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바라기] 10
$#1. 판독실
종미의 사진을 걸어놓고 회의를 하는 스탭들.
하경 항응혈제 때문에 출혈은 계속 되는 상태구요
현우 평생 수술 받아야겠다. 종양보다 못할 것도 없네.
남준 예쁘냐?
하경 ...네, 너무 예뻐요.
남준 병이 시샘하나부다. (벌떡 일어서며) 돌자.
$#2. 복도
대회진.
바삐 걸어가는 회진팀.
하경이 현우 옆으로 다가와 걷는다.
하경 (소근댄다) 미안했다, 현우야.
앞서가는 하경,
하경을 바라보는 현우.
남준E 고상도. 어딨어?
뒤쳐져서 걷던 상도가 절뚝대며 부랴부랴 남준에게 간다.
남준 임마, 넌 허구헌날 병원에 있는 놈이 왜 치료도 안 하고 있어?
$#3. 응급실
종미 앞에 선 회진팀 종미 모가 서있고 남준이 종미의 얼굴을 만져본다.
종미 모 (하경에게) 선생님. 입원, 한참 해야 되나요?
현우 수술하고도 계속 문제가 될텐데 퇴원 생각부터 하십니까?
종미 모 네? 무슨 문제요? 그럼 완치 안 되는 건가요?
현우 완치요?
종미 엄마, 완치가 뭐야?
하경 (당황한 듯) 수술 안 하면 위험합니다.
종미 모 완치가 안되냐구요.
남준, 현우, 하경을 본다.
남준 (종마미 모에게) 수술하면 살아요. 그게 완치지, 뭐.
남준, 돌아서 나가면 회진팀도 움직인다.
나란히 걸어가는 회진팀 틈에서 하경이 멍하게 서있는 종미 모를 바라본다.
종미 (종미 모에게) 완치가 뭐냐니까?
현우 최하경. 너, 보호자한테,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냐?
$#4. 정형외과 의국
레지던트 서넛이 옹기종기 모여 TV를 보고 있고 그 중 한 명이 상도의 다리를
주물러 보고 있다.
상도 아, 아퍼, 새끼야.
레지1 사진 한 번 찍어 보죠?
사도 사진은 임마. 대충 기부스나 해줘.
레지1 인대가 늘어난 건지 뼈가 부러진 건지 알아야죠.
상도 인대 늘어나면 기부스 말고 딴 거 하냐?
레지1 아뇨.
상도 뼈는?
레지1 그땐 기부스 해야죠
상도 (뒤통수를 친다) 짜식이, 너 딴지 거는 거지? 얼른 가서 석고
붕대나 좀 얻어 와.
레지1 (심술이 난 듯 나가며 혼자말로) 내 치프도 아닌 게 막 치고
지랄이야.
상도 (벙찐 듯 문쪽을 보며) 이 놈들은 완전히 막가파야. (문득 TV
를 보며 다른 레지한테) 야, 거 딴 데 좀 돌려봐.
레지2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농구 봐야 돼요.
상도 임마, 성탄절을 앞두고 무슨 농굴 봐? 예수님 나오는 거, 그런
거 많이 하잖아. 돌려 봐.
레지3 (얼굴을 찌푸리며) 아, 거 선생님. 그거, 그거, 엄마 뱃속 시절
부터 봤던 거 아닙니까? 십계, 성의, 그런 거... 몇 십년을 욹어
먹는 거?
상도 명작이니까 몇십 년을 욹어먹지, 임마.
돌려봐, 얼른.
레지2 (들릴 듯 말 듯 궁시렁) 에유, 씨. 이게 지 방인가?
상도 뭐?
레지3 야, 야, 야. 돌려드려라. 죽은 놈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산 놈
소원...
상도 뭐, 임마?
레지2, 로터리 채널을 돌린다.
그러다 다이얼이 망가진다.
레지2 이런 고물 새끼...
아, 우리 관 왜 리모콘 TV 하나 없는 거야?
TV를 거칠게 쳐대면, 레지3이 TV 앞으로 간다.
레지3 야, 야, 비켜 봐. (TV를 돌려차기 한다) 이 찐따같은 새끼...
상도 (울상으로) 야아.. 이것들은 그냥 무조건 힘으로 심장 떨려죽겠
네... 야, 야, 야. 저기 가서 봐. 우리 의국. 거기 가서 봐.
레지3 그래도 돼요?
상도 가, 가, 얼른 가.
레지들, 몰려 나간다.
상도 아휴, 새끼들, 뭘 먹고 저렇게 힘을 쓰냐?
이때, 치프가 온다.
치프 우리 애기들이 한 마리도 안 뵈냐?
상도 내가 우리 의국 가서 놀라고 보냈다. 왜, 또 줘 팰 일 있냐?
치프 내가 변태냐, 새끼야? (TV 다이얼을 돌리려다 헛도는 다이얼
을 보곤) 어? 이 미친놈의 새끼가 근데...
상도 (울먹인다) 고만 좀 해. 이것들이 조폭이냐, 의사냐?
$#5. 신경외과 의국
재봉이 이불을 뒤집어쓰고 발가락 티눈을 빼내며 TV를 보고 있다.
티눈을 떼다가 TV를 보다가 과자를 먹으며 모처럼 평화를 만끽한다.
이때, 떼거지로 몰려오는 정형외과 레지들...
레지3 저만 먹냐? (재봉의 과자를 집어먹으며 리모콘을 든다.
재봉 왜 떼로 몰려와서 난리야?
레지2 야, 농구 보자. (리모콘을 든다)
재봉 가만 안 놔둬? 좀 있으면 모세가 물 갈른다 말야.
레지3 에이구 진짜, 치프나 애들이나 노는 게 그 물이냐? 작년에 봤
잖아, 임마.
재봉 작년에 못 봤다, 임마.
레지2 재작년엔 봤을 거 아냐, 임마.
재봉 까먹었다, 임마. 그거 안 놔둬? 안 가?
레지2 니네 치프가 여기 가서 놀라 그랬다.
재봉 싫어, 싫어. 가, 새끼들아. 모처럼의 평화를 왜 깨, 도대체?
레지3 야, 야. 빨리 돌려. 몇대 몇이냐? (재봉의 이불을 빼앗아 덮는
다)
재봉 (리모콘을 재빨리 집어 자기 팬티 안으로 쏙 넣는다) 가, 임마.
(빼앗긴 이불을 다시 빼앗고...)
이때 전화벨...
재봉 네... (인상을 쓰며) 왜에? 문순영이 연극을 하든 말든 나랑 무
슨 상관이야?... 안 가. 지금 모세가 홍해 건넌단 말야... (도도
하게) 왜? 그 아줌마가 나 없인 연극 안 한다디?
(인상을 긁으며) 뭐? 자기가 바뀌었어?
$#6. 폐쇄병동
전화통을 잡고 있는 레지, 순영이 자꾸 엉겨붙으며 은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통에 순영을 떼어내느라 여념이 없다.
순영 자기야.
레지 (귀찮은 듯) 연기 잘한다고 칭찬 좀 해준 거 뿐이 없어.. 근데
자꾸 나한테 꽈배기 틀고... 니가 좀 해결 좀 해주라, 응?
$#7. 신경외과 의국
화가 난 듯 전화통을 꽝 내려놓는다.
재봉 미친 게 바람까지 피냐?
(낄낄 웃는다) 바람은 무슨 바람이야. 내가 걔 서방인 줄 알았
네. 낄낄... 잘 됐네. 인제 찐따 안 붙고...
레지2 얘, 왜 이러냐?
재봉 (그러다 찝찝한 듯 궁시렁 댄다) 씨, 아무리 맛이 갔어도 그렇
지. 고새 돌아서냐?
레지3 얌마, 너 뭐해?
재봉 (TV는 보는 둥 마는 둥) 존심 상하네. 도대체 어떻게 꽈배기
를 트는 거냐? (나가려 하다가 레지들을 본다)
레지들 (동시에) 리모콘.
재봉 (문득 TV를 보곤 눈이 똥그래지며) 물 갈라진다.
재봉이 앉으려 하자, 갑자기 재봉의 팬티로 달려드는 레지 둘.
재봉 (놀라서) 빤스 찢어져.
$#8. 진료실
사진을 들고가던 인찬.
진료실 안으로 들어가는 종미 모를 본다.
지나치는 척 슬쩍 내부를 보면, 현우가 종미 모에게 무슨 설명을 하는 듯...
$#9. 스탭 의국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입력시키고 있는 수연의 모습.
현우가 들어오면 반갑게 인사를 한다.
수연 오전 진료 끝내셨어요, 선생님?
현우 그래. 다 한 거냐?
수연 거의 다 됐어요.
이때, 씩씩하게 들어오는 하경.
하경 (명랑하게) 웬일이야, 한선생?
수연 간질학회 자료 때문에...
하경 한선생. 나한테도 자료 하나 있는데... 좀 오래되긴 했어. 현우
야, 예전에 너랑 같이 했던 거 내가 보관하고 있다. 줄까?
현우 그래라.
하경 최하경에 클릭해봐. 트레머(Tremor 진전, 경련의 한 종류)라고
쓴 거...
준서가 들어왔다가 셋을 보곤 나가려 하자.
하경 어디 가?
준서 어딜 가든...
하경 야, 크리스마스 시즌이라 환자도 없어. 그냥 여기서 나랑 수다
나 떨자.
준서 ...최 하경...
하경 뭐?
준서 화를 내. 그래야 정상 아니냐?
현우 (퉁명스레 비아냥댄다) 니가 화를 내라 마라 할 자격은 없다.
준서 ...(현우를 쏘아보곤 횡하니 나간다)
하경 (나가는 준서를 바라보다가 현우에게) 장현우...
현우 왜?
하경 그만 좀 하자. 문득 생각해 보니까 우리들, 서른 넘긴지 오래
다. 스무살 감성은 이제 그만 묻어두자.
현우 ..나이 몇 살을 처먹건, 용서할 수 없는 게 있다.
하경 사과하지 않았니.
그래, 다시 한번 사과할게.
너무 늦었지만... 그리고... 준서, 용서해라. 안됐다.
현우 몇 년동안 부당하게 날 증오한 니 잘못, 그만큼의 사과는 받겠
다. 그렇지만, 준서 몫까지 니가 사과하는 건... 그건 우습다
하경 나 때문에 얽힌 일, 나하고 관계만으로 끝내자, 현우야.
현우 또 하나 용서가 안 되는 게 있어. 바로 나... 준서 형사소송 승
소에 대해서 나는 나 자신을 용서할 수 없다. 그래서 모든 걸,
니 맘대로 그렇게 끝낼 수는 없는 거다.
하경 (한숨을 쉬곤 수연에게) 몇 페이지 안되니까 금방 읽어볼 수
있을 거야.
수연 네, 선생님.
현우 (소리친다) 준서 놈도 미워하란 말이야, 나한테 그런 것처럼...
하경과 수연이 현우를 바라본다.
하경 (수연에게) 갑자기 애가 돼버리네. (현우에게 퉁명스레) 싫어.
현우 왜 싫어?
하경 몰라...
현우 그렇게 안됐냐, 준서? 이혼까지 한, 외로운 영혼이라서, 더 하
겠구나.
하경 ...(의아한 듯) 이혼을 했어?... 준서가?
현우 ....몰랐냐? 한층 더 연민을 느끼겠구나, 이제부턴...
하경, 잠시 현우를 바라보다가 눈을 깜박인다.
현우, 고개를 돌리곤 나간다.
하경 (넋이 빠진 듯 눈을 깜박이다가 수연을 본다) 정신 없었겠다,
너?
수연 참 어렵게들 사시네요.
하경 (허탈한 웃음) 그래. 우린 너무 어렵다... 한수연!
수연 네.
하경 넌 우리처럼... 어렵게 살지마. 감정가는 대로... 쉽게 가라. (컴
퓨터 보며) 어, 이거야.
$#10. 과장실
펜을 잡은 채 중얼대는 남준의 모습.
종이에 끄적대다가 종이를 구겨버리고...
남준, 한숨을 쉬곤 오디오를 튼다.
잔잔히 흐르는 멜로디.
헛기침을 한번 하곤 펜을 끄적거리다가 종이를 구겨 휙 집어던진다.
남준 에이. 못 해먹겠네.
$#11. 응급실
침대 한 켠에 눈을 감고 누운 인찬의 모습 CU.
종전과 다르게 텅빈 채 나른한 응급실 전경.
상희가 살며시 다가와 잠이 든 인찬의 주머니에 손바닥만한 선물 꾸러미를 넣
곤 물러난다.
또각대며 울리는 상희의 발자국 소리.
응급실 유리벽엔 보잘 것 없는 동그란 플라스틱 성탄장식만 매달려있다.
이때, 엠블런스 사이렌 소리가 가늘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12. 응급실 입구
갑자기 분주해진 응급실 입구.
레지던트, 인턴의 무리들이 엠블런스 주변에서 환자를 실어 나르고 있다.
인찬과 재봉도 그 속에 섞여있다.
응급의학 레지 백화점 에스컬레이터가 갑자기 서버려서, 한꺼번에 굴렀답니
다.
이어지는 환자를 향해 다가서다가 인찬과 재봉, 신기한 듯 환자를 바라보며 웃
는다.
$#13. 응급실
갑자기 분주해진 응급실 내부.
인찬, 재봉, 미소를 지으며 침대 쪽을 바라보고 있고 코고는 소리가 요란하다.
인찬 굴뚝에서 떨어진 거 아냐?
재봉 굴뚝에 낑길걸, 이 덩치에?
하경이 멀찍이서 걸어온다.
하경 산타, 어딨어?
누워있는 환자를 보면 산타 복장의 덩치 큰 남자가 코를 골며 잠을 자고 있다.
하경 자?
인찬 네.
하경 굴뚝에서 떨어졌나부다, 야?
인찬 백화점 산탄데 에스컬레이터에서 굴렀답니다. 척추에 문제가
생긴 것 같습니다.
하경 CT.
인찬 곧 나옵니다.
하경 별로 아픈 덴 없나부다. 잘 잔다, 야. 사진 나오면 불러. (가면
서) 답답할 텐데 그 수염 좀 떼드려라. 그리고 하종미, 수술
들어가자.
재봉 네.
하경 (옆쪽 침상으로 커튼을 젖히며 들어간다) 종미야.
인찬이 챠트를 들고 스테이션 쪽으로 가고
재봉이 수염을 잡아 당기면 얼굴이 딸려오는 산타.
산타 아아.
재봉 얼라리?
산타 (호통을 친다) 이놈의 새기가 어디 버르장머리 없이 남의 수염
을 뽑아?
재봉 (놀라며 인찬에게) 형, 이거 진짜야.
신기한 듯 산타를 바라보는 인찬.
재봉, 여전히 수염을 잡고 있으면 산타가 재봉의 손을 매섭게 내리친다.
이때, 바삐 들어오는 남준, 인찬에게 다가오며.
남준 (신기한 표정으로) 야, 야, 산타가 굴뜩에서 떨어졌다며?
$#14. 찬식의 입원실
찬식 날 갖구 노세요.
수연 말하는 것 좀 봐라... 이런 질환, 학회에 사례 발표하고 그래,
원래. 너한테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야.
찬식 딴 짓거리 말고 병이나 잘 고쳐 주세요.
수연 참 정떨어지게 한다, 너. 상태가 좋으니까 의사들한테 알려주
는 건데... 그래야 다른 환자 치료에도 고무적으로...
찬식 내가 왜 다른 환자한테까지 신경을 씁니까?
수연 (한참을 바라보다 일어선다) ...알았다.
찬식 ...어제, 구경하는데 얼마나 웃겼는지 아세요? 그 간질환자. 난
앞으로도 그 병에 대해서 모른 척 구경만 할 겁니다.
수연 ...(싸늘한 얼굴) 너한테 그 병이 없었어도 모두 널 미워했겠다.
걸어나가는 수연.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는 찬식.
$#15. 응급실
종미만 누워있고 보호자가 보이지 않는다.
종미는 껄떡껄떡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린다.
하경 어디 갔어, 보호자?
인찬 직원들 얘기론 오전 내내 안 보였답니다.
하경 일 나갔나?
종미 (서글피 울며) 도망갔어요.
하경 ...아니야.
종미 도망갔어요, 엄마. 나 땜에 힘들어서 도망갔어요.
하경 (인찬을 보며) 무슨 일 있었니?
인찬 ...글세요.
...오전에 보호자가 장현우 선생님 진료실로 들어갔습니다.
하경 ...
인찬 ...
하경 (문득 생각에 잠기며) 어떻게든 연락해봐.
인찬 네, 선생님. (사진 보여주며) 유은태씨 사진 나왔습니다.
하경, 사진을 보며 돌아서서 옆 커튼을 젖히면 산타가 빨대로 우유를 먹고 있
다.
평온한 모습으로 하경을 바라보는 산타의 모습.
하경 (사진을 보며 얼굴이 굳는다) 유은태씨?
산타 왜?
하경 보호자 안 계십니까?
산타 (씩 웃으며) 홀애비 냄새 안 나슈?
하경 ...유은태씨, 척수 말인데요... 그거 단순 골절 아닙니다.
산타 (명랑하게) 종양 있는 거?
하경 (벙찐 듯) ...아셨어요?
산타 안지 꽤 됐수... 저, 선생. 매점에 김밥 같은 건 안 파나?
$#16. 수술실
누워있는 이용관.
태동이 놀란 표정으로 뛰어 들어와 용관을 본다.
상도에게
태동 이 독사, 왜 또 이러냐?
상도 2차 스트로큽(STROKE 뇌졸중)니다.
태동 이런 놈하고... 그 새 또 자빠질 걸 중간에 왜 깨나? (마취 레
지던트에게) 준비 다 됐어?
래지 네, 선생님.
레지가 가스가 연결된 입마개를 준다.
태동이 마취가스를 주입한다.
기계를 조작하고 있는 레지던트.
태동, 계기를 본다.
태동 야, 임마, 조심해. 2차니까 신경써야 돼.
레지 예.
이때, 집도의, 남준이 들어온다.
미심쩍은 눈으로 태동을 바라보는 남준.
태동, 괜시리 눈치를 보며 수술실 구석, 계기판 앞으로 가서 얌전히 앉는다.
남준 (수술가운을 입으며) 왜 내 수술엔 너만 들어오냐? 딴 놈 없
어?
태동 (시비걸 듯) 과장님 싫다고 다 도망갔어요. 왜요?
남준 (상도에게) 상도야, 넌 지금부터 내 어시스트 안 해도 돼. 윤태
동만 보고 있어, 알았어?
상도 예, 과장님. (태동을 빤히 바라본다)
태동, 상도와 눈싸움을 한다.
그리곤 이내 주먹을 치켜들며
태동 확, 기냥.
이때, 태동의 눈에 꽂히는 남준의 눈빛.
슬그머니 주먹을 내린다.
$#17. 신경외과 진료실
현우와 함께 슬라이드 사진을 정리하는 수연.
현우 죽어도 싫대?
수연 네.
현우 짜식이 소심하네.
수연 저도 그렇게 소심했어요, 학교 다닐 때. (생각에 젖듯) 원래 병
자들은 그래요.
현우 ...한 수연.
수연 네.
현우 잊어라. 기억하기 싫은 건...
수연 선생님은요?
현우 나, 뭐?
수연 아버지, 어머니...
현우 ...너, 뭐 아는 거 있냐?
수연 그리고 최하경 선생님.
현우 ...
수연 사랑은 제가 잘 모르구요, 선생님. 부모에 관한 일이라면 저도
선생님 못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선생님이나 잘 하세요. (생
긋 웃는다)
현우 (가만히 수연을 바라보다가)... 아찔하다, 한 수연.
수연 (웃으며 뒷정리를 한다) 학회갈 때 뵈요, 선생님.
이 때, 노크소리.
현우 네.
찬식이 들어온다.
수연, 의아한 듯
찬식 (현우를 노려보며) 선생님이 절 구경거리로 만든다면서요?
현우 그래. 근데 싫다며?
찬식 약속하나 해주세요. 그럼 하죠.
현우 싫어, 부담스러.
찬식 완치시켜 주세요. 저.
현우 ...
찬식 그럴 자신만 있다면 하겠습니다.
현우 난 환자하고 도박 안 한다. 자신 없다.
찬식 그럼 말구요. (나가려 한다)
현우 자신은 없는데... 까짓거, 도박 한 번 해보지, 뭐.
찬식 못 고치면, 저 죽을 때까지 선생님이 책임지세요.
현우 (약한 미소) 별 수 있냐?... 목숨 걸고 고쳐보자... 됐냐?
찬식 네. (나가는 등 뒤에)
수연 그 도박에... 나도 끼워줘라. (미소 짓는다)
찬식, 수연을 보곤 희미한 미소.
$#18. 간호사 스테이션
바 위에 올라가 반짝이 꼬마 전등 선을 잇는 은주.
순덕 아주 목숨을 걸었구나.
$#19. 응급실 앞 복도
재봉과 함께 걷는 현우.
현우 전봇대에 받혔는데 뒤통수가 깨져?
재봉 아줌마가 칠칠맞게 생겼더라구요.
현우 근데 뒤로 걸어다녔대냐?
$#20. 응급실 안
준서가 백화점 사고 환자로 보이는 이마 쪽 외상 환자의 머리를 만져보곤...
준서 이마는, 한 서너 바늘 봉합하면 되겠네요.
환자1 선생님, 손목을 통 쓸 수가 없어요.
준서 정형외과에서 올 겁니다. (인턴에게) 컨설트 했지?
인턴 네.
준서 일단 봉합해라. 또? 누구냐?
준서, 옆 침상의 모로 누운 여자 환자 앞으로 간다.
뒤통수가 피범벅이 되어있고
환자는 한 쪽 눈을 가리고 있다.
준서 이 환자도 백화점에서 그랬어?
인턴 아닙니다. 전봇대에 부딪혔답니다.
준서 (환자2에게) 전봇대에 어떻게 부딪혔는데 이 정돕니까?
환자2 그냥...
준서 외상이 심하네...
여환자의 뒤통수를 만져보다가 뒷목덜미를 보곤 눈이 치켜 올라간다.
준서 보호자 어딨습니까?
재봉과 함께 현우가 다가온다.
준서, 화가 난 듯 현우를 슬쩍 밀치고 나가면 현우가 여자의 뒷통수를 본다.
그리곤 목덜미에 난 피멍을 확인한다.
옷을 더 깊이 내리면 등 쪽에 붉은 피멍...
현우 손 치워요.
여자가 계속 한 쪽 눈을 가리고 있자 현우가 여자의 손을 치우면 눈에 시퍼런
피멍이 든 채 울먹인다.
$#21. 응급실 밖 현관 앞 마당
보호자 앞에 선 준서.
준서 (의심 어린 눈빛으로) 전봇대에 부딪칠 때 남편 분이 같이 계
셨다구요?
보호자 네에. 내 마누라지만, 예펜네가 워낙 띨띨해 놔서...
보호자의 얼굴을 후려치는 준서.
보호자, 뒤로 넘어진다.
보호자 이놈이 미쳤나?
보호자, 준서에게 달려들려 하자 현우가 잽싸게 보호자를 후려친다.
준서, 넘어진 보호자를 향해 다시 주먹을 휘두르면 경비와 주변 간호사가 준서
를 떼어낸다.
그 사이 현우가 다시 보호자를 향해 주먹을 휘두른다.
경비, 현우를 말리면 다시 준서가 달려들고...
사람들의 제지를 뿌리치며 번갈아 가면서 보호자를 후려치는 현우와 준서.
$#22. 응급실 안
유리문 너머 하경과 응급실 직원들, 응급실 밖의 소동을 구경하고 있다.
하경 쟤들, 왜 갑자기 뭉쳐서 저러냐?
재봉 저기 머리 깨진 아줌마, 꼴 좀 보세요.
머리통, 몸통, 다리통, 죄 피멍이에요. 그래놓곤 전봇대에 부딪
쳤다고 구라치잖아요. 에유, 나쁜 새끼.
산타 개새끼네.
어느새, 하경 뒤에 서서 구경을 하고 있던 산타를 하경이 문득 바라본다.
하경 유은태씨, 누워계세요.
산타 누워있으면 늘어져.
하경 얼른요.
산타 둘 중에 누가 선생 애인인데?
$#23. 매점 앞 복도
바삐 걸어가는 산타와 그 뒤를 따르는 하경.
산타 그 선생, 되게 귀찮게 구네.
하경 유은태씨. 수술 하셔야 되는 거 아시죠? 저 장난 아닙니다.
산타 의사들이 장난이나 제대로 칠 줄 아나?... 아, 수술한다니까...
근데 지금은 안돼. 하던 일, 마져 해야지. 어렵게 품파는 건
데...
하경 (짜증스레) 암 걸렸잖아요. 아플 거 아닙니까?
산타 (버럭 소리를 지른다) 아, 돈을 벌어야 수술을 하지. (목소리를
낮추며) 참, 사람, 승질 한 번 되지게 급하네. (조용히) 수술
받자고 돈 벌지 않우, 내가 지금...
하경 (무안한 듯) 돈 때문에 그러세요?
산타 (흘겨보며) 그럼, 돈 때문에 그러지. 내가 죽고 싶어 환장했나?
해야 될 수술을 않게? (그러다) 그나저나 누가 애인인데?
하경 ...제가 사회사업과에 연결해 드릴게요.
산타 미쳤어? 남의 신셀 지게? 죽으면 어떻게 갚으라구... 내 옆에
애 엄만 도망간 거야?
하경 그런 걱정, 하실 때가 아니잖아요. 산타 아저씨가 더...
산타 살기가 힘들었나부지. 거 수술은 시킬 거지?
하경 ....
산타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카세트 테잎을 꺼낸다) 수술실에 카세트
는 있지?
하경 네.
산타 (테잎을 주며) 백화점에서 쎄빈 거야. 갖구 들어가. (매점 안으
로 들어서며) 김밥 있수?
매점 주 그런 건 없어요.
산타 (하경에게) 의사 선생이 얘기 좀 해. 이런 빵조가리 말고 김밥
좀 갖다 놓으라고...
$#24. 응급실 앞 벤치
각자의 옷을 터는 준서와 현우.
준서, 옷을 털곤 벤치에 털썩 앉는다.
현우, 가만히 서 있다가 담배를 꺼내 문다.
현우 줘?
준서, 담배를 받는다.
바람을 가리느라 서로의 불을 붙여주는 둘
나란히 벤치에 앉은 둘의 모습.
담배연기만 날리며 말이 없다.
멀리서 여리게 들리는 경찰 패트롤 카 소리.
준서 경찰 오나부다.
$#25. CT실 앞 복도
사진을 들고 바삐 걸어가는 인찬.
무거운 듯 복사물과 의학논문들을 한아름 들고 가는 수연의 모습을 멀리서 본
다.
인찬, 모른 척 가려다가 바삐 수연에게 다가와 자료 일부를 빼앗듯이 나누어 든
다.
수연 (문득 놀라며) 선생님.
인찬 (무심하게) 어디로 가져갑니까/
수연 괜찮아요, 선생님.
인찬 길 가다가 무거운 짐 든 사람, 안 도와줍니까, 수연씬?
어디로 갑니까?
수연 우리과 의국이요.
인찬 갑시다.
인찬, 앞장선다.
$#26. 신경과 의국
상희, 차트를 보며 컴퓨터에 입력을 시키고 있다.
이때, 인찬이 자료를 들고 들어온다.
상희 (반갑게) 선생님. 이게 뭐예요?
인찬 자료네요.
상희 무슨 자료...
이때, 수연이 다른 한 무더기의 자료를 들고 상희의 눈치를 보며 들어온다.
얼굴이 굳는 상희.
인찬이 나가려 할 때,
상희 (수연에게) 고마운 선생님, 다각도로 활용하는구나, 너.
수연 (당황하며) 선생님, 그게 아니라...
상희 늘 아니지. 할 거 다하고 아니라지, 언제나...
인찬 (바락 소리를 지른다) 그만 좀 하세요, 박선생님. 지치지도 않
아요? 후배, 닥달하는 거?
상희 (조용하고 가늘게 떨리는 목소리로) 선생님이나 그만 하세요.
얘, 앞에 두고... 선생님 혼자 원맨쇼 하는 거... (목이 매이듯)
...지치지도 않으세요?
상희, 가늘게 떨리는 입술을 물고 의국 밖으로 나간다.
고개 숙인 수연과 등 돌린 인찬.
인찬 ...사실은 박선생 말이 맞네요.
인찬, 힘없이 걸어나간다.
돌아서며 인찬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수연
$#27. 복도
터덜터덜 복도를 걸어나가는 인찬.
$#28. 화장실 변기 칸
변기칸 뚜껑 위에 걸터 앉아 외롭게 고개 숙인 상희.
$#29. 폐쇄 병동
주위를 두리번대며 들어오는 재봉.
간호사 스테이션 앞에 선다.
간호사 왜요, 선생님?
재봉 아니, 그냥. 정신과, 별일 없나 해서... 뭐, 컨설트 같은 거 없
죠?
간호사 (가만히 보다가) 문순영씨 보러 왔구나.
재봉 미쳤어요, 내가? 그 아줌말 보러 오게? ...싸가지가 안 보이네.
간호사 저기 계시네요.
레지던트의 뒤를 쫄래쫄래 쫓아 다니는 순영.
레지 (귀찮은 듯) 아, 아줌마아...
순여 자기야아.
레지 아이, 문순영씨. 어? (재봉을 본다) 저기 자기 왔다.
순영 (재봉을 보며) 쟤가 누군데?
레지 순영씨, 자기.
순영, 재봉을 빤히 보고 있으면
재봉, 인상을 긁으며 순영을 보고 섰다.
레지 (재봉에게) 야, 야, 잘 왔다, 너.
재봉 (버럭 화를 낸다) 임마, 꼬실 여자가 없어서 환자를 꼬시냐?
레지 꼬시긴 누가 꼬셔?
재봉 (순영에게) 이거나 받아. (뒷춤에서 털모자를 꺼내 들이민다)
순영 ...
재봉 다시 사준다 그랬잖아, 가발.
가발이 너무 비싸. 그래서 싸구려 털모자라도 사줘야 뒤탈이
없을 것 같아서, 그래서 사온 거니까 딴 오핸 말어. 얼른 받어.
순영 (받는다)
재봉 다시 한번 말하지만, 싸구려야.
재봉, 문가로 가려는데.
순영 자기, 자기였구나. 재봉이...
뒤돌아선 재봉, 남몰래 입가에 미소 짓는다.
순영, 다가온다.
재봉 (돌아서며 짜증스레) 아, 또 귀찮게 생겼네. 그거 받았다고 감
동하고 그러면 나 증말 싫어, 아줌마.
순영 (재봉을 뚫어지게 보다가 갑자기 재봉의 머리칼을 쥐어뜯는다)
이 돌팔아. 니가 내 머리 짤른 그 허재봉이지? 내 머리통 물어
내.
$#30. 응급실
바삐 들어오는 하경.
의식을 잃은 종미 앞에 선다.
하경 언제부터 이래?
인찬 조금 전부터요.
하경 어드미션은 받아놨지?
인찬 예.
하경 옮겨라, 수술실로...
인찬 예.
바삐 나가는 하경을 스치며 들어오는 현우.
현우 수술 들어가게? 꼬마 멘탈은?
하경 (미간을 찌푸리며) 넌 그래서 나랑 안돼.
영문을 모른 채 나가는 하경을 바라보는 현우.
그러다 차트를 들고 산타 앞에 선다.
현우 유은태씨?
산타 왜?
현우 수술 받으셔야 한다구요?
산타 댁이 애인이구만.
현우 네?
산타 저 선생. 댁보고는 미워 죽으려구 그러대?
현우 ...
산타 좋아하니까 죽도록 밉지. (주머니에서 털장갑을 꺼내준다) 백
화점에서 쎄빈건데, 저 선생한테 선물이나 해.
$#31. 수술실
수술이 끝난 듯 수술가운을 벗는 남준.
뒷정리를 하는 상도.
기기를 끄는 레지.
남준 (태동을 한번 훑어보고) 잘해. (나간다)
태동 (곁눈질로 남준을 보곤 레지에게) 이 놈, 깨워라.
레지 (놀란 듯) 근데요. 안 깨나요.
태동 뭐?
레지 안 깨요.
태동 안 깨다니... (용관의 얼굴을 친다) 야, 독사야. 야, 임마, 일어
나.
레지 어쩌죠?
태동 야, 임마. 일어나. 너 이러면 내가 뒤집어 쓴단 말야. 돈 줄게
일어나... 얼른...
$#32. 회복실
용관의 손을 잡고 기도하듯 용관을 바라보고 있는 태동.
태동 독사야. 속 좀 그만 태우고 일어나라, 응?
독사야, 독사야.
남준이 들어온다.
남준 아직 안깼어?
태동 (남준을 얼싸안으며 울먹인다) 내가 그런 거 아니예요, 과장님.
남준 (태동을 떼어내며) 비켜, 녀석아. 징그럽게 어딜 더듬어?
태동 (다시 얼싸안으며) 안 깨어나면 어떡해요? (그러다 돌연) 내
잘못 아니야. 문제가 생기면 그건 집도의 책임이지.
남준 갖은 쇼를 다 하네. (환자 보며) 괜찮수?
어느새, 눈을 뜨고 태동을 바라보는 이용관.
태동 (감격에 겨워 울먹인다) 이으, 짜식. 애를 태우고... 우리 이븐
독사. (용관의 얼굴을 쓰다듬는다)
용관 너, 내 돈 빨랑 안 내놔?
$#33. 수술실
만화영화 주제곡이 울려퍼지는 수술방.
종미의 뇌출혈 수술.
하경 뇌압 어떠니?
인찬 좋아집니다.
이때, 들어오는 현우.
현우 어떠니?
하경 ...
현우 (뇌압 보더니) 괜찮네.
하경 ...구경 났니?
현우 ...
하경 애 엄마가 도망갔다.
현우 ..도망가?
하경 너, 애 엄마한테 그대로 얘기했니?
얘, 평생 이래야 된다고?
현우 그래.
하경 너답다.
현우 그게 뭐? 알아야지, 애 엄만데?
하경 수술 끝나고 말할 수도 잇었다.
현우 그런 거 계산이 서냐, 넌? 난 그런 거 모른다.
하경 난 준서가 고맙다, 차라리... 일찌감치 널 떠나게 해줘서...
현우 ...
하경 거슬린다, 나가줘.
현우 최하경.
하경 간호사 선생, 볼륨 좀 올려줘.
수술실을 울리는 만화영화 주제곡.
$#34. 스테이션
여전히 꼬마전등을 만지작대고 있는 은주.
순덕 너, 그만 안 내려와?
은주 (손을 탁탁 털며) 인제 땡이에요.
이때, 부랴부랴 스테이션 안으로 뛰어 들어오는 간호사 한 명.
간호사 늦었어, 늦었어.
순덕 얜 또 이래, 정신없게?
간호사 내 노트 어딨지?
순덕 니가 들고 있잖아. 왜 그래?
간호사 오늘, 우리 동우회에서 시낭송회 하거든요. 성탄절 기념...
은주 어머, 시도 써요, 언니?
간호사 그냥, 좀.
순덕 지들이 시는 무슨 시야? 예술을 아무나 하니?
은주 선생님 남편도 하는데 뭘?
순덕 뭐?
간호사 선생님도 같이 가요.
순덕 싫어, 얘. 유치하게...
간호사 서남준 박사님도 오세요.
순덕 뭐?
간호사 모르셨어요? 박사님, 우리 동우회 회원인데... 저, 가요.
순덕, 은주, 서로 마주보다가 간호사를 따라 달려간다.
$#35. 복도
간호사를 따라 복도를 달려가는 순덕과 은주.
복도에서 상도, 재봉과 마주친다.
상도 언니, 어디가?
은주 빨랑빨랑.
상도, 재봉, 엉겁결에 은주를 따라간다.
$#36. 소강당 앞 복도
상도 일행이 뛰어오고 강당 안에서 들리는 시.
간호사E 나는 일어설 수 있을까? 나의 청춘을 나의 꿈을 밝은 빛이 드
넓은 대지에 비춰지는
$#37. 소강당
지그시 눈을 감고 간호사의 자작시를 듣고 잇는 남준.
모든 회원이 여자들이고 남자 회원은 유일하게 남준 뿐이다.
간호사 그러한 시간이 어디쯤에... 나는 볼 수 있었다. 그 빛을 누군가
에 의해 나에게 비춰지는 것을...
박수를 받으며 내려오는 간호사.
사회자 (감상에 젖은 말투로) 삶의 희망과 좌절이 애잔하게 들려오는
듯 하네요, 최은영 간호사님.
다음은 신경외과 서남준 과장님의 순섭니다.
박수를 받으며 단상에 오르는 남준.
남준 미안한 말씀 한마디 하겠습니다. 내가 되도록 자작시를 지어보
려고 했지만... 시상에 한계를 느껴, 어찌할 바 없이 내 애창시
로 대신 할까 합니다. 널리 양해 바랍니다. (헛기침을 한다) 그
럼, 읊어보겠습니다. 김승희님의 장미와 가시.
(눈을 감는다) 눈 먼 손으로 나는 삶을 만져보았네.
그건 가시투성이었어.
가시투성이 삶의 온 몸을 만지며...
갑자기 환호의 휘파람 소리가 난다.
남준 (깜짝 놀라 눈을 뜨곤 문쪽을 본다) 응?
문 쪽을 보는 동우회원들 문 쪽에 모여선 신경외과 직원들.
박수갈채와 휘파람으로 환호한다.
동우회원들의 눈이 동시에 문 쪽을 향하고...
남준 (벼락같이 소리친다) 뭘 봐, 이 놈들아.
상도 과장님, 파이팅.
재봉 과장 오빠...
은주 오빠, 오빠...
남준, 문 쪽으로 성큼성큼 가더니 쾅 소리 나게 문을 닫곤 다시 단상으로 올라
온다.
남준 죄송합니다. (다시 감정을 잡듯 심호흡) 가시투성이 삶의 온
몸을 만지며 나는 미소지었지. 이토록 가시가 많으니 곧 장미
꽃이 피겠구나 하고...
재봉E (환호성) 사랑해요, 장미오빠... 박수 쳐, 박수.
다시 문을 열며 박수를 치는 일행들...
남준, 다시 문 쪽으로 가서는 재봉과 사도를 박치기시키곤 문고리를 잠근다.
남준 또 한 번만 들어오면 골통을 깨부순다, 이놈들아.
공포감에 남준을 바라보는 회원들.
남준 (단상으로 올라선다) 첨부터 다시 하겠습니다. (헛기침) 장미와
가시. (불현 듯 문쪽을 째리며) 망할놈의 새끼들.
$#38. 수술방
가운을 벗는 하경.
하경 (인찬에게) 뒷정리하고 산타, 어드미션 받아라. 사회사업과엔
내가 연결해 놨으니까... 그 사람, 심각하다.
인찬 네. 선생님.
$#39. 스테이션
스위치를 올려보는 은주.
불이 반짝 들어온다.
순덕 아주 원을 푸는구나.
은주 근데 선생님들 다 어디 갔지? 의국에 있나? (전화통을 잡다가
다시 떨어지는 약품통, 부랴부랴 살펴보면 이상은 없다) 클 날
뻔했네. 큰 일 나긴 뭐. 믿을 구석이 있는데...
순덕 고 상도가 불쌍하다.
은주 그게 다 남자의 본분이에요, 선생님. 지가 나 데리고 살고 싶
으면 그 정돈해야지. 월급이 많아, 시간이 많아? 딱갈이라도
잘해야지.
순덕 아예, 데리고 살려고?
은주 난 싫죠. 근데 지가 혼자 좋아 그러는데... 불쌍하잖아. 살아줘
야 되잖겠어요, 어디?
순덕 불상하지, 고 상도. 너 땜에 이만 저만 손해보는 게 아니지, 고
선생이... 석달치 월급에 연말 보너스까지 꼬나 박았다는데...
은주 네?
순덕 니가 망가뜨린 거... 그거 물어냈대, 고 선생이... 물품관리부에
서 들었다, 내가.
은주 공짜랬잖아요.
순덕 이 꼴통아? 공짜가 어딧냐, 세상에?
은주 ...(가만히 입술을 문다) 미친 놈.
은주, 싸늘한 표정으로 복도를 걸어간다.
$#40. 응급실
산타의 침상 앞에 선 하경과 인찬.
빈 침상에 산타의 모자만 댕그마니 남아있다.
허탈하게 주머니에 손을 넣는 인찬.
문득, 만져지는 선물.
선물을 꺼내보는 인찬.
하경 (인찬의 선물을 보며 미소) 넌 착한 일을 많이 했나부다.
산타의 모자를 만져보는 하경.
$#41. 신경외과 진료실
산타의 털장갑을 어루만지는 현우.
수연 (고개를 들이밀며) 선생님. 나오세요. 우리 과 과장님하고 선생
님들 주차장에서 기다리세요.
현우 (주머니에 장갑을 넣는다) 알았다. 가 있어.
수연 네.
$#42. 수납 앞
사복 차림의 수연이 바삐 서두르며 주차장 현관 쪽을 향할 때 수납창구 쪽에서
들리는 수연 부의 소리.
수연 부 왜 보험이 안 되나?
수납 1차 진료소에서 진단서를 떼와야 돼요, 아저씨.
수연 부 애가 갑자기 맹장이 터져서, 급히 왔다니까.. 근데 어느 새 1차
진료를 받고 어느새 여기 와서 치룔 받아, 아가씨?
수납 몰라요. 치료비 나온 대로 주셔야 돼요. 보험 안돼요.
수연 부 못 준다면?
수납 다른 조치를 취해야죠, 뭐.
수연 부 다른 조치, 뭐? 애라도 죽이나? ...내 딸도 이 병원 의사야. 넌
뵈는 게 없냐?
수납 아저씨, 이러시면 경비 불러요, 저.
수연(E) (수연 부의 등뒤에서 수납에게) 치료비가 얼만데요?
수연 부, 흠칫 놀란다.
수납 ...댁이 의사예요?
수연 네.
수납 아실만한 분이 따님인데, 아저씬 생떼를 쓰세요, 왜?
수연 (수납에게 싸늘하게) 뭘 아는데요?
수납 네?
수연 조목조목 좀 알려주세요. 나도 잘 모르겠으니까...
$#43. 로비
수연, 입을 굳게 붙인 채 걸어가고 수연 부가 뒤따른다.
수연 (뒤돌아보며 싸늘히) 왜 하필 이 병원으로 오셨어요?
수연 부 ...난 그저... 이왕이면 큰 병원에서... 또 너도 있다기에...
수연 내가 있는 곳에 아버지가 한번이라도 같이 계신 적 있었나요?
수연 부 ...(고개를 돌린다) 니 망신 줄 생각은 없었다. 그냥 내 성격 아
니냐. 벨 꼬이면 목소리 높아지는 거...
수연 내가 아버지 성격을 어떻게 압니까? 같이 살아보질 않았는
데....
수연 부 ...미안하다. (벤치를 보며) 용환아, 가자.
수연, 수연 부의 눈길이 미치는 곳을 바라보면 조그만 초등생 남자아이가 벤치
에 앉아있다.
용환 아빠.
수연 부 그래, 가자. (용환의 손을 잡는다)
용환 (수연을 보며) 누구야, 저 누나?
수연 부 의사 선생님.
현관으로 걸어나가는 수연 부와 용환.
수연, 후문 주차장 현관 쪽으로 매정하게 몸을 돌리면 눈앞에 현우가 서있다.
수연 늦었어요, 선생님. 주차장에서 기다립니다, 모두.
현우 ...그냥 돌아서서 갈 수 있겠냐?
수연 (망설임 없이) 네.
현우 그래, 가자.
$#44. 현관 앞 주차도로
주차도로를 건너는 수연 부와 용환.
수연E 택시 타고 가세요.
돌아보는 수연 부와 용환.
수연이 냉정한 얼굴로 택시를 잡은 채 서있다.
수연 부, 미련 없이 몸을 돌린다.
수연 아드님, 지금... 걷는 거 무리예요. 얼른요.
수연 부 됐다. 버스 타면 금방이다.
수연 부, 용환을 잡아끌면 용환이 버팅긴다.
용환 추워. 택시 탈래. 응? 아빠.
용환의 손에 이끌려 오는 수연 부.
수연이 택시 문을 열어주면 마지못해 택시에 오르는 수연 부.
수연, 아무 말 없이 용환의 목에 자신의 목도리를 감아준다.
용환 고맙습니다, 선생님.
수연, 용환을 바라보다가 지갑에 꽂힌 지폐를 모두 용환의 손에 들려준다.
수연 아빠한테 맛있는 거 사달라 그래.
용환 고맙습니다, 선생님.
떠나는 택시.
여린 눈으로 멀어지는 택시 꽁무니를 한참동안 바라보는 수연.
눈빛이 아리다.
수연 (혼자말로) 선생님이 아니라... 누나야.
저녁놀이 붉게 물든다.
$#45. 엘리베이터 안
인찬이 선물을 풀어보낟.
포장지를 뜯으면 손목시계가 보이고 카드 하나가 곶혀있다.
의아한 눈빛으로 카드를 펼쳐보는 인찬.
카드 이 시계가 선생님의 손목에 채워져 있지 않더라도 슬프진 않
을 겁니다. 항상 수술을 해야하는 신경외과 선생님에게서, 손
목시계가 보이는 일은 흔치 않으니까요.
$#46. 신경외과 의국
한 이불을 덮고 포개져서 TV를 보는 상도와 재봉.
이때, 전화벨.
재봉 (전화를 받는다) 또 왜에? ...아, 걔가 울건 말건... 아, 씨. (전
화를 끊으며 일어선다)
상도 왜?
재봉 문순영이 통곡을 한대요. 귀찮아 죽겠네.
상도 임마, 가지마, 그럼.
재봉 에이, 어떻게 그래. (가운을 걸치며 나간다)
상도 (재봉의 등뒤로) 그래, 니넨 어울려. 상태가 똑같은데, 뭐.
은주가 들어온다.
상도, 좋아라 은주를 맞으면 통장과 도장을 상도의 얼굴에 내던진다.
은주 (전에 없이 냉정하다) 니 눈엔 내가 그지로 보이냐? 그 통장,
니가 물어낸 돈의 절반은 될 거다. 나머진 한두 달 안에 갚을
테니까... 일단 그거 먹고 떨어져.
상도 (돌아서는 은주를 잡으며) 얘가? 왜 그래, 언니? 응?
은주 (상도의 손을 뿌리치며 울음을 터뜨린다)
상도 어머, 울지마...
은주 (운다) 쪽팔리고 자존심 상해서 그런다, 왜? 넌... 그깟 돈 우스
웠나본데... 난 니가 아무렇지도 않게 그런 큰돈을 뿌려대는 놈
인 줄은 꿈도 못 꿨다.
상도 은주야, 그건...
은주 (울음을 참으며) 만약 내가 고 선생님 같은 상황이었다면...
난 고 선생님처럼 그렇게 쉽게, 해결할 수 없었을 거야..
...내가 아무리 선생님을 좋아한다구 해두, 그런 친절을 베풀기
엔... 나한테 그 돈은 너무 커.
상도 은주야... 일루 와봐.
은주 놔요.
상도 (은주의 손을 끌어다가 자신의 머리를 때린다) 난 맞아야 돼.
때려, 때려.. 기분 상했구나, 은주야. (은주의 손을 자기 뺨에
대며 조용히) 미안해.
은주 (조용히) 난 부자가 아니예요. 그리고 선생님도 부자가 아니었
으면 좋겠어요... 그래야 만만하죠.
$#47. 폐쇄 병동
소리내어 울고있는 순영
그 옆에서 인상을 긁고 있는 재봉.
재봉 내 팔자도 오지게 사납다. 왜 그래에?
순영 엉, 엉.
재봉 줘 팰 수도 없고...
순영 ...(눈물젖은 눈으로) 집에 갈래.
재봉 여기가 집이잖아. 자기, 병원 체질이라며
순영 집에 갈래. 나 병원 싫어.
재봉 (놀란다) 혹시... 제대로 돌아온 거야? (손가락을 펴보이며) 이
거 몇 개야?
순영 (소리친다) 집에 갈래... 애기가 죽었단 말야, 병원에서...
재봉 뭐가?
순영 (눈물을 흘리며) 애기가 나 땜에 죽었어.
재봉 ..
순여 (서글프다) 내가 떨어뜨려서 죽었어.
내가 그 간호사야...
애기 죽인 간호사.
재봉 순영씨.
순영 (엉엉 운다)... 분만실에서... 아기를 떨어뜨렸어.
애기 엄마가...
날 봤단 말야... 날 봤어.
눈을 똥그랗게 뜨고 봤어.
재봉 ...순영씨.
순영 ...내가 죽였어.
서글피 울어대는 순영의 등을 다독이는 재봉.
재봉, 아무 말 없이 한 없이 울어대는 순영을 다독이기만 한다.
$#48. 신경과 의국
옷을 갈아입고 퇴근 하려는 듯 문 앞으로 가 서는 상희.
문을 열면 그 앞에 인찬이 고개 숙인 채 우두커니 서 있다.
그러다 시계를 들어보인다.
상희 (잠시 바라보다가) 싫다면 돌려받을게요. (손을 내민다)
인찬 (시계를 손안에 감싸쥔다) 박 선생님. 선생님에 대해서.. 노력
해보겠습니다.
상희, 놀란 듯 인찬을 바라본다.
인찬 이젠... 쓰린 마음... 달래세요.
상희의 눈에서 흐르는 한 줄기 눈물.
묵묵히 상희를 바라보고 선 인찬.
$#49. 간호사 스테이션
불꺼진 복도.
스테이션 가장자리에서 꼬마 전구만 반짝인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캐롤송.
$#50. 하경의 차 안
캐롤송이 하경의 차 안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음악에 맞물린다.
운전을 하는 하경.
조수석의 준서.
준서 (창 밖을 두리번대며) 커피 한 잔 하자며 뭐 이렇게 멀리 가
냐?
하경 우리집 가자.
준서 왜?
하경 우리, 같은 솔로끼리 성탄이나 축하하자.
준서 너나 솔로지. 난 유부남이고...
하경 넌 하나부터 열까지 그짓말을 하냐, 어떻게?
준서 ...하경아.
하경 잔말 마.
준서 차 세워라.
하경 싫어. 튕기지 좀 마라. 놀아주면 안되냐, 오늘 같은 날?
준서 (짜증스레) 세워, 좀.
하경이 도로 갓길 한켠에 차를 세운다.
그대로 아무말 없이 앉아있는 하경과 준서.
준서 그래, 나 너 좋아해. 예나 지금이나.. 이렇게 같이 있자 그러니
까 한 편으론 신나.
하경 그럼 됐네.
준서 ...근데, 불편해?
하경 (퉁명스레) 왜?
준서 니가 사랑하는 사람은 내가 아니니까...
하경 ...준서야
...난 사랑 많이 해봤다.
현우랑도 했고 현우 전에도 했고 현우 후에 미국에서도 했다.
근데... 내 사랑의 절대치가 현우라고 생각하는 거 같다,
너희들은... 아니다.
많은 사랑들 중에서 가슴 아팠던 사랑일 뿐이다, 현우는...
내 사랑은 그래. 사랑하기로 하면 그게 사랑이야. 이제 난.. 널
사랑하겠다.
준서 ...최 하경. 니 맘대로, 그냥 다 결정한 거냐?
하경 짝사랑은 안 한다. 니가 날 편히 좋아할 수 있을지, 시간을 갖
고 알려주라. 난 준비됐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내린다) 출발한
다.
강한 시동음을 내고 빠르게 출발하는 하경의 차.
다부진 얼굴로 앞만 보고 달리는 하경의 모습을 바라보는 준서.
$#51. 학회 숙소
침대에 웅크리고 누워있는 수연.
문이 벌컥 열리자, 수연이 놀라서 벌떡 몸을 일으킨다.
현우 나와라. 바다 보러 가자.
$#52. 바닷가
모래사장에 오두마니 앉은 둘.
멀찍이 상가들로부터 울려나오는 캐롤송과 사람들의 축제소리.
현우 밤바다가 이렇구나. 대단할 것도 없네, 뭐. 안 그러냐?
수연 그 꼬마애처럼... 나도 그 분한테 아빠라고 불러보고 싶었어요.
아버지가 아니구요.
현우 ...(주머니에서 장갑을 꺼낸다) 춥겠다, 너.
장갑을 주려다 말고 다시 주머니에 넣곤 수연의 손을 잡는 현우.
수연, 현우를 바라본다.
수연의 손을 잡은 채 자신의 주머니 안에 넣는다.
현우 손 얼었다. 이 안에서 같이 녹이자..
수연 (어색한 듯)
현우 ...수연아.
수연 네?
현우 겁난다.
수연 ...
현우 너랑 연애하고 싶어져.
수연 ...(여린 미소)
현우 근데, 그럴 일은 없을 거다.
수연 (굳는다)... 연애, 그런 거... 이젠 지겹죠, 선생님?
현우 (바다만 바라보며) 아니. 난 아직도 하경이 기다려.
눈을 내리깐 채 현우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려하다가 이내 그 상태로 우울히
앉아있다.
파도 소리만 들린 채 아무 말도 없이 앉아있는 둘.
포즈.
제 10 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