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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에 미국에 온지 15년이 지났다. 내 설계사무실을 시작한 지 벌써 5년이 지난 때였다. 그해는 각각 다른 길에서 도둑과 강도를 만난 해가 되었다. 30여명의 직원과 함께 기계 돌아가듯 일하는 때, 아이들 기르느라 바쁜 아내의 계획을 따라 형님 부부와 함께 이탈리아에 휴가를 떠났다. 플로렌스에 로마시대 사찰건축과 레오나르도 조각물들은 유럽문화의 극치를 보여주는 듯 감명 깊었다. 로마 도시에 로마제국의 콜로시움을 구경하면서 그 웅장함 뒤에 숨겨있는 네로 황제의 기독교인을 학대하는 으르렁거리며 달려드는 사자들의 발톱을 상상하기도 했다.
아내가 쇼핑한 선물들을 양손에 들고 호텔에 들르지 못하고 로마오페라극장으로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아내가 표를 미리 샀기에 시간 안에 도착하려고 강행군하는 중에 낯선 다섯 집시 젊은이가 우리 길을 막았다. 손짓으로 무슨 말을 하려는 듯한 순간에 누군가 뒤에서 내 왼쪽 팔꿈치를 강하게 쥐어 잡기에 나는 물건을 내려놓으며 뿌리쳐 돌아섰다. 돌아서는 동안 바른쪽 호주머니에 손이 스침을 느꼈다. 그 순간에 바른쪽 호주머니 속에 내 돈지갑을 빼어간 것이다. 뿔뿔이 흩어져 도망가는 중에 나는 내 뒤에 섰던 괴한을 쫓아 번화가에 빠르게 달리는 자동차들 사이로 바짝 다가서 달려가며 길을 건넜다.
홀연히 건장한 청년들이 나를 둘러섰고 길을 지나던 모든 사람이 걸음을 멈추고 나와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달아나던 괴한이 한 젊은 여인 뒤에 멈춰 서고 여인은 웃는 얼굴로 자기 가슴의 브래지어 속에서 내 지갑을 꺼내주었다. 순간적인 마술을 보는 듯했다. 지갑 속에 현찰은 사라졌지만, 요행이라고 할까, 내게 꼭 필요한 내용물은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나는 내 지갑을 높이 들어 구경하는 모든 사람에게 흔들어 보여줬다. 큰길, 네 모퉁이에서 지켜보던 모든 사람이 손뼉을 치고 소리치는 동안에 집시 괴한들은 연기처럼 사라졌다. 이탈리아 관광에 빼어놓을 수 없는 흥분된 경험이었다.
미국 오하이오 주 사무실에 돌아와 직원들이 이제 막 설계를 마친 건물 주인을 만났다. 계약에 따라 설계비를 시간 안에 지급해줄 것을 부탁하며 악수를 하고 그는 떠났다. 해어진 다음 계약서를 다시 보니 건물 주인이 너머 많이 지급하게 됨을 느끼면서 나는 서둘러서 테네시 주에 네시빌로 떠났다. 그곳은 미국 컨트리 음악의 본산지다. 유명한 가수의 노래가 이곳에서 음반으로 제작되는 때였으며 엘비스 프레슬리나 달리파튼 같은 거장들이 사는 문화 도시였다. 초청한 친구와 점심 먹으러 주차장에 세워놓은 자동차 문을 열려는 순간, 내 뒤에서 누군가 “너도 손들어!”하고 조용히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돌아보니 반짝반짝하게 빛나는 권총이 나를 노려보고 있지 않은가. 내 친구는 벌써 지갑을 차위에 내놓고 두 손을 번쩍 들고 멀찌감치 서 있었다.
나는 마음을 가다듬고 내 지갑 속에 든 돈을 기억했다.
“내 지갑에 38불 있는데 20불은 네게 주고 나머지 18불은 내 친구와 점심 먹게 해줄래?”라고 물었다.
강도는 뜻밖에 당황하는 눈치였다. 하지만 그는 취하지 않았고 눈을 반듯하게 내 눈에 맞추는 정신이 말똥말똥한 친구였기에 나는 용기를 얻었던 것이다. 강도는 총을 흔들어 내 이마에 가까이 가져오며 급한 모습을 보였다. “오케이 오케이!”하며 나는 두 손가락으로 천천히 안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손에 쥐고 돈을 내밀었다. 그는 물러서며 그 돈을 자동차 후드 위에 놓으라고 손짓을 했다. 그리고 내가 태권도 발차기라도 할까 무서웠는지 나더러 뒤로 물러서라고 손짓했다. 갑자기 얼굴에 웃음을 띠며 고맙다는 듯 돈을 움켜쥐고 고개를 한번 끄덕이며 달음질쳐 사라졌다.
6ㆍ25 전란을 겪은 가난 했던 우리나라 길가에 거지들이 많았고 소매치기는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었다. 나는 논산에서 군사훈련을 거쳐 학보병으로 전선에 군복무하는 동안 세상 삶에 여물어졌는지 이런 일을 당해도 당황하지 않았든 듯싶다. 어쩌다 그해에 그런 끔찍한 사건들이 한꺼번에 있었는지 지금도 궁금하고 아찔하다.
지금 돌이켜 보면, 사람들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부득이한 형편에 어쩔 수 없이 하면서 산다. 어떤 경우는 자신이 모르고 저지르는 일도 많다. 내가 건물 주인에게 남은 돈을 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그달에 직원들에게 줄 월급이 모자라 그냥 지나갔다. 친구들과 어울려 카드 게임을 하면서도 지고 싶지 않아서 친구의 돈을 훨씬 많이 뺏게 되는 때도 있었다. 친구는 나를 보고 “너는 강도야.”라고 했다. 부득이 하였을 때 나는 도둑도 되고 남들이 말하는 강도질도 했음이 분명하다.
도둑과 강도는 죄를 지어 경찰에 붙잡히고 교도소에 가는 사람만의 소행이 아니고, 내 삶 속에 끈질기게 따라다니며 알게 모르게 죄짓는 일들이 아닐까. 그렇게 짓는 크고 작은 죄를 갚으려고 좋은 일을 많이 해야겠다고 생각해 본다. 옳게 살아야 한다고 다짐하면서도, 옳은 삶은 참으로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최용완 崔容完 시인, 수필가
Y.W. Bryan Choi
21266 Cancun, Mission Viejo CA 92692
(949)554-4721 이메일: ywbryanc@gmail.com
전라남도 순천출생
광주서중 제일고등학교 졸업
61 년 서울공대 건축과 졸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