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가 말라죽고 진주 의암바위가 거의 붙어버리고 오래전부터 환란이 일어나기전 반드시 징조를 보인다는것이 지금 이나라가 처함 위기상황과 맞물려 2개씩이나 비슷한 시기에 함께 일어낫군요 아참 표충비땀도 인터넷뉴스로 저번에 봣고 이젠 말세우물이 남앗나싶군요 정말 이렇게 우려하던 징조가 나타난거보면 이나라의 겁화는 피할수 없을거 같습니다
그런데 이나라 국민들이 걱정됩니다 빨갱이들에게 속아서 동조한덕분에 자신의 고귀한 생명을 사지로 몰고가니까요 속인넘은 당연히 나쁘지만 속은넘도 나쁘고 그책임을 피할수 없는 결과를 볼수박에 없다는 속담을 깨닫고 지금이라도 늦지않앗으니 이 대한민국 국민들 정신차리고 어리석은 선조들처럼 임진왜란과 육이오때처럼 당하지말기를 바랄뿐입니다 --------------------------------------------------------------- ===============================================================
대나무가 말라 죽으면...의암바위가 붙으면 나라에 큰일이 일어난다는데.?
우리나라에 큰일이 일어 날려나 ?........ [연합뉴스 2006-03-22 11:01]
http://imgnews.naver.com/image/001/2006/03/22/552006032200300_1.jpg
대나무 고사 `괴담' 확산
1. 대나무가 말라 죽으면 나라에 큰일이 일어난다는데..."
지난 겨울 혹한.폭설 凍害 영향, 뿌리 줄기 건재
(군산=연합뉴스) 홍인철 기자 = "대나무가 말라 죽으면 나라에 큰일이 일어난다는데..."
최근 전북지역 곳곳에서 상당수의 대나무의 잎이 누렇게 말라 죽자 `변고가 일어날 징조'라는 전혀 근거 없는 괴담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전국 대나무 재배면적의 24%를 재배하는 등 전국 제1의 주산지인 전남 담양군의 댓잎도 절반 이상이 누렇게 변하다 못해 벌겋기까지 하다.
댓잎을 만지면 우수수 떨어지는데다 부서질 정도로 바삭바삭하게 고사됐다.
그동안 일부 지역에서 군데군데 댓잎 고사현장이 있기는 했지만 이처럼 전체가 온통 피해를 본 경우는 매우 드문 일이다.
종일 따뜻한 햇볕을 쬘 수 있는 양지 바른 야산에 심어져 있는 일부 대나무 만 이 겨우 푸르름을 간직할 정도다.
대나무의 한계 생장온도는 보통 영하 10도.
이 온도가 하루 이상 지속할 경우 피해가 발생하는 점을 감안하면 지난 겨울의 혹한과 폭설이 주 원인이다.
특히 겨울에도 광합성 작용을 하는 댓잎에 수북이 쌓인 눈이 녹 는 과정에서 영 하의 맹추위가 닥치면서 잎이 얼고 고사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다시 말하면 댓잎의 고사는 겨울철의 심한 일교차와 강추위 등 `동해(凍害)'가원인이 된 일시적인 현상일 뿐 땅속의 뿌리와 줄기는 건재하다.
온난대성 식물인 대나무가 혹한과 폭설을 이기지 못한 때문으로 이들 댓잎이 온전한 푸르름을 되찾는 데는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측된다.
하지만 늘 푸르던 대나무가 말라 죽자 이 괴담은 농촌지역을 중심으로 꼬리를 물고 퍼져 나가고 있다
김정렬(74.농업.군산시 회현면)씨는 "6.25 전쟁이 일어날 때도 대나무에 꽃이 피고 말라 죽은 것으로 기억된다"면서 "시국이 어수선하다 보니까 시골에서는 큰일이 생길 것이라는 말들이 파다하다"고 말했다.
회사원 허영숙(41.여.익산시 동산동)씨도 "마을 어르신들이 `대나무가 말라 죽어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들을 하신다"면서 "미신에 불과한 그런 괴담을 믿지는 않지만 그럴 듯해 솔깃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군산시 관계자는 "타 지자체의 실태를 살펴본 결과 경남 일부 지역을 제외하곤 전국적으로 고사 피해가 발생했다"면서 "그런 괴담은 전혀 근거도 없는 자연현상에 불과한만큼 죽순 생산 농가는 비료와 퇴비 등을 뿌려 관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ichong@yna.co.kr
2번째 사례
2. 이 바위가 암벽에 와 닿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더군요
진주성 촉석루
http://blogfile.paran.com/BLOG_199382/200508/1125478165_dmldka.bmp
인터넷에서 찾은 옛 의암 사진
진주성 촉석루 암벽아래 남강 물속에 있는 바위로서 임진 왜란 전에는 위험한 바위라하여 위암(危巖)이라고 불리웠으며 논개가 이 바위에서 왜장을 껴안고 투신한 후 의리를 세운 바위라하여 의암이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 바위는 편평한 윗면의 크기가 가로3.65m, 세로 3.3m로 강물위에 솟아 있는데 오랜 시일을 두고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조금씩 움직여 암벽쪽으로 다가섰다가, 때로는 강속으로 들어가서 암벽에서 건너 뛰기가 힘들 정도로 떨어지는 까닭에 그 뿌리는 어디에 닿았는지 알 길이 없다고 전해옵니다.
바위 서면에는 인조7년(1629)에 원성(原城) 정대륭(鄭大隆)이 논개의 충절을 기리어 전자(篆字)로 의암(義巖)이란 글자를 새겼고, 남면에는 조은(釣隱) 한몽삼(韓夢參)이 해자(楷字)로 의암(義巖)이라고 새겼답니다.
예로부터 진주시민들 사이에는 이 바위가 암벽에 와 닿으면 전쟁이 일어난다는 전설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바위가 떨어져 있는 것이 좋다고 생각했대요.
그런데 지금 그 바위가 다시 암벽에 건너갈 수 있을 만큼 붙어 버린 것입니다
증언 이야기 하나 들어 볼까요.... 자 그럼 60년 이상을 사신 할머니 한분께서 강연회에 참석하신 적이 있습니다. 강사가 의암바위의 전설을 언급하시자 그 할머니께서 하시는 말씀이 "내가 어렸을땐 거기를(의암) 배를타고 건너갔어~" 자 아무리 강물이차서 수위가 높아진들 저 거리를 배를타고 넘어갈까요? 아님 할머니가 거짓말 하시는 걸까요? 제가 어렸을때만 하더라도 어른도 쉽사리 건너가지 못할 넓이였으며 할머니께서 마져 하시는 말씀이 "그 바위가 절벽에 붙으면 옛날부터 천지개벽이 일어난다고 했어~" 라는 증언(?)을 생생히 들었습니다
현재의사진 http://blogfile.paran.com/BLOG_199382/200508/1125478165_dmldka1.bmp http://blogfile.paran.com/BLOG_199382/200508/1125478165_dmldka2.bmp | |
첫댓글 참말 갖다 붙힐때도 디게도 없나 보구려. 오만데다 빨갱이 소리니, 듣는 빨갱이 원참 껄끄러버서, 이주제 바꾸자 했더마는 이걸로 울겨 묵고 잼사마 하는데데 그거 바꾸라면 낙이 없자녀, 내가 글러, 그러지 / 참말 누가 카더라 or 아님말고 방송 지겨운 사람 따로 있지, 절이 실으면 중이 떠나야하는디, ㅉㅉㅉ
푸하하하하하하~~ 다시보면 이런거 재방송이 엄청 많아요 곰곰히 한번 돌아보세요. 과거의 이야기란 것도 거의 모조리 최근의 것이더군요.
괴한광펜님 글 잘 보고 있습니다. 폴권님의 통찰을 정확하게 배우신 분은 광펜님밖에 없는 듯 하네요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