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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경
오랜만에 다시 찾은 식당에서 요리를 음미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그랬듯 식당의 요리는 제 마음을 행복하게 해 주기에 충분했고, 간간이 흘러나오는 음악마저 제가 좋아하는 멘델스존이었습니다. 정말 훌륭한 저녁이었습니다. 언제나 이 식당에 올 때마다 이런 기분을 맛볼 수 있다는 게 행복하게만 느껴졌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저는 주위를 둘러보다가 한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두 사람에게 시선을 멈췄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지금 저 테이블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 사람은 요즘 온 국민들에게 존경을 받고 있는 Q씨였습니다. 그의 인품과 학문적 열정, 그리고 모두에게 희망을 차오르게 하는 연설은 모두의 존경을 사기에 충분했으니까요.
제가 남의 이야기를 엿듣고 다니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날은 어쩌다보니 두 사람의 대화를 엿듣고 말았습니다. Q씨와 식사를 하고 있는 남자는 Q씨를 너무 존경해왔고 흠모한 나머지 갖은 경로를 통해 그와 알게 되었고 이 즐거운 저녁식사까지 할 수 있게 되었다네요. 뭐 얼핏 들은 바로는 그랬습니다.
남자는 한껏 은근하고 정중하게 그의 존경을 내비쳤고, Q씨는 그의 태도에 감명 받은 듯 화기애애하게 이야기꽃을 피웠습니다. 웨이터가 쟁반에 음식을 가져와서는 정중하게 두 손님의 대화에 끼어든 걸 사과했습니다.
“주문하신 음식이 나왔습니다. 대화에 방해가 되지는 않으셨습니까?”
“아닙니다, 허허.”
“제가 부탁한 대로 요리는 신경 써서 만들었겠지요?”
남자가 웨이터에게 다짐을 받아내기라도 하려는 듯 다소 불쾌한 어투로 물었지만, 웨이터는 늘 그랬듯이 친절하고 정중히 대답했다.
“Q씨가 이 식당에서 식사를 한다는 말에 주방에서 신경써서 요리했습니다. 맛에 대해서라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저도 이 식당이 요리를 잘 하는 걸 알고 있습니다. 그냥 한번 확인한 것 뿐이니깐 그렇게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그럼, 즐거운 식사 되십시오.”
웨이터가 꾸벅 인사를 하고 다른 테이블로 자리를 옮겼습니다. 두 사람은 그리스 산 포도주를 따라서 맛을 음미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천천히 요리를 감상했습니다. Q가 허겁지겁 음식을 먹으며 연신 감탄의 신음을 흘렸습니다.
“이건……정말 대단하군. 고기가 연하고 누린내도 없어. 포도주와도 잘 어울리는데다가 소스도 일품이고. 세상에……이런 요리가 있었나?”
“이 식당이 정말로 요리를 잘 하는 식당이기 때문에 가능한 겁니다. 거기다가 제가 식당에 요청해서 최고의 요리를 만들어달라고 부탁했었습니다. 제가 목숨보다도 존경하는 Q씨를 위해서라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존경이라니.”
Q가 손사래를 치면서 자신을 한껏 낮췄습니다.
“난 그렇게까지 존경받을 위인이 되지 못하네. 난 그저 다름 사람에게 희망을 주는 말 몇 마디를 지껄였던 적 밖에는 없어. 나는 그들을 더 잘 살게 해주지 못했고, 그들을 위해서 아무것도 한 게 없다네. 현실적으로는 아무것도.”
“실의에 찬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게 뭔지 아십니까, 선생님? 희망입니다. 선생님은 지금 모두에게 까짓 돈이나 금으로는 살 수 없는 값비싼 보석을 뿌리고 계시는 겁니다. 저도 그 보석으로 여기까지 HDF 수 있었고, 제게 그 보석을 주신 선생님께 어떤 방법으로든 은혜를 보답하고 싶을 뿐입니다.”
“허허, 고맙네, 고마워.”
남자의 열성적이고 진지한 말에 크게 감동받은 Q씨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다가, 화제를 다른 곳으로 돌렸습니다.
“그나저나 자네 부인은 잘 지내고 있나? 예전에 보고 못 본 것 같은데…….”
“아, 네…… 부인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닙니다.”
남자의 표정이 약간 딱딱해졌습니다. Q씨는 뜻밖의 대답에 놀라며 남자에게 사과했습니다.
“오, 저런, 미안하게 되었군……. 얼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건강했었는데 말야…….”
“괜찮습니다. Q씨 덕에 아내도 좋은 곳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남자의 표정에서는 슬픔과 홀가분함, 그리고 그 감정들 가운데서도 사라지지 않는 Q씨에 대한 존경심으로 가득했습니다. 멘델스존의 음악이 끝나고, 다른 음악이 흐를 때 까지 약간의 정적이 흘렀습니다. 옆 테이블에서 달그락거리면서 식사를 하는 소리만이 식당에 울려 퍼지고 있었습니다.
무거워진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서 Q씨는 호들갑스럽게 요리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그는 윤기 흐르는 고기를 한 점 집어먹고는 절반쯤은 진심이고 절반쯤은 과장된 찬사를 아끼지 않았습니다.
“정말 맛있는 요리야. 아까도 이야기했지만 이런 부드러운 맛과 육질은 처음 느껴보네. 이봐, 이건 무슨 고기로 만든 건가?”
분위기를 밝게 만들어보려는 시도였지만, 남자는 오히려 더욱 당황하는 것 같았습니다.
“네? 아, 네, 글쎄요…….”
남자는 당황해서 말꼬리를 흐렸고, 궁금증을 이기지 못한 Q씨는 웨이터를 호출했습니다. 곧 정중한 걸음걸이로 걸어온 웨이터가 고개를 숙였습니다.
“불편한 게 있으십니까?”
“아니오, 아니오. 요리며 서비스며 모든 게 마음에 듭니다. 묻고 싶은 것이 하나 있는데, 이 요리는 무슨 재료로 만든 거지요? 이런 독특한 맛의 재료를 접한 건 처음입니다.”
웨이터는 빙긋 웃으며 뜸을 들였고, Q씨는 그걸 ‘한번 맞춰보라’는 걸로 이해하고 골똘히 생각에 잠기기 시작했답니다. 이상한 건 맞은편에 앉은 남자였습니다. 얼굴색이 점점 새파랗게 질리기 시작하더니, 간간히 몸을 떨기까지 하더군요. 어디가 아픈 것 같은 남자의 모습을 눈치 채지 못한 Q씨는 퀴즈를 맞추는 어린아이처럼 물었습니다.
“토끼입니까?”
“아닙니다.”
“꿩입니까??”
“아닙니다.”
“토끼도 아니고 꿩도 아니라…….”
Q씨가 미간을 찌푸려가며 골똘히 생각하다가 무릎을 탁 쳤습니다.
“혹시 사슴 아닙니까?”
“맞습니다.”
웨이터가 미소 띤 얼굴로 정중하게 대답했습니다. 저도 꽤 오랫동안 이 식당에서 음식을 먹었는데 저 웨이터가 저렇게까지 미소를 짓는 것은 처음 본 것 같았습니다.
“암사슴의 고기로 만든 요리입니다. 나이 든 암사슴의 고기로 요리를 잘 하면 손님께서 맛본 것과 같은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군. 그래서 내가 무슨 재료인지 알아 맞추기 어려웠던 거야. 사슴고기는 먹어본 적이 없거든.”
Q씨는 허허 웃으면서 웨이터에게 물었습니다.
“이 요리 정말 맛있군. 다음에도 이 식당에 오면 먹을 수 있는 것이지요?”
웨이터가 난색을 표했다.
“재료만 들어온다면 언제든지 맛보실 수 있겠지만, 요즘은 재료가 잘 들어오지 않습니다. 어쩌면 당분간은 맛보기 힘드실 겁니다. 사실 이번에도 예약하신 손님께서 재료를 주시지 않았다면 이 요리는 만들지 못했을 겁니다.”
“정말인가?”
Q가 남자를 바라보았고, 부들부들 떨던 남자의 얼굴이 새빨개졌습니다. 하지만 이상하리만치 불거진 이마의 푸른 핏줄은 사라지지 않더군요.
“네, 모두 Q씨를 존경해서입니다.”
“암사슴은 어디서 구했나?”
남자는 이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총에라도 맞은 것처럼 꿈틀했습니다. 그가 기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습니다.
“친척 중에 사슴농장을 하는 친구가 있습니다. 그에게서 한 마리 얻었습니다.”
Q씨는 몇 분 동안 변하기 시작한 남자의 행동을 눈치 채지 못한 것 같았습니다. 그의 눈에서는 방금 맛 본 금단의 과실의 맛을 다시 느끼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이 요리는 정말 맛있는 것 같군. 어떤가? 한번만 더 청해서 재료를 가져다 줄 수 없겠나?”
남자의 얼굴이 순간적으로 하얗게 질렸습니다. 금방이라도 기절할 것만 같던 그는 잠시 얼어 있다가 곧 결연한 표정이 되어 대답했습니다.
“알겠습니다. 존경하는 Q씨의 부탁을 어떻게 거절하겠습니까?”
“오, 정말 그래줄 수 있나? 고맙네, 고마워. 이 은혜는 잊지 않음세.”
Q씨가 기뻐했고, 남자도 따라서 웃었습니다. 하지만 전 그의 미소 뒷면에 있는 허탈감과 체념을 어렴풋이 들여다본 것 같습니다. 저는 돈을 내고 식당을 나왔습니다.
며칠 뒤, 저는 식당을 다시 찾았습니다.
늘 시키던 메뉴를 즐기고는 후식으로 나오는 젤라또 아이스크림을 음미하고 있을 때, 저는 다시 Q씨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는 테이블 가장가리를 손가락으로 두드리며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글쎄요, 이런 이야기를 하면 믿어주실 지 모르겠지만 전 다시 그의 행동을 지켜보았습니다. 달리 어떤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를 관찰한다고 내게 어떤 이득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지만 저의 시선은 Q씨가 있는 테이블을 훑고 있었습니다.
“이 친구 왜 이렇게 안 오지…….”
Q씨가 혼자 중얼거리면서 몇 번이나 보았던 손목시계를 또다시 들여다보았습니다. 지난번에 보았던 남자는 이번에는 약속시간 안에 나타나지 않은 모양입니다. 상당한 시간을 기다린 듯 Q씨는 전화도 걸어보았지만 그는 휴대폰도 꺼놓은 듯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5분쯤 흘렀을까요, 웨이터가 조용히 걸어와서 요리와 포도주를 내려놓았습니다. Q씨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습니다.
“난 아직 주문한 적이 없는데, 테이블을 잘못 찾은 것 아닙니까?”
“일전에 예약했던 손님께서 갑자기 일이 생기는 바람에 부득이 나오지 못한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대신 일전에 맛보셨던 그 요리를 주문해놓고 가셨습니다. 음식 값은 이미 그 손님께서 계산했습니다.”
“아, 그런가……아쉽게 되었군. 그래도 그 친구, 나에게 이야기라도 해주고 갔으면 좋았을 텐데…….”
Q씨는 요리를 한번 쳐다보았습니다. 정갈하게 차려진 식사는 보는 것 만으로도 지난 번의 훌륭했던 식사를 다시 떠올리게 했습니다. 파블로프가 실험했던 개와 같이 그의 침샘은 한번 황홀감을 느꼈던 그 요리에 다시 반응하고 있었습니다. Q씨가 말을 더듬거리며 말했습니다.
“음, 그래도 성의를 봐서 식사해야겠군. 요리를 그냥 식히기에도 아까우니깐 말야. 그 친구에게 다른 연락은 없었나?”
“편지를 한 장 남겼습니다.”
웨이터가 곱게 접힌 파란색 봉투를 건냈고, Q씨는 그 편지를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
사실 그 편지에는 별 내용이 없었습니다.
딱 한줄.
‘당신을 존경합니다’
이 딱 한마디 밖 에는요.
Q씨는 식사를 시작했고, 웨이터는 만족하는 그의 모습을 보고 조용히 제자리로 물러나려 했습니다. 그 때, 갑자기 Q씨가 웨이터를 불렀습니다. 그는 공손하게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불편한 것 있으십니까?”
“아, 아니……그게 아닙니다…….”
Q씨가 말을 더듬으며 말했습니다.
“요리의 맛이 지난번에 먹었던 것과는 조금 다른 것 같아서 말입니다……. 물론 똑같은 요리이고 이번 요리도 지난 번 요리에 뒤지지 않을 만큼 훌륭하지만…… 뭐랄까, 질감이 다르다고나 할까……?”
웨이터는 이번에도 뜸을 들이며 대답을 미루고 있었습니다. 제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정중한 태도를 유지하는 그의 눈빛이 순간적으로 번뜩이는 걸 본 것 같습니다. Q씨는 자신의 의문을 해소해 줄 때까지 절대 그를 놓아주지 않을 것 같았고, 침묵을 지키던 웨이터의 입가에 기묘한 미소가 순간적으로 떠올랐다가 사라졌습니다. 붉은 양탄자가 그 순간만은 더욱 붉게 보였던 것 같습니다.
“예리하시군요, 손님. 사실 예약했던 손님께서 지난번 재료와는 조금 다른 재료를 주셨습니다. 그 약간의 차이를 눈치 채시다니 정말 대단하십니다.”
“다른 재료? 도대체 무슨 차이가 있는 겁니까?”
Q씨가 묻자, 웨이터는 정중히 대답했다.
“이번에 가져왔던 재료는 수사슴이었습니다. 지난번에 요리했던 암사슴의 남편쯤 되는 녀석이었습니다.”
-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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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보기에도 그 요리엔 먼젓번 거랑 좀 차이가 있더라고요.
고기에 푸른 핏줄 같은게 유난히 많아 보였달까요......
첫댓글 사슴고기... 먹어보고픈 ㅋㅋㅋㅋ 애써 희망을 줬더니 인육을 멕이는군요 금단의 인육 ㅋ 고얀~
살짝쿵 예상은 했지만 그래도 재밌어요 ㅋㅋ
수사슴이 그그그그~ Q씨를 존경한다는 그 남자분인가요? ㅎㅎ
ㅜㅜ무셔요~사람고기 주는곳인가요??ㄷㄷ.. 근데 왜 꼭 다른동물도 아닌 사슴 이라고 했을까요??궁금궁금^^
ㅎ . 얼마쯤은예상가는글이였습니다.
아무리 존경한다고 해도 너무 섬뜩하네요.. Who님 소설 광팽됐어여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