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려장(高麗葬)
홍다구(강원매거진 12월호 기고)
얼마 전 여당의 모 국회의원이 대학생들에게 학생의 날을 기념하는 강연을 하면서 전직 대통령과 헌법재판소 등을 언급하며 나온 말을 어느 일간지 인턴기자가 기록 기사화한 글이다.
『 "낸시 레이건 여사가 '레이건 대통령은 치매에 걸렸다'고 밝힌 것은 '우리 남편은 맛이 갔으니 정치적 자문을 구하지 말라'는 의도로 매우 훌륭한 결단이다. 전직 대통령들과 헌법재판소는 배워야 한다."
"비록 30, 40대에 훌륭한 인격체였을지라도, 20년이 지나면 뇌세포가 변해 전혀 다른 인격체가 된다. 제 개인적 원칙은 60대가 되면 가능한 책임 있는 자리에 가지 않고, 65세부터는 절대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 자기가 다운되면 알아서 내려가야 하는데, 비정상적인 인간은 자기가 비정상이라는 것을 모른다. 자기가 여전히 현명하고 왕성하다고 생각하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을 고의적으로 이용해 그 사람에게 나쁜 칠을 한다."
"제 자신도 민주화의 승리를 맛 본 사람이나 생물학적 필연성으로 나이가 들면 반드시 보수화가 되기 마련이다. 재산이 많아질수록, 기운이 빠질수록 보수적으로 가는 것은 당연하다. '한결같다'는 것은 성품이나 인격적 토대 같은 것이지 시각과 가치관은 변한다. … 정년이 지나면 고리타분한 구세대가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러분이 20년 뒤에 (나에게) '저 노인네 언제 고려장 지내나'라는 말을 해도 원망하지 않겠다."』
독자들은 이 글을 읽고 어떤 느낌이 들었을까?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하여 그 의원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문제의 동영상을 보았다.
질의 답변 도중 모 언론사의 과거사를 꼬집는 듯한 언급을 하였는데 아마 그 자리에 와 있던 인턴기자가 듣기에 좀 거북했었나보다. 그러니 이 노인관련 발언을 기사화하여 반격을 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언뜻 들기도 하였다.
과정이야 어찌 되었든 동영상을 보아도 확실히 그런 말 한 것은 사실이었다. “나이든 사람들은 뇌세포가 많이 죽어 보수화되고 옛 지식만을 고수하며 움직이지 않으려고 한다. 때문에 나이든 사람이 책임 있는 자리에 있으면 안된다.”라고 말하는 장면에서는 나 자신도 섬찟한 느낌이 들었다. 지금 예순 살이 넘어서도 젊은이들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면 아마 즉석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어졌을 것이다.
최근 여당 지도자들의 잇단 노인비하 발언으로 만만찮은 사회적 물의가 있었는데, 이 발언은 또 다시 강도 높은 노인비하 발언으로 여길만한 오해의 소지가 분명히 있어 보인다. 당사자야 그런 뜻이 아니고 ‘노인이 되면 보수가 된다는 평소 주관을 생물학적 판단으로 이야기 한 것이다’라고 하겠지만.
최근 잦아지는 보수우익단체들의 정부와 정부정책들에 대한 도전(?)과 헌법재판소의 수도이전특별법 위헌판결 등 일련의 정책과 관련하여 나라를 이끌어가는 여당 입장으로서의 항변이라고 이해를 할지언정, 그것이 꼭 나이 든 헌법 재판관과 전직 대통령들을 예로 들어가면서까지 이야기를 했어야 하는가? 사회적 책임을 가진 지도자로서 표현해서는 안 될 자극적인 표현을 아직 사상적 차단장치가 숙성되지 않은 학생들에게 마구 뱉어버리면 그 말이 학생들의 마음속에 들어가 무엇으로 자리를 할까? 나라를 이끌어갈 사안 하나하나 마다 그런 감성적 잣대를 들이대며 목청을 높이는 작금의 상황들을 바라보노라면 정말이지 이 나라가 어디로 갈지 걱정을 아니 할 수가 없다. 여기서 ‘고려장’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자.
백과사전에는『 ‘高麗葬’ 고구려 때의 장사 지내는 법. 노쇠한 사람을 광(壙;墓室) 속에 옮겨 두었다가 죽으면 거기 안치하고 금은보화를 넣은 다음 돌로 쌓아 봉토하였다고 한다. 불필요해진 노인을 버리던 좋지 못한 습속이므로, 고려장을 없애는 줄거리의 구전설화가 전국에 분포되어 있다.』라고 되어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에는 ‘고려장 설화’가 있다. 내용을 살펴보자면...
『 늙은 부모를 산 채로 버리던 악습이 없어지게 된 내력에 관한 설화.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유래’, ‘기로전설(棄老傳說)’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 널리 분포되고 있다.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옛날에 사람이 나이가 들면 그를 산중에 가져다 버리는 풍습이 있었다. 한 아들이 자신의 아버지가 일흔 살이 되었으므로 늙은 아버지를 버리기 위하여 그를 지게에 지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서는, 약간의 음식과 늙은 아버지를 지고 왔던 지게를 놓아둔 채 되돌아가려고 하였다. 그러자 그를 따라왔던 그의 어린 아들이 그 지게를 다시 지고 오기에, 그는 아들에게 왜 지게를 다시 지고 오느냐고 물었다. 어린 아들이 “저도 아버지가 늙으면 이 지게에 지고 와서 버려야 하기 때문에 가져왔습니다.”라고 대답하였다. 그 말에 그는 크게 뉘우치고 늙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 간 뒤에 잘 봉양하였다. 그로부터 고려장이라는 악습은 없어졌다고 한다.
고려장이 없어지게 된 내력을 말한 설화 중에 널리 전승되는 것으로서 이와는 다소 다른 형태의 이야기도 있다.
고려장이 국법으로 정해져 있는 나라에 사는 어느 효자는 아버지(또는 어머니)가 늙어 고려장을 할 시기가 되었지만, 차마 그럴 수 없어서 아버지를 숨겨 두고 봉양하였다. 그러던 중 중국에서 어려운 문제를 내어 풀기를 요구해 왔으나, 아무도 풀지 못했으므로 온 나라가 근심에 싸였다. 그 때 늙은 아버지가 문제의 해답을 알려주어서 무사히 어려움을 해결하자, 나라에서는 이로부터 늙은이도 쓸모가 있음을 깨닫고 악습을 폐지하였다는 것이다.
앞 이야기는 불전설화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잡보장경 雜寶藏經≫ 기로국조(棄老國條)의 설화와 유사하며, 뒤 이야기는 중국 〈효자전 孝子傳〉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이 설화는 중동이나 유럽에서도 비슷한 이야기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세계적으로 널리 분포된 유형으로 볼 수 있다.
두 설화는 고려장의 폐지라는 동일한 결말을 보여 주지만, 그 방법은 전혀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앞 이야기가 아들의 불효를 강조하면서 손자의 지혜를 해결의 계기로 삼고 있는 것에 비하여, 뒤 이야기는 노부모의 지혜에 의하여 국가적 문제가 해결되면서 아울러 고려장도 폐지된다. 따라서 두 이야기는 지혜를 내는 주체자는 다르지만, 지혜로 문제를 해결한다는 공통적인 구조를 지니고 있다.
이야기 속에 나타나는 노인을 버리는 풍습은 인간을 육체적인 힘이나 능력 위주로 평가하는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 반박하는 아들의 재치나 노인의 지혜는 인간의 존엄성과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으로 깊은 교훈을 담고 있다.』
이렇게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 말하는 ‘고려장’이란 삼국시대 고구려 영양왕 때의 유행했던 풍습이 유래가 됐다고 전해진다. 지금 세상에서는 ‘현대판 고려장’이라 하여 여러 경로에서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한다. ‘고려장’은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행해졌던 고유의 악습은 아니다. 위 백과사전에서도 지적했듯이 중동과 유럽까지 ‘고려장’의 전설이 비슷하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더라도 인간의 역사이래로 노인문제는 어느 곳이나 존재해 왔고 지금도 심심찮게 신문지상을 오르내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것이라 하겠다.
최근 영국에서도 ‘현대판 고려장’이라고 하여 화제가 된 사건이 하나 있었다. 남편과 함께 스페인에 거주해 온 한 영국여인이 치매에 걸린 82세 남편을 영국의 한 병원에 버리고 달아난 것이다. 이 부인은 "정신이 혼미한 남편을 돌보느라 미치기 일보직전의 상황에 있다. 남편을 버릴 수밖에 없는 사정을 이해해 달라."는 편지를 남겼다고 한다. 편지를 남긴 것으로 보아 역시 영국다운 ‘신사적 고려장’ 임에 틀림없다.
우리 주변에도 비슷한 예가 있다. 얼마 전, 어느 두메산골 폐가에 중풍 걸린 남편을 버린 아내와 그의 딸이 결국 경찰에 구속된 사건이 있었다. 이 사건 역시 최근 우리가 볼 수 있는 '현대판 고려장' 의 한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사실이 보도가 되면서 사회에 많은 반향을 불러왔는데, 특히 ‘노인복지정책의 불합리성을 재고해야 한다.’라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수없이 터져 나왔다.
이 노인전문가들이 내다보는 우리나라의 고령사회 진입추세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단기간에 이루어지고 있다고 말한다. 2000년에 노인 인구 비율이 7.2%가 됨으로써 이미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로 진입했고, 2020년에는 15.1%가 될 것으로 추산되어 65세 노인인구가 전체 인구의 14% 이상인 ‘고령 사회’(aged society)가 될 전망이다.
특히 80세 이상의 고령 후기(oldest old) 노인 인구가 급증하고 핵가족화 현상이 심화되어 노인들은 가족 부양으로부터 방치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공청회를 통해 의견을 수렴, 2010년부터 ‘노인요양보장제도’를 실시할 계획을 세우고 있고, '고령사회대책위원회'를 설치하고 동시에 '고령사회 기본법안'을 국회에 제출키로 했다.
보건복지부의 실무자들과 노인전문가들이 이렇게 문제를 풀어가려고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반면에 분위기에 걸맞지 않게 편협된 자기 주관을 사실인양 하여 나이든 선배세대를 화나게 하는 정치인들의 발언이 뜻하는 바가 무엇일까? 그 강의를 들은 학생들이 집으로 돌아가 나이 많은 부모를 대하는 태도가 어떠할지 자못 궁금하다. 어제와는 달리 부모를 대함에 있어서 머잖아 고려장에 버려질 추하고 쓸모없는 존재로 바라 볼 수도 있질 않겠는가?
지금 그 정치인이 말하는 나이를 훨씬 넘어서도 정부, 재계, 학계 등에서 우리나라를 이끌어가고 있는 곧 맛이 갈(?) 노인들이 우리 현실에는 너무나도 많이 존재한다. 고령사회에 그 수많은 노인들을 ‘현대판 고려장’으로 보낼 수는 없다. 나는 그 분들이 돌아가시는 날까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은 모든 일들을 하다가 편안하게 돌아가시기를 기원한다. 그렇게 해도 나라가 망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어쩌면 그것은 인간이 태어나 다시 흙으로 돌아가기까지 주어진 인간의 권리이기 때문이다. 그 권리는 어떤 한 사람의 주관이나 이데올로기에 의하여 좌지우지될 성질이 아닌 인간 개개인에게 주어진 존귀한 보물이다.
이제는 국민에게 모범이 되어야할 지도자들에게서 노인을 공경하는 모습이 종종 읽혀지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첫댓글 현 정부에게 그걸 기대하시는 건 아니시겠지요? ㅎㅎ
지하철 매장에 판매되는 책이라 글을 마구 쓸 수가 없어서 그정도로 햇습니다. 카페글같았으면 반쯤 죽여놓았을 터입니다.
ㅎㅎㅎ 힘 내서 99/100 쯤 죽이시기 바랍니다.
알게씁니다. 그나저나 님의 음악 잘 듣고 있습니다. 어느덧 팬이 되어가네요. 가끔 보석과 같은 음악도 있어요. 제게 말이죠.
제가 모르는 음악도 많습니다. 듣다가 좋으면 소개도 해드리고 저도 듣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