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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렇게 썼지만, 전 좀 안녕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지난 목요일부터 자가격리 중이거든요.
어느새 제 몸에 코로나 바이러스가 침투해 있지 뭡니까. 휴일에도 어디 한 번 놀러 나간 적 없고, 집에서 빼고는 항상 마스크도 제대로 썼는데 말이죠.
일명 ‘묻지 마 감염’이 되시겠습니다.
이번 교훈, 아무리 조심해도 걸릴 녀석은 걸린다. ㅋㅋ
여하튼 업무는 많고 할 일도 많은데 본의 아니게 집에 있으려니 출판사 사람들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몸 컨디션도 좋지 않아서 심신이 다 고단합니다.
그나마 위안은 최근 독서한 책이 제법 재미있었다는 것.
이번에 소개할 작품은 ‘위인전 + 의학 + 추리 = 역사서’의 공식을 가진 책입니다.
도서명: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저자: 이지환
* 이 책은 시각장애인 재활통신망 도서관 아이프리 역사 코너에 데이지도서로 제작되어 있습니다.
* 소개글 서평
이틀에 걸쳐 이 감상문을 작성했다. 2022년 03월 18일 23시 30분부터 2022년 03월 19일 05시 10분까지 말이다.
그랬다. 남들 다 자는 시간에 나는 혼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오밤중에 혼자 눈 뜨고 밤을 지새웠다. 그야말로 한숨도 못 잤다.
이유는 몸에 침투한 코로나 바이러스 탓이다. 이 자식이 워낙 사람을 들볶아서 잠을 이루지 못했다.
기왕 잠 못 드는 밤을 보낼 거, 책이나 읽고 서평이나 쓰자 싶어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읽게 됐다.
저자가 무려 현직 정형외과 전문의란다. 비록 마취통증 분야는 아닐지라도 의사가 쓴 책이라 그런지 확실히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진통 및 진정 효과가 있는 것 같다. 그만큼 책이 재미있었다.
역사 속 위인들을 진단하는 홈즈의 후예 -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이 작품은 기본적으로 역사서이다. 그중 위인들의 생애를 되짚는다. 그러나 그들의 업적이 중심이 아닌, 그들의 질병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개한다.
저자는 닥터, 곧 의사가 대탐정 셜록 홈즈의 후예라고 주장한다. 사실 엄밀하게 말해 틀린 말은 아니기도 하다. 아서 코난 도일은 그의 스승 조제프 벨 박사를 모델로 셜록 홈즈를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일화를 근거로 환자를 괴롭히는 병을 진단하는 의사 역시 탐정과 같은 존재라고 말한다. 환자의 증상을 목격자 및 단서 삼아 병증인 범인을 수사하고 특정해 체포하는 것이 명탐정과 다르지 않다고 말이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 속에 발자취를 남긴 10명의 위인들, 성군이자 언어학자 세종대왕, 건축가 가우디,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음악가 모차르트, 철학자 니체, 과학자 마리 퀴리, 화가 모네와 로트레크와 프리다 칼로, 가수 밥 말리를 모신다. 그들이 앓았고, 그리하여 그들의 삶을 바꾼, 아니 개인의 인생뿐 아니라 세계 역사까지 바꾼 그들의 ‘아픔’의 실체를 추적한다.
“내가 궁중에 있을 때에는 조금 불편하기는 하지만 중국에서 온 사신에게 예는 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 허리와 등이 굳고 꼿꼿하여 굽혔다 폈다 하기조차 어렵다.”
먼저 책 제목에도 나와 있는 세종대왕부터 시작한다. 백성을 이끄는 바른 소리 ‘훈민정음’이란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그 체계가 독자적인 언어․문자를 남긴 업적을 세운 그분. 비단 언어뿐만 아니라 과학 및 천문, 농업, 예악, 법제 등 온갖 분야에 관심을 기울였던 그분.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육류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었으며, 운동하는 것을 꺼렸고, 그 바람에 당뇨병과 그 합병증으로 시각장애를 앓았다. 아니, 우리는 그렇게 알고 있다.
출처는 글쎄, 좀 불분명하긴 한데, TV 드라마 등에서 곧잘 이렇게 나왔다. 과거 기록에 당뇨와 비슷한 ‘소갈’이란 말도 등장하고, 왕의 생활을 봐도 활동량이 많지 않았을 테니 이 주장은 상당히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에서 저자는 그 진단에 의문을 표한다. 다방면에 부지런하고 군사전략이나 훈련에도 관심이 많았던 세종이 유독 운동에만 약했던 이유가 따로 있지 않을까?
이때부터 셜록 홈즈의 후예가 되어 환자의 증언 기록 조선왕조실록을 통해 실마리를 수집하고 현재까지 밝혀진 당뇨병의 특성과 비교하며 세종을 괴롭힌 병증의 정체를 추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저자는 위에 따로 발췌한 허리 통증 관련 내용에 주목한다. 20대 초반부터 발현된 무릎과 허리 통증은 30대까지 이어져 차츰 심해졌다. 눈은 40대부터 악화됐다. 하지만 증상의 강도가 들쑥날쑥했다. 어느 날은 눈이 까끌거리고 앞이 잘 안 보이는 증상이 심해졌다가 씻은 듯이 나아지기를 반복했던 것.
나는 세종대왕의 시각장애가 눈이 점차 흐려지다가 아-예 실명한 케이스인 줄 알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알게 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꽤나 쇼킹했다. 보통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당뇨 합병증으로 오는 시각장애가 이렇게 증상 정도가 오락가락할 리 만무하다.
저자는 이처럼 주요 용의자(질병)에 대해 논박하며 차츰 수사 범위를 좁힌다. 그러다 마침내 주요 증상을 토대로 범인을 찾아낸다. 세종은 당뇨를 앓지 않았고, 그의 안질은 당뇨 합병증이 아니며, 세종대왕은 운동을 하지 않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척추에 생긴 염증으로 허리가 유리처럼 약해지고 대나무같이 뻣뻣해지는, 합병증으로 포도막염을 일으켜 눈의 통증과 함께 기능을 불명묘하게 만드는 ‘강직성 척추염’을 앓았기 때문이다. 크흑, 송구하옵니다. 후손의 무지함이 참으로 망극하옵나이다, 전하!
몇 달 전에 <손끝으로 읽는 국정>을 통해 세종의 애민정신을 계승한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의 관현맹인전통예술단 관련 기사를 쓴 적이 있다. 그래서 더 주의 깊게 이 부분을 읽기도 했다. 그나마 기사에 세종은 당뇨 합병증으로 인한 시각장애를 갖게 됐다는 식의 문장 안 써서 다행이다. 그랬으면 그야말로 ‘오보’가 되었을 테니까.
“나, 거지 같은 가우디는 ‘옷차림을 보고 판단하는 이들’ 덕분에 치료를 받지 못해 죽는다. 이를 모두가 알아야 한다. 나는 가난한 사람 곁에서 죽는 게 낫다.”
‘외국의 유명한 건축가’라고만 알고 있었다. 그것이 가우디에 대해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였다. 그가 어느 나라 사람이고, 주로 무엇을 건축했는지는 내 관심사가 아니었다. 하지만 이번에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를 통해 누구보다 신실했고, 자신의 아픔을 건축물에 녹여내며, 성실하게 살았던 건축가 가우디에 대해 알게 됐다.
그는 특발성 소아 관절염을 앓았고, 그 때문에 사교성이 떨어졌으나, 뼈를 닮은 구조물을 통해 자신의 아픔을 건축물로 승화시켰으며, 죽기 직전까지 성당을 건축하는 등 일생 동안 신과 함께하고자 했다. 그의 유작이자 아직도 건축 중인 미완성작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은 가우디 사망 100주년인 2026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단다.
마지막에 가우디가 남긴 유언은 그야말로 절정이었다. 따로 발췌할 정도로 말이다. 책에 소개된 위인 중 그의 죽음이 가장 안타깝게 다가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별시답지 않은 이유로 국민을 징집하는 정부, 돈만 바라보는 가톨릭 사업가, 겉모습으로만 사람을 판단하는 계층들, 이런 것들이 말년의 가우디를 참 힘들게 했다. 그리하여 그는 생애 최초이자 마지막으로 반항적인 유언을 남겨 그 세태에 저항한다. 과연 그를 죽인 건 누구라고 해야 할까?
확실한 건 특발성 소아 관절염만 가우디를 죽인 건 아니라는 것이다. 누구보다 그 마음이 신과 가까웠던 건축가여, 부디 그곳에서는 고통이 없기를.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 - 병으로 위인들의 생애를 보고, 진단으로 그들을 위로하는
이 작품은 제목에 언급된 세종대왕과 가우디뿐 아니라 위에서 소개한 철학자 니체, 소설가 도스토옙스키, 과학자 마리 퀴리 등의 위인들이 앓았던 병을 통해 그들의 생애를 조망한다.
“신은 죽었다”고 선언한 니체는 신학에서 예술로, 예술에서 인간을 위한 철학을 남긴 인물이다. 그는 결코 매독으로 인한 신경증으로 사망한 게 아니다. 그는 어릴 적부터 두통과 불면증에 시달렸고, 그 원인은 뇌질환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리한다. 그러면서 신실한 신학도였고, 예술을 삶의 중심으로 삼았던, 결국에는 인류를 위한 사상을 남긴 철학자의 생애도 더듬는다.
악마의 저주, 럼주 중독자, 도박에 빠진 것으로 유명한 러시아의 문호 도스토옙스키가 겪었던 간질에 대해서도 논한다. 그의 병증이 문학 속에 녹아들었던 점도 언급하며, 자신의 영혼을 빚어 만들었다는 그의 문학과 그의 가련한 삶을 변론한다.
노벨상을 2회나 수상하며, 과학과 의학사에 큰 획을 남긴 마리 퀴리의 삶과 그녀의 연구에 대한 역사도 소개하며 되짚는다.
그런 부분이 묘하게 위대한 업적을 남겼으나 동시에 삶이 고달팠던 위인을 위로하는 것처럼 보였다. 특히 음악가 모차르트의 이야기가 그랬다.
나는 영화 <아마데우스>의 시나리오가 순수한 창작임을 안다. 살리에르와 모차르트 사이의 관계는 돈독했을 뿐이다. 세간에서 제기하는 음모론은 그저 상상일 따름이라는 사실을 잘 안다. 대학교 때 교양으로 수강했던 ‘음악과 음악생활’ 과목에서 담당 교수님이 확실하게 짚어주셨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사인은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누군가는 장티푸스라고 하고, 다른 자료에서는 급성 열병이라고 하고, 여하튼 중구난방이었다. 그런데 이 책에서 꽤 가능성 높은 진단을 접했다. 확실한 건 덜 익게 조리한 비푸 커틀렛․포크 커틀렛을 통한 기생충 감염은 아니라는 부분이다.
“인상적인 쓰레기라니, 멋진 표현인데? 오늘부터 우리는 인상파다!”
누군가를 기린다는 건 그의 삶을 알고 이해하는 일이다. 그가 생전에 했던 생각과 품었던 사상, 그가 왜 그런 선택을 했는지 등을 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며 헤아리는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위인의 생애 중 죽음만은 좀 무심하게 지나치는 경향이 있다. 그가 어떤 이유로 하늘로 돌아가게 되었는지, 그는 어떤 병을 앓았고, 어떤 아픔이 있었고, 그 고통이 그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물론 당시의 의료 기록이 오늘날에 비해 불충분했다는 점은 인정한다. 그럴 수밖에 없었고, 나름 최선이었고, 때문에 본의 아닌 오해가 생겼거나 진실이 규명되지 못했던 건 이해하고 납득이 간다.
그럼에도 허구된 음모론이 위인의 마지막을 장식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들을 제대로 기억하고 기리는 게 아니게 되니까. 그들의 이야기가 한낱 가십으로 소모될 뿐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는 마치 탐정처럼 과거의 기록, 사진 등을 통해 병을 추적해 들어가는 과정을 통해 의학에 대한 쏠쏠한 지식뿐 아니라 우리가 알고 있는 유명인들의 업적 또한 한번 더 되새김질하도록 만든다.
한편으로 새로운 해석도 제시해서 생각의 폭을 넓히기도 한다. 인상주의 화가지만 추상주의에까지 지평을 넓혔다는 모네에 대한 의견이 그랬다. 저자는 ‘백내장’으로 인해 색감을 잃어 추상주의처럼 그림을 그렸을 수도 있다는 당돌한 해석을 내놓았으니까.
물론 타당성이 있는 주장이다.
모네가 백내장 탓에 추상화를 그렸든, 의도적으로 그런 그림을 그렸든, 중요한 건 따로 있다. 그가 끝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는 것.
‘빛의 화가’라 불리던 이가 백내장 때문에 그 빛을 잃는다는 건, 그 얼마나 충격적인 사건이었을까.
한국의 시각장애인 화가 박환 씨의 일화가 생각난다. 물론 그는 추상화가는 아니지만 말이다. 그도 장애를 얻었지만 붓을 놓지 않았다.
이 작품은 딱히 단점을 찾을 수 없었다. 누군가 《세종의 허리 가우디의 뼈》에 감상을 묻는다면, 재미있으니 한번 읽어보시라는 말밖에 할 말이 없다.
특히 내 경험에 비추어 코로나 바이러스에 시달려 진통제가 필요한 독자에게 더욱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당연하지만 코로나와 상관없이 이 작품을 들어도 무방하다. 적극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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