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신을 주님께 붙들어 매라 (행8:9-24)
본문은 스테반의 순교로 촉발된 대 핍박이 예루살렘에 가해지자 사도들을 제외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흩어지게 되는데 그 흩어진 그리스도인 디아스포라 중에 빌립이라는 분이 사마리아성에 찿아가게되어 빌립이 가는 것으로 그 성에 적지 않은 기쁨을 가져다 줍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 사마리아 성이 살고 있던 시몬이라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본문 9-11“그 성에 시몬이라 하는 사람이 전부터 있어 마술을 행하여 사마리아 백성을 놀라게 하며 자칭 큰 자라 하니 낮은 사람부터 높은 사람까지 다 청종하여 가로되 이 사람은 크다 일컫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하더라 오래 동안 그 마술에 놀랐으므로 저희가 청종하더니”.
사마리아 성 시몬은 마술사였습니다. 그 마술이 얼마나 신통했던지 그는 신적인 능력을 지닌 자라고 추앙하며 추종할 정도였습니다. 시몬의 마술은 단순한 손장난이나 속임수라기보다는 오랫동안 사람들의 마음을 끌고 매흑시킨 것으로 보아 사단의 강력한 역사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빌립이 사마리아 성에 나타났고 빌립이 사마리아성에 하나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사마리아 성 사람들에게 전하였습니다.
12-13절“빌립이 하나님 나라와 및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하여 전도함을 저희가 믿고 남녀가 다 세례를 받으니 시몬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 다니며 그 나타나는 표적과 큰 능력을 보고 놀라니라 ”.
그 복음을 전해 받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세례를 받기에 이르렀습니다.
이를 테면 마술사 시므온에게 강력한 라이벌이 생긴 것이나 마찬기지였습니다. 마술사 시므온의 입장에서 본다면 자기를 추종하던 사람들을 몽땅 빼앗아간 빌립과 사생결단이라도 내야할 판이었습니다. 하지만 마술사 시몬 반응은 정 반대였습니다. 그 역시 빌립이 전한 복음을 받아들인 후 세례를 받았습니다. 뿐만아니라 전심으로 빌립을 따라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자기 스스로 사마리아에서 큰 자라고 자처했던 시몬으로서 다른 사람들 따라다니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러나 빌립 통해 진리를 접한 그에게는 다른 것을 선택은 있을 수 없었습니다. 누구의 강요나 강압에 의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자발적으로 시몬이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적어도 그가 옛 사람을 청산하겠다는 결단을 보여주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몬의 신앙생활은 이처럼 보기에는 아름답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행8:14-19보면 사도들이 안수할 때마다 성령님께서 임하시는 광경을 목격한 시몬은 그 즉석에서 지갑을 열어 사도들에게 돈을 주면서, 그 희한한 능력을 자기에게 팔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이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다 함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매 그들이 내려가서 저희를 위하여 성령 받기를 기도하니 이는 아직 한 사람에게도 성령 내리신 일이 없고 오직 주 예수의 이름으로 세례만 받을 뿐이러라 이에 두 사도가 저희에게 안수하매 성령을 받는지라시몬이 사도들의 안수함으로 성령 받는 것을 보고 돈을 드려 가로되 이 권능을 내게도 주어 누구든지 내가 안수하는 사람은 성령을 받게 하여 주소서 하니” .
아시다 시피 시몬은 본래 마술사였습니다. 마술은 교모하게도 사람을 속이는 기술입니다. 여기 마술사라는 것은 점 (divination)', 점성슬(astrology)', 마법 (witchcraft)', 운수 예언 (fortune-telling)',악귀 숭배(demon worship)' 등 여러 가지의 이교적인 종교 행위를 총칭하는 말입니다. 여기 마술사중에 뛰어난 시몬으로서는 마술사들은 자기 마술에 필요한 기술이 있다면 금액의 고하를 막론하고 가진 돈을 투자하여 사려고 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성령의 능력이 임하는 것을 본 즉시 그 성령의 능력 마져도 돈을 들려 사려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가장 결정적인 순간 가장 중요한 순간, 옛 성품, 옛 사고방식, 옛 삶의 태도, 옛 속성이 아주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것이었습니다. 그가 외적으로는, 세례받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내적으로는 변하지 못한 여전히 예전 마술사의 마음을 고스란히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혹시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가면서도 결적적인 순간마다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 되풀이 하고 따르는 우리의 모습은 혹시 아닌가 싶네요?
그와 같은 시몬에 대하여 사도베드로가 질책 내용을 본문 20절-21절이 밝혀주고 있는데
'베드로가 가로되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헬라어 원문에는 ‘네 은과 네가 망할 것이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 받고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보다는 하나님보다 돈을 더 신뢰해서 성령의 임재마저도 돈으로 사려고 할 정도로, 매사를 돈만 있으면 다 해결된다식의 시몬의 그 마음, 그 생각으로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그 상태에서 하나님의 나라의 어떤 분깃을 얻을 수 없다고, 자기 죽음 이후를 책임져 줄 수 없는 돈을 믿다가 바로 그 돈 때문에 돌아 공동묘지에서 영원히 망하게 된다는 메시지입니다.
세례 받아 교인임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옛사람을 청산하지 못하고 답습한 시몬에 대한 베드로의 질책은 실은 옛 삶을 날마다 되풀이 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질책한 주님의 음성임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질책은 시몬을 질책만 하지 않고 시몬을 향해 또한 사랑의 권면을 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22절-23절 '그러므로 너의 이 악함을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라 혹 마음에 품은 것을 사하여 주시리라 내가 보니 너는 악독이 가득하며 불의에 매인바 되었도다'.
즉 사도 베드로는 그 마음에 여전히 악독과 불의가 가득한 시몬을 향하여 회개하고 주님께 기도할 것을 요구한 것이지요
.“네가 회개하고 주께 기도하면 주님은 반드시 용서해주신다”는 확고한 말입니다.
우리가 주님앞에 우리의 과오를 자백하고 회개하고 기도하면 주님이 용서해 주신다는 것은 우리가 너무도 잘 아는 사실입니다.
중요한 것은 지금 베드로가 시몬에게 주께 기도하라고 권면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여기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으로 기도하다 라고 할 때 쓰는 단어인< 프로스 퓨 코마이 >라는 단어가 있는데 그 단어를 쓰지 않고 시몬 베드로가 마술사 시몬에게 기도하라고 권하는 단어는 <데오마이>라고 하는 동사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데오마이는 그 뜻이 ‘동여매다, 붙들어 매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시몬에게 주께 기도하라는 표현은 결국 기도하는 것을 통해 너를 주님께 묶어라, 기도를 통해 너 자신의 마음을 주님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라, 묶어라하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베드로가 임의로 사용한 단어 아닙니다. 일찍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중에 있는 단어입니다. 눅 21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닥칠 큰 환란을 예고하시면서 사용했던 단어입니다.
눅21:36에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 예수님은 어떤 환란이 닥쳐와도 , 어떤 상황속에서도 주님께 떳떳하게 설수 있는 제자가 될 수 있도록 제자들에게 항상 기도할 것을 말씀하실 때 사용한 단어 <데오마이>입니다. 붙들어 매라 말씀한 것이지요. 즉. 주님을 그토록 사랑하는 제자들이 이 세상에서 어떤 상황속에서도 그리스도인답게 자신을 지킬수 있는 유일한 길은 주님께 자기 자신을 붙들어 매고 동여매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마치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에서처럼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어야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있듯이 말입니다.
제자들이 자신을 주님께 붙들어 맨다면, 주님은 그들을 붙들어 주시고 책임져 주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야 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그의 말씀에 우리를 동여매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혹자는 기도를 주님의 깊은 호흡으로 호흡하고 주님의 말씀으로 나를 관찰하는 것이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주님의 마음으로 시대를 읽는 새로운 존재적 시간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통해서 주님의 말씀에 나를 묶어두고 우리 자신을 삶을 성숙으로 점점 더 확장해 가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베드로가 시몬에게 <데오마이> 기도하라고 말한 이유였습니다.
그런데 여기 마술사 시몬의 반응은 보세요.
24절“시몬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를 위하여 주께 기도하여 말한 것이 하나도 내게 임하지 말게 하소서 하니라”.
시몬은 자신이 기도하지 않고 사도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데오 마이‘ 해 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도가 기도하여도 결코 시몬의 마음이 붙들어 매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 여러분,
누군가가 여러분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을 완전히 그리스도인으로 변화시킬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도들이 시몬에게 버려야 할 옛사람을 버리기 위해 주님께 시몬이 붙들어 매여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일깨워 줄 수 있지만 그 실천여부는 철저히 시몬 개인의 소간이지 사도가 묶어 줄 수는 없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시몬이 베드로의 권면을 좇아서, 자신의 마음을 주님께 붙들어 맸다고 했다면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마저도 돈으로 사려고 하는 성품마저도 아름다운 선으로 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몬은 그러지 못했던 같고 성경은 더 이상 시몬을 언급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언급할 가치조차 없었던 것은 아닐까요?
오늘로 우리는 한 해의 반이 지나가려는 6월 마지막 주일을 맞이하며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년 초에 신앙에 대한 거창한 결심으로 시작하기는 했는데 우리가 지난 6개월 동안을 돌아보시면 우리에게 아무런 변하도 없는 것은 아닙니까? 평소에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중요한 순간에, 옛사람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지난 6개월 동안 기도는 했지만 단지 우리의 소원과 바람만 되풀이 했기 때문 아닐까요? 기도하면서 우리의 중심을 주님께, 주님의 그 말씀, 주님의 그 생명에 붙들어 매지 않았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비록 지난 6개월 동안 마술사 시몬처럼 살았다하더라도 다가올 남아 있는 날 동안은 그렇게 살지 않아야 지요 우리 모두 <데오 마이> 기도를 통해 우리의 중심을 주님께 주님의 말씀에 붙들어 맵시다.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삶을 향기롭게 가꾸어 주실 것입니다. 2024년 우리교회에 주님이 주신 “함께 세우는 교회, 그리고 함께 순례하는 교회”로 세워주실 것이라 저는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