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이 가까와 지면서 다시 생각해 보는 "사람이 사는 목적"
사십년도 더 된 옛날 나는 그 때 다니던 교회 담임 목사님 내외분의 갑작스런 방문을 받은 적이 있다.
의례적인 예배와 기도를 마친 후 부부가 동반으로 다과를 들면서 이야기를 나누던 중 목사는 의외의 질문을 하는 것이었다. 아마도 그 것이 나를 찾아온 목적이었던 모양이다. 이 질문은 계속 대화를 이어가는 화두가 되었다.
다음이 대화의 내용이다.
목사: “미스터 리는 인생의 목적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 “네?”
목사: “사람이 어려서 부터 교회를 다녔고 나이 삼십살이 넘도록 신앙생활을 해 왔으면 지금 쯤 인생의 의미와 본인의 사는 목적에 대해 뭔가 나름데로의 정립이 되어있지 않을까 해서 묻는 것이오”
나: “그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라고 생각되는데요”
목사: “정말 그렇게 믿으시는가?”
나: “신앙인으로서 그것 말고 인생 사는 의미나 목적에서 다른 무엇을 찾겠습니까?”
목사: “그렇다면 공부가 끝나고 나서 무엇을 하실 생각이시오?”
나: “우선 생계가 급하니까 직장부터 구하고 난 뒤 하나님의 허락이 있으시면 교회까지 걸어갈 수 있는 곳에 주거지를 구하고 종종 교회에 나와 봉사를 했으면 합니다”
그 말을 들은 목사는 잠시 눈을 감고 기도를 하는 듯 하더니 성경을 펴서 이사야서 6장 전편을 다 읽은 뒤 짧막한 설교를 하고는 내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하는 것이었다.
그런일 있고 나서 그 다음 주 일요일에 나는 그 때까지 하던 중고교 주일학교 반사에서 대학생 부 담임으로 승진(?)을 했다.
그러나 그 때 하나님은 그다지 내 포부(?)에 대해 신통한 응답을 주시지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이삼년 동안 그 교회 근처에서 살았지만 목사님에게 했던 약속을 확실히 지키지도 못했고 그후 이런 저런 이유로 직장을 타주로 옮겨야 했으며 신앙적으로도 방황이 심했었다.
그리고 대단히 오랜 시일이 지나서야 나는 그 때 목사님에게 내가 했던 “인생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나의 고백이 얼마나 교만하고 잘못된 것이며 하나님이 내게 바라시는 것과 반대되는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나는 그러한 신앙적인 교만과 오류를 신앙인이 가져야 할 아주 훌륭한 자세라고 잘못 믿고 사람들 앞에서 그것을 내 세우며 뻐기고 살아왔기에 하나님은 나를 그렇게 질질 끌고 다니시며 어려움을 주셨나 보다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 하늘의 보좌를 버리시고 세상에 내려오신 목적은 십자가에 달리심으로서 그 고통스러운 희생을 통해 온 인류를 구원해서 천국으로 인도하시겠다는 것이었지 지상에서 나같은 엉터리 나이롱 신자 같은 놈으로부터 찬양이나 듣고 영광이나 받으시겠다는 것이 아니었다는 이 쉬운 진리를 왜 깨닫지 못했는가? 그것은 순전히 나의 교만 때문이 아니었던가? 마귀의 두목에나 비유할 만한 대죄인이 하나님 앞에 엎드러져 회개하고 구원을 받을 생각은 안하고 그 짜쨚은 실력으로 대학생들 앞에서 뻐기면서 떠들어 대는 짓이 하나님께 영광돌리고 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것이라고 믿어온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못난 놈이었던가?
그러고 나서 며칠 지나 나는 두 아들에게 사람으로서 살아가야 할 목적과 도리를 이렇게 한마디로 정리해서 선포했다.
“인생의 목적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리고서 한마디를 덧 붙여서 “너희들은 예수님 잘 믿어서 구원을 받아 천국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평생동안 인도해 달라고 틈 날 때 마다 하나님께 기도해라”.
나는 내가 숨을 거두는 순간의 기도가 “예수님, 내 영혼을 천국에 받아주소서”이길 간구한다. 사람이 죽어 천국에 가지 못하면 아무리 거창하게 이름을 떨치면서 세속적으로 멋있는 인생을 살았던들 다 무슨소용인가?
세상 살아 갈 동안 나와 함께 하시고, 세상 떠나 갈 때에 천국 가게 합소서...
큰 풍파 일어 나는 것 세상 줄 끊음일세 주께서 부르시면 내 고향 돌아가리...
내 손과 혀가 굳어도 내 몸의 피가 식어도 내 영영 잊지 못할 곳은 은혜의 보좌 주의 전
이세상의 모진 풍파 쉬지 않고 불어도 주님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목 마른 자 이 샘에 와 영생의 물을 마셔라...
찬송을 올리고 나서
날씨는 내륙 산간지방의 전형적인 패턴을 따라 어떤 날 아침엔 섭씨로 영하 15도 이하로 떨어져서 하루 종일 빙점하의 추운 날씨를 유지 하다가 그 다음날은 낮 온도가 섭씨로 15도나 그 이상까지 치솟는다.
몇 번 눈도 왔지만 고산지역의 특징인 강한 자외선과 변화무쌍한 기온 때문에 이틀도 못가 모두 녹아버린다.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당장 무슨 난리라도 날 것 같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조용하다.
이태원 압사사건 못지 않게 이 미국도 곳곳에서 난리고 내가 사는 곳에서 얼마 안 떨어진 곳에서도 총격사건이 일어나 다섯명이 죽고 다수의 부상자가 발생했다.
안전을 고려해서 우리 집은 먹을 것이나 옷가지 등 꼭 필요한 것을 사기위해 가까이 있는 상점과 백화점을 방문하는 외에는 최대한 불필요한 외출은 일체 삼가고 있다.
나는 추수감사절 전날 저녁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고 현관문에도 장식을 달았다.
올해 따라 마음이 그렇지 않아서 분위기를 밝게 하기 위해 일부러 일찍 성탄절 장식을 한 것이다. 아마 이 동네에서 우리 집이 제일 먼저가 아닌가 한다.
그랬더니 당장 다음 날 길 건너 집과 저 만치 떨어진 어느 한 집에서 성탄절 불이 켜졌고 그 다음 날엔 바로 옆집에서... 이렇게 서로 경쟁이나 하듯 내가 사는 거리는 모두들 성탄절 장식을 달아 밤이 되면 거리가 울굿불굿 화려한 것이 기분이 좋다.
세상이 살기 힘들어져 간다고 하지만 나는 꼭 그렇지 만은 않다고 생각한다.
70년대 초까지도 한국은 빈민촌 사람들이 단돈 오백원이 없어 병원에 가서도 의사의 진찰이나 응급조치를 제 때에 못 받아 병원 환자 대기실에서 죽는 일이 있었을 만큼 가난했으며 미국 역시 그 때까지도 시골에 가면 물 안나오는 푸세식 화장실이 흔했다.
5, 60년대까지도 가장 부유한 나라라는 미국에서 조차 빵하고 물 만으로 끼니를 떼우는 집도 허다했었다고 한다.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에 보면 19세기 순수 자본주의 국가인 영국 사회의 어두운 면을 아주 잘 보여준다.
이 영화의 모체가 된 소설 크리스마스 캐럴을 쓴 찰스 딕킨스는 원래 간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운동을 하는 글을 쓰려 했다가 주변 친구의 권고로 이 소설을 쓰게 됬는데 이 책이 처음으로 발간된 1843년 당시 영국의 가난한 서민들의 비참한 생활을 운동권 식 격문 대신에 소설로 표현함으로서 많은 반향을 일으켰던 모양이다.
여기다가 영화 크리스마스 캐럴과 크리스마스 캐럴쏭도 올려본다.
물론 지금도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알지만 그것 보다는 그래도 옛날보다는 살기가 나아졌고 사람들이 그런데로 서로 나누고 살려는 마음들이 많이 보편화 되었기에 세상을 너무 비관하지만 말자는 뜻에서 올리는 것이다.
영화를 두가지 버젼을 올렸으니 아무거나 골라서 시간 나는데로 틈틈이 감상하세용~
크리스마스 캐럴 몇개
첫댓글 . 이 세상의 모진 풍파 쉬지 않고 불어도
주님 안에 보호받는 우리 마음 편하다
늘 깨어서 기도하고 저 천국을 바라며
주님만을 기다리니 어찌 찬양 안할까
Adeste Fidelis - Choirs of St. John Cantius
https://www.youtube.com/watch?v=vvgQ5uLO4Q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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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First Noel - Westminster Cathedral
https://www.youtube.com/watch?v=j5k6D4ZzFk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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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ize' song - Holy Spirit come to us
https://www.youtube.com/watch?v=zasyz-tJkOg&t=2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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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enna Boys Choir - Stille Nacht (Silent Night)
https://www.youtube.com/watch?v=vKvKMgR8H7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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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X EMANUEL CENCIC boy soprano - Pueri Concinite
https://www.youtube.com/watch?v=C9c4MnuJQG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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