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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장 / 근본주의 교리에 대한 고찰
필자는 우선 성경의 내용 비판 보다는 우리나라에서 판을 치고 있는 기독교 근본주의 교리에
대해 지적하고 넘어갈까 한다. 이점을 가장 먼저 다루는 이유는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점이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근본주의자들의 유치찬란한 교리가 기독교가 보여주는 모든 문제
의 출발점이라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기독교는 의심없는 믿음, 즉 맹신을 신자들에게 강요하
면서 사람들을 바보로 만들고 있다.
"내가 지혜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있는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고린도전서 1장 19절]
"그리스도 주 예수를 아는 지식 이외의 모든 지식은 배설물과 같다." [빌립보서 3장 8절]
지식에 대해 무지한 자만이 용감할 수 있다. 성경의 정체를 모르는 사람만이 더욱 독실한 신앙
을 가질 수 있고 고집을 부린다. 기독교, 그리고 성경자체가 여러분께 맹신을 강요하고 있으며
합리성을 철저히 배격하고 있다. 그것이 과연 올바른 삶일까?
▶ 참을수 없는 예수천국 불신지옥의 가벼움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이래 수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그리고 자식을 낳고 죽어갔다.
기독교가, 그리고 여호와가 모든 인류와 대 우주를 창조한 절대신이라면 이 존재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절대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믿음의 기회가 공평해지는 것이다.
쉽게 예를 들어 보자, 예수가 뭔지도 모르고 살다가 죽은 고려시대의 사람이 최후의 심판때
예수 안믿었다고 지옥에 간다면 이것은 과연 타당한 말일까? 이 말대로 라면, 우리의 조상들은
모두 다 지옥에 가있을 것이다.
그리고 성경을 보라! 여호와(야훼)라는 신은 오로지 유대인만이 믿는 민족신일 뿐이었고, 여호
와에 대해서 알고 있는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주변국 사람들 밖에는 없을 것이다. 더욱이 신명
기에는 모압사람과 암몬사람의 자손들의 십대는 물론, 영원히 여호와의 성전에 올수 없다고
규정해 놓았다. 이래 가지고서야 모든 인류를 권장하는 세계신 이라고 할 수가 있을까?
여호와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이 지구상에 태반 이었으므로 믿음의 기회는 오로지 유대인
들에게만 있었던 것이다. 도데체 나머지 사람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그리고, 구약을 보라!
이방인들에게 추악한 저주를 내뿜는 추악한 이스라엘의 고대잡신 여호와의 모습을!
그 문제 때문에 예수가 이 땅에 왔었다고 말할것인가? 그러나 예수가 등장한 이후, 기독교가
전세계 곳곳에 전파된 역사는 얼마나 되는가? 기껏해야 100년남짓?
그렇다면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중국인들은, 인도인들은 ,우리나라의 조상들은..........
이들은 예수가 뭔지도 십자가가 뭔지도 모르고 한평생을 살다갔다. 역시 믿음의 기회라고는
털끝 만큼도 없었다는 이야기다.
물론 카톨릭 신자들은 예수를 알기 이전에 세상을 등진 과거인들은 양심의 정도에 따라서
여호와가 심판한다고 주장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신교에서는 예정설(豫定說) 내지는 소명설
(召命說)에 의해서 예수를 몰랐다는 자체가 신의 선택에서 벗어나 있었다는 교리해석을 내리
는 경우가 많다.
단테의 신곡을 보면 소크라테스가 여호와를 몰랐다는 이유만으로 지옥에서 고통받는 대목이 나오는데
이는 중세 1000년동안 카톨릭의 기본교리였고 그 뒤를 잇는 개신교 근본주의자 대부분이 받아들이는
입장이기도 하다. 즉, 여호와를 몰랐거나 알면서도 받아들이지 않은건 전적으로 인간 개인의 의지
때문이라기보다는 신의 생득(生得)적인 의지가 작용해서라는 것이다.
그리고 의인이라고 불리는 노아는 대 홍수때 자기 가족들만 홍수에서 구했다. 그가 다른 사람
들을 구하기 위해서 노력했다는 대목은 아무리 찾으려고 해도 찾을수가 없다.
2차대전 당시 나치의 유대인 학살 때 한사람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전재산을 모두 쏟아부은 쉰
들러를 떠올리지 않을수 없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감독이 원래 처음 생각한 제목은 '쉰들러
의 방주'였다고 한다. 쉰들러에 비해 노아가 참으로 초라해 보이는 것은 왜일까? 노아가 과연
의인이라고 불릴만한 인물일까?
현재 자신들만의 신이 유일신이고 다른신은 모두 거짓이라서 믿어봤자 모두 지옥이라는 종교
는 기독교 계열밖에 없다. (물론 최근에 등장한 일부 사이비 신흥종교가 비슷한 주장을 한다.)
이슬람교, 불교, 천도교...등등 다른 종교는 기독교와 같은 주장을 하고 있지 않으며, 타종교에
게도 구원, 영생, 좋은 환생등을 받는다고 했지만 오로지 기독교 계열만이 자신들의 신을
안 믿으면 지옥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개신교도들이 말하는 지옥이라는 곳에는 단군부터 시작해서, 이순신, 세종대왕, 최영, 율곡,
등등등....예수가 뭔지도 몰랐던 우리의 조상들은 한사람도 빠짐없이 지옥에 계실것이다.
따라서 기독교는 자신들의 주장을 주장하려면 위의 모순점을 반드시 해명하지 않으면 않된다.
필자는 이러한 질문을 목사에게 던진적이 있었는데 그는 내 질문을 초보적인 것이라고 말하며
회피 해버렸다. 초보적? 하지만, 동시에 이 질문은 인간으로서 기독교에 던지는 가장 원초적
인 질문인 것이다.
기독교가 스스로 주장하듯이, 기독교만이 오직 유일한 진리이고, 인간이 모두 죄인이라서 예
수믿지 않으면 모두 지옥이라고 주장하려면 위의 의문을 풀지않으면 않된다.
그렇지 않다면 여태껏 기독교가 주장하는 모든 주장은 거짓이고, 기독교의 교리는 수천년동안
사람들을 괴롭히던 궤변(詭辯)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할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기독교를 알고는 있었지만 다른종교를 믿거나 아무 종교도 믿지않는 무종교인
중에도 정말로 착하고 살았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기독교에서는 무신론자나 이교도는 모조리 지옥행이 예정되어 있으며, 이는 한치의 오류도 있
을 수 없으며 신이 미리 예정하여 둔 일이라고 주장한다. 도덕주의자, 철학자, 자선사업가 등
등을 막론하고 어떤 선행으로도 지옥행은 피할 수가 없다. 인간은 태어날때부터 원죄(原罪)를
짊어지고 태어났으므로 어떠한 선행으로도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을 면할길이 없다고 개신
교인들은 주장한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사도행전 4장 12절]
그러나 필자는 진심으로 여러분께 묻고싶다. 지하철로에서 쓰려져있는 취객을 구하려고 머나
먼 이국땅 일본에서 살신성인의 덕을 보여준 불교도 고 이수현청년, 그리고 힌두교를 믿으며
기독교를 믿는 영국에 대항하여 인도의 독립을 이루어낸 마하트마 간디 같은분들도 정녕 지옥
에 가야만 하는가?
그러나 한국의 개신교인들이 추앙해 마지않는 대형교회 목사들을 보라. 그들은 지키지도 못할
구약의 율법중에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십일조 조항이나 끄집어내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십일조나 걷어가고 있다. 이들중에 과연 누가 신의 뜻에 가깝게 사는걸까?
더욱 웃기는 일은 유대인도 예수를 안 믿는다는 점이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들이 모두 유대인
들인데, 오늘날의 유대인들은 아직도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 하지 않는다.
개신교인들의 싸구려 교리 대로 라면 예수를 부정하는 유대인들이야말로 지옥에 가야할 판국
이다. 여호와에게 선택받았다는 유대 민족이 예수 안믿었다는 이유로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점에 모순을 느끼지 않는가? "샬롬"이라는 유대인의 인사를 남발하는 기독교인들은 이 점에
대해서는 생각해 보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개신교의 천국에는 누가 가는가?
물론 손양원 목사님이나 주기철 목사님 같으신 존경할 만한 분들도 당연히 천국가시겠지만,
단순히 살아생전 예수 믿었다는 그 단 한가지 이유만으로 속물근성의 지저분한 마음으로 가득
찬 기독교인들과, 온갖 악행을 저지르다가 마지막에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도 함께 천국행이
될 것이다.
교도소에서 제일 인기있는 종교가 기독교라고 한다. 불교는 윤회설과 후생에 전생의 업을 이
어간다는 믿음 때문에 인기가 별로 없다. 그러나 기독교는 교리가 워낙 단순 한데다, 무슨죄를
져도 예수만 믿으면 무조건 천국이 보장된다는 교리로 최고의 인기를 차지한다. 따라서 사형
수가 사형 당하기 전에 가장 많이 개종하는 종교 역시 기독교 라고 한다.
필자는 인터넷의 안티기독교 사이트에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을 만났다.
그중엔, 다른 기독교인이 저지른 배타행위를 대신 사죄하면서 자신에게 대신 욕을 하라는 높
은 인격을 지니고 있는 참기독교인도 있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수를 차지한건 욕설과 반말
을 지껄이며 "너희는 지옥에가서 이를 갈게된다"는 등의 온갖 저주를 퍼붓는 기독교인들 이었
다. 예수만 믿었지 인간성의 됨됨이는 되먹지 못한 이런 인간들이 살아생전 단순히 예수 믿었
다는 이유만으로 천국간다면, 나는 차라리 지옥에 가서 세종대왕님이나 이순신 장군님들을 만
나 뵙고 불장난 이나 하련다. 그런 인간들의 영혼이 잔뜩 모여있는 곳이 과연 천국일까 아니면
지옥일까? 도대체 여호와라는 신은 사람이 이승에서 한 짓은 보지 않고, 오직 자기를 어떻게
떠받들었는지만으로 평가하는 편협한 쓰레기 잡신이란 말인가?
필자는 기독교인 여러분에게 '예수천국 불신지옥'이라는 상식 이하의 싸구려 교리에 대해서
깊이 생각해 보기를 권한다.
▶ 믿음이 우선인가? 사랑이 우선인가?
기독교 근본주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믿음과 사랑중에서 믿음에 치중한다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은 불신자들을 개종시키기 위해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주장하며 다가온다.
그리고 그 증거로서 고린도전서의 사랑장을 내세운다. 그러나 성경전반에서 중요시 하고 있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믿음이다! 그것도 무시무시한 맹신(盲信)을 요구하고 있다.
목사들이 믿음의 시험에 대해서 설교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성경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
험과, 욥의 시험이다. 두 가지 시험 모두 여호와는 믿음의 댓가로 피를 원하고 있다. 구약시대
에 유대인들은 자신의 죄를 속죄하는 방법으로 양이나 닭, 염소, 소 등의 가축을 잡아서 여호
와께 번제를 드리는 것이었다. 그들은 어떤 형태이든 생물의 피와 육을 드림으로써 자신의 죄
가 사해진다고 생각했다.
아브라함에게 여호와는 노경에 간신히 얻은 자식인 이삭을 손수 죽여서 제물로 바치라고 명령
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라는 자는 여호와의 명령에 아들을 제단위에 올려놓고 칼로 찔
러 죽이려고 했다. 참으로 끔직한 일이다. 결국, 여호와는 그만두라는 말과 함께 모든 것이 믿
음의 시험이었음을 알려주지만, 이미 아브라함은 여호와의 명령이라면 자식까지 죽여버릴수
있는 독한 마음을 품고 있었다. 한술 더 떠서 사사기의 입다는 자신의 딸을 여호와에게 제물로
바쳤다.
믿음에 대해서 설교할 때 항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시험에 대해서 설교하는 한국의 목사들이
여! 그대들은 여호와의 명령이라면 자식까지도 죽여 버릴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제대로 된 신이라면 그런 요구따위는 하지도 말아야 한다. 그런 요구를 하는것 자체가 아주 유
치한 짓이다. 이 세상의 어느 독재자도 자신에 대한 충성심을 확인하기 위해 자기손으로 직접
가족을 죽이라는 시험을 내리지 않는다.
만약 어떤 신이 당신에게 나타나 그런 요구를 했다고 가정해 보자. 제 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신이 숭배했던 신이 악마엿음을 깨닫고 숭배행위를 그만 두었을겄이다. 따라서 여호와의 충
격적인 명령을 들은 아브라함은 "그런 명령은 따를수 없읍니다."라고 떳떳하게 말할수 있었어
야 했다. 그것이 바로 올바른 믿음이고 제대로 된 믿음이다. 그렇지 않고 명령대로 실행하려는
것은 광신자의 미친짓이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명령대로 자식을 죽이려고 했다. 사사기의 입다는 자기딸을 죽여서 여호와
의 제물로 바쳤다. 성경은 그들을 칭찬한다. 목사들도 그들의 믿음이 본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추켜세운다. 성경에서는 인륜과 도덕을 가차없이 내동댕이 친 패륜마져도 거룩한 믿음으로 칭
송되고 있다.
고린도전서 13장에는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고린도 전서의 그 구절을 제외하고 보면 성경 전반에서 강요하는 신앙자가 제
일로 우선해야할 사항은 신에 대한 맹목적 믿음이다. 우리나라 목사들의 설교 역시 사랑 보다
는 믿음을 강요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나라의 개신교가 근본주의에 찌들어 있다는 것
을 단적으로 잘 나타내는 것이다. 그들은 일단 불신자들에게 사랑이라는 단어로 다가가서 교
인으로 만들고 나면 그 이후에 사랑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
목사들은 아브라함의 일화를 들어 믿음의 신앙을 강요하는 설교를 자주 한다. 그 성경구절을
내세우는 이유는 아주 당연하다. 소중한 아들까지도 여호와에게 바칠 준비가 되어있는 아브라
함처럼, 기독교 신자들도 전재산까지도 바칠수 있는 강한 믿음을 강요하고 있는것이다.
목사들이여! 이제 믿음이 아니라 사랑에 대해서 설교해야 하지 옳지 않을까?
한국의 목사들이 하는 설교의 주제는 대부분 믿음에 대한것뿐이다. 그래서야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할수 있겠는가? 계속해서 믿음을 강조하는 설교만을 앞세운다면 한국의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헌금만을 강요한다고 밖에는 볼수 없다.
▶ 기독교는 불가지론을 주장할 자격이 없다
사도행전17장에서 바울은 알 수 없는 신의 제단 앞에 서서 불가지론(不可知論)을 설명한다.
불가지론이라는 것은 인간은 진리를 알수 없다는 교설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불가지론을 내세우면서 기독교를 전파하려는것부터가 모순일 수밖에 없다.
불가지론이라고 한다면 사물의 본질이나 실재(實在)를 비롯하여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문제
는 알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알수 없다는 불가지론을 내세우면서 신(神)이 어떤 존재인지
다 알고 있다는 듯이 기독교를 전파 하려고 한다. 진정 불가지론을 내세울수 밖에 없는것은 이
세상에 무신론자(無神論者)뿐 일것이다. 인간의 경험을 초월하는 알지 못하기에 무신론이 되
는 것이다. 그래서 불가지론으로 종교를 설파하려는 것 자체가 모순된 행동이라고 밖에 볼수
없다. 게다가 신에게 이름까지 붙여놓은 종교가 불가지론을 내세우는것은 더욱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어처구니 없게도 오늘날의 기독교인들도 자신의 종교를 전파하기 위해 사도행전의 바울과 같
이 불가지론을 내세우는 경우가 많다. 예를들어, "이 우주의 만물이 우연히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유명한 과학자들의 말을 근거로 제시하거나, "인간의 생각으론 절대자의 위대한
뜻을 알지 못한다"라고 주장한다.
그 기독교인들은 학교에서 논리공부나 제대로 했는지 의심이 간다. 이 우주의 만물이 우연히
존재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과학자의 말은 상당히 타당할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유신론을
직접적으로 증명하지를 못한다. 또한, 유신론을 완벽하게 증거한다고 가정하더라도 우주만물
의 법칙을 조정하는 절대자 즉 신이 기독교의 여호와라는 점에도 절대 근거가 될 수가 없다.
이것은 기독교인들이 아주 흔하게 저지르고 있는 순환논리의 오류이다.
순환논리의 오류라는 것은 논증되어야 하거나, 논증되지 못한 것을 논증의 근거로 하였을 때
뒤따르는 모순이다. 그것을 주장하려면 창조신이 어떻게 기독교의 신, 여호와로 귀결되느냐는
것을 논증하거나 검증해야만한다. 만약 필자가, "이 세상은 우연히 존재할 확률이 낮습니다.
따라서 이 세상은 옥황상제께서 창조 하셨습니다."라고 주장한다면 뭐라고 대꾸 하겠는가?
성경이란 책 이외에 그 어느 곳에서도 찾아 볼수없는 근거를 가정도 아닌 진실 인양 받아 드리
고 난후, 그 위에 모든 사물의 원리를 펴 나가는 것은 치명적인 순환논리의 오류를 발생 시킨
다. (제발, 우리나라의 밝은 앞날을 위해 교회에서는 학생들에게 이런 엉터리 논증을 교육 시
키지 말라. 한창 생각하고 사고하면서 머리를 회전시켜야 할 학생들의 머리를 굳어 버리게 만
들까 겁난다.)
어느 민족을 보나, 그 나름대로 절대주의 이름이있고, 그 나름대로 체계적 이론이있다.
그 절대자가 조물주는 안되는가? 천지신명은 어떻고? 또 서아프리카의 우남보테 는 왜 안되
는가? 기독교인들은 그 수많은 세계의 창조주들중에 하나에 지나지 않는 여호와를 안믿으면
모조리 지옥이라고 생떼를 쓰고 있다. 따라서, 기독교는 "절대주는 기독교의 여호와다" 라고
주장을 하려면, 그것을 보조할 객관적인 이론이 성립되어야 할것이며, 기독교를 믿을 믿음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고 죽어버린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 해명 해내야만 할것이다.
"기독교에 들어가 보았더니 그곳에 절대주가 있더라", "기독교의 여호와를 믿지 않으면 모두
지옥에 가야만한다" 라고 주장하려면 위의 모순점에 대해서 반드시 해명 해야만 하는 것이다.
구한말, 마태오 리치의 '천주실의'가 우리나라의 유학자들에 의해 번역 된적이 있다.
그 책의 서문에는 "천주(天主)가 전세계에 돌아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려면 얼마나 바쁘겠는
가? 또, 복음이 들어오기전의 우리민족에게는 하나님이 없었겠는가?" 라고 유학자들이 언급했
다고 한다. 그렇다. 그 말이 바로 정답인 것이다. 하나님, 또는 진리는 어느 민족, 어느 종교에
게나 있다고 생각한다.
오로지 기독교의 신만이 진리이고, 다른종교는 우상숭배요, 기독교를 안믿으면 모조리 지옥이
라는 개신교의 사고방식은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를 싸구려 종교집단으로 타락시켜 버렸다.
▶ 죄를 포맷(Format) 하기를 반복하는 기독교인
인간에 대해서 생각할 때 인간의 본성은 선하다는 성선설과, 인간의 본성은 악하다는 성악설
로 대표되는 논리가 있다. 기독교는 철저히 성악설에 근거한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
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
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요한복음 8장 44절]
위의 구절에서 예수는 인간 자체가 마귀의 후손 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내가 전에 행한 것같이 모든 생물을 멸하지 아니하리니."
[창세기 8장 21절]
사람이 어려서부터 악하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공동번역판에는 "사람은 어려서부터 악한 마
음을 품게 마련"이라고 되어 있는데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악하게 태어난다는 이야기 인가?
노아의 홍수로 다 쓸어 버리고 의인이라는 노아의 가족만 살려줘 놓고서는 한다는 말이 어려
서부터 악하다? 그래서 노아의 홍수에서나 아말렉족 대학살에서 처럼 죄도 짓지 않은 갓난
아이들까지도 가리지 않고 다 죽이는 것인가?
아예, 구약에서는 여자가 잉태를 하는 것 자체를 죄라고 규정하고 있다. 레위기 12장에서는 여성의
임신 자체를 부정하다고 선포하고 있다. 이것은 시편 51장 5절에서 다윗이 자신의 출생에 대해서
이야기 할때 "모친이 죄중에 나를 잉태 하였다."라고 탄식하는 구절에서 아주 잘 나타난다. 그렇다면
그 원죄는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가?
"동산 중앙에 있는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시느니라." [창세기 3
장 3절~5절]
선악과에 대한 부분에서 여호와는 분명 거짓말을 하고있다. 여호와는 선악과를 먹으면 죽게
된다고 말했으나 뱀은 진실되게 선악과를 먹어도 안죽는다고 가르쳐 주었다. 만약 뱀의 말을
안들었으면 인간은 지금도 축생과 같은 미물처럼 살고있을 것이다. 여호와가 인간을 만든 원
래 목적은 바로 아무것도 모르는 짐승을 만들었던 것인가? 아담과 이브가 선악과를 먹은 것에
대한 여호와의 신경질적 반응은 지식과 신앙은 결코 양립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같다. 그냥
여호와를 맹신만 하라는 것인가? 어쨋든간에 피조물인 인간이 여호와의 명령을 거역하고 선
악과를 먹은 죄는 대대손손으로 유전 되었다고 한다. 이 죄를 기독교인들은 원죄(original sin)
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원죄는 인간이 아니라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닐까? 여호와야 말로 쓸데없이 금기를 만
들어 놓고 그것을 깼다고 가혹한 연좌제(緣坐制)의 형벌을 내린 죄의식을 느껴야 한다. 애초에
선악과를 만들 때 인간이 그걸 따먹을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을 전능한 신이 몰랐을까? 전통적
인 신학의 대답으로는, 신은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었고 자유의지를 악용한 인간은 벌을 받
아 마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프리드리히 니체는 이렇게 주장한다.
"책임을 찾는 모든 곳엔 복수의 본능이 있었다. 이 복수본능이 수천년 동안 인간의 주인이 됐
다....(중략)....의지에 관한 이론, 이 치명적인 거짓말은 처벌을 위해 발명된 것이다." [우상의
황혼 / 반그리스도(니체전집 9) / 송무 역 / 청하]
자유의지론은 열등한 복수본능이 만들어낸 허구라는 이야기다. 또한 사람이 따먹을 것을 미리
알지 못하고 그것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전지(全知)에 문제가 있고, 또 따먹는 것을 따먹지 못하도록
하지 못한 것은 전능(全能)에 문제가 있다. 반대로 이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선악과를
만들고 따먹도록 내버려 두었다면 니체의 주장대로 여호와의 도덕성에 크나 큰 문제가 있다고
할 수가 있다. 더욱이 따먹는 것에 대한 대가가 대대손손 원죄로 이어진다고 한다면 선악과를
만들지 말거나 그런 명령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가정에서도 칼을 아무데나 놓아서 아이들이 손을 베었다면 아이들이 야단을 맞기도 하지만 그렇게
칼을 조심 없이 놓아둔 어머니에게도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물며 전지전능하다는 신이라는
작자가 사람이 따먹을 것을 다 알고 있으면서 선악과를 만들었다는 것은 여호와는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흉폭한 우주의 절대 독재자 밖에 될 수 없음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런데 사실, 기독교가 등장하기 전의 유대교에서는 원죄라는 개념이 제대로 정립된적이 없었
다. 예를 들어 욥기를 보면 그것을 알수가 있다.
여호와는 '동방에서 가장 큰 자'라는 욥에게 믿음의 시험을 내린다. 욥은 모든 재산을 빼앗기
고, 모든 종들을 죽어버리고, 그의 자녀 10남매(아들7, 딸3)까지도 일시에 몰살시키는 비극을
당한다. 게다가 그의 몸까지 옴으로 썩어든다. (믿음의 시험치고는 정말 대단하다. 아들,딸,종
들까지 죽여 버렸으니!)
그를 위로하러 온 친구들은 죄를 지었기에 벌은 받은것이라며 욥을 꾸짖으고 여호와에게 용서
를 빌라고 충고한다. 그러나 욥은 내가 무슨 죄가 있다고 무엇을 자복하며 무슨 용서를 빌라는
말이냐고 항변한다.
"욥이 스스로 의롭게 여기므로 그 세 사람의 대답이 그치매." [욥기 32장 1절]
개역한글판의 구절이 애매모호하여 공동번역판의 동구절을 다시 올린다.
"이렇듯이 욥이 자기의 무죄를 주장하자 세 친구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욥기 32장 1절
/ 공동번역판]
욥은 자신이 모르는 사이에 지었을 수 있는 죄는 고사하고 원죄 따위까지도 인정하지도 않는
것이다. 요즘의 기독교인들이나 목사들은 그를 교만하며 불순종한자라고 힐난하며 저주할 것
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욥의 친구들과 엘리후는 욥에게 죄를 사죄하고 용서를 빌라고 계속
해서 다그친다. 그런데 여호와는 욥을 의롭다 하고 죄를 자복하고 용서를 빌라고 충고한 그의
친구들에게는 위선자라 엄하게 꾸짖으며 속죄제를 바치라고 요구한다.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
라. 그런즉 너희는 수송아지 일곱과 수양 일곱을 취하여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
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의 우
매한대로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정당하지 못함이니라." [욥기 42장 7~8절]
원죄론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터툴리안(terturian: AD 155~230)이라는 카르타고 태생의 사람
이다. 원래 그의 양친은 이교도였고 그 또한 법률가로서 40세에 기독교로 개종을 한 로마인 이
었다. 터툴리안이 사제였다는 주장도 있기는 하지만 객관적인 사료들중 어느 무엇도 그 사람
이 사제였다는것을 증명하는 것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의 주장은 곧 잊혀졌고, 다시 원죄론이 나오게 된것은 고백록(Confession
s : 참회록이라고도 함)으로 알려진 어거스틴(Augustinus)에 의해서이다. 그는 354년 북아프
리카의 누미디아의 도읍에서 태어났으며 모친은 기독교인이었으나 그의 부친은 이교도인으로
알려져 있다.
어거스틴 이전의 교부들은 인간밖에서 악(惡)을 찾으려고 했지만, 어거스틴은 인간의 내면에
서 찾으려고 했다. 즉 인간의 의지의 왜곡을 악으로 본것이다. 또한 어거스틴은 젊었을 때 방
종의 삶을 살고 사생아까지 가졌던 경험을 통해 성(SEX)을 지극히 죄악시했으며, 인간이 가진
성욕이 '원죄'라고 규정했다.
그는 자신과는 다른 생각을 갖고있던 펠라기우스(Pelagius)라는 성직자를 논쟁끝에 이단의 죄
를 씌워, 결국 430년경 에베소 교회에서 정죄 당하게 만들었다. 어거스틴은 "인간의 원죄는 자
손에게도 이어지고 세례등을 통해 구원 받을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구속만이 유일한 죄 씼음이
고, 아담은 원죄로 인해 죽었다"는 논리를 편 반면, 펠라기우스는 "아담은 처음부터 죽을 사람
이었고 새로 출생한 인간은 죄를 짓기 이전의 아담과 같다. 또 율법(10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도 구원 받을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논리는 많은 지지자들을 등에 업은 어거스틴에게
밀릴수 밖에 없었고 그 결과 그는 단죄당했다.
결국 이런 배경속에서 등장한 원죄론은 신에 대한 의문없는 믿음을 강요했고, 그 결과 피지배
계층에게는 절대적인 굴레인 원죄를 씌워 그들의 삶과 의지를 구속해버렸다.
그리고, 원죄론을 믿는 기독교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은 참으로 절망적이고 비관적이라고 밖
에 볼 수 없다. 이미, 노아의 방주에서 죄로 인해 타락한 인간들이 전부 멸망해 버렸다고 하면
서도, 성경의 마지막 요한계시록은 종말론으로 결론을 맺는다.
앞서 언급한 창세기 8장 21절에서는 노아의 홍수 이후에 여호와는 다시는 생물을 멸하지 않겠
다고 분명히 말해 놓았다. 그래놓고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종말을 예언한다. 여호와는 변덕장
이 신인가? (이 구절을 놓고 물로써 다시 심판하지 않겠다는 언급일뿐 이라고 반박하는 기독
교인들이 있다. 말장난을 하자는 것인가? 말 그대로 '모든 생명을 멸하지 않겠다'는 말은 물이
든, 불이든, 폭탄 이든, 어떤 방법이든지 말 그대로 다시는 모든 생명을 멸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선택받은 노아의 자손인 우리도 타락하여 또 다시 종말을 피할수 없다는 논리는 무엇
으로 설명해야 하는가? 또, 여호와에게 선택받은 의인 롯과 그의 두 딸만 구하고 소돔 성 안에
있던 나머지 사람들은 타락했다는 이유로 불로 심판을 내린다. 그런데 정작 의인이라며 선택
받은 롯과 두 딸이 동침해서 자손을 낳는 엽기적인 짓을 저지른 것은 뭐라고 말해야 하나?
선택받은 의인인 노아와 롯이 그러할 진데, 인류의 종말에서 구원받을 기독교인이 언제 또 타
락을 저지르게 될지 모르는 일 아닌가? 인간은 신의 인형이 아니다. 스스로의 자유 의지를 지
닌 존재이기 때문이다.
또, 십계명의 제2계명에 의하면 아비의 죄는 아들 3~4대까지만 이른다고 한다.
아무리 무거운 죄도 3~4대만 지나면 그 후에는 아버지의 죄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의 원죄가 셀수도 없는 후손에게도 이어지는것은 무엇
으로 설명을 해야 할까? 그리고, 또 다시 타락한 인간의 죄를 씻기 위해 보내어진 자가 예수라
고 한다. 그러나 그가 무슨 증거로 우리의 죄를 대속 했는가?
인간은 완벽하지 못하기에 도덕적 결함들을 안고 산다. 그걸 원죄라 부른다면 좋다.
그런데, 불완전한 우리가 그러한 한계점을 갖고 살아가는 것과 그걸 용서하는게 여호와이고
예수라는 것과 무슨 관계가 있는가?
기독교인들의 논거는 이러하다. "인간은 도덕적으로 불완전한 존재이다 - (중간 생략) - 그러
므로 예수를 믿어야 구원 받는다."
과연 예수가 무엇이길래 우리의 죄를 사하여 준다는 것인가? 그가 신의 아들이라는 증거는 있
는가? 그리고 그의 죽음이 인간의 죄를 대속했다는 것은 무엇으로 증거 한단 말인가?
자그만한 유대땅에서 나타난 어느 종교가의 탄생과 죽음에 우리민족이 혹은 아메리카의 인디언이,
중국인들이 무슨 상관이 있는가? 기독교인의 삼단논법에서는 중간부분이 빠져있다. 그대들은
가운데를 채워 볼 자신이 있는가? 그렇지 않다면 함부로 원죄론을 떠들고 다니라 마라!
기독교는 오로지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 치우쳐져 있다.
예수 믿으면 천국이요 안믿으면 지옥이고, 성악설이 진리요 성선설은 잘못 되었다고 보는 이
분법적인 흑백논리다. 그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학살을 당하고, 마녀
와 이단으로 몰려 처참하게 죽음을 당했는가? 기독교는 인간을 죄인 이라고 하는 흑백논리에
빠져 있다. 어찌 인간의 마음속에 선, 또는 악만이 자리잡고 있는것인가?
기독교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죄책감을 적나라하게 자극한다. 그리고는 예수가 우리의 죄를
사해준다고 한다. 마치 병주고 약 주듯이, 사람들은 이런 챗바퀴에서 심적으로 점점 매이게 된
다. 자신의 죄책감을 포맷(format) 해준다는 믿음에서 떠날래야 떠날 수가 없다. 계속적인 범
죄함과 포맷함(회계) 속에 익숙해져 버려서 때로는 죄를 짓는 다는 것에 대해서 둔감해지게 된
다. 그렇다! 범죄함에 대해서 둔감해지게 만든다.
불교에서는 그 모든 것을 업으로 돌린다. 현생에 악덕한 업을 쌓았으면 후생에 그것이 업이 되
어 그를 괴롭힌다고 한다. 그러나 기독교에서는 그러한 것이 전혀 없다. (필자는 예를 든것일
뿐, 불교신자가 절대 아니니 오해마시길.)
마태복음 20장의 예수가 말한 포도나무밭 일꾼 우화에서 늦게온 일꾼도 같은 보상을 받듯이,
어떠한 죄를 짓더라도 예수를 믿기만 하면 모든 죄가 사해 진다고 한다.
교도소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종교는 단연코 기독교이다. 온갖 짐승같은 짓을 저지르고 사형
을 선고받은 사람도 사형당하기 전에 기독교로 개종하면 모든 죄가 씻기어 천국을 보장 받는
다. 그러나 생각해 보라! 짐승같은 짓을 저지른 사람이 회개해 봤자 그의 마음이 어떤 수준이
라는 것인가는 뻔한 것이다. 말하자면 죽음에 직면한 인간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라고나
할까?
잘못을 저질러도 교회가서 기도하면 그만이다. 기도라는 것은 참으로 값싼 것이다. 노력도 안
드는 것일뿐더러, 그저 입으로만 중얼거리면 된다. 기독교인들이 타종교인에 비해 인격적으로
신뢰받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자신이 잘못된 마음을 품었다는 것을 깨달았으면 피해입은 사람에게 사죄하고 다시는 그런일
이 없도록 마음을 고쳐먹는 것이 중요하지 않은가? 예수에게 백번 천번 죄를 사해 달라고 기
도해도 그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이 틀이 변화하지 않으면 다 헛된일이 아닌가?
그 사람의 기본적인 마음 자체는 조금도 변화하지 않았는데 예수에게 죄를 사함을 받았다고
착각속에 빠져 사는 기독교인들을 보면 정말 어처구니 없다. 예수에게 죄를 사해 달라고 기도
해보기 전에 스스로의 마음이 과연 변화 했는지에 대해 한번 뒤돌아 보도록 권한다.
기독교를 믿게되면 인간이 죄인으로 밖에는 안보인다. 기독교의 전도방식은 인간의 마음속에
있는 따뜻하고 선한마음을 끄집어 내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를 죄인으로 몰아붙이며 신에
의지하게끔 만든다. 그리고 끝없이 범죄하고 회개하는 현상을 계속 거듭하게 만든다.
기독교는 원죄론을 들먹이며 인간을 죄인으로 몰아붙이며 전도하기 보다, 인간의 마음속에 있
는 아름답고 선한 마음을 끄집어 내는 것으로 전도방법이 바뀌어야 하지 않을까?
성악설이라는 흑백논리가 아닌, 인간의 마음에는 두가지가 함께 공존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회개하라"가 아니라, "선한 마음을 품어라"라고 전도해야 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