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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 그들의 결혼식
삼 년 동안 꽤나 많은 일이 일었다. 나와 그녀도 감정을 마음대로 조절할 수 없는 사람인지라 때로는 다투고, 때로는 뒤돌아서고, 때로는 연락을 끊기도 했었지만 우린 서로에 대한 믿음이란 것에 이끌려 항상 제자리로 돌아왔다. 3년이란 시간 동안 그녀는 열심히 공부해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는 아니지만, 1.5류급 정도 되는 강서대 문과에 수석으로 합격했고 나 역시 중상층 회사에 취직하게 됐다. 그런데 하늘은 내 편이였던 건지 내가 이 회사에 취직함과 동시에 이 기업은 승승장구 해 나가기 시작했고 동시에 너무나도 말랐던 내 지갑도 두둑해졌다. 또 지갑이 두둑해지면 두둑해질수록 시부모님께서 가지고 있는 나란 사람에 대한 신뢰도 역시 날이 갈수록 두둑해졌다.
어쨌든 그렇게 삼 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그녀와 나는 드디어 결혼을 하게 됐다. 그녀는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아름다운 소녀가 아닌 숙녀로 나는 검은색 정장을 입은 노총각이 아닌 한 여자의 남자로 말이다.
“자기야 나 드레스 어때?”
“예뻐! 히히.”
나는 그녀를 보며 웃었다. 그녀 또한 나를 보며 활짝 웃어주었다. 비록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그녀의 저 미소는 변함없이 순수하기만 하다. 그런 순수한 미소를 가진 여자가 내 여자라는 사실이 난 너무나도 행복하다.
“자기야. 나 볼 한 번만 꼬집어주라!”
“왜?”
“믿을 수 없어서. 당신 같이 아름다운 여자가 나 같이 부족한 거 천치인 나와 결혼해준다는 게 믿어지지가 않아서. 나 한 번만 꼬집어주라.”
그녀는 아기 같은 손으로 내 볼을 꼬집었다.
“아야!”
“아파?”
“응! 치료해줘!”
내 말이 끝나자 그녀는 내 볼에 자신의 부드러운 선홍빛 입술을 살짝 갖다 댔다. 그녀가 자신의 입술을 내 볼에서 살며시 떼었을 때 난 그녀를 보며 피식 웃었다. 역시 이번에도 그녀 또한 나를 보며 찡긋 웃어주었다.
“이따 식장에서 봐.”
“응.”
시간이 지나고 드디어 그녀와 나의 결혼식이 시작되었다.
“잠시 후 신랑 윤기원과 신부 이아현 양의 결혼식이 시작될 예정이오니 참석하신 하객 여러분께서는 식장 안에 마련된 좌석 안에 앉아주시기 바랍니다. 아울러 정숙한 진행을 위하여 소지하고 계신 휴대전화는 모두 진동 상태로 바꿔 주시면 감사드리겠습니다. 그러면 먼저 오늘의 성스러운 예식을 위하여 신랑, 신부 양가 어머님께서 화촉점화를 위하여 입장하시겠습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양가 어머님께서 입장하실 때 힘찬 박수 부탁드립니다. 양가 어머님 입장해 주십시오.”
신랑대기실까지 울려 퍼지는 어머니란 말에 갑자기 내 마음이 울컥했다. 지금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아현이의 어머님과 함께 들어가시고 있을 분은 내 고모이시다. 나의 부모님 두 분은 모두 딱 5년 전 불미스러운 사고 때문에 돌아가셨고 내게 남은 거라곤 부모님을 추억할 수 있는 물건들, 부모님과의 추억을 회상할 수 있는 부모님의 영정 사진밖에는 없었다. 부모님께선 내가 그녀를 만나기 딱 1년 전에 돌아가시고 말았다. 어머니 소원이 살아생전에 내 결혼식을 보는 거였는데 어머니 살아계실 때 효도 한 번 못 해 드려서 결혼이라도 하는 거 보여 드리고 하늘의 부름을 받게 하고 싶었는데. 내 눈가에 촉촉한 액체가 맺힌다. 차마 그 액체를 흘러내리지 않게 하려고 안간힘을 써보지만, 사람의 감정이란 게 사람이 원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줏대 없는 놈이 아닌 덕에 난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촉촉한 액체 한 방울이 땅바닥에 떨어지자 난 황급히 눈물을 닦아냈다. 이렇게 좋은 날, 안 어울리게 눈물은 무슨…. 피식 웃은 뒤 떨어뜨렸던 고개를 들어 올리고 아직 울려 퍼지는 박수소리에 살며시 내 박수소리를 집어넣었다.
“양가 어머님께서 단상 위에 마련된 화촉에 점화하여 주시겠습니다. 먼저 신랑 어머님께서 화촉 점화를 하시면 신부 어머님의 화촉점화가 있겠습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두 사람의 결혼식을 빛내주시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석하여 주신 친지 하객 여러분께 양가에 가족을 대신하여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럼 지금부터 신랑 윤기원 군과 신부 이아현 양의 성스러운 결혼식을 거행하겠습니다.”
드디어 진짜 결혼식이 시작됐다. 그녀와 나의 우연이라는 프롤로그로 시작되 나이를 뛰어넘은 스펙터클한 사랑이야기의 전개에 이은 아름다운 결말. 그 화려한 결말의 프롤로그를 넘어 그 결말의 제1장이 펼쳐진다.
“오늘 두 사람의 결혼식을 위하여 주례선생님께서 등단하시겠습니다. 이 주례선생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 생략하겠습니다. 모두 맞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다음은 오늘의 주인공 신랑 입장이 있겠습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신랑 윤기원 군이 입장하면 힘찬 박수로 축하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신랑 입장!”
식장 안은 한껏 차려입고 온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 식장 안의 불빛은 식장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주인공으로 보일만큼 너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하지만 내가 느끼는 이 식장 안은 사방이 꽉 막혀 빛이 들어올 구멍조차 없는 암흑으로 꽉 찬 공간인것만 같았다.
실제로는 1분 밖에 걸리지 않는 내 마음의 길고 긴 터널을 넘어선 뒤 고개를 들었다. 그 순간 내 눈 안에는 조금은 다른 의미의 빛이지만 주례사 선생님의 머리에서 내뿜어져 나오는 빛이 들어왔다. 그렇게 난 빛을 되찾았고 웃음 또한 되찾을을 수 있었다. 내가 입꼬리를 살며시 올린 후 바로 이어 주례사 선생님께서 자신의 머리보다 더 하얀 이빨을 드러내며 차례를 이어나갔다. “이어서 오늘 결혼식의 꽃인 신부 이아현 양의 입장이 있겠습니다. 하객 여러분께서는 신부 이아현 양이 입장하면 힘찬 박수로 축하해 주시기 바랍니다. 신부 입장!”
그녀 역시 내가 걸어온 길로 한 걸음 한 걸음 내딛었다. 그녀는 그녀와 너무 잘 어울리는 순백의 아름다운 드레스를 입고 귀여우면서도 고급스러운 발걸음으로 자신의 아버님과 함께 조심스럽게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의 아버님께선 아현이의 손을 잡고 내가 있는 곳까지 걸어온 후 그녀의 손을 놓고 무거운 발걸음으로 몸을 돌리셨다.
아현이를 데려다 주고 뒤돌아서시는 아버님의 뒷모습은 너무나도 쓸쓸해 보이셨다. 전쟁터에서 전우를 모두 잃고 전쟁까지 패배하며 적에게 무릎 꿇은 자존심을 잃은 한 명의 전사처럼, 몇 년 동안 가족같이 함께 한 애완동물이 하늘의 부름을 피해가지 못해 그 애완동물을 눈물로 떠나보낸 한 명의 순수한 어린아이처럼, 개국 이래 처음으로 서민을 위한 정치를 펼치던 정치인이 악의 무리에게 암살당하고 만 나라의 국민처럼 너무나도 쓸쓸하고 슬퍼 보이셨다. 물론 당연한 거겠지만…. 몇 년 동안 애지중지하며 아끼고 고운 정 미운 정 다 줘가며 키운 딸자식을 스물두 살밖에 안 된 어린 나이의 숙녀를 잘 난 것 하나 없는 나 같이 평범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마흔다섯 살의 남자에게 넘긴다는 건 정말 어려운 선택이었을 테니까….
‘아버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아현이 행복하게 해 드리겠습니다. 아버님께서 여태까지 살아오며 아현이에게 주었던 사랑에는 당연히 못 미치겠지만요. 그렇지만 아버님께서 아현이를 대하던 것처럼 저 역시 아현이를 대하겠습니다. 믿어주시고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제 두 사람의 입장을 마치고 다음은 하객 여러분과 가족 앞에서 성인의 예를 드리는 맞절의 순서가 있겠습니다.”
그녀와 나는 몸을 틀어 서로를 바라보았다. 비록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런 몸짓도 취하지 않았지만 우린 서로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우린 인연이란 실로 꽁꽁 묶여있고 사랑이라는 감정 이전에 믿음이라는 전제가 깔려있는 진심으로 사랑하는 연인이니까.
“다음은 이 자리에 계신 하객 여러분 앞에서 두 사람이 결혼을 약속하는 혼인 서약과 두 사람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알리는 성혼 선언이 있겠습니다.”
“신랑 윤기원 군과 신부 이아현 양은 어떠한 경우라도 항시 사랑하고 존중하며 어른을 공경하고 진실한 남편과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까?”
“네. 신랑으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네. 신부로서의 도리를 다할 것을 맹세합니다.”
주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고 난 뒤 다시 식이 진행되었다.
“이제 주례 선생님의 성혼 선언으로 두 사람은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습니다. 다음에는 주례를 맡으신 황사완 님으로부터 결혼생활의 좌우명으로 삼을 귀한 말씀을 듣는 순서가 있겠습니다.”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그런데 이 좋은 마음이 영원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선 검은 머리가 하얀 파뿌리가 될 때까지 사랑하겠다고 맹세하고…….”
학교 아침조회시간, 교장선생님의 훈화말씀만큼이나 지루하고 긴 주례선생님의 말이 끝나고 식이 다시 진행되었다.
“주례 선생님께서 두 사람의 앞날에 꼭 필요한 소중한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이제 새롭게 탄생한 한 쌍의 부부를 위하여 축가가 있겠습니다. 축가를 불러주실 분은 윤기원 분입니다.”
“To Be Come One 둘이서 먼 미래에 빛날 거야. 마치 루비처럼 우린 가족 우린 하나 너는 기적 우리 사랑. 사람은 사람의 사랑을 먹고 살아. 나란 사람은 너만의 사랑만 있으면 나는 살아. 세상은 자라 지금 우리에게 이 턱시도와 드레스를 주었지. 이 턱시도와 드레스는 슈퍼맨의 슈트보다 강했고 우리 둘의 사랑은 주인공의 필살기보다 강했어. 전부 막을 수 있어 쳐 낼 수 있어 그 어떤 시련도 모든 시련도 다 이겨낼 수 있어 널 지켜낼 수 있어. 세상에 모든 남자로부터 너만을 지켜주겠어. 지금 이 순간 변치 않았으면 좋겠어. 지금 이 순간이 영원했으면 좋겠어. 지금 가진 이 마음 변치 않겠다고 약속해 그대에게. 지금 여기 오기까지 쉽지만은 않았지 너무도 많았지 힘들었던 날들. 하지만 너 때문에 버텨올 수 있었어. 견뎌올 수 있었어. 지금 이 축복에 날려버려 지금 이 음악에 흘려버려 그리고 난 웃어버려. 너를 위해. 분명히 가끔 맘이 아플 때도 있을 거야. 그럴수록 서로를 더 꼭 안아줘야 해. 손을 잡아줘야 해. 사랑이란 마법의 약은 효과가 영원해서 상처들을 다 치유해. 그댄 내게 아주 달콤한 꿀 난 평생 당신만을 원하는 곰돌이 푸. 나만을 사랑해준다면 지금 너의 그 맘 변치 않는다면 난 너만을 지켜주겠어. 나와 결혼해줘서 정말 고맙소. 이제부터 우리만의 사랑의 파티를 시작할 테니. 시간이 흘러도 절대로 변치 않는 둘만의 사랑을 내가 보여줄 테니 어서 내게 다가와. 거친 비바람이 몰아치면 난 그대를 더 꽉 안아줄게. 나 때문에 힘들 때면 언제든 말해 무릎 꿇고 사과할게. 그대 나를 용서할 때까지.”
내가 축가로 부른 DS 커넥션이라는 가수의 DS웨딩이라는 노래의 반주도 끝이 나고 나와 그녀에게 한 번밖에 없을 결혼식도 끝이 났다. 결혼식을 끝마친 우리는 식장에서 나와 웨딩카를 타고 신혼여행 장소로 가는 비행기를 탈 수 있는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자기야.”
“응?”
“우리 신혼여행 어디로 갈 거야?”
그녀의 말을 들은 후 나는 내 주머니 속에 있는 여행안내 책자를 꺼내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그녀는 내가 건네준 책자를 받더니 이리저리 둘러보고서 안내책자를 펼친 뒤 그 안내책자에 쓰여 있는 내용을 읽어나갔다.
“신비의 섬엔 사람 먹는 새끼 참새가 있습니다.”
“내가 그 참새를 잡아 새장에 가둬서라도 그대를 지켜주겠습니다.”
“신비의 섬엔 사람만 한 바퀴벌레 있습니다.”
“내가 바퀴벌레를 참새먹이로 줘서라도 그대를 지켜주겠습니다.”
“신비의 섬엔 300m 아나콘다가 있습니다.”
“내가 그 아나콘다를 항아리에 가둬서라도 그대를 지켜주겠습니다.”
“신비의 섬엔 얼마 없는 여자들이 모두 김태희입니다.”
“약속하겠습니다. 투시 안경 안 꺼내겠다고.”
“뭐?”
“장난이야, 장난!”
“됐어!”
“알았어, 미안해. 자기야. 화 풀어. 인천공항 다 도착했다. 비행기 타자, 우리 애기. 오빠가 애기 소원 들어줄게!”
“진짜?”
“그러엄! 그러니까 우리 비행기 타고 인천공항으로 출발합시다!”
“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