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항구에 사는 어부가 고기잡이배에서 낮잠을 자다가 풍경 사진을 찍는 부자 사업가로부터 “왜 고기 잡으러 안 나가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어부는 하루에 단 한 차례만 출어를 하고 남는 시간은 한가로이 쉰다고 하자, 그는 “두세 번 출어를 하면 더 많은 고기를 잡아 어선도 늘리고 생선공장도 마련할 수 있지 않겠느냐”며 어부의 게으름을 나무랐다. 이어 “돈을 많이 벌어 멋진 바다를 보며 낮잠을 즐기면 행복한 일생을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어부는 “지금 내가 벌써 그렇게 하고 있잖소”라며 피식 웃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독일 작가 하인리히 뵐의 단편에 나오는 이야기다.
▼이 작품 속의 사업가와 어부 중에 과연 누가 더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뵐이 바로 우리 발 앞에 행복이 놓여 있다는 것을 강조한 것 같다. 하지만 행복의 조건은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은 재산의 많고 적음에, 또 어떤 이는 권세와 명예의 높고 낮음에 두거나 일의 가치 등에 행복의 기준을 두기도 한다.
▼최근 한 연구소가 국민 980명을 대상으로 노후 행복 조건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 건강(29%)이 제일 중요하다고 한 응답이 가장 많았다. 이어 돈(24%), 배우자(20%), 취미생활(10%), 친구(7%) 순으로 나타났다. 성별로 보면 남성의 경우 건강, 배우자, 돈 순인 반면 여성은 건강, 돈, 배우자 순으로 나왔다. 여성이 배우자를 후순위로 꼽은 것은 재미난 현상이다.
▼세계에서 국민의 행복도가 높은 나라로 파나마, 코스타리카, 덴마크 순으로 조사됐다. 우리나라는 135개 국가 가운데 루마니아, 이란 등과 함께 74위에 머물렀다. `무소유'로 대변되는 법정 스님은 행복의 비결에 대해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했다. 우리는 소유에서 행복을 찾는 것은 아닐까.
최병수논설주간·cbsdmz@kwnews.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