 이것은 크게 깨달을 시기가 가까워진 것을 알 수가 있다.
그러헌 경지가 도달허더라도
‘어서 깨달랐으면...’허고 깨닫기를 기다려서는
아니 된 것이다. 깨닫기를, ‘이럴 때 누가 탁 나를 깨닫게 해줬으면...’ ‘아, 어서 깨달랐으면...
이러헌 생각을 갖는 것은
벌써 자기가 그 순일한 경계를 깨트리는 결과가 되기
때문에 공부에 크게 방해가 되는 것이여.
절대로 마음을 가져서 깨닫기를 기다려서는 아니 되고,
다못 움직이는 가운데에나 고요한 가운데에 일여하게
공부가 간단없이 그렇게 되아가도록 노력을 헐 것이고, 그렇게 간단없이 되아가며는 자연히 바깥경계가 나를
침범해 들어오지 않는다,
바깥의 어떠한 산란한 경계가 산란하다 하더라도
내게는 조끔도 방해로울 것이 없어.
그래서 그 참 경계가 날로 점점 그 증가해간단 말이여.
그렇게 되며는 자연히 무명(無明)을 파(破)하는
역량이 충실해진단 말이여.
그렇게 되며는
의단이 파해지고
의단이 파함으로써 결국은 무명이 파하고
무명이 파함으로 해서 묘도(妙道)를 깨닫게 되는 것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