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께서는 어떻게 연기법이라는 이치를 깨닫게 되셨는가. 이 세상이 상의상관적으로 모든 것이 연관되어 있고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어떻게 깨닫게 되셨을까. 그것은 이 세상에 대한 철저한 관찰, 관조(觀照)에 있다. 나와 나를 둘러싼 모든 세상에 대한 객관적이고도 치우침 없는 관찰에 있다. 이 세상의 이치를 바로 깨닫기 위해서는 치우침 없는 시선으로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관 수행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연기법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였지만 설명만으로는 연기법을 온전히 이해할 수도 실천할 수도 없다. 연기법이 그대로 내 삶의 방식이 되고, 내 삶이 고스란히 연기법과 하나 되기 위해서는 알음알이나 지식만을 가지고는 부족하다. 연기법에 관한 몇 백 권의 책을 낸다고 해도 읽는다고 해도 연기법을 깨닫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연기법을 깨닫기 위해서는 철저한 수행이 필수적이다. 불교적인 깨달음, 연기의 깨달음은 지식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실천 수행으로써 가능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걱정하지 말라. 불교의 수행이라는 것은 고도의 정신적인 능력이 있는 소수의 몇몇 사람들에게만 실천되어질 수 있는 고난이도의 고행이나 묘기가 아니다. 아무리 똑똑한 지식인들이라도 한 발조차 내딛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아무리 공부에는 관심이 없는 자일지라도 성큼 성큼 앞서갈 수도 있다. 연기법을 깨닫기 위한, 지혜에 대한 깨달음을 위한 수행은 바로 관(觀)에 있다. 관 수행이야말로 나와 내 밖의 우주에 대한 지혜로운 통찰을 가져다 준다.
‘있는 그대로를 있는 그대로 지켜보는 것’, 이것이야말로 얼마나 쉬운 일인가. 그러나 이것은 아무나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내식대로 왜곡해서 보고 분별망상과 편견과 선입견을 투영해서 본다. 똑똑한 지식인일수록 오히려 현실을 바라볼 때 자기가 알고 있는 온갖 지식과 견해라는 색안경으로 투영해서 보기 쉽다.
그러나 아는 것이 없는 사람, 순수한 사람일수록 왜곡해서 볼 내 안의 견해와 판단이 없다. 옳고 그른 것을 뚜렷하게 구분할 수 있는 자기만의 가치관이 뚜렷하거나, 세상 일을 판단해 낼 수 있는 가치판단이 분명한 사람일수록 오히려 자기만의 생각과 견해에 빠져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편견과 선입견, 지식과 아집, 분별망상이야말로 이 공부에서 버려야 할 첫 번째 것들이다.
아무런 편견과 선입견도 없이, 순수하게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지켜보라. 난생 처음 바라보는 것처럼 천진난만한 어린 아이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 옳고 그르다거나, 선악이라거나 하는 일체의 분별을 비워버리고 다만 지켜보기만 하라. 세상에 처음 태어나 첫 호흡을 내쉬는 갓난아이처럼 천진한 비춤으로 호흡을 지켜보라.
바라보는 것에 그 어떤 이름도 붙이지 말라. 관 수행이라거나, 위빠싸나라거나, 지관이니 정혜(定慧)니 하는 모든 이름을 지워버려라. 관 수행을 통해 연기법을 깨닫겠다는 생각도 놓아버리라. 내가 수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 이 수행을 통해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라는 바람, 수행이 잘 되고 있다는 혹은 잘 안 된다는 모든 착각을 버리라. 그리고 다만 분별없이, 아무런 생각도 없이 바라보기만 하라. 바라봄, 깨어있는 관찰, 알아차림, 지켜봄, 비추어 봄, 관, 주의집중, 마음모음, 그 어떤 용어에도 걸리지 말고 다만 바라볼 때, 연기가 드러난다. 온 존재가 연기를 이해하게 된다.
2015.04.20 글쓴이:법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