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경 : 시 19:14절
제 목 : 나의 반석,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일 시 : 2024. 11. 20.
시편 19:14/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라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그냥 한 번 해 본 소리가 아닙니다. 그의 삶이 뒷바침 되는 삶의 고백이었습니다. 사람의 말에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공허한 말이 있고, 언행이 일치하는 자신의 삶을 고백하는 참된 고백이 있습니다. 즉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라는 자신의 말(고백)과 마음의 묵상(기도)가 하나님 앞에 열납되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세 가지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께 나의 반석이시오 라는 고백은 아무나 쉽게 할 수 있는 고백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런 고백을 하려고 하면 적어도 자신의 인생의 주추를 반석 위에 세워야 합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6:46-49/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내가 말하는 것을 행하지 아니하느냐 47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누구와 같은 것을 너희에게 보이리라 48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잘 지었기 때문에 능히 요동하지 못하게 하였거니와 49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시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에 근거해서 볼 때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님을 향하여 나의 반석이라고 고백할 수 있기 위해서는 적어도 다음과 같은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1) 주님께 나아와 주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 나아와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말씀에서는 특별히 중요한 세 가지 동사가 소개되었습니다. 나아와, 듣고, 행하는 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세 단어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신앙원리를 순서대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먼저 내게 나아와라고 했습니다.
나아와란 엘코마이 라고 하는데 오다, 또는 가다, 동반하다, 나타나다 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따라서 내게 나아와 라는 말씀은 예수님께 찾아와서 예수님을 만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예수께 나아와 그를 개인적으로 만난 사람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얻게 됩니다. 요1:10-12/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조차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일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 이심을 알고 그분을 찾아와서 만나고 그분을 영접하였습니다.
② 두 번째는 듣고 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오는 목적은 그분의 말씀을 듣기 위해서입니다. 듣다란 아쿠오라고 하는데 (여러 감각에서)듣는다, 청취하다, 깨닫다 라는 뜻으로 구약성경에서는 들으라(솨마) 라는 말씀과 같은 말씀입니다. 즉 순종하고 복종하기 위해서 듣다, 경청하다 라는 뜻입니다.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 버리는 것이 아니라 들은 바 말씀을 마음 판에 새겨서 지켜 행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롬10:17/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③ 세 번째는 행하다 라고 했습니다.
행하다란 포이에오 라고 하는데 만들다(폭넓은 적용으로), (외적 사물에 대하여)제조하다, 지키다, 실행하다, 준수하다 라는 뜻으로 들은 바 말씀을 실행하고 실천하고 그대로 준수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 주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주님의 말씀을 듣기는 잘 합니다. 매주 교회에 나아서 설교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대로 살아가고 실천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약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따라서 예님께 나와서 주님을 만나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은 살아 있는 그리스도인이요 선한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입니다.
2)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 비유는 팔레스타인지방의 기후와 건축양식을 매우 적절하게 사용하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은 건조한 지역으로서 일단 비가 왔다 하면 보통 사나운 폭풍을 동반하며 단기간에 집중적으로 쏟아졌고 그로 인해 산에서 탁한 급류가 흘러내려서 기초가 약한 건물들을 무너뜨리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따라서 집을 지을 때는 폭우가 쏟아져 흘러 내릴 때를 대비해 기초를 튼튼히 해야 했기 때문에 깊이 파 들어가야 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과거에 한 번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주추를 반석 위에 놓는다는 것은 사람들의 말 즉 정치가의 말, 의사의 말, 신학자의 말, 유명한 목사님의 말 등등을 통과해서 오직 성경말씀 위에 자신의 인생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 결코 인간의 말에 휘둘려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능력의 말씀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학교 교수님이나 유명한 목사님이 말하는 것을 듣고 그대로 순종합니다. 그것이 정말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주님의 말씀인지 확인해 보지도 않고 말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3) 큰 물이 나서 탁류가 그 집에 부딪치되 능히 요동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말씀은 인생의 큰 위기를 만나거나 쓰나미와 같은 위기를 만났을 때에도 결코 요동하지 않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작은 위기가 올 때마다 흔들리고 요동하고 자신의 자리와 위치를 쉽게 떠나 버립니다. 요동하다란 살류오 라고 하는데 흔들다, 휘젓다, 돌을 던지다, 흔들리다, 또는(함축적으로)파괴하다, 상징적으로 방해하다, 선동하다 라는 뜻으로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흔들고 파괴하고 방해하는 일에 휘둘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반석이라고 고백한 사람은 사람의 말이나, 환경이나, 고난이 올 때 흔들려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믿고 순종하며 죽으면 죽으리라는 순교의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
2. 하나님께 나의 구속자라는 고백도 아무나 할 수 없습니다.
구속자란 가알이라고 하는데 무르다(혈족관계에 대한 동양법을 따라), 즉 가장 가까운 친척이 되다,(친척의 소유를 다시 사든지, 그의 과부와 결혼하는 등에 의하여), 복수자, 구해내다, 사다, 배상하다, 무르다(무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가장 쉽게 설명하면 기업을 무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1) 구속자란 기업 무를 자를 의미합니다.
보아스는 이방인 과부 룻의 기업 무를 자가 되었습니다. 기업 무를 자란 그 동안 잃어버리고 빼앗겼던 모든 것을 다 회복시켜주는 자입니다. 빚지고 잃어버리고 빼앗긴 것을 다 회복시켜 주는 자입니다. 룻기서를 보시면 나오미와 룻이 잃어 버린 것이 무엇입니까? 자신의 남편, 재산, 자식, 가정, 물질, 고향을 잃어버렸습니다. 따라서 보아스는 나오미와 룻에게 이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하여 나의 구속자라고 고백하고 고백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내가 잃어버린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을 때문입니다.
2) 완전한 구원의 복을 받은 자가 할 수 있는 고백입니다.
시103:1-5/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2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3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4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5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2절에서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은택이란 은혜라는 뜻이며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들에게 다섯 가지의 은혜와 선물을 주십니다. 1) 모든 죄악을 사하여 주십니다. 용서해 주십니다. 한 번도 죄를 짓지 않는 것처럼 죄를 완전히 없애 버리시고 의인으로 여겨 주십니다. 2) 모든 병을 고치십니다. 병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니라 사탄 마귀 귀신이 죄를 짓게 만들어서 병에 걸리게 만듭니다. 나이가 많아서 병에 걸리는 것이 아닙니다. 신명기 34:7/모세가 죽을 때 나이 백이십 세였으나 그의 눈이 흐리지 아니하였고 기력이 쇠하지 아니하였더라/고 했습니다. 3)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라고 했습니다. 지옥에 떨어질 생명을 천국으로 옮겨주셨다고 했습니다. 4)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 보실 때 좋은 것으로 우리의 소원을 만족하게 하십니다. 왜 복을 받지 못하고 좋은 일이 일어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좋은 것으로 소원을 만족하게하십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티브이를 보고 신문을 보고 유트브를 보면서 않 좋은 것을 보기 때문에 항상 나쁜 것 악한 것 부정적인 것만을 보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복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좋은 일들만 일어납니다. 5) 네 청춘을 독수리 같이 새롭게 하십니다. 몸이 늙어져도 나이가 들어도 항상 청춘이 되게 해 주십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속습니다. 나이를 먹어서 늙어서 라고 핑계를 됩니다. 우리는 늙지 않습니다. 마음이 늙지 않으면 몸도 늙지 않습니다.
3. 내 입의 말과 묵상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나의 반석이시오 나의 구속자라는 고백을 할 수 있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복이 바로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하나님께 열납 되는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1)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기도의 다른 표현입니다. 그리고 입술의 말과 마음의 묵상은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마음에 묵상한 것이 그대로 입으로 나오기 때문입니다.
2)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기도자체를 하나의 제사로 인식했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기도는 하나의 제사로 인정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호14:2/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거하시고 선한 바를 받으소서 우리가 수송아지를 대신하여 입술의 열매를 주께 드리리이다/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고백하는 입술의 말과 마음속에서 묵상하는 내용들이 하나님께서 보실 때 제사와 같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고백하며, 주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생활 속에서 날마다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고백하는 그 고백을 내가 드리는 제사처럼 받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삶이 이렇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댓글 아멘
아멘 아멘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