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사자의 울음소리를 닮은 할리데이비슨의 우렁찬 엔진 소리는 그의 심장을 요동치게 하기에 충분했고, 백마의 요염한 자태를 형상화한 할리데이비슨만의 차체는 그의 눈을 멀게 했다.
일흔일곱 황혼의 바이커 최응규 원장(최응규 내과의원)의 할리데이비슨 도전기는 그렇게 시작됐다.
‘질주본능=바이크’라는 등식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넘어지고, 깨지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을 수 있는 바이크의 매력은 도대체 뭘까.
“할리 이 녀석 심장소리 들어 본적 있수? 이 놈 울음소리는? 사자를 닮았단 말이지, 이 녀석의 심장과 울음이 말이야. 또 달릴 때는 어떻구. 때묻지 않은 뉴질랜드의 대평원을 달리는 야생마 등위에 올라탄 기분…. 딱 그 느낌이지.”
늘 마음 한구석에 할리데이비슨이라는 사자를 담고 살았다는 최 원장.
이런 그였지만 지난 50여년 동안 ‘환자 진료와 자녀양육’이라는 인생의 굴레에서 자유롭지는 못했다.
“바쁜 삶을 살았지. 30년간 성모병원 봉직의 생활을 하다 개원을 했으니 말이야. 가정을 꾸리고 살다보면 ‘자신의 로망’을 죽여야 할 때가 많지. 어떻게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 수 있겠어. 그렇게 살아오다 보니 비로서 2008년 12월에 내 꿈을 향한 도전을 시작했지.”
그렇지만 일흔을 훌쩍 넘긴 노구는 마음같지 않았다. 무릎이 까지고, 손을 삐고, 넘어지기를 수백차례 거듭했다.
줄곧 장학생과 1등이라는 타이틀만 거머쥔 그였지만 원동기실기 시험에서는 4번의 고배를 마셔야만 했다.
시험에서 떨어 질 때 마다 떠올렸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미끄러지듯 드라이빙하는 자신의 모습을….
결국 그는 2009년 1월 원동기면허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고, 그의 꿈은 현실이 됐다.
“너무 좋지. 애마를 타고 포천 산정호수 길을 시원하게 달리면 세상을 다 얻은 기분이야. 집사람은 지금도 오토바이 타는 것을 반대하지만 그래도 좋은 걸 어떡하겠어.”
최 원장이 소유한 애마의 종류는 헤리테지 클래식(1580cc)과 883(850cc) 두 가지 모델이다.
그날의 기상상황과 기분에 따라 골라 타는 재미를 만끽하기 위함이다.
최 원장은 또 라이더스칸이라는 할리데이비슨 동호회에도 가입돼 있지만 애마와 단둘만의 드라이브를 선호하는 편이다.
희수(77세)의 나이에 할리데이비슨과 달콤한 연애를 즐기고 있는 그의 꿈은 외화 속 주인공 레니게이드가 되는 것이다.
“애마의 심장고동소리를 들으며 전국일주를 하는 게 꿈이야. 봇짐하나 걸쳐 매고 그렇게 마냥 달리고 싶어. 인생이 그렇잖아 비가 오면 비 맞으며 눈 내리면 눈 맞으면서 걸어야 하듯이….”
생애 마지막 로망을 얘기하는 그의 눈빛과 목소리 그리고 마음은 이미 까만색 선글라스에 바이크복을 입고 애마 ‘할리’를 몰며 코발트빛 동해바다를 향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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