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oblems will always exist where the activities of the self are dominant. To be aware which are and which are not the activities of the self needs constant vigilance. This vigilance is not disciplined attention, but an extensive awareness which is choiceless.
자아가 지배하는 한 언제나 문제들은 있기 마련입니다. 어떤 것이 자아의 활동이고 어떤 것이 자아의 활동이 아닌지, 알아채는 것에는 계속적으로 불침번이 있어야 합니다. 이 불침번은 훈련된 주의가 아니라, 선택없이하는 확장된 알아채기입니다.
Disciplined attention gives strength to the self; it becomes a substitute and a dependence. Awareness, on the other hand, is not self-induced, nor is it the outcome of practice; it is understanding the whole content of the problem, the hidden as well as the superficial. The surface must be understood for the hidden to show itself; the hidden cannot be exposed if the surface mind is not quiet.
훈련된 주의는 자아를 강하게 합니다. 그것이 하나의 대체물이 되며 의존하게 되지요. 반면에, 알아채기는 스스로 의도된 것이 아니며, 수행의 결과도 아닙니다. 그것은 문제의 전체 내용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피상적인 것은 물론이고 숨겨진 것들까지 말입니다. 숨겨진 것들이 제 스스로 드러나기 위해서는 표면이 이해되어야만 합니다. 표면이 조용하지 않으면 숨겨진 것은 드러날 수가 없거든요.
This whole process is not verbal, nor is it a matter of mere experience. Verbalization indicates dullness of mind; and experience, being cumulative, makes for repetitiousness.
Awareness is not a matter of determination, for purposive direction is resistance, which tends towards exclusiveness.
이 모든 과정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며, 단순한 경험의 문제도 아닙니다. 언어화한다는 것은 마음이 둔감하다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경험은요, 축적되어서는 말입니다, 반복적인 것이 됩니다. 알아채기는 계산된 행위가 아닙니다. 의도적인 방향이라는 것은 저항이기 때문이지요. 그건 또 폐쇄적으로 되기 십상입니다.
Awareness is the silent and choiceless observation of what is; in this awareness the problem unrolls itself, and thus it is fully and completely understood. A problem is never solved on its own level; being complex, it must be understood in its total process. To try to solve a problem on only one level, physical or psychological, leads to further conflict and confusion. For the resolution of a problem, there must be this awareness, this passive alertness which reveals its total process.
알아채기는 있는 것을 고요하고 선택없이 관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알애채기 속에서 문제는 스스로 풀어집니다. 그리고 충분하고 완전하게 이해되는 거지요. 문제는 그 자체의 층위에서는 결코 풀리지 않습니다. 복잡한 것이기 때문에, 전체 과정 속에서 이해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한 층위에서 문제를 풀려고 하다가 보면, 육체적이거나 심리적이거나 간에 말입니다, 더 한층 혼란스럽고 갈등이 일어나게 됩니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 알아채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이러한 수동적 깨어 있음이 문제 전체 과정을 드러내어 주거든요.
J. Krishnamurti Commentaries on Living Series I Chapter 41 'Awaren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