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정육의 그림 / 불교 40. 강희안, ‘고사관수도’
“어디에 있든 충실하게 존재한다면 곧 고요함을 찾으리라”
“욕심을 버리고 조용한 곳에 머물러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최선의 일이다.”
사십이장경
조선 초기 문신인 강희안
신분 상관없이 배움 청해
제갈량, 아들에 편지 보내
고요함·담박함 중요성 강조
세상 등져야 고요한 것 아냐
망중한은 마음먹기에 달려
▲ 강희안, ‘고사관수도’, 15세기중엽, 종이에 색, 23.4×15.7cm.
국립중앙박물관.
나이 드는 것은 축복일까. 재앙일까.
몸의 기능이 예전만 못하니 축복이라 할 수는 없다. 그렇다면 재앙일까.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우격다짐으로 감정부터 앞세우던 충동성이 완화되었으니
재앙은 아닌 것 같다. 축복도 아니고 재앙도 아니라면 무엇일까.
마음먹기에 따라 축복일 수도 있고 재앙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으신 후 이렇게 생각하셨다.
“욕심을 버리고 고요함에 머물러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최선의 일이구나.”
부처님은 나이와 상관없이 고요함에 머무를 수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쉽지 않다. 젊은 시절에는 격정에 끌려 다니느라 고요할 수 없었다.
나이 들어 몸이 고요해질 때면 이번에는 마음이 문제다.
지난날에 대한 회의와 아쉬움으로 고요할 수 없다.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 때 조금 더 현명하게 행동하지 못했을까.
이런 회한으로 과거를 돌아보느라 밤잠을 설칠 때가 많다.
이래저래 고요함에 가 닿기는 힘든 것이 우리 인생이다.
언제부터 앉아 있었을까. 한 선비가 물가에서 바위에 턱을 괴고 앉아 물을 바라본다.
물소리도 잊은 채 깊은 생각에 빠져 있는 선비의 얼굴은 편안해 보인다.
세상의 다툼에서 한 걸음 물러난 자의 편안함이다.
선비가 팔을 얹은 바위는 그와 한 몸인 듯 잘 어울린다. 이 자리에 자주 왔음을 알 수 있다.
절벽에서 흘러내린 덩굴풀이 그의 머리 위에서 흔들거린다.
수면까지 흘러내린 덩굴풀을 따라 시선을 아래로 향하면
거친 필치의 수초(水草)들이 수면 위로 솟아 있다. 싱싱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자연의 숨소리는 요란하지 않다. 선비도 숨을 죽인 채 고요함에 동참한다.
한가롭고 고즈넉한 풍경이다. 그린 사람의 마음까지 짐작할 수 있는 작품이다.
강희안(姜希顔,1417-1464)이 그린 「고사관수도(高士觀水圖)」는 구도가 단순하다.
구도는 중국 명(明)대에 활동한 절파화풍(浙派畵風)의 화가
장로(張路)의 「어부도(漁夫圖)」를 참고했다.
인물의 자세와 표현법도 화보(畵譜)를 참조한 듯 평범하다.
작가의 독창성을 문제 삼는다면 그다지 큰 점수를 받기 힘든 작품이다.
그런데도 「고사관수도」는 강희안의 담백한 삶이 맑은 샘물처럼 들여다보인다.
기교로는 가 닿을 수 없는 무기교의 세계다. 볼수록 사람을 끌어당기는 이 작품의 매력은
먹의 풍부한 운용에 있다. 이 그림에는 채색이 없다. 오직 먹 하나로 그렸다.
그런데 그 어떤 채색을 쓴 것보다 훨씬 울림이 크다.
선비 뒤로 보이는 절벽은 도끼로 쪼갠 듯 흑백 대비가 강하다.
덩굴풀은 윤곽선 없는 몰골법(沒骨法)으로 그린 반면 인물은 몇 가닥 선으로 쓱쓱 그렸다.
서로 다른 기법이 서로 부족한 점을 채워준다.
고사(高士)는 인격이 고결한 선비를 일컫는다.
학문이 높고 재능도 있어 자신을 드러낼 수 있는 인재임에도 불구하고
일생동안 숨어 지내며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다. 비슷한 말로 처사(處士)가 있다.
인재(仁齋) 강희안(姜希顔,1417-1464)은 조선 초기의 문신으로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나 삼절(三絶)로 불렸다.
그는 꽃과 나무에도 관심이 많아 원예에 관한 책 『양화소록(養花小錄)』을 남겼다.
바쁜 와중에도 여유를 잃지 않으려는 그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는 책이다.
그는 높은 관직을 두루 거쳤는데 배움에 있어서는 신분을 가리지 않았다.
직업 화가들의 화풍인 절파화풍을 수용해 붓을 든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직업에 상관없이 가르침을 줄 수 있는 대상이라면
기꺼이 마음을 열 수 있는 사람이 강희안이었다.
자족할 수 있는 사람만이 타인에게 너그러울 수 있다.
우리도 「고사관수도」의 주인공처럼 살 수는 없을까.
고요함에 머무르는 것의 중요성은 제갈량(諸葛亮,181-234)이 쓴 「계자서(誡子書)」에도 나온다.
평소 워낙 좋아하는 문장인데다 그 울림 또한 크고 깊어
기회가 되면 꼭 한 번 소개하고 싶었던 글이다.
조금 길지만 전문을 다 소개하겠다.
“무릇 군자는 고요함(靜)으로 몸을 닦고(修身), 검소함(儉)으로 덕을 기른다(養德).
담박(淡泊)하지 않으면 뜻(志)을 밝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멀리 이를 수 없다.
무릇 배움(學)은 고요해야 하며, 재능(才)은 모름지기 배워야 얻는다.
배우지 않으면 재능을 넓힐 수 없고, 고요하지 않으면 학문을 이룰 수 없다.
오만하면 세밀히 연구할 수 없고, 험하고 조급하면 본성을 다스릴 수 없다.
나이는 시간과 함께 내달리고 뜻은 세월과 함께 사라지니
고목이 말라 떨어지면 비탄에 빠져 궁하게 살 것이다. 장차 어찌 돌이킬 수 있으리!
”(夫君子之行 靜以修身 儉以養德非澹泊無以明志 非寧靜無以致遠
夫學須靜也 才須學也 非學無以廣才 非靜無以成學慆慢則不能硏精
險躁則不能理性 年與時馳 意與歲去 遂成枯落 多不接世 悲嘆窮慮 將復何及)
제갈량은 자(字)가 공명(孔明)으로 별호는 와룡(臥龍) 또는 복룡(伏龍)이라 한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라는 소설을 통해 유비, 관우, 장비와 함께 잘 알려진 인물이다.
특히 유비(劉備)가 그의 지혜를 얻기 위해 초막으로 세 번이나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삼고초려(三顧草廬)의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제갈량은 나랏일 때문에 자주 집을 비워야 했다.
아들의 교육이 걱정됐던 그는 54세 때 아들 제갈첨(諸葛瞻)을 위해 편지 한 통을 보낸다.
그것이 바로 「계자서」다. 「계자서」는 짧은 글이지만
배움의 길에 들어 선 사람이 갖춰야 할 도리를 함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미언대의(微言大義:짧은 글에 큰 의미가 담겨 있음)의 표본이라 할 수 있다.
「계자서」는 아들에게 공부를 게을리 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권학문(勸學文)이다.
사람은 아무리 명석하고 재능이 뛰어나도 배우지 않으면 뜻을 펼칠 수 없다.
배움의 길은 멀고도 험하니 조금 안다하여 오만하지 말고
끝까지 겸손하게 배움의 길을 계속 가야한다.
배움의 길에 들어선 사람은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할까.
고요함(靜)과 담박함(淡泊)을 갖춰야 한다.
고요함은 분주함을 내려놓고 잠시 멈추어 선 것을 의미한다.
학문하는 사람은 자기만의 고요한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항상 신경이 외부로 향해있는 사람은 학문적인 성취를 이룰 수 없다.
수도자처럼 고립되어 학문에 매진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비로소 자기 세계를 완성할 수 있다.
어떤 사교적인 모임에도 나가지 못해 주위 사람들에게 인정머리 없는 인간이라고
손가락질 받을 각오 없이는 학문에 몰입할 수 없다. 고요하면 자연히 담박해진다.
담박함은 깨끗하고 산뜻하여 욕심이 없음을 일컫는다.
어떤 것을 담박하다고 할까. 표현하기가 힘들다.
느끼함이나 텁텁함이 담박함의 반대말이니 미루어 짐작할 뿐이다.
고요함과 담박함이 있은 연후에야 배울 수 있고 재능을 넓힐 수 있다.
「계자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2013년 중국 방문시 칭화대(淸華大)에서 연설할 때 인용해 주목을 받았다.
고요함과 담박함은 단지 학문의 성취만을 위해 필요한 덕목이 아니다.
인생을 살아가는 데도 더없이 소중한 조건이다.
우리는 한창 바쁘게 일할 때는 언제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까 한숨을 내쉰다.
그런데 막상 은퇴를 하거나 잠시라도 일을 쉬게 되면 넘쳐나는 시간을 주체하지 못해 허둥거린다.
혼자 있으면 고독하다고 느낀다. 외롭다고 생각한다.
결국 고독과 외로움을 견디지 못해 누군가를 찾는다.
할 말이 없어도 전화를 걸고 특별히 필요한 물건이 없어도 쇼핑을 한다.
바쁠 때는 한가할 때를 그리워하고 한가할 때는 바쁠 때를 잊지 못한다.
결국 일을 할 때도 일을 쉴 때도 우리는 언제나 고요하지 못한다. 이율배반적이다.
우리가 부처님처럼 ‘고요함에 머물러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최선의 일이다’라고
찬탄하기 위해서는 선행조건이 필요하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
욕심을 버려야 고요함에 머물 수 있다. 한없이 움켜쥐려고만 하면 고요할 수 없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원히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제행이 무상한데 어찌 계속 가질 수 있겠는가.
내 생명을 포함하여 내가 가진 돈, 사랑하는 사람, 명예, 건강 등 일체는
인연 따라 모였다 인연 따라 흩어진다.
우리 ‘모두’는 빈손으로 왔다 빈손으로 떠난다. 예외가 없다.
진시황도 알렉산더도 클레오파트라도 나도 똑같다.
이것이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제행무상을 기본으로 하는 불법(佛法)을 철저히 깨달으면 욕심을 버릴 수 있다.
아니 저절로 버려진다. 고요함은 그 이후에야 가능하다.
바쁘다고 해서 고요할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한가하다고 해서 고요한 것이 아니다.
망중한(忙中閑)은 마음먹기에 따라 언제든 가능하다.
고요함을 찾기 위해 꼭 세상을 등질 필요는 없다. 자신이 처한 곳에서 마음을 내면 된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지금 실천하면 된다.
일이 없으면 고요함에 머물러 있어서 좋고 일이 많으면 쓸모가 있어서 좋다.
따로 시간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따로 장소가 필요한 것도 아니다.
온전히 현재를 충실하게 살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작은 은둔은 산림에 있고 큰 은둔은 시장이나 조정에 있다’고 했다.
우리는 어떤 날이라도 이렇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고요함에 머물러 있는 일이 이 세상에서 가장 최선의 일이구나.”
그래서 우리의 삶은 날마다 좋은 날이다.
2014년 10월 29일
출처 : 법보 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