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의 치유 "회개의 수행이 답이다"
2025.2.5.수요일 성녀 아가타 동정 순교자(231-251) 기념일
히브12,4-7.11-15 마르6,1-6
“아가다는 마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처럼,
즐겁고 자랑스럽게 감옥에 갔으며,
자기 고통을 기도로써 주님께 봉헌하였다."(즈가르야 노래 후렴)
인간에게 근본적인 마음의 병은 무지입니다. 무지의 치유에는 평생 회개뿐임을 깨닫습니다. 무지로부터 벗어나 하느님 모상으로서의 참나의 발견과 더불어 점점 자유로운 삶이겠습니다. 새삼 자기를 아는 겸손한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요 평생 회개의 수행이 필수입니다. 이런저런 나눔으로 강론을 시작합니다. 모두 회개를 통한 참나의 수행에 좋은 도움이 됩니다. 옛 현자의 말씀입니다.
“책은 얼마나 읽었는가보다, 어떻게 읽었는지가 중요하다. 생각하지 않는 독서는 씹기만 할 뿐 삼키지 못함과 같다.”<다산>
“마음은 생각한다. 생각하면 얻지만, 생각이 없으면 얻지 못한다.”<대학>
‘생각한다’함은 자기를 성찰하는 회개와 직결됩니다. 시류에 휩쓸려 ‘생각없이’, ‘영혼없이’ 자기를 잃고 사는 이들은 얼마나 많은지요. 생각없이 말할 수 있지만 생각없이 글쓸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글쓰기를 추천하는 이유입니다.
얼마전 각별한 두편의 기사를 잊지 못합니다. 하나는 장욱진(1918-1990) 서양화가이며, 또 하나는 배우계 두 거장인 80대 노장의 영원한 현역 박근형과 손숙에 관한 기사입니다. 어느 분야든 치열하게 사는 이들은 말그대로 무지에서 많이 자유로워진 구도자이자 수행자라 할 수 있습니다.
‘마음 속 번뇌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양주로 가세요. 어린 아이 그림 같지만, 세상을 관조하게 만드는 화가 장욱진, 그의 미술관에 가보세요. 피카소는 “라파엘처럼 그리는 데는 4년이면 족했지만, 어린 아이처럼 그리는 데는 평생이 걸렸다”고 말했습니다. 조각가 최종태의 장욱진에 대한 평도 참 예리하고 적확합니다.
“칼날같은 예리함과 조금도 용서될 수 없는 준엄함이 있지만 겉으로는 아이들도 그릴 수 있다 할만큼 평이한 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 그의 특징이다. 최소한의 획으로 사물의 본질을 표현하기 위해 평생을 바친 작가다. 그러니 단순해 보이는 그의 획은 오랜 시간이 만들어 낸 결과물로 결코 단순하지 않다.”
연극가 손숙이 같은 80대 거장의 노배우 박근형에 대한 평입니다.
“작품을 너무 열심히 하더라. 무대에서 박 선생님 눈빛만 봐도 설레고 짠하다. 그런 배우 만나기 쉽지 않다.”
박근형 자신의 고백입니다.
“세월이 얼마 안남았다. 그래서 저는 마음이 너무 급하다. 보여주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너무 많다. 매순간 치열하게 최선을 다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실제 연습에 들어가면 대본을 2-3백번 읽는다.”
영원한 현역의 두 노배우는 모두 요즘 연기를 하는게 가장 행복하고 유일한 삶의 낙이라고 고백합니다. 박근형은
“젊었을 때는 욕망과 욕구를 위해 달리니까 정신 없던 시절인데, 나이 먹어서는 남들이 나를 불러주는 것 잊지 않고 나를 배려해주는 것을 나도 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말했고, 손숙 여기 공감하며,
“그러려면 잘 늙고 마무리를 잘해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쉬운 일은 진짜 아닌 것 같다. 그렇게 살다가 깨끗하게 가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고 전합니다.
참된 회개와 자기를 아는 겸손은 함께 갑니다. 한평생 치열한 삶을 살았던 대가들의 공통점도 자기를 아는 겸손일 것입니다. 참된 구도와 수행의 열매가 무지에서 자유로워진 겸손입니다. 오늘은 성녀 아가카 동정 순교자 기념일입니다. 산 햇수와 관계없이 참삶의 좌표가 되고 회개의 표징, 희망의 표징, 구원의 표징이 되는 성인들입니다.
교회전승에 따르면 성녀 아가타는 시칠리아 섬의 카타니아의 부유한 귀족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어려서부터 신심이 깊었던 그녀는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할 결심을 하고 스스로 정결서원을 했다고 합니다. 그리스어로 ‘선(善)’ 또는 ‘좋음’을 뜻하는 아가토스에서 유래한 이름만큼이나 착하고 아름다웠던 그녀의 미모에 반한 그 지방 총독 퀸티아누스가 그녀에게 청혼합니다. 당시는 데키우스 황제의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한창일 무렵입니다. 성녀 아가타는 끝까지 거절하자 총독은 온갖 무자비한 고문을 가했으나 성녀는 어떤 고통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았고, 결국은 순교의 죽음을 맞이합니다.
성녀 아가타를 공경하는 신심은 일찍부터 시칠리아 섬 전역으로 퍼졌고 성녀는 시칠리아 섬의 수호성인이 됩니다. 성녀 축일에는 빵을 축복하는 관습이 전해 내려오고 있으며, 성녀는 처녀, 양치는 여자, 종만드는 사람, 유리제조공, 광부, 알프스 동반 안내자, 유방 관련 질병으로 고통받는 이, 간호사들의 수호성인도 되고 불과 날씨의 수호성인으로 알려져 있기도 합니다. 얼마나 후대에 사랑을 받으며 회개의 표징이 됐던 사랑스런 성녀 아가타인지 깊이 묵상하게 됩니다.
여전히 아마도 인류가 지속되는 한 계속될 마음의 병이 바로 무지일 것입니다. 불가의 탐진치(貪瞋癡;욕심,성냄,어리석음), 삼독(三毒)도 무지의 병에서 기인합니다. 바로 무지의 병, 치유에는 하느님의 은총인 회개뿐이 약이 없습니다. 예수님 고향 나자렛 사람들 역시 무지하기론 예외가 아닙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라지만 곧 편견과 섭인견, 고정관념의 무지에 사로잡힙니다. 질투심과 더불어 예수님을 도저히 용납할 수 없었기에 그들은 모두 예수님을 못마땅하게 여깁니다. 바로 인간 무지의 보편적 현상을 대하는 듯 합니다. 예수님의 결론 말씀입니다.
“예언자는 어디에서나 존경받지만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받지 못한다.”
바로 이런 보편적 깨달음이 현실적 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런 기적도 일으키실 수 없었고, 이들의 믿지 않음에 놀라셨다 합니다. 처음 예수님의 가르침에 놀랐던 고향사람들과 이들의 불신에 놀라는 예수님이 좋은 대조를 이룹니다. 아마도 예수님은 좌절하기 보다는, 인간의 보편적 현실인 무지의 심각성을 깨닫고 회개와 겸손의 계기로 삼아 더욱 분발하셨을 것입니다.
무지에 대한 답은 회개와 더불어 주님께서 주시는 훈육입니다. 이 모든 유혹의 시련을 훈육의 계기, 배움의 계기로 삼아 회개와 겸손의 훈련에 충실함으로 영혼의 근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제가 늘 강조하는 좋은 덕목의 선택-훈련-습관의 도식입니다. 히브리서의 충고가 참으로 적절합니다.
“여러분의 시련을 훈육으로 견디어 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자녀로 대하십니다. 모든 훈육이 당장은 기쁨이 아니라 슬픔으로 여겨집니다만 나중에는 그것으로 훈련된 이들에게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그러니 맥풀린 손과 힘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 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
무지의 병에 대한 가장 확실한 처방은 끊임없는 회개와 겸손의 훈련뿐임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평생 전사답게 영원한 영적 훈련병으로, 참으로 거룩한 평화의 전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주님의 이 거룩한 미사은총이 결정적 도움을 주십니다.
“착한 스승이신 주 예수님,
당신은 내가 박해자의 고통을 이기게 히셨으니 감사하나이다.
주님, 내가 당신 불멸의 영광에 도달하게 하소서."(성모의 노래 후렴). 아멘.
- 이수철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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