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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신문에서 조선일보 조갑제 님의 '월간조선' 기고문의 헤드라인을 보았습니다. 대략 '좌파 여권의 공작에 의한 야당 내 경선주자들간의 검증 공방으로 정권 교체가 힘들어'지리란 대기자(?)의 충고성 기고문 같았습니다. 물론 자중들 하고 반성하여 손에 손잡고 정권 교체를 이루라는 말이었겠지요. 검증 공방에 실증난 민심들이 선택할 길은 정권의 유지일 수도 있을테니까요.
이 사이에 멀리 아프칸에 의료 봉사겸 선교차 떠났던 우리의 젊은 아들 딸들은 무능한 정부의 빈약한 협상력 아래에서 연일 죽어나가고 있습니다. 반드시 살아돌아와야 할 우리의 아까운 젊음들이고 정부는 그 어떤 카드라도 꺼내어 사지에서 자국민을 어서 빨리 데리고 와야 할 책임 또한 당연하겠지만 냉정히 판단해보면 위험 지역에 의료 봉사겸 선교를 나간 젊음들의 무모함에도 일단의 잘못은 있습니다. 그리고 더 큰 책임자들은 봉사와 세계 평화주의에 불타는 젊음들에게 십자군 전쟁 이후 지금까지도 계속되는 종교간 갈등에도 아랑곳 않고 게다가 위험 지역 선교를 자제해달라는 정부측의 권고도 무시한 체 젊음들을 보내어 이러한 사태를 촉발한 '한민족복지재단'이라는 기독교 단체와 '샘물교회'측입니다. 이들에게 한민족복지재단이나 샘물교회측 인사들이 모두 가서 협상하여 그들을 데려 오라거나 아니면 복지재단과 샘물교회츼 모든 자산을 팔아서 그들의 몸값을 지불하고 구출해오라 말하면 과연 관계자들이 응할까요? 어리석은 질문인줄은 잘 압니다만 하도 기가 막힌 일이라 이 글과는 짐짓 무간한 성격인 듯 보이는 독설을 펼칩니다. 대권주자들도 우선 그들을 위한 나름의 방안을 내놓으면 더 좋을테지요. 또한 종교 단체의 봉사는 훌륭한 일입니다만 우리 사회의 구석구것에도 너무나 많은 어두운 그림자가 있음도 명심합시다. 물론 전지구적 입장에서 필요한 곳에 국제적인 구호의 손길이 없다면 나가서 도와야겠지만 아프칸에는 이미 정부가 파견한 비 전투부대인 '동의''다산 부대'가 있었쟎습니까?그런데 왜 민간단체가? 오해의 소지가 있습니다. 미국이나 아프칸 현정부의 도움은 쉽지않을 겁니다. 왜냐하면 러시아 축출을 위해 탈레반을 만든 것이 미국이고 오사마 빈 라덴 잡으려고 탈레반을 축출하고 위성 정권을 세운 나라가 또한 미국 아닙니까? 명분이야 '테러범과 협상은 없다.'이지만 그 속내에는 동양인을 경시하는 탈색인들의 습성과 이번 기회를 명분(혹 인질을 계속 살해하면)으로 삼아 용감한 우리의 전투병을 파병시키려는 계략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지요. 이건 순전히 추측입니다만.
누누이 강조합니다만 지도자의 제 1 덕목은 물론 애국심입니다. 자신이 나고 성장하고 살아가는 나라와 국민들에 대한 친밀감, 명명덕한 깨끗한 도덕성과 더 나아가 대인을 지나 군자의 반열까지 느끼게하는 지어지선한 논리까지 갖춘다면 금상첨화겠고 국민들이 편안히 잘 살 수 있는 경제적 지도력까지 갖춘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요. 허나 완벽한 사람이란 없습니다.
이상세계를 실현한답시고 상앙의 철저한 법치나 한비자의 왕도정치 같은 도전적인 체제(전제성)를 만들 이유가 없는 지금은 현 정부에서 상당 부분 기여한 민주적인 의사에 의한 사회가 되어 있으므로 차기 지도자는 펼쳐져 있는 민주 의식에 우리 사회에 부족한 부분인 질서 의식과 중상층에서 서민으로 서민에서 극빈층으로, 사업가에서 졸지에 신용불량자로 몰린 이 나라의 현실 경제를 바로 잡을 능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절입니다.
요즘 범여권은 하룻밤 자고나면 새로운 정당이나 이합집산이다. 처칠의 말처럼 '정치쇼'를 하고 있습니다. 열린당에서 초기에 기획탈당이다 뭐다해서 의원 몇이 나와서 군소정당을 차리더니 얼마 후에는 민주당과 합당을하고 또 열린당을 나온 다른 이들은 그들대로 뭉쳐 있다가 다시 정당을 만드는 일들을 반복하더니 지금은 '미래창조대통합민주신당(가칭)'이라는 거창하고 '김수한무두루미와거북이삼천갑자동방삭---'식의 긴 이름의 신당 간판을 떡 차려놓고 개점하려 하고 있습니다. 이거 웃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곧 바뀔 당명으로 지구당 창당까지들 하느라 부산인 것을 보면 참으로 딱합니다. 하긴 특출난 지도자 없이 개나 소나 대권 도전을 선언한 인사들이 많다보니 저렇게 우왕좌왕하는 것도 이해는 갑니다만 아무리 그렇다해도 지금 하는 범 여권의 모양세는 그리 좋아보이지 않습니다. 제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이번 대선에 범여권에서 자격 운운할 수 있는 후보는 변절일지도 모르지만 야당에서 건너가 '민중투어'등의 기획 이벤트로 승부수를 던지는 손학규 전 경기도지사와 지난 대선에서 아름다운 경선완주를 하고 두 번씩이나 여당 의장으로서 '실패의 미학'을 보여주었던 정동영 전 통일장관 정도뿐인 것 같은데, 개나 걸이나 범 여권에는 참으로 인재(?)도 많습니다. 다 나오네요. 뭐 좀 알려졌거나 국무총리나 장관 한 번쯤 했던 사람들은 죄다 인구에 회자되거나 자천타천 꾸역꾸역 나오니 정신차리기 어려운 일. 알기로 대선 치르려면 우선 기탁금 5억에다(이건 유효득표수의 15%이상 안되면 그나마 돌려주지도 않죠) 인쇄물, 방송 광고, 사람들 인건비 등등 정부 공식 선거비 말고도 줄 잡아 기십억은 족히 소요될텐데 줄곧 국회의원하던 분들이나 국민의 정부와 참여 정부에서 잠깐 빛 본 인사들이 언제 그 많은 돈들을 모았을까요. 자발적 후원금으론 어림 없을텐데 말입니다.
미국 야구 선수중에 4천개 이상의 안타를 때려 명예의 전당에 당당하게 올랐던 '피트로즈'라는 한 야구 선수를 기억할 겁니다. 이 위대한 야구 선수는 그러나 야구 도박 사건에 휘말려 명예의 전당에서 퇴출되고 구속된 후 영원히 미국 사회에서 격리되었습니다. 일본의 한 금융 회사는 잘 못하여 파산되자 사장이 자신이 모든 책임을 지겠다며 자살한 일도 있었습니다. 미국의 한 회사에서 부정을 저지른 CEO는 전 재산의 압류는 물론 무려 15년의 형을 선고 받았습니다. 이렇듯 선진 사회에서는 무제한의 자유도 허용하되 잘못된 일에는 자신의 명예와 재산이 하루 아침에 나락하는 진단이 있습니다.
요즘 범여권의 통합파들을 이끄는 좌장이 있습니다. 정대철 전의원. 그는 노무현 현 대통령의 선대 위원장으로 활약하여 여권의 실세가 되고 열린당 창당을 주도하더니 몰려드는 이권 세례에 정신을 잃었는지 급기야는 '굿모닝시티'라는 파렴치범의 돈까지 엄청 받았다가 실형을 언도받고 참여정부에서 공적에 대한 댓가(?)도 못받고 잠수하더니 이 혼란의 틈을 타고 다시 정치의 중심에 서는군요. 그를 위시하여 참으로 많은 구 정치인들과 정치자금 수수나 비리, 또는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난 사람들이 버젓이 나와 설치는데 어디들 박혀 놀다가 다시 나와 설치는지 참으로 알다가도 모를 일. 허나 더 웃기는 일은 정치권 어느 누구도 대선 주자들 어느 누구도 이들의 재등장에 일침을 놓거나 바른 말하는 이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게다가 이제는 자기들도 제도권에서 한지를 차지하겠다는 것인지 소위 시민사회세력들이 정치조직을 조성해놓고 태어날 신당의 지분을 놓고 기성 정치권과 싸우는 작태를 보고 있노라니 필부로서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이거 속이 뒤집혀 환장할 노릇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견유학파였던 '디오게네스'를 여러분은 아실겁니다. 철학의 교과서 아리스토텔렉스에게서 사사한 알렉산드로스 대왕이 그의 거처인 길거리 통속을 방문했을 때의 일화 "햇빛이나 가리지 마시게나" 알렉산더는 그런 디오게네스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최근에 노사모처럼 열렬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는 유시민 전 복지장관이 책을 냈습니다. [대한민국 개조론] 역시 그다운 책 제목입니다. 개혁당의 지도자였던 그의 이력대로 책의 내용은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그의 냉소와 한사람의 시민으로 장관 출신으로서의 그의 솔직한 견해가 곳곳에 있습니다. 마치 언젠가 이케하라 마모루라는 친한 인사가 우리 사회의 병폐를 그야말로 한국인에게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썼다는 글의 제목인 [맞아죽을 각오를 하고 쓴 한국, 한국인 비판]을 보는 것 같아 잠시 웃음이 났습니다. 허나 글의 내용은 정치인들이 쓰는 글의 대부분은 자기가 이만큼 잘났다는 자서전이고 그나마도 대필 작가들이 돈 받고 써주는 것이 대부분인데--그 글 잘 쓰고 말 잘하는 전여옥 의원도 자기 베스트셀러에 표절 의혹이 있다는 말도 있지요--비해 '거꾸로 읽는세계사'처럼 직접 저술한 글의 논조는 격조 있는 것이었습니다. 정치인이자 사회학도로서의 그의 고뇌에 먼저 신뢰를 보냅니다. 허나 여기까지입니다. 서문에서 그는 조선조 선비의 상징인 남명 조식 선생의 '을묘사직소' 이름하여 단성소(丹城疏)를 말합니다. 어린 명종이 내린 현감 자리를 거부하는 선생의 상소지요. 내용을 옮겨 보았습니다.
[ 남명의 단성소(丹城疏) - 남명의 상소문(上疏文) ]
(제수된 벼슬을 사직하면서 단성(丹城)에서 올린 상소라 하여 단성소(丹城疏), 사직소(辭職疏)라고도 한다.)
선무랑으로서 단성현감에 새로 제수된 조식은 진실로 황공하여 머리를 조아리며 주상전하께 소를 올립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선왕(중종)께서는 신이 변변치 못한 사람이라는 것을 모르시고 처음에 참봉에 제수하셨습니다(1538년임) 그리고 전하께서 왕위를 이으신 뒤에 주부로 제수하신 것이 두번이었는데 지금 또 제수하여 현감으로 제수하시니 떨리고 두렵기가 언덕과 산을 짊어진 것 같습니다.
그런데도 아직까지 감히 황종(?) 한 자쯤 되는 땅에 나아가서 하늘의 해와 같은 은혜에 사례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임금이 사람을 쓰는 것은 목수가 나무를 쓰는 것과 같습니다. 깊은 산과 커다란 못 어느 곳에 있는 것이든 재목을 버려두지 않고 그것을 가져다가 커다란 집을 짓는 일을 이룩하는 것은 훌륭한 목수가 하는 것이지 나무가 스스로 참여할 수는 없는 일인 것입니다.
전하께서 사람을 쓰시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시는 책임 때문입니다. 제가 걱정이 되어 견딜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니 감히 그 큰 은혜를 저 혼자 누릴 수는 없습니다만 머뭇거리며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을 끝내 측석(어진 신하의 자리)아래 감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신은 벼슬에 나아가기 어려워하는 뜻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저의 나이는 예순에 가깝고 학문은 어두우며 문장은 과거시험에 끝자리에도 뽑힐 수 없고 행실은 물 뿌리고 비질하는 일을 제대로 해 내기에도 모자랍니다.
과거시험을 보기 10여 년 동안에 세 번이나 떨어진 뒤 물러났으니 애초부터 과거공부를 일삼지 않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만약 과거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있다고 해도 그런 사람은 성질이 급하고 마음 좁은 평범한 백성에 지나지 않을 뿐이니 큰 일을 할 만한 온전한 인재는 아닙니다.
하물며 그 사람 됨됨이가 선한가 선하지 않은가는 과거를 보려고 하느냐 과거를 보려고 하지 않느냐 하는 데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닙니다. 보잘것없는 신이 이름을 도둑질하여 집사(추천관원)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게 했고 집사는 이름만 듣고서 전하에게 제가 훌륭한 인물이라고 잘못 판단하도록 한 것입니다.
전하께서 과연 신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도를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하다고 생각하십니까. 문장에 능한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도를 지닌 사람은 아니며 도를 지닌 사람은 반드시 신처럼 이렇지는 않습니다. 신에 대해 다만 전하께서 아시지 못한 것일 뿐만 아니라 재상도 또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 사람을 알 지 못하면서 등용하여 훗날 국가의 수치가 된다면 어찌 죄가 보잘것없는 신에게만 있겠습니까. 헛된 이름을 바쳐 몸을 파느니 알찬 곡식을 바쳐 벼슬을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신이 차라리 신의 한 몸을 저버릴지언정 차마 전하는 버릴 수 없습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첫 번째 까닭입니다. 또 전하의 國事가 그릇된 지 이미 오랩니다. 나라의 기틀은 이미 무너졌고, 하늘의 뜻도 이미 전하에게서 멀어졌습니다. 비유컨데 큰 나무가 백년 동안이나 그 속을 벌레에게 파 먹혀 진이 빠지고 말라죽었는데도 그저 바라보기만 하여 폭풍우가 닥치면 견디어 내지 못할 위험한 상태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실정에 있는지가 오랩니다.
조정에 있는 사람가운데 충성된 뜻 있는 신하와 일찍 일어나 밤늦도록 공부하는 선비가 없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이미 그 형세가 극도에 달하여 지탱할 수 없고 사방을 둘러보아도 손쓸 곳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小官들은 아래에서 히히덕거리며 주색이나 즐기고 大官은 위에서 거들먹거리면서 오직 뇌물을 긁어모으는 데 혈안입니다.
고기배가 썩어 들어가는 것 같은 데도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오라 내신들은 파당을 세워 궁중의 왕권을 농락하고 外臣들은 향리에서 백성들을 착취하여 이리떼처럼 날뛰면서 가죽이 다 닳아 없어지면 털이 붙어 있을 곳이 없는 이치를 모르고 있습니다.
이런 까닭에 신은 깊이 생각해 보면 탄식만 길게 나올 뿐, 낮이면 하늘을 우러르기 수 차례였고 눈물과 한숨을 누를 길 없어 밤이면 잠을 이루지 못한지가 오랩니다.
나라가 이지경이고 보면, 慈殿께서는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밖의 소식이 막힌 깊은 궁궐 안의 한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는 나이 어린 先王의 한 외로운 자식일 뿐입니다.
저 많은 天災와 , 천가래 만 가래로 흩어진 민심을 무엇으로 막고, 어떻게 수습할 수 있겠습니까?
냇물이 마르고(국어) 곡식이 비처럼 내리니(회남자) 그 조짐이 무엇이겠습니까. 노랫가락이 구슬프고(예기) 입는 옷이 흰색이니 나라가 어지러울 형상이 이미 나타났습니다.
이런 때를 당해서 비록 재주가 公과 公을 겸하여 三公의 위치에 있다해도 손을 쓰기 어려운 형편이온데, 하물며 微臣과 같이 아무 힘도 없는 자야 더 말해 무엇하리이까? 위로는 나라의 위태로움을 조금이나마 부지할 수 없을 것이며, 아래로 터럭만큼도 백성들을 구제할 수 없을 것이니, 전하의 신하되기 또한 어렵지 않습니까.
추호라도 헛된 이름을 팔아 전하의 벼슬을 도적해서 그 녹만 먹고 하는 일 없이 지내는 그런 신하가 되는 것을 신은 원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나아가기 어려운 두 번째 까닭입니다.
또 제가 요즈음 보건대 변방에 일이 있어 여러 대신들이 밥도 제 때에 먹지 못한다고 들었는데 신이 이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은 일찌기 20년 전부터 이 일이 생겼던 것을 전하의 靈明하심에 힘입어 이제야 발각된 것이요, 하루아침에 된 것은 아닙니다.
평소 조정에서는 재물로 사람을 임용하니 재물만 모이고 민심이 흩어져 결국 쓸만한 장수도 없게 되고 성안의 병사 한 사람 남아있지 않기에 이르렀으니 적이 무인지경으로 쳐들어 온 것은 오히려 당연한 일입니다. 이번에도 대마도 왜노가 향도와 남몰래 짜고 만고에 끝없는 치욕스러운 짓을 하였건만 왕의 신령한 위엄이 떨치지 못하여 마치 절하듯 하였습니다.
이는 옛 신하를 대우하는 의리가 혹 주나라 예법보다 엄하면서 원수를 총애하는 은덕이 도리어 망한 송나라보다 더한 경우가 아니겠습니까. 세종께서 남쪽 오랑캐를 정벌하시고 성종께서 북벌하신 일을 보아도 어디에도 오늘날과 같은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것은 하찮은 피부병에 지나지 않고, 마음과 속의 병은 이 보다 더 심각합니다. 가슴과 배의 통증이란 걸리고 막히어 위아래가 통하지 않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곧 공경대부가 목이 마르고 입술이 타 들어가도록 열심히 일하지만 수레는 달리고 사람은 달아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근위병을 불러모으고 나라 일을 정돈하는 것은 자질구레한 정치나 형벌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전하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방촌(마음)의 사이에서 말이 땀을 흘리는 것처럼 노력하여 만 마리의 소가 밭을 갈아야하는 너른 땅에서 공을 거두는 그 기틀은 자기 자신에게 있을 뿐입니다.
유독 전하께서 종사하시는 일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學問을 좋아하십니까? 聲色을 좋아하십니까? 弓馬를 좋아하십니까? 君子를 좋아하십니까? 小人을 좋아하십니까? 그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냐에 국가의 존망이 달려 있습니다.
진실로 전하께서 활연히 깨달으시어 분연히 학문에 진력하사 明德.新民의 도를 얻으신다면 거기에 萬善이 갖추어져 있어 백가지 應策이 연이어 나올 것이니 그것으로 조치를 취하신다면 나라를 바르게 다스리고 백성을 평화롭게 위기를 평안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요약해서 간직하시기만 해도 마음이 비지 않음이 없으며 저울질이 고르지 않음이 없으며 사특한 생각이 나오지 아니할 것입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진정이란 것도 다만 마음을 간직하는 데에 달려있을 뿐이니 위로 하늘의 이치에 통하게 되는 데 있어서는 유교와 불교가 한 가지입니다. 다만 사람의 일을 시행함에 있어서는 다리가 없이 땅을 밟고 있는 형국이므로 우리 유가에서는 본받지 아니할 뿐입니다.
전하께서는 이미 불교를 좋아하시니 그것을 학문하는 대로 옮기신다면 이것이 바로 우리 유가의 일입니다. 이는 어렸을 때 집을 잃었던 아이가 자기 집을 찾아 부모 친척 형제 친구를 만나보는 일과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더구나 정치를 하는 것은 사람에 달려 있고 사람을 쓰는 것은 몸으로써 하고 몸을 수양하는 것은 도로서 하는 것입니다.
전하께서 만약 사람을 쓰는 데에 몸으로써 하신다면 유악 안에 있는 사람은 사직을 보위하지 않는 자가 없을 것이니 아무 일도 모르는 보잘것없는 저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만약 사람을 눈으로만 뽑으신다면 잠잘 때 이외에는 모두 속이고 저버리는 무리일 것이니 이 경우에도 앞뒤가 막힌 보잘 것 없는 저 같은 자가 무슨 소용이 이겠습니까.
다른 날 전하께서 왕 천하의 지경에 이르도록 덕화를 베푸신다면 저는 마구간의 말석에서나마 채찍을 잡고 그 마음과 힘을 다해서 신하의 직분을 다할 것이니 어찌 임금을 섬길 날이 없겠습니까.
엎드려 원하옵건대 전하께서는 반드시 마음을 바로 하는 것으로써 백성을 새롭게 하는 요점으로 삼으시고 몸을 수양하는 것으로서 사람을 쓰는 근본으로 삼으셔서 완도의 법을 세우십시오.
왕도의 법이 왕도의 법답지 않으면 나라가 나라답게 되지 못합니다. 밝게 살피시길 엎드려 비옵니다. 신은 떨리고 두려운 마음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죽음을 무릅쓰고 전하께 아룁니다.
을묘년(1555년) 월 일 조식
유시민 전장관은 서문에서 이 글을 올린 남명 선생이 살던 조선조를 말합니다. 선비가 의로운 상소를 올렸다 왕의 비위를 건드리면 최하가 귀양이요, 최고는 삼족의 멸살이었던 시기를. 물론 서문의 내용이야 다르지만 저는 한가지 생각을 해봤습니다. 왜 하필 지금 그가 책을 내었는가. 그것도 본인의 말마따나 열혈 마니아 빼고는 그가 생각하는 개조 대상들 모두 싫어할 내용을? 글쎄요. 마니아층을 뒤에 업고 참여정부의 수레에 얹혀 나오려는가? 아니면 순수한 우국충정의 발로인가. 자못 흥미롭게 지켜보겠지만 그가 나온다해도 제2의 노무현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단성소의 조식 선생은 현감 자리도 마다하고 임금이 선정을 베푸는 날 마구간의 말먹이라도 마다치 않겠다고 진심어린 충언을 했는데, 유시민 의원께서는 현 정권에서 장관도 겁내는 국회의원을 두 번씩이나 하시고 있고 또 '가문의 영광이요 학생 신분을 작살내는 고귀한 신분'인 장관까지 역임하신 몸이니 감히 남명을 운운하기에는 조금 낯간지러운 것이 아닐런지요. 게다가 출마까지 한다면---.
위 글에서 잠시 정대철씨를 위시한 비리 정치인들의 작태를 잠시 얘기했습니다만 우리 사회의 양심과 된장주의에는 이제 질렸습니다. 재벌들 천문학적인 액수의 포탈에도 그저 잠시 몇 달 감옥에 갔다오면 유야무야, 스포츠맨이나 연예인들 병역 비리나 사회적인 물의(도박, 마약, 흔하디 흔한 성격차 이혼 등)에도 잠시 자숫하면 유야무야 가시 방송국에서 케스팅 등 이 사회에는 양심과 도덕은 마시면 죽는 4급수 이하 구정물 속으로 곤두박질쳤고 그 어디에도 정의는 없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최고선인 줄 알고 도대체 사회적인 책임이나 양식은 물건너간 소아병적인 자기최면으로 꺼리낌 없이 남이 안하는 일만 골라하는 최민수 같은 인간들이 설쳐대고(나는 이 사람이나 연예인들 또는 잘 나가는 스포츠 스타들에게 아무런 감정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부러워서 이 글을 쓰는 것은 전혀 아닙니다)있는 비 이성적인 사회가 되어가는 나라. 지식에의 목마름이 곧 智(지혜 지)를 낳는 풍토와 연결되고 그 지혜의 완결이 사회적인 에너지와 일치되는 그야말로 생활속의 철학, 생활속의 정치 체제가 이상으로 성립되어 부족한 주제 의식의 가벼운 개그맨 지상주의의 사회나 주로 무지(?)한 아이들이 떼거지로 나와 혼란스러운 쇼프로, 그저 말도 안되는 연속극으로나 일관하려는 지상파 방송의 전국민의 전면 형이하학화 등에 대한 이 나라의 무지몽매이즘에 대한 분노가 잠시 일어서입니다.
앉으면 부고 싶다던가. 권력 잡고 고귀한 자리에 있어보면 어려웠던 시절을 잊거나 다시는 그 시절로의 회귀를 원하지 않지요. 어렵게 살던 사람들이 출세하면 더 지독해지는 법입니다. 참여정부 인사들 중에는 유독 어렵던 사람들이 많았는데 지금은 다들 괜챦은가 봐요. 아드바득 권력을 놓지 않으려고 애들 쓰는 것을 보면 역시 높은 자리는 한번쯤 앉아볼만한 자리인 모양입니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로 스타디셀러하는 현 문화재 청장 유홍준씨도 청장하기전에는 입비른 소리만 해대더니 청장하면서 배부르니 언론에 가끔 욕도 맞고 그 올곧은 소신은 다 어디로 갔는지 무소식이 희소식이겠지요.
정권의 한 축이자 대선 때면 그래도 꼭 몇 십만표는 챙기는 집단이 있습니다. '민주노동당'이지요. 두 번이나 나온 권영길 의원은 100만표도 근접했었고요. 이번에는 3수생에다가 스타 노회찬 의원과 심상정 의원이 가세. 덜 주목받지만 나름 치열합니다. 다 훌륭하신 분들이고 깨끗한 분들이며 이나라의 노동자 농민 도시 빈민을 위하여 참 좋은 일 많이 하신 분들입니다. 좋은 학벌 가지고 위장 취업하여 몸을 사른 사람들. 저는 언젠가 TV프로에서 진보계열 특집을 본 적이 있습니다. 기억하실터이지만 그 특집은 이렇게 끝납니다. 민주화 투쟁의 절정에서 벌어져서 결국 6.29를 이끌어 냈던 인천 5.3사태의 주동자들(똑똑한 대학 위장 침투자들)은 모두 제도권에서 호의호강할 때, 그들에 의해 투사가 되어 싸웠으나 지금은 데모주동자로 낙인찍히고 전과자가 되어 그 어디에도 취직 못하고 골방에서 구슬을 꿰며 몇 푼으로 연명하는 어느 중년 여인의 절규로
" 우리는 아무 것도 모르고 그저 이 길이 옳은 길이라는 똑똑한 사람들의 말만 믿고 싸우다가 이 지경이 되었다. 그 때 우리를 부추기고 평생을 우리와 같이 갈 것 갔던 그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정녕 민중을 사랑하고 노동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는 민노당이라면 그저 비정규직만 맨날 되뇌지말고(비정규직의 인권과 노동 현실에 대한 투쟁을 하지 말라는 것은 아니다. 허나 작금의 우리 현실에서는 비정규직도 그나마 직업인이다. 직업 없는 대다수 원치 않는 백수들도 많고, 일은 하고 싶은데 취직도 못하는 신불자도 많다. 또한 앞서 예로 든 민주투쟁 전과자도 있다) ㄱ런 사람들을 위한 법안 이라도 하나 제대로 마련해놓고 대권에 도전할려면 하라는 말입니다. 그나마 바른 말 좋은 의정 보여서 이미지 우등생인 노회찬, 심상정 두 분 의원님들 자칫 대권을 위한 위장에 불과했다는 낙인 찍힐까 가히 두렵습니다. 아닌 것도 여러 사람이 우기면 아니지않은 것이 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아나키스트입니다. 유류세나 각종 세금의 과다로 못살겠다는 비명이 여기저기서 들려오는데 이게 다 그 국가라는 거대 재벌이 있으므로 생겨난 고통입니다. 정부가 무슨 정책함네 하고 거창한 발표를 하지만 알고보면 그저 국민의 편의를 위하여 무슨 세금에서 몇 십원 공제했다는 생색 뿐, 그 다음날 지하철 교통료를 또 몇 백원 올립니다. 국민들이 죽겠다고 아우성쳐도 정부는 눈 하나 깜빡않고 유류세 안 내립니다. 물론 공공정책에 쓰이는 예산이 대부분이겠지만 사실은 다 부처들 이기주의의 소산이고 정권잡은 사람들 논공행상, 판공비 등(국무총리 판공비는 수십 억이라죠 아마)에 쓰입니다. 장관들이나 지자체장들 관용차 한단계씩만 내리면 밥 굶는 사람들 수 천명은 구제할거고, 현 정부들어 더 늘었다는 국민의 혈세로 먹고 사는 사람들인 공무원, 공직자들 한 10%만 줄여도 점심 굶는 아이들은 없을 겁니다. 내친김에 '공부원 노조'에 한 말씀 드립니다. 대저 국민의 녹을 먹고 사는 분들이(초봉이야 대기업보다 당연히 낮을 것이고 아직 공사 수준과는 천양지 차이의 급료라 억울하기도 하겠지만) 어떻게 노동조합을 결성합니까. 그리고 요구조건이 뭐 '공사 수준으로 급료를 올려달라. 배 고파서 못살겠다.' 우리나라 공기업은 당연히 폐기처분감이거나 어쩔 수 없는 특수 공기업(공공성이 현저한)을 빼고는 몽땅 민영화시켜야합니다만 공무원 노조의 존재 자체도 논리상 맞지 않는데 ㄱ 요구 조건이라니. 급여가 약해 먹고 살기 힘들면 그만두고 나와서 일반 회사에 취직하거나 장사하는 게 맞는 이치죠. 어느 미취업 대학생의 말이 생각납니다. "일자리만 줘보세요. 원급이 문젭니까?" 언젠가 '의사회' 로비도 있었듯 이익단체의 자기 단체 이익에 대한 로비야 당연한 것이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로비는 아직 사회적인 더불어 삶의 완성을 위함이 아닌 철저한 이기주의의 소산입니다. '북파ㅗㅇ작원''고엽제 단체' '상이군경회'또 각종 수십가지 '장애인 단체'및 '장애인 체육 단체'들 정부에서 약자들은 당연히 도와주어야하고 또 스스로 설 수 있는 길을 펼쳐주어야 합니다. 허나 이 글을 읽으시는 각종 단체 관계자들 한번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 보십시오. 정녕 올바른 방법으로 자신들의 이권을 지키고 계십니까? 제가 아는 한 상당 부분 반성할 부분들이 많을 겁니다. 더불어 살아감은 올바른 모토이지만 어느 한 편으로 치우침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허나 대부분의 단체들은 자기들은 피해자이니 더 많은 혜택이 와야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래서는 사회정의가 제대로 서지 않습니다. 얀보의 미덕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공무원 노조도 반성해야 합니다. 자녀들 학자금 면제도 특권 아니가요?
종교도 이제는 더 이상 특권에 얽메여서는 안됩니다. 우리나라에서 목사는 하나님과 동격입니다. 스님은 내 죄를 대속해줍니다. 저는 어느 식사 자리에서 어느 교계에서 이름 난 어느 목사에게(제가 기억하기로 이 목사 밤마다 룸살롱도 다니며 어린 여자애들과 관계도하던 사람이었고 이력도 대부분 위장된 것이었지만) 중년 부인들이 대접을 하는데 그날 마침 복날이라 삼계탕을 시켰고 다들 맛있게 먹고 있는 와중에 그 자리를 마련한 듯한 중년 부인의 다음과 같은 말에 들고 있던 밥숫갈을 놓아버렸습니다. "아유 귀한 목사님께 이렇게 누추한 대접을 해서 어떡하나." 그 여인은 진실로 황송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어느 단체로의 편입은 자기자신과의 결별을 의미합니다. 허나 살아간다는 것은 자기 존재의 재발견 발 형이상학의 완결을 의미합니다. 물론 그것은 플라톤식의 이데아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렉스류의 휴먼적인 성숙한 윤리 의식에 가까운 존재론 말이지요. 불교에서의 부처는 고타마싯달타가 6년의 고행 끝에 얻은 깨달음의 미학입니다. 더 이상 윤회를 겪지 않고 영생불멸하는 경지 바로 그 상태를 말함입니다. 절에 수만금을 희사한다고 영원불멸의 해탈이 이뤄질까요? 사찰에 계신 승려들은 등산객들과도 싸워가며 찬란하게 지어대는 현대식 요사채에서 잠이 잘 옵니까? 원하든 안하든 새벽 세 시면 어김 없이 일러나야하는 사람들이 바라문 아닙니까?
야권의 경선은 얼마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범 여권도 곧 지리멸렬한 자리 다툼을 끝내고 제자리를 잡겠지요. 그러나 그 때까지 상대방 헐뜯기와 이합집산 그리고 도토리 키재기식 잘난 키 맞추기 놀이도 계속될 것입니다. 그러나 기억할 것은 국민들 중 권력 지향적인 일군의 꾼들과 무지몽매한 그릇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두 눈 똑바로 뜨고 작금의 현을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겨울이 지나면 봄은 어김 없이 오지만 한 번의 잘못된 선택은 오랜 기간 후회의 그림자를 남길 것입니다. 그러나 유시민씨의 말처럼 누가 되든 그 사람도 왕(국민)의 신하이므로 만병통치약은 아니란 사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