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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조 숙 녀 조 폭 되 기 ◈
Graceful lady become gangster
Written by.땡깡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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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
“내가 좋아하는 1번이랑 8번이랑 딥키스.”
왜 그렇게 웃나 했더니 악마같은 마음씀씀이가 이유였던 것인가. 곳곳에서 우욱, 하는 헛구역질 섞인 동정의 키득거림이 쏟아져 나왔다. 현권의 말에 1번과 8번이 아닌 녀석들은 하나 둘 테이블 위에 속 편한 얼굴로 젓가락을 올려놓고 마음을 푸욱 놓았다. 그러나 그완 다르게 구겨지는 얼굴 하나.
“쓰벌!”
평소보다 더욱 거칠어진 그의 말투만 보아도 딱 알 수 있겠다. 그가 1번 혹은 8번이라는 것을. 현권은 쓰벌이 괴기하게 얼굴을 구기고 거북스러워하든지 말든지 천하태평한 얼굴로 자, 어서 1번 나와. 라는 표정을 지었다. 자, 이제 시작이라고. 현권은 희가 어떻게 생각하든 간에 신경 쓰지 않을 요령으로 신경 쓰지 말자고, 마음에 대고 속삭였다. 자신의 계획을 착착착 진행시키기 위해.
‘일단 시작부터 강하게 나가야 다른 녀석들도 벌칙을 강하게 할 거고……. 다음 판엔 내가 왕을 안 하고 가리한테 잘 얘기해서 희와 엮이기만 하면…….’
다소 잘못하면 본인이 희에게 마음이 있다는 것을 다른 녀석들에게 들킬지도 모를 계획이었지만, 이미 희에게 푹 빠진 현권에게 다른 놈들이 자신을 게이로 보든, 호모로 보든 상관할 바가 아니었기에 세운 계획. 다시 한 번 자신의 계획을 되짚어보며 현권은 슬며시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이렇게라도 희를 어떻게 좀 해보려 하는 자신이 참 낯간지럽게 쪼잔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희는 게이가 아니니까 고백하면 너무 갑작스러워 하고 거북스러워 할 테니까. 그럴만한 사건을 만들어두는 게 중요하니까.
“저…근데 딥키스가 뭡니까?”
한창 현권이 생각에 빠져서 흐뭇해하고 있을 때, 쓰벌이 ‘아오, 쓰벌!’을 연신 외치면서 머리를 쥐뜯을 때, 다들 키득거리며 헛구역질 섞인 비아냥거림을 던질 때… 나지막한 희의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아, 그건 말이다.”
자신의 계획이 너무도 완벽하고 철저하다고 자부하고 흐뭇한 미소를 건 채로 싱글벙글대던 현권은 기분 좋은 게 온통 티나는 말투로 희의 물음에 답하려다가 문득, 정신을 차리고 얼굴을 굳혔다. 설마…….
“너… 1번이냐?”
현권이 눈을 크게 뜨고 얼굴을 석고상처럼 굳힌 채로 심각하게 물어오자, 희는 역시나 딥키스가 뭔지 모르는 관계로 어리버리한 얼굴을 하고 그저 고개를 주억거리며 자신이 손에 쥐고 있던 젓가락을 현권에게 들어 보일 뿐이었다.
‘으악!’
턱 끝까지 치밀어 오른 비명을 현권이 홱 손을 들어 올려 재빨리 틀어막았다.
“오호, 너냐? 그래. 그래도 너하고 하는 건 그나마 기분 덜 나쁘겠다. 쓰벌.”
쓰벌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중얼대면서 뒷머리를 긁적거렸다. 물론, 같은 남자라는 사실에 여전히 거북스러워하는 눈빛이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마음을 놓은 듯했다. 다른 우락부락한 놈들보단 얼굴만 보면 기집애라고 생각 되는 그런 녀석이랑 하려니. 눈만 끔뻑대면서 대체 무슨 말들을 하는 거고, 왜 이러한 반응들이 이어지는 거고 도무지 알 도리가 없는 희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머쓱하게 자신에게 걸어오는 쓰벌을 쳐다봤다.
“으, 으악!”
그때 한 쪽 구석에서 꽤 비명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들 소리가 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입을 잔뜩 꽉 틀어막고 눈알이 튀어나올 기세로 크게 뜨고 있던 현권도.
“아, 아… 제, 제가 흑기사 하면 아니 됩니까?!”
많이 놀란 사람처럼 말까지 더듬고 ‘아니 됩니까.’라는 어색한 말투까지 쓰는 과연의 모습에 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딥키스라는 거, 안 좋은 건가. 아, 벌칙이니까 안 좋은 거겠지. 근데 그렇게 놀랄 정도로 안 좋은 건가. 희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골똘히 생각하는데 과연의 그 외침에 쓰벌이 냅따 소리를 질렀다.
“누구? 요조?! 쓰벌! 너, 요조랑 흑기사하면 죽어, 넌! 요조니까 그래도 참고 하는 거라고! 쓰벌!”
쓰벌의 우렁찬 외침에 과연이 재빠르게 손사래를 치고 고개를 휙휙 가로저었다.
“아뇨, 아뇨! 요조형님 흑기사…”
“됐다! 게임 그만하자! 벌써 한 시간이나 지났다! 이제 슬슬 이따 새벽에 갈 거 준비도 하고 해라! 자, 파토! 그만!”
상황 흘러가는 꼬라지에 머리가 다 아찔해질 지경이던 현권은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다는 듯 바락바락 소릴 질렀다. 발악에 가깝게 꽥꽥 대는 현권 때문에 다들 움찔 몸을 움츠렸다. 일이 뜻대로 흘러가지 않아, 씩씩. 그걸 알 리 없는 녀석들은 갑작스레 화가 난 현권을 이해할 수 없어서 눈치만 살살. 여전히 상황파악 전혀 못하는 희는 미간만 잔뜩 찌푸림.
“아, 근데… 재미있는 구경이었는데 벌칙만 수행하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슬쩍쿵 비냥이 더듬대면서 불만을 토로해보려 했다. 그러나,
“빨랑 안 나가!”
현권의 성난 음성에 일사분란하게 ‘넵!’하고 허리를 꾸벅 숙여 인사를 하며 후다닥 죄다 뛰쳐나갔다. 희도 분위기 따라 후다닥 움직이다가, 문득 아무래도 안 되겠단 표정으로 문고리를 잡은 채로 몸을 살짝 돌려서 얼굴이 시뻘개져서 후, 후. 하고 숨을 가다듬고 있는 현권을 쳐다봤다.
“형님.”
“앗! 으아씨, 깜짝이야!!! 나가랬는데, 왜 안 나가고 버티고 있어?!”
현권이 빽 소릴 지르며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렸다. 간만에 형님다운 포스로 대응해오는 현권의 기세 눌려 희가 살짝 삐친 기색이 도는 얼굴로 몸을 돌려세웠다. 희의 표정을 본 현권이 얼굴을 괴기스레 이리저리 구겼다 폈다, 경련을 일으켰다 멈췄다를 하다가 다시 또 빽.
“왜!”
“네?”
돌아서서 나가기 위해 밖으로 발을 내밀던 희가 현권쪽으로 몸을 다시 돌렸다.
“왜 불렀냐고.”
현권이 제법 진정된 말투로 말하며 숨을 길게 내쉬었다. 이제야 좀 흥분했던 게 가라앉는 것 같다.
“아무리 해도 궁금해서 말입니다.”
“뭐가.”
현권이 그 짧은 순간만으로 심장이 벌렁벌렁 대고 머리가 아찔해져서 잔뜩 어질어질한 머리를 짚고 털썩 소파에 앉으며 기진맥진한 목소리로 대꾸했다. 바짝 마른 입술도 축일 겸, 테이블 위에 있는 술잔으로 손을 뻗으며 대꾸했다.
“딥키스가 뭡니까?”
“풉!”
희의 물음에 막 술을 입에 품었던 현권은 건너편에 있는 소파로까지 물세례를 했다. 현권의 과민반응에 희가 더더욱 궁금증이 커져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정말 궁금해 죽겠다는 얼굴이 되었다. 현권은 켁켁, 몇 번 사래 들린 것을 가다듬은 뒤 홱 고개를 돌려 희를 쳐다봤다. 장난이라도 치나 싶어서 현권은 희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했다. 그러다, 하, 하고 헛웃음을 흘리고야 말았다. 정말 모르겠단 얼굴이다.
“너… 나이가 몇이냐?”
“스물넷입니다.”
“스물넷… 하. 너 어디가 좀 안 좋… 아니, 아니다. 됐다.”
“아니, 저 키스는 압니다. 아, 물론 자세히 모르긴 하는데……. 여튼, 딥키스는 뭡니까?”
현권의 말투에서 무시하는 것을 느낀 희가 괜시리 욱해져 투덜대는 투로 얼른 덧붙이며 본론을 다시 한 번 더 끄집어냈다. 궁금해 죽겠는데 대답은 안 해주고 자꾸 엉뚱한 데로 새는 게 영 불만이라는 표정이었다. 현권은 입술을 벌리고 머뭇머뭇 데다가 인상을 팍 찡그렸다.
“똑같아! 별로 안 달라!”
현권은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 뒷머리를 북북 긁으며 짜증스레 대꾸했다. 고개를 살짝 숙여 쑥스러울 때마다 하는 버릇인, 긴 앞머리로 얼굴을 살며시 가리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근데 왜 이름이…”
“좀 더 깊게 하는 것뿐이야!”
그렇게 순수하지도 않으면서 부끄러워하는 자기 자신이 바보 쪼다같아서 아주 그냥 발가벗겨져서 내놓아진 것만큼이나 민망한데, 자꾸만 질문을 하는 희에게 현권은 톡톡 아주 그냥 쏘아붙였다. 그의 톡톡 쏘는 말투에서 자신을 귀찮아하는 거라고 판단을 내린 희는 슬며시 입을 내밀었다가 얼른 쏙 집어넣으며 마지막이라는 듯 질문했다.
“그럼 키스는 정확히 어떻게 하는 겁…”
“나가서 일 안 볼래?”
이미 표정을 다 가다듬고, 포커페이스를 되찾은 현권이 고개를 들어 올리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싸늘한 그의 표정에 희는 찌릿 하는 것을 느끼며 퍼득 정신이 바짝 들었다. 그래서 슬슬 빠져가던 군기가 다시 잡혀선 우렁차게 답하며 밖으로 휙 튀어나갔다.
“넵, 알겠습니다!”
희가 나가고 나서야 현권은 편안하게 소파에 등을 기대었다. 그러곤 잠시간 아무 생각도 없이 눈을 감고 쉬는데, 불쑥 드는 생각에 등을 소파에서 떼어내며 눈을 번쩍 떴다.
“아니, 대체 스물넷이나 먹은 사내놈이 키스가 뭔지도 잘 모른다는 게 말이 돼? 아니, 해보진 못했다 하더라도… 야동은 한 번쯤 봤을 거 아니야? 아니, 그 놈이면 안 봤을 수도 있고……. 아니, 아니지. 성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고 어쩜 그래!”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여기며 현권은 새삼 경악스러운 표정이 되었다. 이건 ‘순수’라고 보기엔 너무 과하지 않은가. 병원이라도 데려가서 ‘거기’ 검사를 맡아봐야 하는 거 아닌가. …이젠 별 걱정을 다 하는 현권이었다.
41.
왜 그렇게 짜증을 낸담. 알려주는 게 그렇게 싫으신가. 아, 일하라고 했는데 안 듣고 버텨서 그런가. 희는 삐죽 입술을 내밀었다. 아무도 없을 때니까 마음을 푹 놓은 상태라 불쑥 튀어나온 입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진짜 거래를 하러 나가야 되고 해서 옷을 갖춰 입은 희는 아무 생각 없이 거울 앞으로 걸어갔다.
“에잇.”
그제야 자신의 입술이 툭 튀어나온 것을 알아챈 희는 손바닥으로 톡톡 입술을 쳐서 안으로 집어넣었다. 그러다 퍼득 혼자 이러고 있는 게 머쓱하게 여겨져 희는 콧등을 긁적거렸다. 그러면서 잠시 멍청한 얼굴을 하고, 바보처럼 아무것도 않고 서 있다가 ‘아!’하고 깨달은 듯 낮은 탄성을 내뱉으며 정신을 차리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됐어.”
희가 살짝 미소 짓는 얼굴로 만족스럽게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안엔 자신이 있었고……, 비가 있었다.
“비야. 이제 진짜 조금 더 위험해진 것 같다.”
그렇게 속삭이며 희는 시간이 흘러도 여전히 어울리지 않는 것 같아 어색하기만 한 넥타이를 다시 한 번 더듬어서 예쁘게 모양을 낸 뒤에 거울에서 돌아섰다. 다녀올게, 비야. 다짐하듯 말을 건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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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
누군지 예상했다.
“들어와.”
왠지 모르게 들뜨려고 하는 목소릴 가다듬고 평소와 다를 것 없이 낮게 노크소리에 답했다. 노크소리만으로도, 그저 느낌만으로도 알아채는 자신의 모습을, 왠지 모르게 들뜨려고 하는 목소릴 가다듬고 있는 자신을 알 리 없는 상대방은 문을 조심스레 열고 들어와 활짝 웃는 얼굴로 인사했다.
“준비 모두 마쳤습니다. 현권형님께서 모셔오랍니다.”
희가 떨리는 심정을 주체하지 못해 다소 올라간 음성으로 전달사항을 우석에게 말했고, 미리 준비하고 있던 우석은 느긋한 움직임으로 의자에서 일어나 간단하게 탁탁 구겨진 정장자락을 핀 뒤 뚜벅뚜벅, 듣기 좋은 구두소릴 내며 문 앞에 서있는 희에게로 다가왔다. 밖으로 나가기 위해 이쪽으로 걸어온다는 것을 알면서도 희는 어쩐지 자신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만 같은 기분에 긴장이 되고 심장이 덜컹하는 혼란이 왔다. 그런 감정이 낯설고, 또 설레면서도 마음을 울렁거리게 해서 털어내고자 애써 희는 고개를 살짝 내려 그의 시선을 피했다.
“삐뚤어졌다.”
움찔. 알싸할 정도로 달짝지근하고 고급스러운 그의 음성이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와서 희는 몸을 다 떨어가며 놀랐다. 놀란 바람에 번쩍 고개를 들어 올렸고, 아주 가까운 곳에 그의 조금 탁한 빛의 눈동자와 그 눈동자를 야릇하게 가리고 있는 긴 속눈썹, 외꺼풀인 게 매력인 그 눈이 있었다.
“아…앗. 부, 분명 가다듬고 나온 거였는데……. 제가 하겠습니다!”
괜히 부끄러워진 희가 얼른 고개를 내리며 말하곤 투박하고 커다란 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심한 손길로 넥타이를 매만져주고 있는 우석의 손에 자신의 손을 댔다. 거절하기 위해 자신의 손을 붙든 것을 알면서도 우석은 듣지 못한 채, 알지 못한 채 굴며 끝내 넥타이를 보기 좋게 매준 뒤 손을 떼어냈다.
“안 어울린다.”
그러고선 반 발자국 물러서 주욱 희를 훑어보다가 대뜸 던지는 그의 말에 희가 또 움찔.
“나비넥타이가 더 어울리겠다.”
본인의 패션 견해인지 뭔지는 몰라도 어찌됐든 간에 밑도 끝도 없이 평가를 내려준 우석은 그제야 됐다는 듯 희에게서 시선을 떼어내고 문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그러고서야 쏙 빼두고 있던 정신을 찾아온 희가 허둥대며 문고리를 손에 쥐었다. 그러다, 퍼득. 차가운 문고리에 의해 떠올랐다는 듯 휙 몸을 별안간 돌려세우며 눈을 반짝 빛냈다. 그 바람에 무감정하게 서있던 우석은 저도 모르게 반 발자국 물러나며 심장이 깜짝. 사슴 눈같이 맑고 동그란 게 빛나기까지 하니까 더 예쁘고, 소유할 수만 있으면 소유하고만 싶게끔 탐난다. 그래서 우석은 다른 건 보지도 않고 그저 그 반짝반짝 예쁜 두 눈만 뚫어져라 응시했다. 부담스러울 만도 하건만, 이미 자신만의 생각에 폭 빠진 희는 곧게 바라보는 우석의 눈을 똑같이 곧게 바라보며 주절댔다.
“아까 오늘 새벽에 거래 가는 사람들끼리 다 모여서 놀았는데…, 왕 게임이라는 걸 했습니다. 근데 왕이 된 현권형님이 1번이랑 8번이랑 딥키스를 하라고 하시는 겁니다. 쓰벌형님이 8번이었고, 그러니까… 제가 1번이었는데…”
덜컥. 쿠르르- 우석은 몸 안에 있는 것들이 움직이는 소리도 다른 사람이 들릴 정도로 커질 수 있는 것이라면 분명 희도 들었으리라 생각하며, 사람 몸 안에 있는 것들이 내는 소리는 다행히 남들이 들을 정도론 커질 수 없단 사실에 감사해했다. 들을 수 있는 것이었더라면 현재 자신의 심장이 덜컥, 하고 내려앉고 화들짝 놀라 빨라진 혈액이 흐르는 소리를 희가 다 듣고야 말았을 테니까.
“근데 딥키스가 뭔지 몰라서… 현권형님한테 물었더니 화만 내시고 잘 안 알려주시고, 아직도 궁금해서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딥키스가 뭡니까, 형님?”
맑은 두 눈을 끔뻑대며 얼른 답을 해달라고 요구하는 눈짓을 내비치는 희. 그런 희의 눈짓에 우석이 슬쩍쿵 시선을 옆으로 피했다. 우석은 현권처럼 감정이 드러나는 타입이 아니라서 그저 바라보고 있는 희의 눈에는 잠시 생각하느라고 우석이 시선을 피한 것 정도로 비쳤지만, 사실 우석은 현권 못지않게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희가 스물넷이나 먹고서 딥키스도 모른다는 사실에 그렇게 크게 충격 받진 않는다는 사실 정도. 여자인데다가, 조사한 결과로 괄괄한 성격의 여동생과는 다르게 마냥 고운 요조숙녀였다는 그녀의 본모습을 알기 때문에. 그래서 사실 현권보다 당황스러움은 배가 되긴 했다. 그녀의 보기 좋은 이 ‘순수’함을 섣불리 건드려 깨트릴까봐. 그래서 우석은 대답할 말을 생각했다.
“…더러운 거.”
그녀가 그런 거에 관심도 갖지 않도록 차단해버리리라.
“네?”
“더러운 거.”
너무도 상상치 못한 대답에 희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되물음을 하며 고개를 살짝 옆으로 기울였다. 마치, 그러길 바랐다는 듯 우석은 옆으로 살짝 기울인 희의 얼굴을 양 손으로 감싸 쥐었다. 커다랗고 거친 그의 살결이 볼에 닿자, 희는 순식간에 몸이 경직되는 것 같았다.
“이 자세에서…”
나직한 그의 목소리가 귓가를 아찔하게 파고들었다. 말과 함께 우석은 자신의 얼굴도 옆으로 기울여 숨결이 닿을 듯 가까이 가져왔다. 이목구비가 한 눈에 모두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가까이 있는 그의 얼굴에 희는 눈을 꽉 감아버리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내 혀가 네 입으로…”
우석의 따뜻한 입김이 얼굴에 닿자, 희는 욕구를 참지 못하고 눈을 질끈 감았다. 너무 꽉 감아서 파르르 속눈썹이 다 떨리는 희. 그런 희에게 우석은 참지 못할 만큼 밀려올라오는 감정에 스스로가 두려워져 그녀에게서 재빨리 멀어졌다. 그녀의 꾸밈없는 아기 분냄새같은 체취를 더 맡고 있다간 그대로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까봐서.
“네 혀가 내 입으로 들어와 만나는 거다.”
번쩍. 우석이 멀어지자마자 희는 눈을 번쩍 떴다. 그제야 삼키지 못하던 침을 꼴깍. 차마 내쉬지 못하던 숨을 후우. 그와 동시에 피가 온통 얼굴로 순식간에 몰리고 화르륵 불타듯 열이 오르는 얼굴에 희는 홱 몸을 돌아 세웠다.
“머, 먼저 가있겠습니다!”
희가 두근두근 대는 심장소리에 귀가 먹먹해서 자신의 목소리가 얼마나 큰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 우렁차게 버럭 소리치곤 문을 확 열고 쾅 닫고 나가버렸다. 도망 나가면서 온갖 소음을 다 내고 나간 희. 그리고 그런 희를 잠자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선 바라보던 우석은 스르륵 손을 들어 올려 얼굴을 반만 대충 가리었다. 너무 떨려서 양 손을 다 들 힘도 채 없었다. 희가 속눈썹을 파르르 떠는 동안, 온 몸을 파르르 떨며 전율하던 우석이었다.
42.
“준비 다 됐습니다.”
“윤 희씨 연락은?”
“그쪽도 준비가 끝났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계획했던 건?”
“문제없을 겁니다.”
“그래.”
인형처럼, 딱딱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과 무미건조한 목소리. 그 목소리에 대꾸해지는 목소리 역시도 그렇게 감정이 깃든 듯한, 색감 있는 목소린 아니었지만, 워낙에 한준의 목소리가 색채도, 무게도 없어 바람에 흩날릴 듯 허무할 만큼의, 가슴이 아릴 만큼의 그런 목소리라서 도리어 대꾸하는 그의 목소린 감정이 담긴 목소리로 여겨졌다.
간단하게 중요한 이야기만 주고받은 한준은 더 지체할 것 없다는 듯이 거래장소로 나가기 위해 몸을 돌아 세웠다. 그제야 한준과 마주보게 된 그는 마치,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그리운 연인을 만난 것만큼이나 표정이 환해졌다. 미소는 옅었지만, 한없이 표정은 환했다.
“잠시만.”
그러다, 문득 생각난 듯 그는 주머니를 뒤적였다. 곧 실버재질의 독수리 모양이 새겨진 넥타이핀을 꺼낸 그는 딱 보기에도 고급스러운 그것을 망설일 여지없이 한준의 넥타이에 꽂아주었다. 검은색의 칙칙했던 그의 넥타이가, 핀을 포인트로 한순간에 세련되어졌다. 고개를 내려 넥타이를 보던 한준은 자신보다 키가 5cm나 더 큰 그를 보기 위해 고개를 조금 위로 향하게 올렸다.
“이런 건… 류 완이 하지 그래?”
한준의 입에서 자신의 이름이 흘러나오자, 완은 이젠 표정만 환한 것이 아니라 어두운 조명의 방안이 다 환해질 정도로 활짝 웃음까지 지었다.
“형님한테 잘 어울립니다.”
“난 아직 젊어서 이런 악세서리 없어도 괜찮아.”
한준이 슬쩍 장난을 걸었다. 완은 웃는 얼굴로 덩달아 한준의 장난을 받아주었다.
“해봐야 고작 2살 많습니다, 저.”
오랜 친구처럼 장난스레 주고받는 그 대화에 한준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곧 금세 웃음이 아쉬울 정도로 사라지고 무표정하고, 무미건조한 예의 그 이상의 냉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첫 단추를 잘 껴야지. 비한테 잘 보이려면.”
그렇게 말하는 한준의 목소리에 일순간 행복한 빛이 서렸다가 사그라졌다. 문을 열고 나가는 그의 뒤를 따르며, 그의 말을 조용히 듣는 완의 표정엔 일순간 슬픈 빛이 서렸다가 사그라졌다. 감춰야 한다는 듯이 재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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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은 숨이 막힐 정도로 꽉꽉 막히고 먼지가 풀풀 날리는 어두침침한 창고에서 만났었는데, 이번만큼은 여기저기 탁 트인,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다른 사람이 쉽사리 접근할 리는 없는 폐공장이었다. 제대로 완공하기도 전에 부도가 났던 건지 흉물스럽게 철골들이 드러나 있고, 자재들은 여기저기 발에 자꾸만 치일 정도로 널브러져 있었다. 거래하는 물건의 양이 꽤나 많은 편이었고 곧장 넘긴 물건들을 눈에 띄지 않게 차에 실어 나르려면 창고는 비좁았기에 고른 장소일 터였다. 그래도…
“창고가 더 좋은 것 같습니다.”
“응?”
현권의 옆에서 걷던 희가 중얼대듯 꺼낸 말에 현권이 금세 고개를 돌려서 바라봐주며 관심을 비쳤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면서 괜히 분위기에 눌려 겁먹고 있던 희는 냉큼. 그가 내미는 관심을 넙죽. 물었다.
“여긴 너무 으스스합니다. 꼭 귀신이 휘이이익-! 하고 눈앞에 지나갈 것만 같습니다. 꺄르르르르- 웃으면서.”
멀뚱멀뚱. 현권은 아주 잠시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곧 풋,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아니, 그 뿐만이 아니라 희의 조잘대는 말을 들은 사람들은 죄다 같은 반응이었다. 실감나게 효과음을 적절히 섞어 말하는데… 어쩔 도리 없이 웃기고 귀여울 수밖에. 인형극을 시키면 아주 끝장나게 해낼 것만 같은 희의 현란한 효과음 넣어 말하기에 또 다시 큭큭큭-거리며 빵 터진 웃음을 주체 못하는 현권에 의해 희는 뾰로통해졌다.
진심으로 무서운데. 무섭다는 게 그렇게 비웃음을 받을 일인가. …라고 생각하는 그녀가 자신의 효과음 넣기가 ‘웃겨서’라는 생각은 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아주 여유만만이다, 요조? 아무리 깡 좋은 놈이어도 이렇게 큰 거래할 때 있으면 긴장하는데 말이지. 그렇게 막 개그도 치고.”
“개그를 언제 쳤다고……. 근데 왜 긴장합니까? 그냥 거래 아닙니까?”
현권의 개그 쳤다는 말에 조그맣게 들리지 않을 정도로 토를 살포시 달은 희는 뒤이어 목소릴 키워선 질문을 했다. 똘망똘망한 눈을 깜빡이며 묻는 그녀를, 현권은 물끄러미 바라보다 쯧, 하고 깨달았다는 듯 혀를 짧게 한 번 찼다.
“하긴.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지 모른다고, 뭘 모르니까 긴장해야 할 이유도 모르겠지.”
“귀여운 하룻강아지에 저를 비유해주신 겁니까? 아, 정말 감사합니다.”
희는 무시하는 투로 중얼대는 그의 말에 무어라 토를 달까 생각하다가 곧 퉁한 얼굴로 하지만, 말투는 꼭 진짜로 고맙다는 투로 떠들었다. 물론, 담은 의도는 비꼬기였다. 그러나 비꼬는 걸 대놓고 형님에게 할 순 없는 관계로 비꼬되, 비꼬는 것 같지 않게 말하는 비기를 사용하는 희였다. 그걸 눈치 빠른 현권이 모를 리 없었다.
“네, 저 하룻강아집니다. 뭣도 모르는 바보 멍청이에요.”
지그시 노려보며 ‘경고’라는 현권의 눈빛에 희가 금세 깨갱- 꼬리를 말고 냉큼 자신의 개김질을 정리했다. 그에 만족한 듯 현권이 빙긋 꽃미소를 한 번 날려준 뒤 입을 떼었다.
“긴장 타라, 요조. 아무리 서로 협력관계를 맺었다고 해도 다 같이 흙탕물에서 자빠져서 허우적대는 수준이다. 언제 누가, 누구를 배신해도 절대로 어색할 게 없다고. 거래건 가드역으로 나온 넌, 특히나 더 긴장해야 돼. 알겠냐, 하룻강아지?”
잠자코 현권의 말을 귀담아 듣던 희는 차츰차츰 그의 말이 이어질수록 바짝 오른 긴장감에, 침을 한 번 꼴깍 삼킨 뒤에야 그의 말에 대답했다.
“네, 하룻강아지의 형님.”
이젠 긴장해도 슬쩍쿵 장난 걸어대는 걸 잊지 않을 정도로 제법 여유를 갖게 된 희였다. 물론, 그 여유는…
“요-조.”
“긴장 좀 풀어보려고…….”
“긴장 타라고 했는데 긴장을 풀려고 엉금엉금 형님 머리 꼭대기로 기어올라?”
“죄송합니다.”
현권의 꽃미소 뒤에 가리어진 절대 카리스마로 단박에 쏙 모습을 감춰야했지만.
메리 크리스마스입니다.
여러분.
....
솔로 크리스마스입니다.
ㅠㅠㅠㅠ후어어어앙앙.
첫댓글 우왕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희가 너무 유혹하고 있어요 ㅋㅋ 현권이는 진짜 속 터지겠네요 히히 이 둘이 너무 귀여워요 ㅎㅎ 희의 효과음 넣어 말하기 너무너무 좋아요 ㅋㅋ 저도 약간 저렇게 말하그든요 ㅋㅋ 그렇지만 희처럼 귀엽...귀엽진 않죠 엉엉 저는 솔로 크리스마스+엄청나게 아파서 잠만 잤던 크리스마스였어요 엉엉 나름 이십대 첫 크리스마스 였는데 말이죠 ㅠㅠ 으잉 어쩄든 오늘도 너무 재미나요 ㅋㅋ 우석이 ㅎㅎㅎㅎㅎㅎㅎ 떨린 우석이의 모습을 보는 것도 굉장히 흥미로왔어요 히히 이런 인간적인 우석이의 모습 기대할게요^^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을게요 ㅎㅎ
본의 아니게 현권이 유혹중인 희입니다. 본인이 유혹하고 있다는 걸 자각조차 못하고 있어욬ㅋㅋㅋㅋㅋㅋ네, 현권이가 속 터집니다. 아, 정말요?ㅋㅋㅋㅋㅋㅋㅋ릴라키키님 귀여우시네욬ㅋㅋㅋㅋㅋㅋ아팠어요? 허류ㅠㅠ아프면 어떡해요ㅠㅠ아픈 게 제일 서러운 거예요. 특히 뭔가 다들 들뜬 날에 아픈 게 가장..ㅠㅠㅠ~이제 다 나으셨나요? 약은 드셨구요?ㅠㅠㅠ~ ㅎㅎㅎㅎㅎ네, 오늘도 릴라키키님 꼬리말 잘 읽었어요!ㅋㅋㅋㅋ이렇게나 길게ㅠㅠㅠ달아주시고~ 우석잌ㅋㅋㅋㅋ앞으로의 인간적이고 색다른 모습 보여드리려 노력하겠습니돠!//릴라키키님 愛♥
희가 너무 귀엽네요 ㅎㅎㅎ
다들 희를 많이 예뻐해주셔서 다행입니닼ㅋㅋㅋㅋㅋㅋㅋ큐ㅠㅠㅠ~ 얄미우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되는 인물중 하나입니다. 제가 여태까지 그린 인물들은 눈치가 빠르거나, 눈치가 느리면 성격이 화끈하거나 그랬는데 이번 인물은 조금 힘들어써요. 제가 요조숙녀가 아니다보니까 힘들더군욬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무튼!! 어여삐 봐주시니 감사합니다ㅎㅎㅎㅎㅎ그리고 wldus님. 저번 편에 이어서 또 뵈서 좋았어요!ㅎㅎㅎㅎ//wldus4181님 愛♡