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파아란,
구름 한점 없는 하늘을 떠올리게 하는 네모난 카드 안에는
인쇄된 프린트 글자가 아닌 손으로 쓴 것이 분명한 또박또박한 글씨체로 이런 내용이 담겨져있었다.
【 김이령님 축하합니다, 파란고등학교 전학시험에 합격하셨습니다. 】
"...뭐야, 이건. 아빠!"
전학시험이라니? 그딴건 쳐본 적이 없는 나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네모난 카드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우리 딸~ 무슨일로 불렀어?"
다정다감한 말투로 꽃미소를 지으며 하늘색 레이스 앞치마를 두른 채
한손에는 국자를 들고 내 방으로 조신하게 들어오는... 남자.
우리 아빠다.
잠시 우리 아빠 소개를 하자면 나름 성공한 CEO로
매사에 냉정하고 사소한것을 놓치지 않는 꼼꼼한 성격을 발휘하며
모든 일을 한치의 실수도 없이 처리한다는 쿨한 꽃중년이라고...
회사에서는 그렇게 소문이 자자하단다. 참나.
이 소문은 내 앞에서 회사 이야기를 하기 싫어하는 아빠때문에
동그란 해리포터 안경이 인상적인 김비서언니한테 몰래 들은거라서
이게 진짜인지는 아빠에게서 확인할 길이 없는게 조금 아쉽다.
뭐 40대초반이라고 믿어지지않는 동안페이스에
하얀 피부와 베일 것 같은 턱선, 그리고 길고 샤프한 눈매는
동네 아줌마들의 인기를 한몸에 받으며 꽃중년이란 별명을 얻은건 알겠지만...
쿨하다니.. 냉정하다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하늘색 레이스 앞치마를 두른 아빠를 보면 상상도 안되지만
내 앞에서 일에 관한 전화를 할 때는 표정관리를 하는게 한눈에 보일 정도로
입꼬리가 씰룩씰룩대고 눈썹이 치켜올라가는 걸 보면 직장에서는 그런가.. 싶기도 하다.
나는 앞치마를 보고 '..뭔가 한심해. 것도 대단히 한심해..' 라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차선
잠시간 묵묵히 있다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말을 꺼냈다.
" 전학시험을 축하한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난 학교다닐 필요가 없잖아. "
그렇지. 나는 학교 다닐 필요가 없지.
나는 홈스쿨링으로 검정고시를 패시했으니까...
해외를 들락날락하고 지방순회공연하는 것을 넘어선 아빠의 직업 상
나는 집에서 혼자 tv강의를 들으며 공부를 해야했다.
만약 학교를 다녔다면 조금 과장을 보태서 나라별로 학교를 다니고
지역별로 학교를 다녀야 하니까...음 대충 50번쯤 전학을 다녀야했네.
물론 처음에 나는 불만이 많았다. 친구도 사귀고 싶고 교복도 입어보고 싶고...
하지만 직업의 이유뿐만이 아니라 9시뉴스를 놓치지 않는 아빠에게
요즘 고등학생은 장난이 아니라며 정도가 심하다며 끝도없이 나오는 보도들은
학교에 보낸다=나를 호랑이굴에 집어넣는다 는 고정관념이 박히게 만들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전학시험에 합격이라니. 흠...아빠가 꾸민일인게 틀림없는데...
" 응...그래, 그게.. 어디서 탄 냄새 안나니 이령아? 잠시만"
나는 땀을 삐질삐질 눈동자를 요리조리 굴리며 시선을 피하는 아빠를 뚫어지게 응시했고
아빠는 당황한 말투로 말하더니 부리나케 사라져버렸다.
이게 도데체 어떻게 된일이야...
첫댓글 이령이 은근 불쌍하네 ㅎㅎ ;; 담편 기대할게요 ㅎ
네 열심히쓸게요댓글달아주셔서감사해욥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