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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列國志 제142회
다음 날 아침, 안영(晏嬰)과 양저(穰苴)가 함께 입조하여, 제경공(齊景公)에게 사죄하는 한편 간하였다.
“밤중에 신하의 집에 술 마시러 가지 마십시오.”
경공이 말했다.
“경들이 없으면 과인이 어찌 나라를 다스리겠소만, 양구거(梁邱據)가 없으면 과인은 또 어떻게 즐길 수 있겠소? 과인은 경들의 직무를 방해하지 않을 터이니, 경들도 과인의 일을 간섭하지 마시오.”
사관(史官)이 시를 읊었다.
雙柱擎天將相功 두 기둥이 나라를 떠받쳐 하늘이 공을 이루게 하였으니
小臣便辟豈相同 어찌 소신(小臣)들처럼 아첨이나 했겠는가?
景公得士能專任 경공은 현사(賢士)를 얻어 국정을 맡길 수 있었으니
嬴得芳名播海東 아름다운 이름을 해동(海東)에 떨치게 되었도다.
그때 중원(中原)에는 많은 일이 일어났지만, 晉나라는 해결하지 못하였다. 진소공(晉昭公)은 즉위한 지 6년만에 훙거하고, 세자 거질(去疾)이 즉위하였으니 그가 진경공(晉頃公)이다. 경공이 즉위한 해에, 한기(韓起)와 양설힐(羊舌肹)이 세상을 떠났다. 위서(魏舒)가 국정을 맡아, 순력(荀躒)·범앙(范鞅)과 함께 정사를 보았는데, 두 사람이 탐욕하다는 소문이 널리 퍼졌다.
[위서는 처음에 난영(欒盈)과 같은 도당이었는데, 제127회에 난영이 제나라에서 돌아와 강주성을 공격하였을 때 범앙에게 이끌려 난영과 반대편에 서게 되었다. 범앙은 범개(范匃)의 아들로서 난영을 물리칠 때 공을 세웠다.]
기씨(祁氏)의 가신(家臣) 기승(祁勝)이 우장(鄔臧)의 아내와 사통하여, 기영(祁盈)이 기승을 잡아들였다. 기승이 순력에게 뇌물을 바치자, 순력은 경공에게 참소하여 도리어 기영을 잡아들였다. 양설식아(羊舌食我)는 기씨의 도당이었으므로, 기승을 죽였다. 경공은 노하여 기영과 양설식아를 죽이고, 기씨와 양설씨의 종족을 몰살하였다. 晉나라 사람들은 그 일을 원통하게 여겼다.
[기영은 기오(祁午)의 아들이고 기해(祁奚)의 손자이다. 기해는 제119회의 ‘기해천수(祁奚薦讐)’의 주인공이다. 양설식아는 양설힐의 아들이다.]
한편, 노소공(魯昭公)은 강신(強臣) 계손의여(季孫意如)에 의해 축출되었는데, 晉나라 순력이 계손의여에게 뇌물을 받고 노소공의 복위를 꾀하지 않았다. 그러자 제경공이 언릉(鄢陵)에 제후들을 소집하여 魯나라의 변란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천하의 제후들은 제경공의 의기를 높이 샀으며, 그리하여 제경공이 이름을 떨치기 시작했다. 이것은 훗날의 얘기이다.
한편, 주경왕(周景王) 19년, 吳王 이매(夷昧)는 재위 4년에 병이 위독해졌다. 부형(父兄)의 유명(遺命)에 따라 계찰(季札)에게 군위를 전하려 하자, 계찰이 사양하며 말했다.
[제121회에, 吳王 수몽(壽夢)은 병이 위독해지자, 제번·여제·이매·계찰 네 아들에게, 막내 계찰이 가장 현명하니 아우에게 군위를 전하라고 유언했었다. 제130회에 제번이 초나라를 침공했다가 전사하고 여제가 즉위했고, 제132회에 여제가 월나라를 정벌하다가 죽고 이매가 즉위했었다.]
“저는 군위를 받지 않겠다고 명백히 말했습니다. 예전에 부왕께서 명하셨을 때에도 저는 감히 따르지 않았습니다. 저에게 부귀란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쳐가는 것과 같을 뿐이니, 제가 어찌 군위에 애착을 두겠습니까?”
[‘가을바람이 귓가를 스쳐가는 것’을 ‘추풍과이(秋風過耳)’라고 하는데, 여기서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으며,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계찰은 자신의 식읍인 연릉(延陵)으로 돌아가 버렸다. 이매가 훙거하자, 백관은 이매의 아들 주우(州于)를 군위에 세웠다. 주우는 이름을 요(僚)라고 고쳤는데, 그가 바로 왕료(王僚)이다.
제번(諸樊)의 아들 광(光)은 용병을 잘하여, 왕료가 장수로 삼았다. 광은 장강(長江) 연안에서 楚軍과 싸워 楚나라 사마 공자 방(魴)을 죽였다. 楚나라는 吳나라를 두려워하여 주래(州來)에 성을 쌓아 吳나라의 침공을 방비하였다.
[제번은 수몽의 장자이므로, 광은 수몽의 종손(宗孫)이다. 수몽이 아우에게 군위를 전하라고 한 이유는 계찰이 군위에 오르도록 하는 데 있었는데, 계찰은 군위를 사양하였다. 과연 누가 군위를 잇는 것이 정당할까? 광은 승복할 수 있을까?]
그때 楚나라의 비무극(費無極)은 초평왕(楚平王)에게 아첨하여 총애를 받고 있었다.
[제140회에, 초평왕이 장자 건(建)을 세자로 세우고 비무극을 소부(少傅)에 임명했는데, 건은 비무극이 아첨하는 것을 미워하여 틈이 벌어졌다고 했었다.]
채평공(蔡平公) 려(廬)는 적자(嫡子)인 주(朱)를 세자로 삼았는데, 서자(庶子)인 동국(東國)이 세자 자리를 빼앗기 위해 비무극에게 뇌물을 바쳤다. 비무극은 먼저 초평왕에게 조오(朝吳)를 참소하여 쫓아내게 하였다. 쫓겨난 조오는 鄭나라로 달아났다. 채평공이 훙거하고 세자 주가 즉위하였는데, 비무극은 거짓으로 楚王의 명이라고 전하여 蔡나라 사람들로 하여금 주를 쫓아내고 동국을 군위에 올리게 하였다.
[제140회에, 초평왕은 멸망한 채나라 세자 유(有)의 아들 려(廬)를 蔡侯에 봉하여 채나라를 복원시켜 주었으며, 초평왕이 초영왕을 몰아내고 군위에 오를 때 공을 세운 조오는 蔡侯를 따라 채나라로 갔었다.]
평왕이 비무극에게 물었다.
“蔡나라 사람들이 왜 주를 쫓아냈는가?”
비무극이 대답하였다.
“주가 楚나라에 반기를 들려고 했기 때문에, 蔡나라 사람들이 그걸 원치 않아 쫓아냈습니다.”
평왕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비무극은 세자 건(建)을 꺼려하여 父子 사이를 이간하려고 했는데, 마땅한 계책이 없었다. 어느 날, 비무극이 평왕에게 아뢰었다.
“세자가 이미 장성했는데, 왜 혼인을 시키지 않습니까? 혼처를 구하신다면, 秦나라보다 나은 곳이 없습니다. 秦나라는 강국이면서 楚나라와 사이가 좋으니, 두 강국이 혼인으로 맺으면 楚나라의 위세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평왕은 그 말에 찬성하고, 비무극을 秦나라에 사신으로 보내 세자를 위해 청혼하게 하였다.
진애공(秦哀公)이 백관을 소집하여 상의하자, 백관이 모두 말했다.
[제122회에, 진도공(晉悼公)과 진경공(秦景公)이 우호를 맺어 춘추시대가 끝날 때까지 싸우지 않았다고 했었는데, 그 후로 秦나라가 언급되지 않았다. 진애공은 진경공의 아들이다.]
“예전에 秦과 晉이 대대로 혼인해 왔는데, 지금 晉과의 우호관계가 끊어진 지 오래되었고 초나라는 바야흐로 강성해지고 있으니, 허락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진애공은 대부 한 사람을 楚나라에 보내, 자신의 여동생 맹영(孟嬴)을 출가시키겠다고 하였다.
초평왕은 다시 비무극으로 하여금 금은보화와 비단을 폐백(幣帛)으로 가지고 가서 맹영을 맞이해 오게 하였다. 비무극이 다시 秦나라로 가서 폐백을 바치자, 진애공은 크게 기뻐하면서 공자 포(蒲)로 하여금 맹영을 楚나라까지 호송하게 하였다. 예물을 실은 수레가 백 대나 되고, 따라간 잉첩(媵妾)이 수십 명이었다. 맹영은 오라버니 진애공에게 작별인사를 하고 楚나라로 떠났다.
비무극은 도중에 맹영이 절세미녀임을 알았고, 또 잉첩 가운데 미모가 뛰어난 여인을 하나 발견했다. 비무극이 은밀히 알아보니, 그녀는 원래 齊나라 태생인데 어릴 때 아버지를 따라 秦나라에 와서 맹영의 시녀가 된 여인이었다.
역관에 머물게 되었을 때, 비무극은 제녀(齊女)를 은밀히 불러 말했다.
“내가 보니, 그대는 귀인이 될 상(相)이오. 내가 그대를 세자의 정비(正妃)가 되게 해줄 터이니, 이 일을 절대로 누설하지 마시오. 그러면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것이오.”
제녀는 고개를 숙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무극은 일행보다 하루 먼저 궁으로 들어가 평왕에게 아뢰었다.
“진녀(秦女)가 90리 밖에 당도하였습니다.”
평왕이 물었다.
“경은 그녀를 보았소? 용모가 어떠하오?”
비무극은 평왕이 주색(酒色)을 밝히는 사람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진녀의 미모를 과장해 말함으로써 그의 사심(邪心)을 동요시키려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마침 평왕이 이런 질문을 하니 그의 계략에 떨어진 것이었다. 비무극이 아뢰었다.
“신이 지금껏 많은 여인을 보아 왔지만, 맹영 같은 미녀는 본 적이 없습니다. 楚나라 후궁에는 그녀에 비할 만한 여인이 없을 것입니다. 예로부터 절세미녀라고 전해 오는 달기(妲己)나 여희(驪姬)도, 맹영에 비하면 만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달기는 은나라 마지막 왕 주왕(紂王)의 애첩이다. 여희는 진헌공(晉獻公)의 부인인데 제39회에 등장했었다.]
맹영의 아름다움을 들은 평왕은 얼굴이 온통 붉어지면서 한동안 말을 못하다가, 서서히 탄식하였다.
“과인은 왕이라 자칭하면서도 그런 절세미녀를 만나지 못했으니, 일생을 헛되이 보냈도다!”
비무극은 좌우를 물리치고서 평왕에게 은밀히 속삭였다.
“왕께서 맹영의 아름다움을 사모하신다면, 어찌 취하지 않으십니까?”
“이미 며느리로 데려왔는데, 어찌 인륜을 해칠 수 있겠소?”
“상관없습니다. 비록 세자비로 데려오긴 했으나, 아직 동궁에 들지 않았습니다. 왕께서 궁중으로 맞아들이신다 하더라도 누가 감히 이의를 제기하겠습니까?”
“신하들의 입은 막을 수 있다 하더라도, 세자의 입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소?”
“신이 보니, 잉첩 중에 제녀의 용모가 비범하였습니다. 그녀를 맹영으로 꾸미면 됩니다. 맹영을 먼저 왕궁으로 들인 뒤에, 제녀를 동궁으로 들이면 됩니다. 그녀에게 기밀을 누설하지 말라고 당부해 놓고, 우리가 감추면 모든 일이 완전해질 것입니다.”
평왕은 크게 기뻐하며 비무극에게 비밀리에 일을 추진하라고 일렀다.
[제137회에, 평왕이 어린 공자 시절 벽옥을 묻은 곳에서 절을 올린 ‘당벽(當璧)’의 징조를 얘기했었는데, 왕위에 오른 것은 징조가 맞았지만 이처럼 며느리를 빼앗는 왕이라면 과연 그 징조가 옳았다고 할 수 있을까?]
비무극은 공자 포에게 말했다.
“楚나라의 혼례 방법은 다른 나라와 다릅니다. 먼저 궁에 들어가서 시아버지를 뵌 후에 성혼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공자 포가 말했다.
“그렇게 하십시오.”
비무극은 맹영과 잉첩들을 모두 왕궁으로 호송하였다. 그리고는 맹영은 왕궁에 머물게 하고, 제녀를 맹영으로 가장시키고 궁중의 시첩을 秦나라 잉첩으로 가장시켜 동궁으로 보냈다. 그리하여 세자 건은 제녀와 성혼하였는데, 아무도 비무극의 사기극을 눈치 채지 못하였다.
맹영이 시녀들에게 물었다.
“제녀는 어디 있냐?”
시녀들이 대답했다.
“이미 세자에게 갔습니다.”
잠연(潛淵)이 시를 읊었다.
衛宣作俑是新臺 위선공이 신대를 지어 나쁜 선례(先例)를 만들더니
蔡國奸淫長逆胎 채경공은 며느리와 간통하여 반역의 빌미를 만들었고
堪恨楚平倫理盡 초평왕은 통탄할 폐륜(廢倫)을 저질렀으니
又招秦女入宮來 며느리로 데려온 진녀(秦女)를 궁으로 끌어들였도다.
[제23회에, 위선공(衛宣公)은 아들 급자(急子)를 혼인시키기 위해 제희공(齊僖公)의 큰 딸 선강(宣姜)을 데려와 자신이 취하고 신대(新臺)라는 별궁을 지어 함께 살았다. 제134회에, 채경공(蔡景公)은 세자 반(般)의 아내인 초나라 왕녀 미씨(羋氏)와 사통하였고, 세자 반이 채경공을 시해하였다.]
평왕은 세자가 맹영의 일을 알게 될까 염려하여, 세자가 모후를 만나러 궁에 들어오는 것도 금하였다. 그리고는 밤낮으로 맹영을 끼고 후궁에서 잔치를 벌이느라 정사도 돌보지 않았다. 궁 밖에서는 의논이 분분하여 많은 사람들이 맹영의 일을 의심하기 시작하였다. 비무극은 혹시나 세자가 알게 되어 자신에게 화가 미칠까 염려하여 평왕에게 고하였다.
“晉나라가 오랫동안 천하를 제패하여 온 것은 중원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영왕(靈王)께서는 陳나라와 蔡나라에 큰 성을 쌓아 중화(中華)를 진압하려 했었는데, 그것이 곧 패권을 쟁취할 수 있는 기반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 두 나라는 다시 독립하고 우리 楚나라는 남쪽으로 물러났으니, 이러고서야 어찌 대업을 일으킬 수 있겠습니까? 세자를 성보(城父)로 보내 북방을 지키게 하고, 왕께서는 남방에만 전력하십시오. 그러면 앉아서도 천하를 도모할 수 있습니다.”
평왕이 주저하며 대답하지 않자, 비무극은 평왕의 귀에 대고 소곤거렸다.
“이번 혼사도 세월이 가면 누설될 것입니다. 세자를 멀리 보내면 양쪽이 모두 이롭지 않겠습니까?”
평왕은 문득 깨닫고, 세자를 성보로 보내 지키게 하고, 분양(奮揚)을 성보의 사마로 임명하였다. 평왕은 분양에게 분부했다.
“세자 섬기기를 과인을 섬기듯 하라.”
오사(伍奢)는 비무극이 참소했음을 알고 간하려 하였으나, 비무극이 이를 눈치 채고 평왕에게 선수를 쳤다.
“오사도 성보로 보내 세자를 보필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분양과 오사는 세자 건을 모시고 성보로 떠나갔다.
세자가 성보로 떠난 후, 평왕은 마침내 맹영을 부인으로 삼고, 부인 채희(蔡姬)는 운(鄖) 땅으로 돌려보냈다. 세자 건은 성보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맹영을 부친이 가로챘음을 알게 되었지만, 어쩔 수가 없었다.
[제140회에, 세자 건은 채나라 운양(鄖陽) 땅을 지키던 관리의 딸 소생이었다고 하였다.]
맹영은 평왕의 총애를 받았으나, 평왕이 이미 연로하였기 때문에 마음은 항상 우울했다. 평왕도 자신이 그녀의 배필이 될 수 없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 말도 묻지 않았다. 1년이 지나자 맹영은 아들을 낳았다. 평왕은 그 아들을 보배처럼 사랑하여 이름을 진(珍)이라 지었다.
진이 돌을 넘긴 후, 평왕은 비로소 맹영에게 말했다.
“경은 궁에 들어온 이후로 항상 수심이 가득하고 한심을 쉬면서 웃는 일이 별로 없으니, 어찌된 까닭이오?”
맹영이 말했다.
“첩은 오라버니의 명으로 세자를 모시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첩은 아직 청춘이온데, 세자께서는 이미 연로하셨습니다. 첩이 감히 세자를 원망할 수는 없고, 다만 첩이 늦게 태어난 것이 한스러울 뿐입니다.”
평왕이 웃으며 말했다.
“이는 금생(今生)의 일이 아니라 숙세(宿世)의 인연으로 맺어진 것이오. 경은 비록 과인에게 시집온 것이 늦었으나, 스스로 왕후임을 알지 못하였소.”
맹영은 이상한 생각이 들어 궁인에게 자세한 내막을 물었다. 궁인이 모든 것을 설명해 주자, 맹영은 처량한 생각이 들어 눈물을 흘렸다. 평왕은 맹영을 달래 주고자 진을 세자로 책봉하겠다고 하였다. 그러자 맹영은 다소 안정이 되었다.
비무극은 세자 건이 왕위를 계승하게 되는 날, 반드시 화가 미칠 것을 생각하고 평왕에게 참소하였다.
“세자가 오사와 더불어 모반을 꾀하여, 몰래 齊나라와 晉나라에 사람을 보내 도움을 청하고 있다고 합니다. 왕께서는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평왕이 말했다.
“내 아들은 평소에 유순하였거늘, 어찌 그런 일을 꾸미겠소?”
“세자는 맹영의 일로 인하여 오랫동안 원망을 품어 왔으며, 지금 성보에서 무기를 정비하고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세자는 늘, 목왕(穆王)은 부왕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지만 楚나라를 안정시키고 자손도 번영했다고 하면서 자신도 그것을 본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왕께서 가만히 계시면, 신은 다른 나라로 도망가서 목숨이나 보존할까 합니다.”
[제91회에, 초성왕(楚成王)의 장자 상신(商臣; 목왕)이 부군을 시해하고 왕위에 올랐었다.]
평왕도 본래 건을 폐하고 어린 아들 진을 세자로 세우려는 마음이 있었는데, 비무극이 참소하는 말을 듣고 마음이 움직여, 비무극의 말을 믿지는 않았지만 믿기로 하였다. 평왕이 즉시 건을 폐위한다는 명을 전하려 하자, 비무극이 아뢰었다.
“세자는 바깥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있습니다. 만약 그를 폐위한다는 명을 전하면 반란을 촉발하게 될 것입니다. 모반의 주모자는 오사이니, 왕께서는 먼저 오사를 소환하신 뒤에 군사를 보내 기습하여 세자를 잡아오게 하십시오. 그러면 화와 근심을 모두 제거할 수 있습니다.”
평왕은 그 계책에 찬성하고, 사람을 보내 오사를 소환하였다.
오사가 당도하자, 평왕이 물었다.
“건이 반심을 품고 있다는데, 그대는 알고 있는가?”
원래 강직한 성품을 지닌 오사가 대답했다.
“왕께서 며느리를 궁중으로 맞아들인 것부터가 잘못입니다. 그런데 이제 또 소인배의 말을 들으시고 골육지친(骨肉之親)까지 의심하십니까?”
평왕은 그 말에 부끄러움을 느끼고, 얼른 오사를 감옥에 가두라고 소리쳤다. 비무극이 아뢰었다.
“왕께서 며느리를 맞아들이신 것을 오사가 이미 알고 원망하는 것을 보면, 세자가 원망을 품고 있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오사가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세자가 가만있지 않을 것입니다. 세자가 齊나라와 晉나라에 원군을 요청한다면, 당적할 수가 없습니다.”
평왕이 말했다.
“사람을 보내 세자를 죽이고자 하는데, 누구를 보내면 좋겠소?”
비무극이 대답했다.
“다른 사람이 가면, 세자는 필시 대항할 것입니다. 차라리 은밀히 사마 분양에게 명하여, 세자를 기습하여 죽이도록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평왕은 사자를 보내 분양에게 은밀히 명하였다.
“세자를 죽이면 상을 받을 것이고, 세자를 놓아주면 죽을 것이다.”
평왕의 밀명을 받은 분양은 즉시 심복을 세자에게 보내 알리게 하였다.
“빨리 다른 나라로 달아나십시오. 목숨이 경각(頃刻)에 달렸습니다.”
세자 건은 크게 놀랐다. 그때 제녀(齊女)는 이미 아들을 하나 낳아, 이름을 승(勝)이라 하였다. 세자 건은 처자를 데리고 야음을 틈타 宋나라로 달아났다.
분양은 세자가 달아난 것을 확인한 후, 성보의 군사들로 하여금 자신을 결박하여 영도(郢都)로 압송하게 하였다.
분양은 평왕을 알현하고 말했다.
“세자는 이미 달아났습니다.”
평왕은 크게 노하였다.
“말이 내 입에서 나와 네 귀로 들어갔는데, 누가 건에게 고했단 말이냐!”
분양이 말했다.
“신이 고했습니다. 왕께서 신에게 명하시기를, ‘세자 섬기기를 과인 섬기듯 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은 그 말씀을 지켜 감히 두 마음을 품지 않았기에, 세자에게 고했던 것입니다. 뒤에 생각하니 죄가 미칠 것을 알았지만, 이제는 후회해도 어쩔 수가 없습니다.”
“너는 몰래 세자를 달아나게 하고서도 과인을 만나러 왔으니, 죽음이 두렵지 않단 말이냐?”
“신은 이미 왕명을 받들지 않았는데, 또 죽음이 두려워 오지 않는다면, 두 가지 죄를 짓는 것입니다. 세자는 모반을 꾀한 일이 없으니, 죽일 명분이 없었습니다. 왕의 아들을 살리고, 신이 죽으니 다행입니다.”
평왕은 슬프고도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한참 뒤에 평왕이 말했다.
“분양이 비록 왕명을 어기기는 했지만, 그 충직함이 가상하도다!”
평왕은 분양을 사면하여 성보 사마에 복직시켰다.
사관(史官)이 시를 읊었다.
無辜世子已偷生 무고한 세자가 이미 목숨을 구해 달아나자
不敢逃刑就鼎烹 감히 도망가지 않고 끓는 가마솥 앞으로 왔네.
讒佞紛紛終受戮 참소와 아첨이 분분하여 끝내 죽음을 당했지만
千秋留得奮揚名 분양의 이름은 천추에 남았도다.
평왕은 맹영의 소생인 진(珍)을 세자로 세우고, 비무극을 태부(太傅)에 임명하였다. 비무극이 또 아뢰었다.
“오사에게는 상(尚)과 원(員) 두 아들이 있는데, 둘 다 인걸(人傑)입니다. 그들이 만약 吳나라로 달아난다면, 楚나라의 근심거리가 될 것입니다. 그 아비의 죄를 용서해 준다 하고 그들을 부르십시오. 그들은 아비를 사랑하므로 반드시 부름에 응할 것입니다. 그들이 왔을 때 한꺼번에 죽여 버리면 후환을 없앨 수 있습니다.”
평왕은 오사를 옥에서 끌어내어, 붓을 주며 말했다.
“너는 세자가 모반하도록 사주했으니 참수되어 마땅하지만, 네 조부와 부친이 선대에 세운 공을 생각하여 용서하겠노라. 네가 서신을 써서 두 아들을 불러들인다면, 그들에게 관직을 내리고 너는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주겠노라.”
[오사의 조부 오삼(伍參)은 장왕(莊王)을 섬겨 공을 세웠으며, 부친 오거(伍舉)는 영왕(靈王)을 섬겨 공을 세웠고 또 항상 바른 말로 간언을 했었다.]
오사는 楚王이 속임수를 써서 父子를 한꺼번에 죽이려 한다는 것을 눈치 채고 대답했다.
“신의 큰아들 상은 성품이 온순하고 어질며 신의가 있기 때문에, 신이 부르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아들 원은 어릴 때에는 학문을 좋아하였고 장성해서는 무예에 능통하여, 학문으로는 나라를 안정시키고 무예로는 나라를 지킬 만합니다. 그 아이는 고난을 참고 큰일을 성취할 수 있으며 앞을 내다볼 줄 아는 선비인데, 어찌 오려고 하겠습니까?”
“너는 단지 과인이 시키는 대로, 오라고 서신을 쓰기만 하면 된다. 불러도 오지 않는 것은, 너와는 관계없는 일이다.”
오사는 군명을 거역할 수는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다음과 같은 서신을 썼다.
상·운 두 아들에게 쓰노라. 나는 간언을 하다가 왕의 뜻을 거슬러 죄를 받아 옥에 갇히게 되었는데, 왕께서 선대의 공적을 생각하여 죽음을 면케 해주셨다. 그리고 백관이 나의 공을 논하여 속죄하게 해주고, 너희들에게 관직을 내린다고 하니, 너희 형제는 밤을 도와 오도록 하여라. 만일 왕명을 거역하는 날엔 죄를 받게 될 것이니, 서신이 닿는 즉시 빨리 오도록 하여라.
오사가 서신을 써서 바치자, 평왕은 서신을 읽어 본 다음 봉하고, 오사를 다시 옥에 가두었다. 그리고 언장사(鄢將師)에게 서신과 인수(印綬)를 주어 당읍(棠邑)으로 보냈다. 언장사가 당읍에 가 보니, 오상(伍尚)은 이미 성보로 돌아간 후였다. 언장사는 다시 성보로 가서 오상을 만나 말했다.
“축하드립니다.”
오상이 말했다.
“아버지가 지금 옥에 갇혀 계신데, 뭘 축하한단 말입니까?”
“왕께서 사람의 말을 잘못 들으시고 존공(尊公)을 옥에 가두셨는데, 여러 신하들이 그대의 가문이 삼대의 충신임을 들어 간언을 했습니다. 왕께서는 잘못을 깨달으시고 도리어 존공을 상국(相國)에 임명하시고, 두 아드님에게도 후작을 내리기로 하였습니다. 오상은 홍도후(鴻都侯)에, 오원(伍員)은 개후(蓋侯)에 봉하셨습니다. 존공께서도 지금 막 풀려나셔서 두 분 아드님을 만나고 싶어 이렇게 서신을 써서, 저에게 두 분을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얼른 가서 존공을 위로하십시오.”
“아버지께서 옥에 계시는 동안 가슴이 찢어지는 듯했는데, 이제 풀려나셨다니 다행입니다. 그러나 어찌 감히 인수를 탐낼 수 있겠습니까?”
“이는 왕명이니 사양하지 마십시오.”
오상은 크게 기뻐하면서 부친의 서신을 들고 내실로 들어가 아우 오원에게 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