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주말의 한가한 날 저녁 이야기입니다.
맛난 저녁 사주시겠다는 고마운 제의를 받고 간만에 꽃단장하고 두 손 가지런히 모으고 앉아
약속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고귀하신 분의 스케쥴 변동으로 인한 연쇄 반응으로 약속이 황망하게 다른 차원의 세계로 날아가버리고 말았습니다.
며칠 지난 후에 봐도 되는 얼굴이야 그렇다고쳐도
당장 고픈 배는 어쩌라고...
그리하여 째립니다...냉장고
대책없는 쪼가리제품들이 난무합니다.
그나마 형태를 제대로 갖추고 있는 것은 연근 뿐.
연근을 구워먹을까 삶아먹을까 데쳐먹을까 튀겨먹을까..하다가
가장 현실성있는 튀겨먹기로 돌입합니다...하지만 기름의 문제때문에 전으로 돌변
그리하여 더 째려줬습니다.
발견한 것은 세상 떠날 준비 하시는 당근님.
언젠가부터 자리차지하고 계시는 돼지고기 갈은 것.
그리고 반주먹 쯤 되는 강황밥.
따로 놓고 보자니 참 한심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리하여 실시합니다...'합체'
우선 연근은 껍질 벗겨서 식촛물에 담그고
돼지고기에는 마늘, 소금, 후추, 청주 넣고 조물거려 주고
당근은 삶은 다음 소금 약간 넣어서 으깨주고
강황밥은 데워서 검은깨 뿌려뒀습니다.
그다음은 채우기 작업입니다.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일정한 두께로 연근을 자른 후 내용물을 채우는 방법...후에 좀 지저분해 짐
통연근에 내용물을 채우고 알맞은 두께로 자르는 방법...채우기에 시간이 걸림
배는 고프지만 그래도 예쁘게 하고자 하는 욕심에 통연근에 각 재료를 끼워서 넣어줍니다.
일정한 두께로 자른 연근은 팬에 기름을 두르고 익혀줍니다.
당근과 밥은 그다지 오래 익힐 필요없이 아삭한 연근의 맛이 나도록 살짝 익히고
고기를 넣은 것은 고기가 충분히 익을 정도로 익혀줍니다.
다른 반찬도 필요없이 세번 구운 죽염만을 찬 삼아 먹었습니다.
연근에 이미 식초 맛이 들어있어서 상큼하고 가벼운 느낌입니다.
전에서 느껴지는 가장 큰 단점인 느끼함은 이미 잊어버린지 오래입니다.
살짝 달콤한 맛의 당근을 품은 연근전도
익숙한 맛의 강황밥을 품은 연근전도
감칠맛나는 양념고기를 품은 연근전도
그 모두가 충실한 각기 고유의 맛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약간의 죽염을 찍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제맛이 나는,
또한 어떤 재료를 넣어도 예쁘게 맛있게 만들 수 있는 귀여운 모양의 연근전 이었습니다.
비록 멋진 레스토랑에서의 식사는 물 건너갔지만
대신에 충실하게 한끼 식사가 되어준 연근전.
꽤 괜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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