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 마당에 올라오는 자료 중에는 生時의 정확성을 의심해야 할 것이 간혹 있다.
특히 동일 사주임에도 완전히 상반되는 生을 사는 경우라면, 한쪽이 그럴 가능성은 더 크다고 볼 수 있겠다.
(다만 이런 판단은 일정 수준의 변별 능력이 있을 때나 꺼낼 수 있는 말이란 걸 필자는 안다.)
그런데 말이다.
동일 사주임에도 불구하고 인생의 판도가 서로 완전히 달라지는 이유를 설명할 때
“명주가 무얼 쓰며 살아가는가에 따라 (동일 사주라도) 서로 다른 인생이 된다.”라고 설명하는 거보다
“처음부터 사주가 달랐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설명하는 게 더 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필자는 해본다.
모든 명주는 자기 팔자를 모두 다 쓰면서 살아간다. 어느 특정한 십신 하나만 골라 쓰며 살아가진 않는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서로 다른 십신을 쓰고 살아가면 (동일 사주라도) 서로 인생이 완전히 달라진다.”라고 논할 수 있는 거라면,
동일 명조가 아닌 때에도 그 논리를 적용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명리는 학술(學術)이라기보다 오히려 점술(占術)에 더 가까운 게 돼 버릴지도 모르겠다.
명리가 명운들에 대해 변별력을 가지지 못한다면, 명리로서의 가치가 없다.
그렇다면 명리는 배울 필요도 없고 다룰 필요도 없는 無用의 학술이 돼버리는 거다.
명리의 無用性을 인정하는 쪽과 生時를 의심하는 쪽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나을까?
근대(1960년대 이하) 사주라면 생시의 정확성은 비교적 떨어진다고 볼 수 있겠다.
동일 사주를 조금 경험해 본 입장에서 약간의 확신이 있기에 몇 자 적어 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