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은 작가가 걸어온 인생이 재료이기 때문에 ‘정식 코스’를 밟지 않은 경력이 도움이 됐다고 생각한다”는 소설가 정유정씨. 그는 글 스승으로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을 꼽았다. 최정동 기자
늦된 아이가 무섭다고 했던가. 지난해부터 ‘폭풍질주’ 중인 소설가 정유정(46)씨를 보면 떠오르는 말이다. 대부분 20대, 늦어도 30대면 재능을 인정받는 한국 문단 풍토에서 그는 늦돼도 한참 늦된 셈이다. 문학상을 받아 정식으로 데뷔한 게 41세다. 늦깎이 데뷔의 전형으로 일컬어지는, 고(故) 박완서 선생이
그의 강점은 눈앞에 영상이 펼쳐지는 듯한 생생하고 치밀한 묘사와 파워 넘치는 이야기다. 사(私)소설 경향을 보이는 기존 여성 작가들과 선을 확실히 긋는 지점이다. 소설가 박범신은 추천사에서 정씨를 그리스 신화의 여전사에 빗대 “괴물 같은 ‘소설 아마존’”이라고 평했다. 그만큼 이야기의 규모나 밀도 면에서 뛰어나다는 뜻일 것이다. 출판계에선 그를
김애란·정이현과 달리 정씨는 여러모로 한국 문단의 이방인 같은 존재다. 소위 작가가 되는 공식을 모조리 파괴했다. 서울에서 대학 문예창작과나 국문과를 졸업한 것도 아니고, 문예지에 단편을 발표한 적도 없다. 기성 작가 문하에서 글을 배운 것도 아니다.
지금도 동료 작가 천명관·백영옥 등을 제외하고는 문단과의 교류도 거의 없다. 기실 글 쓰는 동네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전남 함평 출신인 정씨는 광주기독간호대학교를 나와 보훈병원에서 중환자실 간호사로 5년,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서 9년을 일했다. 결혼해 아이 낳고 일과 살림을 병행하는 틈틈이 글을 썼다. 14년의 직장 근무와 6년의 무명 시절, 도합 20년의 세월을 견딘 끝에 한국 문학의 다크호스로 우뚝 선 것이다.
“책 내면 저절로 작가 되는 줄 알았다”
정씨는 ‘문학소녀’ 이전에 ‘문학아동’이었다. 예쁘장한 외모와 달리 선머슴처럼 말썽을 도맡아 부리던 장녀를 엄마는 책을 사 주는 걸로 단속하려 했다. ‘소공녀’ ‘괴도 루팡’ 등 세계문학전집에 푹 빠진 아이는 동네 꼬마들에게 읽은 내용을 살짝 윤색해 매일같이 들려줬다. 친구들은 넋을 잃고 계속해 달라 졸랐고, 아이는 남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쁨이 얼마나 큰지 일찌감치 알게 됐다. 초등학교 때부턴 글짓기 대회를 누볐다. 학창 시절 글짓기로 받은 상장만 라면박스에 가득할 정도였다. 어려서부터 문재(文才)를 드러낸 그가 작가를 지망한 건 당연했다. 문제는 엄마의 반대였다. 장녀에게 기대가 컸던 엄마는 “글은 나중에 취미로 쓰라”며 국문과 진학을 반대했다.
소설을 쓸 때 정씨는 세 종류의 노트를 준비한다. 위에서부터 구성상 주의할 점과 참고사항을 적은 작업 노트, 등장인물의 날짜별 동선을 기록한 타임라인 노트, 관련 자료를 조사한 취재 노트다.
결과는 번번이 낙방. 그는 아직도 자신이 받았던 심사평을 뚜렷이 기억한다고 했다. “개나 소나 다 문학 한다고 덤비는 현실이 슬프다, 기어 다니지도 못하면서 날아다니려고 한다, 문학을 모욕한다….” 11번 떨어졌고 그때마다 앓아누웠다. 마흔 넘도록 등단을 못했으니 이젠 안 되는 건가 싶었다. “다시 병원이나 사무실로 돌아가긴 싫은데 어떻게 해야 하나 싶어 한밤중에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나곤 했어요.” 마침내 기회가 왔다. 2007년 제1회 세계청소년문학상에
샌드백 치고 폭탄주 마시며 스트레스 풀어
대중적 지명도를 높여 준
그가 집필하는 첫 단계는 자료 조사와 취재다.
사전조사가 끝나면 초고를 쓴다. 원고지 2000장이라는 어마어마한 분량을 석 달 만에 해치운다. 초고 완성부터가 소설을 쓰는 진짜 과정이다. 고치고 또 고친다. “초고가 끝까지 남아 있으면 그 소설은 실패한 거라고 봐요. 날마다 드라마나 영화, 소설 등 이야기의 홍수 속에 살고 있는데 한순간 떠오른 생각이 나만의 영감일 리가 없거든요. 나만의 이야기는 초고, 2고, 3고 거치면서 걷어낼 거 다 걷어내고 나서야 맨 밑바닥에 남는 거죠.”
그가 가져온 세 종류의 노트를 구경했다. 하나는 소설과 관련된 자료를 조사한 취재 노트, 다른 하나는 등장인물들의 날짜별 동선을 기록한 타임라인(timeline) 노트, 마지막은 구성상 주의할 점과 참고사항 등을 적은 작업 노트다. 작업 노트엔 특정 장면을 그림으로 그린 스케치도 포함돼 있다. 깨알같이 적어 내려간 메모를 읽다 보니 고된 창작노동이 절로 그려졌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라는 질문이 절로 나왔다.
“아는 게 없으면 글을 쓸 때 애먹어요. 자료를 공부하다 보면 자료가 이야기를 알아서 만들어 줄 때도 있고요. 이야기를 장악하려면 내가 만들 세계에 대해 잘 알아야죠. 그렇게 만든 세계에선 제비 새끼 한 마리도 맘대로 날아다니면 안 돼요.”
문장에 대한 근성도 강한 편이다. ‘은는이가’를 가지고 하루 종일 고민할 정도로, “토할 것 같을 때까지” 글을 뜯어고친다고 한다. “접속사 쓰는 걸 병적으로 싫어해요. 그게 없이 술술 넘어가게 하려면 어쩔 땐 하루 종일 붙들고 있을 때도 있죠. 정확하고 짧고 튀지 않게 쓰려고 해요. 형용사나 부사는 웬만하면 피해요. 대신 동사를 세고 강렬한 걸로 택하죠. 아름다운 문장이나 기발한 은유가 제 글엔 별로 없어요. 그래서 건조하다, 문학성이 없다는 평가를 듣기도 하죠.” 글이 뜻대로 풀리지 않을 땐 샌드백을 친다. 아니면 커다란 유리컵에 소주와 맥주를 반반씩 섞어 마시곤 뻗어 버리는 식으로 스트레스를 삭여 나간다.
‘영상시대 스토리텔러’라는 찬사를 얻게 된 건 눈에 보이는 듯한 생생한 묘사 때문이다. 그가 특히 공들이는 부분이다. “길가에 시체가 있는 장면을 묘사할 땐 독자의 팔에 시체를 안겨 주고 싶다는 욕심으로 글을 써요. 상상의 여지를 주지 않으려고 하죠. 제 철학과 세계관을 독자들에게 설파하는 쪽보단 오로지 이야기의 힘으로 승부하는 걸 선호하고요. 이야기가 갖는 의미와 정서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새벽을 맞는 것, 그게 소설이 엔터테인먼트인 이유고 제가 글을 쓰는 이유죠.”
‘혀가 바짝 마르는 묘사’ 스티븐 킹이 스승
스스로 꼽는 글 스승은 ‘공포소설의 제왕’으로 불리는 미국 작가 스티븐 킹이다. 습작 시절
“무작정 많이 읽는다고 되는 게 아니라 가령 구성과 문체는 어떤가, 상징과 은유는 어떻게 사용하나 등을 분석하며 읽어야 공부가 돼요. 흔히 킹을 호러 작가로 알고 있는데 그야말로 탁월한 이야기꾼이에요. 인간의 욕망이 갈등을 일으킬 때의 정서를 킹처럼 잘 구축하는 작가가 없어요. 심리묘사가 혀를 바싹바싹 마르게 하죠.”
요즘 그는 내년 초 출간을 목표로 인수(人獸) 공통 전염병을 소재로 한 신작 소설을 쓰고 있다. 병이 번져 고립된 도시에서 만난 수의사와 여기자가 주인공이다. “새로운 이야기에 계속 도전하고 싶어요. 장르 소설이다, 비주류다 하는 지적에 크게 기죽지 않아요. 2007년 상 탔을 때 소설가 서영은 선생님이 ‘너는 꽃밭의 꽃이 아니라 야전용사다, 화단에 들어와 꽃인 양 하지 말고 네 길을 가라’고 격려해 주셨어요. 그 말씀처럼 익숙한 데 안주하지 않고 계속 모험을 해 보고 싶어요.”
그와 비슷한 꿈을 꾸며 열병을 앓는 이들에게 한마디를 부탁했다.
“내가 작가가 돼서 유명해지고 싶은 건지, 아니면 글을 쓰지 못하면 죽을 것 같아 쓰는 건지 알아야 해요. 미칠 수 있다면 하세요. 유명해지고 싶어 글을 쓴다면 무명 시절을 견딜 수 없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