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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 조 숙 녀 조 폭 되 기 ◈
Graceful lady become gangster
Written by.땡깡히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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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
온통 새까맣게 차려입은 한준이 천천히 들어섰다. 포인트라면 깔끔하다 못해 단조로울 지경의 차림과는 상반되게 고급스럽게 빛나는 넥타이핀과 외모. 그리고 듬직하게 그와 반걸음 떨어진 뒤에 완이 서있었다는 것. 한준과 계획을 세우면서 한 번 보았을 뿐인데도 남자답게 생겼지만 눈매는 굉장히 부드러워, 참 품위 있는 여성처럼 보였던 언밸런스한 인상 때문인 듯했다.
괜시리 자신의 상황을 잘 아는,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사람들을 봤다는 반가움인지 아니면 같은 상황에 놓여있다는 동질감인지 그들은 자신에게 반가워하는 기색은커녕 눈길조차 주지 않는데도 희는 멀찍이 떨어진데서 눈을 반짝이며 슬쩍이라도 눈짓인사라도 해주길 내심 바랐다. 물론, 그 바람을 들어줄 그들이 아니었기에 한마디 말이 없어도 척척 거래에만 응할 뿐이었지만.
“물건 질이랑 수량 확인 작업 마치고 다 옮겨 실었습니다, 형님.”
비냥이, 자신의 별명인 비냥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깍듯한 태도로 상황을 전달하고, 비냥의 전달사항에 현권은 빙긋 특유의 꽃미소를 띠워 올렸다. 만족스러운 표정의 현권을 바라보며 한준은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알 수 없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한 채 입을 떼었다.
“이번 거래에서 저희가 맡은 물건 반입은 완벽하게 하자 없이 했으니까… 약속대로 그 쪽은 깔끔한 뒤처리 부탁드립니다. 그럼-”
역시나 쌀쌀맞다 싶을 정도로 제 할 말, 제 할 일 끝내면 가차 없이 돌아서는 한준다웠다. 현권이 채 무어라 답을 하기도 전에, 하다못해 간단하게 눈인사라도 건네기도 전에 돌아섰기에 당연한 일이겠지만, 자존심 센 현권이 미간이 꿈틀하고 일그러졌다. 안 그래도 저번 첫 만남 때부터 한준의 딱딱한 태도를 탐탁지 않게 여겨 말도 안 되는 시비까지 걸어 대며 묘한 신경전을 벌이던 둘이었는데 아무래도 한 번 더 부딪힐 필이 살짝쿵 공기 중으로 스쳐지나갔다.
“걱정 마십시오. 그 쪽들처럼 저희 조직은 뒤 구리게 처리는 안 합니다.”
가시 콕콕 박아둔 목소리를 톡 쏘아, 뒤돌아선 한준의 뒤통수에 꽂은 현권은, 뒤통수가 따가워 우뚝 느긋하게 걷던 걸음을 멈춰서는 한준을 보고선 남모르게 피식 꼴통틱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의 거래 담당은 제가 아니라, 김 상훈이었습니다. 물론, 그딴 식으로 일처리를 하니까 밀리고 제가 오른팔이 된 거겠지만 말입니다. 저는 모든 일처리에 있어서 놀라울만큼 완벽합니다.”
한준은 저를 기분 나쁘게 할 심산으로, 현권이 그렇게 떠들었다는 걸 단박에 눈치 챘고 그것에 보답하기라도 하듯 일부러 현권의 기분을 상하게 할 요량으로 얄밉기 그지없는 말투로 떠들어대며 살짝 뒤돌아 피식 웃어보였다. 비아냥거림이 진득하게 묻어있는 그 미소에 현권의 표정이 삽시간에 바윗돌 얼굴이 되었다.
“그것 참……. 아-주- 듬직하군요.”
비꼬는 투가 다분했지만, 한준은 더 이상 유치하게 현권을 상대하기 싫다는 양 대답도 없이 무시하고 홱 돌아섰다. 뒤에서 현권이 오만상을 찌푸리고 입가를 찡긋거리며 경련을 일으키든지 말든지 ‘나는 관심 없소.’라는 시니컬한 표정으로. 그러면서 힐끗 완에게 시선을 보내고 그의 시선을 받은 완은 손목시계를 들여다본 뒤 눈을 조금 크게 뜬 뒤 두 번 빠르게 깜빡였다. 그와 거의 같은 때쯤, 희도 그들이 나가는 것을 보곤 손목시계를 차고 있는 과연에게 시간을 물었다.
“1시 58분입니다, 형님.”
“고맙습니다.”
희가 싱긋 웃으며 답해주고 과연이 볼을 살짝 붉히고 자신 스스로도 그것을 자각해 재빠르게 고개를 숙이는 때에 그녀의 마냥 맑기만 한 얼굴에 어울리지 않는 싸늘한 무표정이 떠올랐다. 거래가 끝났으니 당연하게 조직원들은 차에 하나 둘씩 타고 있었고, 말없이 현권을 앞세우고 서있던 우석도 현권과 함께 차에 올라탔다.
“형님, 안 가실 겁니까?”
과연이 다들 분주하게 갈 준비를 하는 때에 무표정하게 서있는 희에게 물으며 그녀를 이끌려 할 때였다.
“현장검거가 최고의 증거다. 한 놈이라도 놓치지 말고 싸그리 잡아!”
거칠고 우렁찬 고함소리가 공장안에 울려 퍼지고 순식간에 타다다닥, 하는 여러 명의 빠르고 분주한 발소리들이 가득 주변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쓰벌! 웬 짭새새끼들이야?!”
“됐다, 마! 신경 쓰지 말고 다들 움직여!”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상황에 잠시 우왕좌왕하던 조직원들이었지만, 곧 그나마 가장 윗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조직원들이 허둥대는 녀석들을 통솔해서 약삭빠르게 ‘짭새들’을 제치고 도주했다. 희 역시도 경찰들의 등장에 빠르게 몸을 움직였지만…
“가십시오!”
간발에 차로 형사 중 한명에게 붙들렸고, 자신을 어떻게든 붙들고 차에 타려던 과연을 밀쳐놓고 출발시켜버렸다. 지체할 새가 없는 때였고, 원래 조직 일이라는 게 사사롭게 한 사람씩 신경 쓰면서 하는 일이 아닌지라 망설일 여지 미끄러지듯 희만 남겨둔 채 빠져나갔다. 남겨진 희는 제 손에 쇠고랑을 채우는 사람을 힐끔 쳐다본 뒤 시선을 넓게 두고 공장안을 살폈다. 자신 외에도 몇 몇 다른 조직원들도 붙잡힌 채였다. 형사는 형식적인 말들을 대충 읊어댄 뒤 거칠게 그녀를 차에 태웠다. 욕설을 읊조려대며 강하게 반항하는 놈들 틈에서 희는 여유인지, 포기인지 모를 고요함으로 상황을 받아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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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둘입니다.”
“씨발! 어디서 냄새를 맡고 끼어든 거야? 어떤 새끼가 정보 흘린 거야, 빌어먹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유. 여태까지와 다를 것 없이 철저하게 보완했다고 자부했는데 불구하고 터진 일이기 때문이었다. 거래 중에 단 한 번도 뒷덜미를 잡힌 적이 없었을 정도로 완벽한 보완이었다. 냄새 따위 쉽사리 형사들 코로 스며들었을 리 없었다. 누군가가 흘리지 않고서야.
화가 나서 펄펄 뛰며 앞머리를 거칠게 흐트러뜨리는 현권의 모습에 잔뜩 몸을 위축하고 고개를 수그린 채로 있는 조직원들이었다. 물론, 그러한 상황 속에서도 어디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사람인 양 느긋하게 소파에 걸터앉은 채로 있는 사람도 있었지만.
“주요인물.”
느긋한 인물이 입을 열어 나직하게 말했고, 그 말은 그 어떠한 것보다 강한 카리스마가 깃들어져 있었기에 현권에게 잔뜩 겁먹고 있던 녀석들은 죄다 두려움의 대상이 현권에서 우석으로 변했다. 순식간에 목소리 하나만으로 전세가 현권에서 우석으로 바뀐 것이었다. 우석의 질문에 길길히 날뛰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던 현권은 정보를 흘린 놈이 누군지 찾는 건 잠시 미뤄두기로 하고 애써 화를 눌러 참아 진정 시키며 비냥을 쳐다봤다.
“큰형님과 작은형님, 저 그리고 쓰벌, 떡대…… 요조.”
가장 큰 서열부터 차근차근 꺼내던 비냥은 가장 마지막으로 주요인물인, 가드 통솔인 요조가 빠진 것을 눈치 채곤 말끝이 흐려졌다가 곧 한숨 섞인 투로 요조를 댔다. 그리고 요조가 대어지자마자 분위기 전체가 싸해졌다. 딴 놈들은 다 잡혀가도 가장 큰 사안들을 알고 있고, 조직과 깊이 관여 있는 주요인물들만 멀쩡하면 열받긴 해도 문제가 없다고 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었는데 주요인물 중 하나가 빠졌다는 것에서 이건… 그냥 치고 넘어갈 수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무엇보다…
“오 과연……오 과연 불러와, 오 과연!”
현권에게 있어선 다른 누구도 아닌 희가 잡혀갔다는 사실은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정도로가 아니라 아주 큰일인 사건이었다. 현권이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버럭 소리를 지르고 그의 명령에 허둥대면서 비냥이 나가려 할 때 불쑥 끼어들어, 다른 누가 아닌 희가 잡혀갔다는 사실이 아주 큰일인 다른 한 사람, 우석이 그 행동을 저지했다.
“마 현권. 잘못한 거 따질 때냐-. 강호파 쪽에 연락해.”
자신을 탓하는 우석의 싸늘한 목소리에 현권은 폭삭 끓어올랐던 흥분이 차갑게 식어서 내려앉고 심장까지 다 꽁꽁 얼어 바닥으로 쿵 떨어지는 것 같았다. 너무 흥분한 나머지, 상황판단에 오류를 범했다, 추하게. 자신을 믿어주는 그에게 신뢰를 잃을 정도로 크게.
“네, 형님.”
현권은 속으로 한심하기 짝이 없는 자신을 욕하며 씹듯이 답하며 곧장 그의 명령을 수행했다.
44.
“이제라도 그만 둘 생각은……. 없는 거야?”
“없어요.”
“그렇게 대번에 답하지 말고 좀 더 깊게 생각하고…”
“비가 죽었고, 비의 장례식을 치뤘고, 비를 화장했어요. 그리고 그 내내 저는… 죽은 비를 그리며 슬퍼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에 복수를 생각했죠. 복수 계획을 세우고, 계획대로 움직였어요. 운동도 다니고, 외양도 바꾸고, 진짜 조폭이 되어서 훈련이랍시고 사람을 다치게 하는, 죽게 하는 것들을 배웠어요.”
말꼬리를 싹둑 잘라먹고 속사포처럼 쏟아내는 그녀의 말에 세환은 차마 말을 끝마치지 못해 ‘오’발음을 내는 입모양을 한 채 닫지도 못하고, 바꾸지도 못한 채로 그녀를 말똥말똥 바라봤다.
“그러는 동안에도 제가 생각한 건 복수였어요. 얼마나 더 깊게 생각해야 하죠?”
줄줄줄 새듯이 흘러나오는 그녀의 말이 끝을 맺은 후에야 지그시 세환은 벌어져 있던 입술을 일자로 닫았다. 직선에 가까울 정도로 정말 딱 일자로 닫힌 입술. 무어라 대꾸할 말이 없다는 양, 혹은 싫다는 듯한 입모양을 만든 후 그는 지그시 닫은 입술만큼이나 지그시 희를 응시했다.
“그래, 좋네.”
그러다, 입술을 열어 내뱉은 목소린 유쾌했다. 방금 전까지 진지하기 이를 데 없는 표정과는 정반대의 마냥 해맑고 유쾌한 미소처럼. 그래서 싸하게 굳은 얼굴로 열변을 토하던 희는 후-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맘을 진정 시켰다. 이제야 제대로 복수를 시작했단 생각에 평소 감추어지듯 억눌러져 있던 긴장감과 분노가 잠시간 사정없이 흥분과 함께 폭발한 그녀였다. 겨우 숨을 고르고 마음을 흥분을 가라앉힌 희는 평소의 부드러운 그녀의 표정으로 돌아왔다.
“널 돕겠다고 얘기할 때도 말했겠지만, 나는 자기만의 분명한 신념을 가진 사람을 굉장히 좋아해. 그래서 다시 한 번 네 그 신념에 반했다. 윤 씨, 성 가진 사람은 다 그렇게 멋지나. 윤 비, 윤 희.”
아무리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쓰는 데 바빠서 그들에게 다들 관심이 없다지만,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친근감 가득한 대화를 건네는 세환에 의해 희는 저도 모르게 싱긋 웃었다. 그러다, 세환이 미소를 싹 지우고 목소리를 바꿨을 때, 희 역시도 표정을 가다듬고 그를 마주했다.
“권 형사. 뭐야, 이 기집애 같은 놈은. 나이도 어려 보이는데? …얘도 마약거래 현행범 중에 한 놈이야?”
“저도 지금 알아보는 중입니다. 형사님 말씀대로 생긴 것도 여리여리하게 생긴데다가, 나이도 어려서 조폭같이 보이지도 않는데다가, 다른 놈들은 죄다 별 몇 개씩 달고 있는데 이 녀석은 깨끗합니다. 이번 거래 강호파랑 은파라고 들었는데, 거기 놈들은 죄다 꿰고 있지 않습니까, 제가. 근데 이놈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놈이라서요. 새로 들어온 놈인가, 하고 캐고 있던 중입니다.”
“취조 끝나면 바로 보고 올리고.”
“네, 알겠습니다.”
희와 대화를 나눌 때완 영 다르게 어딘가 엘리트적인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단호하고도 강단 있는 말투로 세환은 또랑또랑하게 그의 질문에 답했다. 막힘없이 미리 생각해뒀던 레퍼토리를 읊은 세환은 힐끗 눈빛으로 희에게 ‘나 잘하고 있지.’라는, 칭찬해주세요. 라는 메시지를 쏘았다. 그걸 보고 있는 희는 그의 유쾌함에 어쩔 수 없이 튀어나오려는 웃음을 참느라 애써 더 얼굴을 굳히고 고개를 아래로 푹 수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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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 말씀… 더 이상 동맹관계를 유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현권의 입가가 경련하듯 강렬하게 씰룩댔다. 그의 입에서 씹듯이 뱉어진 목소린 입가보다 더하게 씰룩씰룩, 사정없이 불안정하게 이쪽저쪽으로 튀어 다닐 정도로 떨렸다. 그의 불안정한 음성을 들은 방안에 모든 사람은 어림짐작으로 그의 통화내용을 상상하면서 눈치만 힐끔거리며 보았다. 우석은 소파에 얹어놓은 손에 꾹 힘을 줬다. 그의 투박한 손에 잡힌 소파의 가죽이 뜯겨져 나갈 것처럼 물결을 그리며 일그러졌다. 파란 힘줄이 그의 손 위에 불뚝 솟고, 우석은 꽉 무는 입술을 내보이지 않기 위해, 소파를 쥐고 있지 않은 다른 쪽 손을 들어 올려 입을 살며시 가렸다.
[아뇨. 말씀을 너무 과하게 받아들이시는군요. 잡혀간 놈 중에 제법 중심부 인물이 있어서 안절부절 하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도망치지 못한 그 놈 잘못이 아닙니까? 중심인물이나 돼서 다른 놈들 다 제쳐놓고라도 도망쳐야 하는 게 우리 세계 아니었습니까?]
“하!”
현권이 감정 없는 무미건조한 음성으로 던지는 한준의 답변에 거칠게 헛웃음을 흘렸다. 화를 삭힐 생각으로 눈을 지그시 감자, 채 다 안으로 삭히지 못한 화가 스멀스멀 흘러나와 속눈썹을 파르르 떨리게 만들었다. 눈꺼풀 아래 가리어진 현권의 눈은 분노와 걱정으로 이미 광기에 어려 있었다. 그건 현권도 어느 정도 화를 안으로 삭힌 뒤에 어렵지 않게 깨달았다. 그래서 차라리 눈을 감은 것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방안에 수많은 눈에게 보이기 나은 모습이라 판단해 현권은 감은 눈을 뜨지 않은 채로 다시 한 번 차분한 목소리로 부탁했다.
“압니다. 저희 쪽 놈… 잘못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 조직의 주요인물 중 한 놈이니까 꺼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 쪽은 짭새 놈들이랑 연줄이 좀 있으니까 부탁 좀… 하겠습니다.”
[꺼내는 방법은 찾아보면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 그 쪽 보스께서 짭새 연줄은 없어도 부패한 정치인새끼들 연줄은 많지 않습니까? 죄송합니다만, 저희 보스께선 남이 흘린 더러운 똥물 닦기는 안 해줄 생각이 없다 십니다. 아무리 동맹관계라 해도 그런 구린 뒤처리는 알아서 해야 할 일 아닙니까. 그럼 이만.]
아무 감정도 담기지 않은 목소리에, 덧붙여진 싸할 정도로 냉철하다 못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역한 감정을 절로 일게 만드는 단어선택이 곁들여진 한준의 말은 일방적으로 뚝. 하고 전화를 끊는 것과 함께 끝이 났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게도 반쯤 이성을 놓은 현권을 단박에 날뛰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런 씨발새끼들!”
쾅. 전화기를 확 들어 올려 내동댕이친 현권은 그걸로도 모자라서 전화기를 아예 박살을 냈다. 콱콱. 부품 하나하나가 다 깨부숴지는 소리를 냈다. 그걸로 끝나지 않고 현권의 분노 담긴 폭력적인 행동은 멈추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발로 까고 주먹을 내리쳐대며 온갖 걸 다 부술 기세로 날뛰는 현권은 이미 제정신이 아니었다.
“아, 아이고! 혀, 형님 그만 하십시오!”
으아악, 하고 욕설 섞인 괴성을 질러대며 온갖 걸 다 때려 부술 기세로 날뛰는 현권을 보다 못한 부하 놈들이 힐끔힐끔, 앉아서 그 상황을 방관하고 있는 우석의 눈치를 보며, 현권에게 달려들었다. 이미 이성이 뚝 끊겨버린 현권은 말리려는 놈들마저도 마구잡이로 패대기쳐댔다. 그때까지도 잠자코 앉아있던 우석이, 떡대가 쿵. 하고 듣기에도 아픈 소리를 내며 코피를 줄줄 쏟으면서 뒤로 나자빠질 때 스륵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뚜벅뚜벅…
퍽.
길게 울리지도 않는 마찰음. 한 방에 크고 강하게 팡! 하고 터지듯 쩌렁하게 방안을 울리는 마찰음이 현권의 볼과 주먹에서 만들어졌다.
“지랄 그만해라, 마 현권. 죽고 싶냐-. 내가 누군지도 분간 못하겠냐-. 미쳐서… 네 형님이 호구로 보이냐-. 어디서 개지랄을 떠는 거냐, 마 현권.”
아무도 따라하지 못할 무척이나 낮은, 바닥에 내리깔리다 못해 땅을 파고 들어갈 정도로 무겁게 가라앉는 저음이 위협적으로 현권의 귓전을 때렸다. 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주먹이 되어 얼얼한 뺨보다 더 세게 그의 온 몸 구석구석을 강하게 내리꽂았다.
“…죄송…합니다, 형님.”
“보스껜 일단 보고 올리지 말고, 빼낼 수 있는 방법 물색해라.”
서릿발 선 눈길이 현권을 싸늘하게 노려보다가 떼어지며 말했다. 그의 말에 누구랄 것 없이 현권에 의해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아니, 우석의 개입에 놀라 번쩍 자리에서 일어나서 아픈 것도 제대로 추스르지 못하고 있던 놈들이 일제히 ‘네!’하고 우렁차게 대답을 하곤 방을 빠져나갔다. 당연하게도 방안엔 눈을 내리깐 채 입술에서 터져 흐르는 피도 닦지 못하고, 곧게 허리를 피고 차렷자세를 한 채 서있는 현권과 화난 것마저도 포커페이스를 깔끔히 감추던 우석답지 않게 잔뜩 화가 난 얼굴을 한 우석만이 남았다.
“마 현권.”
“네, 형님.”
희가 제법 주요인물이 된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이렇게까지 흥분해서 날 뛸 정도로 주요인물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희’이기 때문에 날 뛰어댄 현권은 갈라진 목소리를 냈다. 쇳소리를 내는 현권을 우석은 가만히 바라보다가 새어나오려는 한숨을 삼키려는 듯 담배를 꺼내 입에 물었다.
“쉬어라.”
“…………….”
담배에 불을 붙이며 뒤돌아서서 다시 소파로 걸어가며 우석이 말했다. 그의 말에 현권은 긴 텀을 둔 뒤에,
“…네.”
어렵사리 대답을 했다. 희가 걱정 되서 방에 가서 쉰답시고 있어봤자 쉬는 게, 쉬는 게 아닐 게 뻔했지만, 더 이상 아이처럼 억지 부리고 뭣도 모르는 병신처럼 날 뛰었다간 정말 형편없을 테고, 또 희가 주요인물이긴 해도 이렇게까지 난동을 피울 정도로 희가 잡혀간 일이 솔직히 큰일은 아닌 것이기에 더 이상 난동을 피웠다간 의심을 사는 건 보나마나한 일이었다. 현권은 꾸벅 허리를 굽혀 인사를 한 뒤 방을 빠져나갔다. 남겨진 우석은 한동안 허공을 바라보며 담배연기만 내뿜다가, 손을 들어 올려 이마를 짚었다. 난동을 피울 정도로 큰일이 아닌데 난동을 피우던 현권만큼이나 속이 복잡해 미친듯이 몰려드는 피로감을 이겨내지 못해 이마는 열로 뜨끈뜨끈해져 있었다.
45.
“보스한텐 절대 이번 일, 전달되지 않게 확실하게 처리했습니다.”
“대타는?”
“윤 희씨 빼돌리고 대타로 보낼 놈도 확실하게 준비해뒀습니다.”
척하면 척. 묻는 대로 똑 부러지게 대답해오는 완의 답변이 마음에 든, 게다가, 내용은 착착 계획대로라 더 마음에 든 한준은 가뭄에 단비 오는 것보다 더 보기 힘든 웃음을 쏘듯 잠깐 지었다. 한준에게 한 시도 눈을 떼지 않는 완은 그의 간만에 보는 단비 닮은 미소에 빙글 저도 미소 지었다.
“시간.”
피곤한 얼굴로 메고 있던 넥타이를 풀어헤치며 한준이 물었다. 잔뜩 노곤해하는 얼굴을 하고서, 느릿느릿 지쳐서 마냥 느린 손짓을 하고서도 목소리만은 냉기가 돌 정도로 빈틈없다 여겨질 만큼 무감정했다.
“3시 15분이니까… 아마 지금쯤 바꿔치기 했을 겁니다.”
풀어헤친 넥타이를 옷걸이에 잘 길게 빼서 건 뒤 단추를 하나하나 풀던 한준은 더 이상 피곤해서 움직이기 싫다는 양 두 세 개 정도 남겨두고 벗는 것을 멈추곤 침대 쪽으로 천근만근 같은 걸음을 옮겼다. 한 일은 별로 없는데, 일이 잘못 튈까봐 신경을 너무 썼던 탓인지 머리가 깨질 듯 아프고 그 빈틈을 타고 그동안 쉬지 않고 일했던 피로가 한꺼번에 밀려들어왔다.
“옷…….”
완이 살며시 말을 꺼냈다. 그의 목소리에 한준이 멈칫 걸음을 잠시 멈췄다. 그러다, 그가 하는 말의 의미를 깨닫곤 시큰둥한 얼굴로 대꾸하기도 귀찮은 듯 답하지 않은 채로 잠시 멈췄던 걸음을 계속했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한준의 답을 듣고 행동을 할 생각이 아니었는지, 완은 한준이 대답 없이 그대로 침대로 향하자 성큼성큼 넓고 빠른 보폭으로 걸어와 한준을 붙들었다. 이미 피곤함에 온 몸에 힘을 빼고 있던 한준은 완이 조심스레 돌려세우는 것에 회전문마냥 빙그르 쉽게 몸을 돌려세웠다. 반쯤 잠에 빠진 눈을 하고, 온통 풀어진 모습을 하고 선 한준을 완은 잠시 멍청하게 바라보다가 한준이 조금 신경질스럽게 미간을 찡긋거리자, 퍼득 정신을 차리곤 이미 거의 다 벗어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게 하고 있는 옷가지로 손을 뻗었다.
“됐어.”
한준이 귀찮다는 투로 말하며 몸을 돌리려는데 완은 고집 있게 묵묵히 남은 단추를 모두 풀었다.
“와이셔츠는 느낌이 영 불편해서 입고 자면 잘 때 뒤척인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완이 잘 안다는 양, 잔소리하는 양… 마치, 엄마처럼 한준의 귀찮다는 투의 말에 답하며 휙 몸을 돌려 옷장으로 가, 편안한 셔츠를 하나 들고 돌아왔다. 피곤해서 다 짜증난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한준이기에 그의 움직임은 더 없이 빨랐다. 후다닥 빠르게 자신의 셔츠를 하나 들고 와 내미는 완을 한준은 빤히 쳐다봤다. 피곤해서인 지 잔뜩 짜증난 얼굴인 한준이 땡깡 부리는 애마냥 옷을 받아 입진 않고 저를 빤히 쳐다보는 통에 완은 머쓱하게 이마를 문지르다가 아무 말 없는 한준을 대신해 제가 먼저 입을 떼었다.
“제가 해드리겠습니다.”
“아, 됐어.”
그리고 그 말은 한준의 입을 떼기에 아주 딱 효과적인 말이었던 듯, 열지 않을 것처럼 딱 일자로 닫고 있던 그의 입술을 곧장 열게끔 만들었다. 불퉁스러운 투이긴 했지만. 낚아채듯 완의 손에서 셔츠를 빼앗아 입으며 애처럼 퉁한 얼굴로 쏘아보는 한준에 의해 완은 고개를 살짝 숙여 그가 보지 못하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쉴 거야. 이제 그만 나가.”
한준의 싸늘한 음성에 완의 말려 올라갔던 입초리가 안쓰러울 정도로 스르륵, 떨어져 내렸다.
“네.”
꾸벅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고 뒤를 돌아 나서는 완의 표정은 어딘가 허한 사람처럼 비어있는 표정이었다. 쓸쓸한 빛이 도는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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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형님! 요조…아, 아차! 쓰벌! 노, 노크 하고 다시 들어오겠습니다!”
아침 댓바람부터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와 요란법석을 떨어대던 쓰벌이, ‘사나우니 건드리지 마시오.’라는 팻말이라도 걸어놔야 될 법한 얼굴을 하고 자신을 노려보는 현권을 보곤 퍼득 깨닫고 화들짝 놀라며 후다닥 다시 나가려 했다. 물론,
“요조……. 야! 됐어, 들어와!”
‘요조’라는 그 단어 하나에 그렇게 결벽증마냥 중시하는 노크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태도를 취하는 현권이 그것을 저지했지만.
“요조 풀려났답니다. 동태 살피던 놈이 보고했습니다. 지금 차 타고 오는 중이랍니다! 쓰벌! 강호파쪽에서 도와줬답니다. 아, 그 새끼들이 글쎄 자기네 쪽 부하 한 놈이랑 요조랑 바꿔치기했다지 뭡니까. 중간과정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랬답니다. 쓰벌! 어쨌든 잘 된 거 아닙니까?”
어제 그렇게도 난리를 쳐대던 현권이니까, 요조가 풀려났다는 소식인 당연히 좋은 소식일거라 여기며 히죽이죽 웃으며 정보를 전달하던 쓰벌은 현권의 표정이 밝아지기는커녕 더욱 싸-하게 굳자, 차츰 저도 표정을 굳히며 힐끔힐끔 그의 눈치만 봤다.
“뭔가… 꿇리는 게 있는 거겠지.”
“네…, 네?”
눈치만 살금살금 보던 쓰벌은 스리슬쩍 살기를 실은 현권의 음성에 흠칫하며 괜시리 더듬대며 되물음을 했다. 반면에 현권은 죄 지은 것도 없으면서 쫄아선 어물어물대는 쓰벌에겐 관심도 없었지만.
“알아봐라. 알아서 해결하라던 놈들이… 갑자기 마음을 바꿔먹은 이유.”
“아? 아! 네, 알겠습니다. 형님!”
쓰벌다운 우렁찬 답과 함께 90도의 오버스러운 꾸벅 허리 인사를 하고 쓰벌은 후다닥 재빨리 현권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방을 나갔다. 남겨진 현권은 동상처럼 쓰벌과 대화를 나누던 자세 그대로 눈도 한 번 깜빡하지 않고 있다가 별안간 후- 하고 길게 숨을 내쉬며 걱정인 지, 분노인 지, 모를 긴장 어린 두근거림을 잠재우며 자리에서 일어나 빠르게 방밖을 나갈 준비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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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적. 공기의 흐름소리마저 들릴 것만치나 고요한 정적이 방 안에 가득 찼다. 그 숨 막힐 정도로의 엄청난 고요함에 희는 숨이 잘 쉬어지지 않아 자꾸만 입을 뻐끔댔다. 그러나 정작 그 엄청난 정적을 깨고 먼저 입을 연 건 우석이었다.
“형편없다.”
“죄송…합니다, 형님.”
“처음이니까.”
“…………….”
“눈 감아줄까?”
우석이 은근하게 질문했다. 그의 은근함이 묻어나는 목소리에 희가 푹 수그리고 있던 고개를 슬쩍 들어 올려 그의 눈치를 살폈다. 물론, 소득은 전혀 없었다. 아무리 살펴보아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도무지 읽을 수가 없으니. 그러나 그는 왜 자신이 그렇게 은근한 목소리를 냈는지 스스로 알려주었다.
“아, 말을 잘못했군……. 눈… 감겨줄까, 윤 희-.”
첫댓글 으악!!!!!!!!!! 눈을 감겨줄까는 무슨 의미인가요!! 작가님 너무 궁금해요 ㅎㅎ 아웅 진짜 궁금합니당 ㅎㅎ 역시 한준이가 외면하지 않는군요 ㅠㅠ 약간 걱정했어요 ㅠㅠ 그래도 희의 주변에는 그녀를 지켜주는 수호천사들이 가득해서 다행이에요^^ 저는 희를 격하게 아끼는 거 아시죠?? 이제 새해네요 ㅎㅎ 작가님 올 해에도 건강하시고 쭉 연재도 해주시고 ㅋㅋ 저는 즐겁게 읽고 감상하고 응원하겠습니다!! 2012년에도 화이팅!! 다음편도 진짜 기대하고 있을게요 ㅋㅋㅋ 눈 감겨줄까의 허허 그 말의 뜻도 꼭 같이 데려오셔야 되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랜만에 보았는데... 넘 재밌어요 다음편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