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새벽 세월호 유족들과 대리기사 사이에 충돌이 일어났다. 대리기사를 불러놓은 상태에서 유족들과 새정치연합 김현 의원의 대화가 길어지자 대리기사가 “그냥 돌아가겠다”고 할 한 것이 발단이 된 모양이다. 그러면서 몸싸움으로 번진 것이다.
유족들 비난 받아 마땅...하지만 유족도 사람
경찰은 세월호 가족대책위 김병권 위원장과 김형기 수석부위원장을 포함한 세월호 유가족 5명을 대리기사와 행인 2명을 폭행한 혐의로 입건했다고 밝혔다. 불미스러운 폭행 사건에 연루됐다는 것만으로도 그곳에 있던 유족들은 여론의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 직후부터 지금까지 국민들로부터 아낌없는 위로와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경위야 어쨌든 유족들과 김현 의원의 행동은 잘못된 것이다. 30분이나 기다려야 했던 대리기사도 사람이다. 화도 나고 짜증도 났을 것이다. 그런 대리기사의 항의성 발언에 대해 국회의원 신분을 내세우며 윽박질렀다는 건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이다. ‘술 때문에’ ‘마음이 편치 않아서’ 등의 변명도 통할 수 없다.
그러나 유족들도 사람이다. 평범한 서민이란 얘기다. 객기를 부릴 수도 있고 가끔 실수도 할 수 있다. 더욱이 이들의 마음이 최근 크게 상한 상태다. 박 대통령이 “기소권과 수사권을 요구하는 건 삼권분립과 사법체계를 흔드는 일”이라며 유족들의 염원을 단호하게 거절했기 때문이다. 낙심한 사람이 술까지 마시게 되면 본의 아니게 민감한 반응을 보이기나 종종 실수도 하게 된다.
<침소봉대하려는 언론들을 비판한 한국일보 서화숙 편집위원의 트윗 글>
‘상처 입은 이들의 작은 실수’, 침소봉대하기 바쁜 언론들
그런데 종편과 조중동 등 정부편향 언론들은 ‘세월호 유족 폭행’이라는 기사를 쏟아내며 큰 것 한건 잡았다는 듯 유족들을 향해 맹공을 퍼부었다. ‘큰 상처 입은 이들의 작은 일탈’로 봐줄 수도 있는 일인데 사건을 침소봉대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기사의 논조는 ‘너희들 잘 걸렸다’ ‘한 번 당해 봐라’는 투다.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망발을 늘어놓았다. 이번 사건이 국민에게 큰 실망을 안겨줬다고 전제한 뒤 “일부 유족 대표는 이날 세월호 추모 노란 리본을 가슴에 달고 있었다”며 “그 순간만큼은 이들이 달고 있는 노란 리본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러도 되는 ‘완장’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정신 나갔나. 자식 목숨의 대가로 ‘완장’을 차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겠는가. 억울한 죽음을 잊지 말자고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 달기 시작한 노란리본을 이렇게 모독하다니. 펜대 함부로 굴리는 것도 유분수다. 노란리본 착용을 금지하려 했던 교육부의 처사보다 더 잔인하고 비정하다. 무소불위의 권력? 그런 권력 얘기하려면 세월호 진상규명을 막고 있는 청와대로 가라. ‘청와대 권력에’에 막히고 눌려 절망 속을 헤매는 힘없는 유가족들을 막가파식으로 폄훼하다니 어처구니없다.
“노란리본은 무소불위의 완장”이라고 주장한 <조선>
이런 기사 쓰기 전에 청와대 권력을 뒷배 삼아 <조선>이라는 ‘완장’차고 세월호 참사 5개월 내내 이리저리 깝치며 국민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던 많은 시간들을 먼저 돌아 봤어야 했다. 그러고도 유족들의 ‘노란리본’이 ‘완장’으로 보인다면 그건 큰일이다. 인간으로서의 인지능력을 상실한 거나 다름없으니 말이다. 인두껍을 쓴 짐승이 아니라면 그런 말 입에 담지 못할 터 얼빠진 얘기 하지 마라. ‘노란리본’은 ‘상처’이지 ‘완장’이 아니다.
또 <조선>은 “이런 모습은 어느 정도 예견됐던 일”이라며 “특별법 협상안을 두 번이나 뒤엎었어도 야당과 친야 단체들은 이들을 떠받들기에 급급했다. 오죽하면 세월호 유족대표가 야당의 상왕(上王)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라며 비꼬았다.
왜 유가족들이 ‘수사권과 기소권 있는 특별법’을 요구하는지, 야당과 시민단체가 어떤 연유로 유족들을 떠받드는 건지 도통 모른다는 건가. 정치판 꿰고 있는 <조선> 아닌가. 수사권-기소권 없는 특별법으로는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잘 알면서도 모른 척하는 건가. < 조선>은 모른 척해도 <조선>의 기자들은 삼삼오오 소주 한잔 할 때 분명 이런 속내 털어놓을 거다.
한사코 안 된다니...무엇을 감추려는 걸까?
떠받드는 게 정상이고, ‘상왕’ ‘완장’하며 모독하는 것이 비정상이다. 억울하게 큰 아픔을 당한 이들을 떠받드는 건 사회가 할 책무다. 이들이 요구하는 것이 ‘진상규명’이라면 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최종책임자’인 대통령이 할 일이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진상조사위원회라는 기구에 부여하는 게 사법체계를 흔드는 것이라는 주장은 진상을 덮으려는 ‘은폐용 변명’에 불과하다. 문제될 게 없는데 한사코 안 된단다. 대체 무엇이 구린 건가. ‘7시간 미스터리’보다 더한 게 뭘까.
유족들을 ‘폭도’ 취급했다. 그동안 유족들이 “장관, 국회의원들에게도 행패에 가까운 언동을 감추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제 사정 아니라고 함부로 말한다.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 보라. 죽어가는 생명을 멀뚱멀뚱 지켜만 본 정부가 내놓은 ‘골든타임 구조0명’이라는 ‘불세출의 위업’, 그 앞에서도 차분하고 예의 바르게 행동했어야 옳다는 주장이다. 유가족 모두 생불(生佛)이 돼야 한다고 떼를 쓰는 건가.
“세월호 유족 대표들의 모습은 지난 다섯 달간 우리 사회가 얼마나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왔는가를 보여 주는 자화상”이라는 궤변도 나온다. 적반하장이다. 홀딱 뒤집어 말하는데 이골이 난 <조선>이라 해도 너무 하다. 작금의 우리사회를 이렇게 만든 게 유가족들이라니. 아니다.
‘노란리본’ 모독하는 저들은 인두껍 쓴 짐승
‘세월호 사건’을 ‘유병언-유대균-김혜경’ 사건으로 둔갑시키고 사고 최종책임자를 ‘대통령’에서 ‘이준석 선장’으로 치환시키며 상식과 정의를 짓뭉갠 대통령과 <조선> 같은 편향언론들이 한 짓이다.
<조선>뿐 아니라 보수언론 모두 들고일어나 유족들의 ‘작은 일탈’을 엄청난 사건으로 부풀리기 바쁘다. 이번 일로 유족들이 더 이상 수사권과 기소권을 주장하지 못할 거라고 말하는 언론도 있다. 유족들이 대리기사를 국정원 직원으로 몰았다며 비난하기도 한다. 5개월 동안 국정원의 미행을 당해온 유족이다. 의심을 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건 청와대다.
대통령과 정부여당 그리고 이들을 호위하는 보수언론들. 얼마나 무능하고 뻔뻔하면 세월호 참사하나 수습하지 못한 채 유족들을 모독하며 화살을 겨눈다. 노란리본이 ‘완장’이라고? 천만에. 노란리본은 이딴 식으로 말하는 세력들의 숨통을 옥조일 부메랑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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