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에는 명동대성당이 있고 수원에는 화성이 있다면, 대전에는 ‘성심당’이 있습니다.
“앞의 둘이 성지인 것은 알겠는데, 웬 빵집?”하고 지적하실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공통점은 천주교와 관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번 호 ‘인터뷰 좋은 사람’은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나누고 기업 운영의 정신을 신앙 안에서 자연스레 드러냄으로써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성심당 임영진(요셉) 대표와 김미진(아녜스) 이사 부부 이야기입니다.
함경도 함주에서 살다가 1ㆍ4 후퇴 때 신앙의 자유를 찾아 아내와 어린 자식들과 함께 어렵사리 남으로 내려온 임길순(암브로시오, 1997년 선종)씨는 피란 길에 ‘가족과 함께 무사히 살아난다면 봉사하는 삶을 살겠다’고 기도했다. 전쟁 후 먹고 살길을 찾아 서울로 올라가던 도중 대전에 멈춰섰다. 대전 역 앞에서 아내(한순덕 마르가리타, 2012년 선종)와 함께 찐빵을 만들어 팔며 그곳에 정착했다. 1956년이었다. 예수 성심(聖心)을 기리는 빵집 ‘성심당’은 이렇게 탄생했다.
대전 중구 은행동 로데오거리, 대전교구 주교좌 대흥동성당이 한눈에 보이는 길 건너편 4층 건물이 성심당(신관)이다. 은행동 153번지가 성심당 주소다. 153이란, 예수님 말씀대로 그물을 치자 큰 고기가 백쉰세 마리나 잡혔다는 요한복음(21,11)에 나오는 그 숫자다.>
창업주에 이어 1980년부터 성심당을 운영하는 아들 임영진 대표는 “빵집을 열면서 아버지께선 피란길에 결심하셨던 것을 바로 실천에 옮기셨다”고 했다. 역 주변 배고픈 이들을 찾아 빵을 나눠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다 빵과 함께 성당을 통해 나오는 옷 등 구호물품들도 함께 나누셨습니다. 어머니는 빵을 만들고, 아버지는 빵과 옷가지를 싸들고 헐벗고 굶주린 이들을 찾아 다니셨지요. 빵 재료를 살 돈으로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셨지요.”
대학 졸업 후 성심당 경영에 뛰어든 임 대표는 아버지의 사랑 나눔을 이어가며 빵 재료, 제조법, 포장, 서비스까지 새롭게 바꿨다. 성심당의 명물 ‘튀김 소보로’와 같은 핵심 제품이 속속 개발됐다.
1980년대 중반 임 대표와 아내 김미진(아녜스) 이사가 함께 알게 된 사랑과 일치의 영성 운동 ‘포콜라레’는 성심당의 이정표가 됐다. 지금까지는 부친의 뜻을 이어 ‘착하게’ 살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포콜라레는 복음을 생활로 실천하도록 이끌었다.
2000년 부부가 필리핀에서 열린 포콜라레 운동의 사회학교에 참석한 것은 새로운 전기가 됐다. 투명 경영, 공유 경제 같은 개념을 알게 됐다. 부부는 귀국 후 어떻게 하면 좋을지 포콜라레 창시자 키아라 루빅(1920~2008)에게 편지를 썼고 답신을 받았다.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마 12,17).
이때부터 부부는 이 말씀을 화두로 모든 것을 바꿔 나갔다. 이전엔 고객과 직원을 위해 어떻게 해야 할까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고객과 직원뿐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고민했다. 실내 장식 하나에도 가난한 사람, 부유한 사람을 모두 생각했다. 사훈도 ‘모든 이가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로 바꿨다. 투명 경영을 위해 법인을 설립하고 주식회사로 바꿨으며, 매출을 공개하고, 직원들과 함께 결산하며, 100% 정직한 납세를 했다.
키아라 루빅이 주창한 공유 경제 개념을 도입해 수익의 3분의 1은 가난한 이들을 위한 몫으로, 3분의 1은 재투자에(사회 인력 양성을 위한 재투자도 포함), 나머지는 직원을 위해 사용한다. 기업 문화를 ‘나눔’ 중심으로, ‘인간’ 중심으로 바꾼 것이다. 매달 직원 1명분의 임금을 제3세계 가난한 이들을 위해 내놓는 일도 시작했다.
어려운 시기도 있었다. 2000년대 들어 신도시가 생겨나면서 상권이 옮겨갔다. 각종 프랜차이즈가 생겨나면서 경쟁업체가 많아져 매출은 자꾸 떨어졌다. 2005년 1월 본관에 불이 나 전소되는 상황도 발생했다.
“성심당이 끝인가 싶었는데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직원들이 먼저 달려와서 복구 작업에 앞장서더군요. 그해 말 결산을 해보았더니 전년도에 비해 매출이 30%나 올라있었습니다.”
임 대표 부부는 기도하고 대화했다. 하느님께서 성심당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으니 분명 뜻이 있을 것이라고 보았다. 성심당이 단지 빵을 만들어 파는 곳이 아니라 빵으로 기업 분위기를 바꾸고 고객을 바꿀 뿐 아니라 사회를 바꾸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를 실천하고자 성심당은 부서 간 소통을 위한 ‘한가족 신문’을 매주 발행해 회사의 사정을 공유하고 직원들 의견을 나눈다. 2010년엔 ‘무지개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개인과 회사와 사회 변화를 위한 일곱 가지를 설정하고 실행에 옮기고 있다.
내년에 설립 60주년이 되는 성심당은 두 가지를 여태껏 지켜가고 있다. 하나는 프랜차이즈 사업을 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대전을 떠나지 않는 것이다.
정리 - 평화신문 이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