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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141회
제경공(齊景公)은 평구(平邱)에서 돌아왔는데, 비록 晉軍의 위세가 두려워 삽혈하였으나, 晉侯가 원대한 포부가 없음을 알고 다시 제환공(齊桓公)의 패업을 부흥하려는 뜻을 가지게 되었다. 경공이 상국(相國) 안영(晏嬰)에게 말했다.
“晉은 서북방을 제패하고, 과인은 동남방을 제패하면 되지 않겠소?”
안영이 대답하였다.
“晉은 사기궁(虒祁宮)을 짓느라 백성을 괴롭힘으로써 제후들을 잃었습니다. 주군께서 패업을 도모하시려면 백성을 구휼(救恤)하셔야 합니다.”
“백성을 구휼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오?”
“형벌을 줄이면 백성이 원망하지 않고, 세금과 부역을 줄이면 백성이 주군의 은혜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예전의 선왕들은, 봄이 되면 농사를 살펴 부족함을 보충해 주고, 여름이 되면 수확을 살펴 부족한 자를 도와주었습니다. 주군께서도 그것을 본받으십시오.”
경공은 번거로운 형벌을 없애고, 창고의 곡식을 내어 빈궁한 백성에게 빌려주었다. 백성들은 감격하였다.
경공이 동방의 제후들에게 조공을 요구했는데, 서자(徐子)만 따르지 않았다. 경공은 전개강(田開疆)을 장수로 삼아, 군대를 거느리고 가서 徐나라를 정벌하게 하였다. 전개강은 포수(蒲隧) 땅에서 徐軍과 크게 싸워 徐나라 장수 영상(嬴爽)을 참하고 군사 5백여 명을 사로잡았다.徐子는 크게 두려워하여, 사신을 齊나라에 보내 화평을 청하였다.
경공은 담자(郯子)·거자(莒子)를 포수 땅으로 불러 徐子와 함께 동맹을 맺었다. 徐나라는 갑보(甲父)의 정(鼎)을 뇌물로 바쳤다. 晉나라 君臣은 이러한 사실을 알았지만, 감히 齊나라를 문책하지 못하였다. 齊나라는 이때부터 날로 강성해져, 晉과 함께 패권을 잡았다.
[갑보(甲父)는 산동(山東) 지방에 있는 작은 제후국이다.]
경공은 전개강이 徐나라를 평정한 공을 기록하고, 고야자(古冶子)가 황하에서 자라를 죽인 공을 치하하여, 오승지빈(五乘之賓)으로 임명하였다. 전개강이 공손첩(公孫捷)의 용맹을 천거하였다. 공손첩은 얼굴이 푸른색이었고, 눈이 툭 불거졌으며, 신장은 1장(丈)이나 되고 천균(千鈞)을 들 수 있는 힘이 있었다. 경공은 공손첩을 보고 대단하게 여겼다.
[제128회에, 제장공(齊莊公)이 주작과 가거 등에게 각각 병거 5승을 하사하여, ‘오승지빈’이라 불렀었다.]
어느 날 경공이 세 장수를 거느리고 동산(桐山)으로 사냥을 나갔다. 홀연 산속에서 이마의 털이 하얀 호랑이 한 마리가 튀어나와 포효하면서 나는 듯이 달려와 경공이 탄 수레를 끄는 말을 덮쳤다. 경공은 크게 놀랐다. 그때 공손첩이 병거에서 뛰어내리더니 맨손으로 맹호에게 덤벼들었다. 왼손으로 목을 껴안고 오른손 주먹으로 맹호를 때려눕혔다. 경공은 그의 용맹을 칭찬하여 역시 오승지빈에 임명하였다.
공손첩은 전개강·고야자와 의형제를 맺고, 자신들 스스로 ‘제방삼걸(齊邦三傑)’이라 칭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로와 용맹을 믿고 항상 큰소리를 치면서 거리를 활보하며 못된 짓을 일삼고, 공경(公卿)들을 무시하였다. 그들은 경공의 면전에서도 서로 무례하게 떠들어 대었다. 그러나 경공은 그들의 용맹을 아껴 그냥 내버려두고 있었다.
그때 조정에 양구거(梁邱據)라는 아첨배가 하나 있었는데, 그는 경공의 비위를 잘 맞추어 총애를 받고 있었다. 그는 안으로는 경공에게 미녀를 바쳐 아첨하고, 밖으로는 삼걸과 사귀어 도당을 키워 가고 있었다.
거기다 진무우(陳無宇)는 재산을 뿌려 인심을 얻으면서, 장차 나라를 차지할 야심을 품고 있었다. 전개강은 진씨(陳氏)의 일족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손을 잡게 되면 장차 齊나라의 큰 우환거리가 될 것이었다.
[제133회에, 고채와 난조가 주동이 되어 난씨·고씨·진씨·포씨 가문의 가병들을 일으켜 경봉을 축출하고 최씨와 경씨의 재산을 여러 대부들이 나누어가졌는데, 진무우는 아무 것도 취하지 않았으며, 경씨의 장원을 허물고 나온 목재 백여 수레도 모두 백성에게 나누어주었다. 그때부터 백성들은 진씨의 덕을 칭송하게 되었다. 제136회에 진무우와 포국이 난시와 고강을 축출하고 난 후에도, 진무우는 공실에 재산을 바치고 여러 공자들과 백성에게 은혜를 베풀어 민심을 얻었다. 진씨는 전씨(田氏)로 성을 바꾸게 되므로, 전개강은 진씨의 일족이 된다.]
안영은 날마다 걱정이었다. 그들을 제거하고 싶었으나, 경공이 듣지 않으면 도리어 그들과 원한만 맺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 晉나라와 화합하지 못한 노소공(魯昭公)이 齊나라와 우호를 맺기 위해 친히 찾아왔다. 경공은 연회를 베풀어 노소공을 대접하였다. 이 자리에는 魯나라 쪽에서는 숙손착(叔孫婼)이, 齊나라 쪽에서는 안영이 함께 배석했다. 삼걸은 계단 아래에서 칼을 차고 거만하게 서 있었다. 그들은 안중무인(眼中無人)이었다.
[제140회에, 평구에서 회맹했을 때 주(邾)나라와 거(莒)나라가 노나라의 침공을 호소하자 진소공(晉昭公)이 노나라 상경(上卿) 계손의여를 구금했었기 때문에 노소공은 晉나라에 불만을 품었었다.]
두 군후가 술이 어느 정도 오르자, 안영이 아뢰었다.
“후원의 금도(金桃)가 익었으니, 그것을 드시고 두 군후께서는 장수(長壽)를 누리십시오.”
경공이 후원 관리를 불러 복숭아를 따오라고 하자, 안영이 아뢰었다.
“금도는 얻기 어려운 물건이니, 신이 직접 가서 따오겠습니다.”
안영이 후원 열쇠를 받아 나가자, 경공이 노소공에게 말했다.
“그 복숭아는 선군 때 동해(東海) 사람이 커다란 씨를 헌상한 것인데, 이름을 만수금도(萬壽金桃)라 합니다. 원산지는 해외의 도색산(度索山)인데, 그곳에서는 반도(蟠桃)라고 한답니다. 심은 지 30여 년이 되었는데, 가지와 잎은 무성하면서도 꽃이 피고 열매를 맺지 않았습니다. 올해에 와서야 비로소 열매가 몇 개 열렸는데, 과인은 그것을 귀중히 여겨 후원의 문을 잠거 두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렇게 군후께서 왕림하셨으니, 과인은 어진 君臣과 함께 맛을 보고자 합니다.”
노소공은 두 손을 모으고 감사인사를 하였다.
[‘반도(蟠桃)’는 전설에 나오는 귀한 복숭아인데, 곤륜산(崑崙山)의 선녀 서왕모(西王母)가 한 무제(漢武帝)에게 주었다고 하는 선도(仙桃)이다. 3천 년에 한 번씩 열매가 열린다고 한다.]
잠시 후, 안자(晏子)가 후원 관리를 데리고 들어와서 쟁반을 바쳤는데, 쟁반에는 여섯 개의 복숭아가 놓여 있었다. 크기는 주발만하고, 색깔은 숯불처럼 붉었으며, 향기가 코를 찌르는데, 참으로 진기한 과일이었다. 경공이 물었다.
“익은 복숭아가 이것뿐이오?”
안자가 대답하였다.
“서너 개가 더 있는데 아직 익지 않아, 익은 것만 여섯 개 따 왔습니다.”
경공이 안자에게 술을 따르라고 하자, 안자가 옥 술잔에 술을 따라 노소공에게 공손히 바쳤다. 시종이 복숭아를 바치자, 안자가 치사(致詞)하였다.
“말[斗]만큼 큰 이런 복숭아는 천하에 드문 것이니, 두 분 군후께서는 이것을 드시고 천수(千壽)를 누리십시오!”
노소공은 술을 한 잔 마시고 복숭아를 먹었는데, 그 감미로운 맛이 참으로 비상하여 감탄해 마지않았다. 경공 역시 술 한 잔을 마시고 복숭아를 먹고 난 뒤 말했다.
“이 복숭아는 쉽게 얻을 수 있는 과일이 아니오. 숙손대부는 그 어진 이름이 사방에 널리 알려져 있으니, 이 복숭아를 하나 드시오.”
숙손착이 무릎을 꿇고 말했다.
“신은 상국의 어짊에 만분의 일도 미치지 못합니다. 상국께서는 안으로 국정을 다스리고 밖으로 제후들을 복종시켰으니, 그 공이 적지 않습니다. 이 복숭아는 마땅히 상국께서 드셔야 할 것입니다. 신이 어찌 감히 먹을 수 있겠습니까?”
경공이 말했다.
“숙손대부가 상국에게 사양하니, 두 사람 다 각기 술 한 잔과 복숭아 한 개를 받도록 하시오.”
두 사람은 무릎을 꿇고 술과 복숭아를 받아먹고 사은하였다. 안자가 말했다.
“쟁반에는 아직 두 개의 복숭아가 남아 있습니다. 주군께서는 여러 신하들 가운데서 공로가 큰 자에게 이 복숭아를 하사하시어 그 공을 표창하십시오.”
경공이 말했다.
“상국의 말이 옳소. 자신의 공로가 크다고 생각하는 자는 스스로 나와서 말하도록 하라. 그리고 상국은 그 공로를 평가하여 복숭아를 내리도록 하시오.”
공손 첩이 먼저 나서서 말했다.
“지난날 주군께서 동산에서 사냥하실 때 제가 맹호를 때려눕혔으니, 그 공이 어떠합니까?”
안자가 말했다.
“하늘을 떠받치듯 어가를 보호하였으니, 그 공이 참으로 크도다.”
공손 첩이 술 한 잔과 복숭아 한 개를 받아먹고 물러나자, 이번에는 고야자가 분연히 나섰다.
“맹호를 때려눕힌 것이 뭐 그리 대단하오? 저는 일찍이 황하에서 거대한 자라를 참하여 주군을 위험에서 구하였으니, 그 공은 어떻습니까?”
경공이 말했다.
“그때 파도가 몹시 거세어 장군이 자라를 죽이지 않았다면, 배가 뒤집어져 과인은 물에 빠져 죽었을 것이오. 이는 개세기공(蓋世奇功)이니, 복숭아를 먹을 자격이 있소. 뭘 의심하겠는가?”
[‘개세기공(蓋世奇功)’은 세상을 덮을 만큼 큰 기이한 공로이다.]
안자는 고야자에게 술 한 잔과 복숭아 한 개를 주었다. 그러자 전개강이 옷을 떨치며 나섰다.
“저는 일찍이 군명을 받들어 徐나라를 정벌하여 명장을 참하고 병사 5백여 명을 사로잡았습니다. 그러자 徐나라 군후가 두려워 뇌물을 바치고 화평을 청하였으며, 담(郯)나라와 거(莒)나라도 우리의 위세를 두려워하여 주군을 맹주로 받들었습니다. 그 공은 복숭아를 먹을 만하지 않습니까?”
안자가 경공에게 아뢰었다.
“전개강의 공은 다른 두 장수에 비해 열 배나 더 큽니다. 하지만 이제 복숭아가 없으니, 술이나 한 잔 하사하시고 내년을 기다리라고 하십시오.”
경공이 말했다.
“경의 공이 가장 크지만, 늦게 말한 것이 안타깝도다. 경의 큰 공을 치하할 복숭아가 없구려.”
전개강은 칼자루를 잡으며 말했다.
“자라를 참하고 맹호를 때려잡은 것은 사소한 일이지만, 저는 천리 밖으로 나가 혈전(血戰)을 하여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도 복숭아를 먹지 못하고 양국의 君臣 앞에서 모욕을 당하여 만대의 비웃음을 샀으니, 무슨 면목으로 조정에 서겠습니까?”
말을 마치자 전개강은 칼을 뽑아 자결하였다. 공손 첩은 크게 놀라 역시 칼을 뽑아 들고 말했다.
“우리는 작은 공으로도 복숭아를 먹었는데, 전군(田君)은 큰 공을 세우고도 복숭아를 먹지 못했습니다. 복숭아를 그에게 양보하지 않은 것은 염치없는 일이며, 사람이 죽는 것을 보고도 따라 죽지 않는다면 용기가 없는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공손 첩도 자결하였다. 그러자 고야자가 크게 소리쳤다.
“우리 세 사람은 의형제를 맺고 생사를 같이하기로 맹세했는데, 이제 두 사람이 죽었으니 내 어찌 홀로 살 수 있겠는가?”
고야자도 또한 자결하였다. 경공이 급히 말리려 하였으나, 이미 늦었다. 노소공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과인이 듣건대, 저 세 사람은 천하의 용장(勇將)이라 하였는데, 하루아침에 모두 죽었으니 참으로 아까운 일입니다.”
경공은 그 말을 들으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안색이 변하였다. 안영이 조용히 말했다.
“저들은 다만 용맹만 있는 자들에 지나지 않습니다. 비록 작은 공은 있었다 하나, 입에 오르내릴 만한 인물은 못됩니다.”
노소공이 말했다.
“상국에는 저런 용장들이 몇이나 있소?”
안영이 대답했다.
“묘당(廟堂)에서 정책을 세워 만리에 국위를 떨칠 수 있는 장상지재(將相之材)가 수십 명입니다. 혈기지용(血氣之勇)을 지닌 자들로 말하자면, 우리 주군께서 매질이나 하여 부릴 뿐입니다. 저들의 생사는 齊나라에 아무런 영향도 없습니다.”
경공은 다소 마음이 풀렸다. 안영이 다시 두 군후에게 술잔을 올리자, 두 군후를 즐겁게 술을 마시고 헤어졌다.
삼걸의 묘는 탕음리(蕩陰里)에 있는데, 후한(後漢)의 제갈공명(諸葛孔明)이 그곳을 지나다가 양보음(梁父吟)이란 시를 지어 이렇게 읊었다.
步出齊東門 제나라 동문을 나서면
遙望蕩陰里 저 멀리 탕음리가 보이는데
里中有三墳 마을 가운데 분묘가 셋 있으니
纍纍正相似 비슷한 무덤이 나란히 놓였도다.
問是誰家塚 묻노니 저것이 누구의 무덤이냐
田疆古冶子 전개강 고야자 등의 무덤이로다.
力能排南山 힘으로는 남산을 밀어낼 수 있고
文能絕地紀 지략(智略)으로는 땅을 가를 수 있었도다.
一朝中陰謀 하루아침에 음모에 걸려들어
二桃殺三士 복숭아 둘로 세 용사를 죽였으니
誰能為此者 누가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가.
相國齊晏子 바로 제나라 상국 안자로다.
[‘이도살삼사(二桃殺三士)’는 복숭아 두 개로 세 용사를 죽인다는 뜻으로, 교묘한 책략으로 상대를 자멸하게 하는 것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노소공이 떠난 후, 경공이 안영에게 물었다.
“경이 연석에서는 큰소리를 쳐서 齊나라의 체면을 일시 세우기는 했지만, 저 삼걸의 뒤를 이을 사람이 있겠소?”
안영이 대답하였다.
“신이 한 사람을 천거하겠습니다. 그는 삼걸을 대신하기에 충분합니다.”
“어떤 사람이오?”
“전양저(田穰苴)라는 사람으로, 文으로는 군사를 부릴 수 있고, 武로는 적을 위압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야말로 진정한 대장감입니다.”
“그는 전개강의 일족이 아니오?”
“그는 전씨의 일족이기는 하나 서얼(庶孽) 출신으로 신분이 미천하기 때문에, 전씨들은 그를 예우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동해 가에 은거하고 있습니다. 주군께서 명장을 얻고자 하신다면, 그보다 나은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경이 이미 그의 현명함을 알고 있었다면, 왜 좀 더 일찍 말하지 않았소?”
“큰 인물은 자기가 섬길 주군만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사람도 택하는 법입니다. 전개강이나 고야자 같은 혈기만 부릴 줄 아는 무리들과 어찌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겠습니까?”
경공은 말로는 좋다 하였으나, 전씨와 진씨가 동족이라 마음속으로 꺼려하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주저하고 있었다.
[전양저는 대사마(大司馬)가 되어, 흔히 사마양저(司馬穰苴)라고 불린다. 그가 썼다고 하는 사마법(司馬法)이라는 병법서는, 중국의 대표적인 병법서인 ‘무경칠서(武經七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무경칠서는 손자병법(孫子兵法)·오자병법(吳子兵法)·육도(六韜)·삼략(三略)·사마법(司馬法)·울료자(尉繚子)·이위공문대(李衛公問對)의 일곱 병법서를 일컫는다.]
어느 날, 변방에서 급보가 날아왔다.
“晉나라에서 삼걸이 죽은 것을 알고 군대를 일으켜 동아(東阿) 경계를 침범하였고, 연(燕)나라도 기회를 틈타 북방을 침범하였습니다.”
경공은 크게 놀라, 안영에게 예물을 가지고 동해로 가서 전양저를 데려오라고 하였다. 전양저가 입조하여 병법을 얘기하자, 경공은 흡족하여 그날로 그를 장군에 임명하였다. 그리고 병거 5백승을 주어 燕軍과 晉軍을 막으라고 하였다. 전양저가 청했다.
“신은 미천한 신분으로 주군께서 저를 시골에서 발탁하셔서, 갑자기 병권을 맡기셨으니 인심이 복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군께서 총애하시고 나라 사람들이 존중하는 신하 한 사람을 감군(監軍)으로 임명해 주시면, 신의 명령이 잘 시행될 것입니다.”
경공은 총애하는 대부 장가(莊賈)를 감군으로 임명하였다. 전양저와 장가는 경공에게 사은하고 물러나왔다. 조문 밖에 나와서 장가가 전양저에게 출병하는 시각을 묻자, 전양저가 말했다.
“내일 정오입니다. 군문에서 기다릴 터이니, 늦지 마십시오.”
말을 마치고 두 사람은 헤어졌다.
다음 날 정오가 되기 전에 전양저는 군중에 도착하였다. 전양저는 군리(軍吏)를 불러 장대를 세워 해 그림자를 재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람을 보내 장가를 재촉하였다.
장가는 나이도 어린데다 경공의 총애를 믿고 평소에 교만하여, 전양저는 안중에도 없었다. 게다가 감군이 되자 권세가 자기에게 있는 줄 알고, 출병하는 시각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날, 장가는 친척과 빈객들이 베풀어주는 송별연에 참석하여 기분 좋게 술을 마시고 있었다. 전양저가 보낸 사자가 와서 재촉했으나, 장가는 느긋하였다.
전양저는 장가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이미 해는 서쪽으로 기울기 시작하여 정오를 지나 2시가 되었는데도 장가는 나타나지 않았다. 전양저는 군리에게 분부하여 장대를 치우고 물시계의 물을 쏟아 버리게 하였다. 전양저는 단 위에 올라가 군사들에게 출발 준비를 갖추라고 호령하였다.
해가 저물 무렵에야 장가가 네 마리 말이 끄는 높은 수레를 타고 나타났다. 술이 취한 모습으로 군문에 당도하여 천천히 수레에서 내려 좌우의 부축을 받으면서 지휘대로 올라왔다. 전양저는 일어서지도 않고 단정하게 앉은 채 장가에게 말했다.
“감군께서는 무엇 때문에 이렇게 늦었습니까?”
장가가 두 손을 마주잡고 대답하였다.
“오늘 원정을 떠난다 하여, 친척들과 친구들이 베풀어 준 송별연에 참석하느라 이렇게 늦었소.”
“모름지기 장수가 된 사람은 군명을 받는 그 날로 집을 잊고, 군중에서 약속하면 가족도 잊으며, 북채를 잡으면 시석(矢石)을 무릅쓰고 제 몸도 잊어야 하는 법이오. 지금 적국이 변경을 침범하고 소동을 일으켜 주군께서는 잠도 편히 주무시지 못하고 밥을 먹어도 맛을 모르는 형편이오. 삼군의 군사들을 우리 두 사람에게 맡겨 조석 간에 공을 세워 백성들의 위난을 구하기를 바라고 계신데, 어느 겨를에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즐길 새가 있단 말이오?”
장가는 오히려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다행히 아직 기일을 어기지 않았으니, 원수께서는 지나치게 책망하지 마시오.”
전양저는 크게 노하여 손으로 책상을 탕 치면서 소리쳤다.
“너는 주군의 총애를 믿고 군심(軍心)을 태만히 하였다! 적을 앞에 두고 이런 태도를 취한다면, 어찌 대사를 그르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전양저는 군정사(軍政司)를 불러 물었다.
“군법에 의하면, 시각에 늦은 자는 어떤 죄에 해당하는가?”
군정사가 말했다.
“참형(斬刑)입니다.”
장가는 ‘참(斬)’이란 말을 듣자 정신이 번쩍 들어 지휘대 아래로 뛰어내려 달아났다. 전양저는 부하들에게 명하여 장가를 잡아오게 하여, 군문에서 참수하라고 명하였다. 장가는 술기운이 다 달아나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장가의 수행원들은 황급히 경공에게 달려가 장가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청하였다.
경공은 깜짝 놀라 급히 양구거를 불러 분부했다.
“이 부절(符節)을 가지고 가서, 과인의 명령이니, 장가의 목숨을 살려주라고 하시오.”
양구거는 혹시나 늦을세라 빠른 수레를 타고 질풍처럼 달려갔다. 하지만 그때 이미 장가의 수급은 군문에 걸려 있었다. 양구거는 그런 줄도 모르고 부절을 치켜들고 군중으로 수레를 달렸다. 전양저가 소리쳤다.
“저 수레를 멈추게 하라!”
전양저는 다시 군정사를 불러 물었다.
“군중에서는 수레를 달리지 못하는 법이니, 저 사자(使者)는 무슨 죄에 해당하는가?”
“역시 참형입니다.”
양구거는 얼굴이 흙빛이 되어 변명했다.
“저는 다만 주군의 명을 받들어 왔을 뿐입니다.”
전양저가 말했다.
“군명을 받고 왔으니, 죽일 수는 없다. 그러나 군법을 버릴 수는 없으니, 수레를 부수고 말을 참하여 사자의 죽음을 대신하게 하라.”
양구거는 겨우 목숨을 보존하여 머리를 감싸 쥐고 재빨리 달아났다. 이를 보고 있던 군사들은 두려워 떨지 않는 자가 없었다.
전양저의 군대가 교외로 나가기도 전에, 晉軍은 소문을 듣고 도망쳤으며, 燕軍도 강을 건너 북쪽으로 달아났다. 전양저는 달아나는 燕軍의 뒤를 추격하여 만여 명을 참수하였다. 燕軍은 대패하고, 많은 뇌물을 바치며 화평을 청하였다.
군대가 돌아오는 날, 경공은 친히 교외에까지 나가 삼군을 위로하였으며, 전양저를 대사마에 임명하였다. 이리하여 전양저는 齊나라의 병권을 쥐게 되었다
사관이 시를 읊었다.
寵臣節使且罹刑 총신도 부절을 지닌 사자도 형벌을 면치 못했으니
國法無私令必行 국법은 사사로움이 없어 군령을 반드시 시행하였도다.
安得穰苴今日起 전양저가 오늘 공을 이룰 수 있었음은
大張敵愾慰蒼生 적개심을 크게 일으켜 창생을 위로했기 때문이었다.
[‘창생(蒼生)’은 백성 혹은 모든 사람을 말한다.]
전양저의 명성을 들은 제후들은 두려워 복종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경공은 나라 안의 일은 안영에게 맡기고 나라 밖의 일은 전양저에게 맡겼다. 이리하여 齊나라는 크게 다스려지고 군대가 강해져, 사경(四境) 안이 무사하였다. 경공은 마치 환공(桓公)이 관중(管仲)에게 국정을 일임했던 것처럼, 자신은 사냥과 술로 소일하였다.
어느 날, 경공은 궁중에서 희첩(姬妾)들과 더불어 술을 마셨는데, 밤이 되어도 취흥이 일지 않자 문득 안영이 생각났다. 경공은 술과 음식 등을 챙겨 가지고 안영의 집으로 행차하였다. 내시가 먼저 달려가서 안영에게 알렸다.
“주군께서 오고 계십니다.”
안영은 의관을 정제하고 홀을 잡고서 대문 밖에 서 있었다. 경공이 미처 어가에서 내리기도 전에, 안영이 앞으로 나아가 어가를 영접하며 황급히 경공에게 물었다.
“제후들에게 무슨 변고가 있습니까? 아니면 나라 안에 무슨 변고가 있습니까?”
경공이 말했다.
“아무 일도 없소.”
“그렇다면 주군께서는 이런 밤늦은 시각에 어떻게 신의 집에까지 행차하셨습니까?”
“상국이 정사를 돌보느라 수고가 많은데, 지금 과인이 술과 음악을 혼자 즐길 수 없어 상국과 함께 즐기고자 왔소.”
“나라를 안정시키고 제후들을 평정하는 일이라면, 신과 상의해 주십시오. 하지만 술과 음악을 즐기는 일이라면, 신이 아니더라도 좌우에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경공은 어가를 돌려 이번에는 사마 양저의 집으로 갔다. 양저는 갑옷을 입고 창을 들고 대문 밖에 나와 어가를 영접했다. 양저는 경공에게 몸을 굽혀 인사하며 물었다.
“제후들이 군대를 일으켰습니까? 아니면 대신이 반역을 했습니까?”
경공이 말했다.
“그런 일 없소.”
“그렇다면 이렇게 밤늦은 시각에 신의 집에 행차하신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별다른 일이 아니오. 장군이 군무에 노고가 많은지라, 과인이 장군과 더불어 술과 음악을 즐기고자 왔소.”
“적의 침입을 막고 반역자를 처단하는 일이라면, 신과 상의해 주십시오. 하지만 술과 음악을 즐기는 일이라면, 주군의 좌우에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투구와 갑옷을 입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경공은 흥취를 잃어 버렸다. 좌우의 신하들이 물었다.
“그만 궁으로 돌아가시겠습니까?”
경공이 말했다.
“양구 대부의 집으로 가자.”
경공의 어가가 미처 당도하기도 전에, 양구거는 좌우에 거문고와 비파를 타게 하고 노래를 부르면서 경공을 영접하였다. 경공은 크게 기뻐하며 의관을 벗어 던지고 밤새도록 놀았다.
첫댓글 과연 산둥성에는 인물도 많아.
산둥성 옛 제나라 땅 쯔보(치박)에 가면,
제 경공 순마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