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다리>와 臥牛山(와우산) 그리고 <서교동성당>
잔다리/ 마음속에 편안함과 여유를 주는 이름 '잔다리'...
우리말이 주는 독특한 맛을 느끼게 하는 단어이다.
머리에 짐을 인 아낙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평화로운 시골풍경이 그려지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이다.....
동네가 細橋{잔다리)의 서쪽 지형이 낮은 곳이어서 '아랫 잔다리'라고
불리운 서교동의 옛이름이다.
이곳은 양화나루로 가는 길목의 채소밭이 있는 구릉지대였다.
홍대거리라는 지명으로 익숙한 이 일대가 대부분 서교동에 속한다.
작은 이 돌다리들은 하천이 복개되어 그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서교동성당>은 번잡한 골목안에 조용한 모습으로 웅크리고 있다.
좁고 작은 성당의 대지를 잘 살려낸, 언뜻 보면 조금 큰 주택같은 규모이다.
성당의 내부 천정은 八字 형태의 주름진 커텐이 내려진것처럼 과감하다.
그럼에도 답답한 느낌이 없다.
중앙 제대 정면은 큰 원형의 스테인드그라스로 장식 되었다.
이것은 서울대 김교만교수의 작품이다.
그 곳을 통해서 빛이 쏟아져 들어온다. 퍼져나오는 그 빛으로 인해 답답함이
상쇄되게 설계한 것이 아닌가 싶다.
<서교동성당>은 한양대 유희준 교수의 작품이다. 그는 <성나자로 마을>도 설계했다.
지하 대강당은 무대장치가 되어 있어서 [열린 문화 공간]으로 주민들에게도 개방되어
있다고 하는데 직접 보지는 못했다.
일본의 건축계에는 거의 열손가락으로 셈을 해야 할 만큼 많은 <프리츠커상> 수상자들이
있다.
<프리츠커상>은 건축계의 <노벨상>으로 불리운다. 원로급인 <단게 겐조> 그리고 고졸
학력에 트럭운전사 그리고 권투선수 출신인 <안도 다다오>등 많은 이들이 있다.
<안도 다다오>의 건물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있다.
<뮤지엄 산>, <LG아트>,제주도에도 박물관과 미술관이 그에 의하여 설계된 건물이다.
우연히 읽은 <안도 다다오>의 자서전에서 그는 '건축과 권투 모두 한계를 향하여 가고
살아남기 위하여 끝까지 집중해야 하는 공통점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큰상>이란 것을 꼭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닐게다. 꼭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최빈국 아프리카 <브라키나파스>출신 <프란시스 케레>는 아프리카 진흙으로 건축 개념을
바꾸고 사회를 바꾸어 놓은 사람이다.
그도 <프리츠커>상의 영예를 거머쥐었다.
아직도 생존에 급급한 사회인가..... 우리에게는 아직도 <프리츠커상>을 거머쥔 건축가가 없다.
<서교동성당>이 위치한 곳은 마포구 와우산로 25, 이다.
<와우산/일명 몰미산이라고도 한다>은 홍익대 뒷쪽에 위치한 야트막한 산이다.
소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한 산이다.
이 와우산 자락에 판자촌을 허물고 아파트를 지었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로 몰려들어 부풀어버린 서울의 주택 상황은 몹시도 열악했다.
<하꼬방>이라고 불리는 판자촌이 이곳 저곳에 생겨날 수 밖에 없었다.
미국 존슨 대통령 방한시 남산을 비롯한 청계천 일대의 <하꼬방>이 TV를 통해 외국에
중계되면서 나라 망신이라는 여론이 들끌었다.
체면이 참으로 중요한 나라이다.
이 과정에서 건설된 서민 아파트중에 와우아파트도 한 축을 담당하게 된다.
와우아파트는 지어진 기간안에 아파트를 뚝딱지어야 하는데 원가는 턱없이 낮았다.
이해하기 쉽게 지금 기준으로 말하면, 5층 1개동 30세대의 공사 원가는 최고급 현대차
10대 값정도로 상상하면 된다.
입찰에 참가하지 않으면 불이익이 오고, 하청업자에게 도급을 주는 과정에서 공무원 뇌물등
으로 약 10%전후 뜯기니 어쩌겠는가...
1개동 공사비 당시 1100만원/ 뇌물등 125만원. 조사결과 나온 결과이다.
[철근70개 들어갈 곳에 철근 고작 5개 사용되었다. 1제곱미터당 280kg 견디겠끔 설계된 아파트에
입주민의 짐은 평균 900kg로 파악되었다.
원주민이 딱지 팔고 떠난 자리에 주로 중산층이 입주하여 짐이 많았다. 설계기준의 세배가 넘었다.
그리고 물렁한 부토위에 아파트 기둥을 기초로 세웠다.]
1970년 4월 8일 새벽. 서울 시민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상5층 15개동 규모 아파트중에서 1개동이 푹석 내려앉았다. 준공된지 석달 만이다.
붕괴직후 당시 서독의 건축 전공 대학원생들이 사고 원인을 분석하려고 시도했다가 서둘러
귀국하였다. 집을 짓는 재료가 두부 수준임에 경악하고 두손을 들고 떠난 것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시민들을 위한 공원으로 조성되어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었다.
가끔은 귀신 목격담이 나오기도 하는 모양이다.
번잡한 골목 한복판에 아담한 서교동성당의 미사집전 신부의 낮고도 굵은 바리톤급 목소리의
울림이 크다.
제대 중앙의 둥근 원형의 스테인드그라스 창을 통하여 들어오는 빛!
사자의 갈퀴같은 신부님 헤어 스타일!
불경스런 말이나 잠시 동화의 나라에 들어온 것 같은 환상(잡념?)속에서 미사를 드렸다.
지옥에 사는 사람들은 매일 <천국>을 꿈꾼다.
주여! 천국을 꿈꾸지 않게 해주소서.
다만, 하루를 지겹지 않게 해주소서.
일상적이고 사소한 것에서 행복의 씨앗을 펑펑 터트려 주소서.
고영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