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면이 서강으로 둘러 쌓인 청령포의모습
여기가 조선 6대임금이신 단종 임금님께서 유배생활을 하신 청령포이다.삼면이 서강의 물로
둘러 쌓여 흘러가는 서강(西 江 ) 이다 .청령포의 외로운 고도(孤 島)에서 나이12세의 어린나이에
왕의 자리에서 물러나서 외로운 유배 생활을 하는 곳이다
한양에서 멀리 떨어진 영월에 까지와서 유배생활을 하니 어린나이에 얼마나 외롭고 쓸쓸 할
것이며 수양숙부를 원망도 했을것이며,아니면 왜 나이어린 내가 왕이 되어서 이런 고통을 받아
야 하는 원망도 해 보았을 것이다. 또한 외로울때는 관음송 (觀音松 )에 올라가보기도 해 보았을
것이며 더 올라가면 망향탑 에서 때론 서강을 내려다 보기도 하였을 것이며 아니면 북향을 향해
한양땅을 바라보며 회한의 눈물을 흘리면서 외로움을 달래보기도 해 보았을 것이다.
때론 왕위에 오른지 2년만에 돌아가신 선왕(문종)도 원망를 해보았을 것이다 .그 심정을 다 헤아
릴수는 없지만 .........
그래서 영월의 청령포는 나이어린 단종임금의 고혼(孤 魂 )의 넋이 서려 있는 역사의 현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고 학생들이 찾아오는 곳이기도하다. 나는 이곳을 처음에 오게 된 것은 서울
시 유공(有 功 ) 공무원 자격으로 부부간에 2박3일로 영월을 찾게 된것이다 .그게 인연이 되여서
가끔 머리도 식히고 답사를 하고 싶으면 영월을 자주 찾는다
그래서 장릉 을 포함한 단종의 유적을 더듬어 보고 고씨동굴도 관람하고 이번에는 등산을 겸해서
동강의 어라연에서 한 없이 4키로를 걸어 보면서 삶에 대하여 많은 생각도 해 보았다.
다음에는 청령포를 바라보는 서강의 입구에 의금부도사 왕방연의 시비(詩 碑)에서 단종임금님의
애잔한 감회를 생각해보자
千 里 遠 遠 道 천만리 머너먼 길에
美 人 離 別 袂 고운님 여의웁고
此 心 無 所 着 내마음 둘대 없어
下 馬 臨 川 流 냇가에 앉아으니
川 流 亦 如 我 저물도 내 마음 같아
鳴 咽 去 不 休 울어 밤길 예 놋는다
의금부도사 왕방연의 마음을 우리가 헤아려 보면 천만리 한양땅에서 단종임금님을 모시고 와서
청령포에 유배시키고 본인은 한양땅으로 올라가야 하지만 가지 못하고 서강의 강가에서 애달피
눈물을 흘리면서 이 시(詩 )를 지었을 것이다.여기서 나이 어린 단종임금님이나 의금부도사 왕방연이나
저기 흐르는 서강의 물이나 다 똑 같이 슬픔을 감추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을 것이다. 서울로 올라간
그뒤로 속죄한 뜻으로 모든 관직을 내려놓고 일체의 관직에 머무르지 않았다고 하니단종을 청령포에
유배를 시키고 회한이 많았나 본다.
다음은 단종임금님의 어소(御所 )에 부착된 어제시(御 製 詩 )에서 나타난 감회를 생각해 보기로
하자
御 製 詩
千 秋 無 限 寃 천추의 원한을 가슴 깊이 품은채
寂 寧 荒 山 裡 적막한 영월의 땅 황량한 산속에서
萬 古 一 孤 魂 만고의 외로운 혼이 홀로 헤매는데
蒼 松 繞 舊 園 푸른 소나무는 옛동산에 우거 졌구나
嶺 樹 三 天 老 고개위의 소나무는 삼계에 늙었고
溪 流 得 石 喧 냇물은 돌에 부딪쳐 소란도하다
山 深 多 虎 豹 산이 깊어 맹수도 득실거리니
不 夕 掩 柴 門 저,물기 전에 사립문을 닫노라
이 시에서도 보면 영월의 땅은 적막하고 황량할 것이며 푸른 소나무들만이 우거져 있으며,
강물만 소리 없이 흐르면서 적막은 더 했을 것이다.산속은 깊고 길어 맹수도 득실거리는 영월의 땅에서
단종임금님은 언제 라도 닥쳐올지모르는 생(生)의 불안감을 느끼면서 외로운 하루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이런 단종인금님의 원혼이 영월땅에 서려 있기에 때문에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단종임금님의 원혼을
달래기 위해서도 찾는지 모르겠다.그리고 영월사람들은 매년 단종임금제(祭)를 지내는지도 모르겠다
이조 제4대 세종의 장남인 문종은 병약하여 2년3개월만에 죽게되고 단종이 12세의 어린나이에 등극하게 되어
왕위를 계승하게 된다.그러나 현덕왕후가 단종을 낳다가 죽게 되어 단종을 수렴청정할 사람이없어 왕권이약화
된다는명분으로 1453년 김종서를 죽이고 영의정 황보인 ,병조판서 조극관을 차례로 죽이고1455년 단종3년에
수양은 찬탈하게된다.상왕1년만에 노산군으로 강등되어 청령포로 유배되어 있는중 대홍수로인해서영월에 있는
관풍헌으로 옮겨서 사약을 받고 생을 마감하게된다. 강가에 버려진 단종을 "누구든지 단종의시신에 손을대면
3족을 멸한다"는 엄명이 내려졌다그러나 엄홍도라는 사람이 남몰래 밤에 거적에 쌓인 단종시신을 수습 東乙之山
(莊 陵 )에 안장하게 된다.현종에 이르러 단종무덤이 봉릉되고 우암 송시열의 건의로 단종시신을 수습했던 옛 사람을
찾게된다 .그래서 엄홍도는 "忠毅公 "이란 시호가 내리고 사육신과 함게 영월 창절사에 배향된다
영월답사를 마치고
단종이 유배하여 거처하던곳
첫댓글 그랬군요
어리신 단종, 그 단종을 유배지로 모신
왕방연의 애잔한 감회
시신을 수습한 엄홍도
참 우리 고유의 아름답고 깊은 정서들 입니다
그렇습니다
단종의 시신을 건드리다가는 삼대를 멸족을 한다고 하여도
장례를 치려주었으니 목숨을 걸고 한일이지요.
의금부도사 왕방연도 나중에 한양으로 와서 일체의 관직에 나가지않았다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단종의 한이 서린 청령포.
역사의 한을 품은 서강은 오늘도 말없이 흘러갈 뿐이네요.
인생은 이렇게 바람처럼, 구름처럼, 흐르는 물처럼
흘러만 갑니다.
대자연의 순리와 법칙에 의해서.....
작가님 감사합니다
어린단종이 무슨 죄가 있습니까? 왕이란 이유로 ...
한과 비참한 역사의 이야기이지요. 그래서 영월을 자주 찾았습니다
그리고 경관이 아주 수려합니다. 병약한 문종을 왕으로 추대할것이 아니라 수양대군을 아에
왕으로 책봉을 하였다면 이러한 비극은 없을것을........
나중에 수양은 아주 많은 일을 하였으니, 능력은 아주 좋았던거 같습니다 .
집현전학사 의 우수한 인재들이 죽어갔으니, 역사의 비참한 현실을 봅니다.
역사의 아픔이 서린 현장을 가셨군요 저 곳에만 가면 저절로 숙연해지는걸요
정말아픔이 서린 역사의 현장입니다
이런데서 글이 나옵니다 .역사적인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
아주 경관이 수려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해 여름에 트레킹 간적이 있었지요
남들은 걷기만 하는데 저는 이자리에서 그림도 그리고 멤버들 따라서 걷고
좋은시절 많았네요
그렇지요 산천이 아름다운데......
저는 자주 찾았습니다 저도 아주 즐겼습니다
고맙습니다
저도 영월에는 몇번 가보앗지만
무의식인지 어째 청령포는
피해가게 됏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슬프고
애환이 깃든곳 같습니다.
그래도 옛날 곧은절개 사육신
생육신 올곶은 선비정신을
느끼게 합니다.
요즈음은 개인의 이익을 우선
쫓아가다보니 경제적으로는 성장을 해도 그런 참다운 지성
올바른 윤리개념이 많이 퇴색 되어 가는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우리나라의 가슴아픈 역사의 현장입니다
권력에는 형제간도 피에도 눈물이 없습니다
그 배후에 수많은 인재들이 죽어감니다
두번 가본곳이지요.
영월가서 단종의 묘소도
가보고요.
영월 지금은 그리 멀게 안느껴지는 지역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