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원 4부(달빛 그리움)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뒤 매월 음력 보름밤이면 엄니와 집 앞 호숫가로 나간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육 남매 소식도 전해드릴 겸 추모하는 마음에서다. 엄닌 휠체어에 앉아, 나는 다리 난간에 걸터앉아 아버지께 살아가는 이야기도 들려드리고 술도 한잔 따라 올린다. 그때마다 "아버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엄마도 옆에 오셨잖아요." 하고 인사를 올리면 아버지는 먼 하늘에서 별빛을 타고 엄니와 내 가슴속으로 다가오신다. 생전의 아버지께 살갑지 못했던 지난날이 죄스러워 나는 두 손을 포개 가슴에 얹고 멍하니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내가 세상에 태어난 존재의 끈을 풀어본다. 내 몸과 기억 속에 존재하는 아버지의 영혼과 인연의 끈은 수십억의 확률과 수십만 년이 흘러 닿은 억겁의 시간 속에 아주 짧은 만남이었지 싶었다. 그토록 무수한 시간의 연속성 끝에 하늘이 맺어준 소중한 인연이었음에도 아버지께 은애(恩愛)의 마음을 담아 고마운 말 한마디 살갑게 들려드리지 못한 채 또다시 기약 없는 긴 이별을 맞이해야 했다.
" 저렇게 많은 중에서 별 하나가 나를 내려다본다. 이렇게 많은 사람 중에서 그 별 하나를 쳐다본다." 보름달을 바라보다 어느 시인의 노랫말을 떠올리면 어느새 밤하늘엔 노란 그리움이 물든 달맞이꽃이 핀다. 그리운 별 하나, 수많은 별 중에 아버지는 어느 별일까? 아버지께 못다 한 약속이 가슴에 사무쳐 눈가에 그렁그렁 맺힌 눈물방울엔 아버지의 환영(幻影)이 '그래, 에미랑 잘 지내니?' 하시며 달빛 드리운 고향 마을 마당 가에 서서 빙그레 웃고 있는 듯하다. 그때마다 "아버지 저희는 이곳에서 엄마랑 잘 지내요. 아무 걱정하지 마세요. 하늘에서 육 남매 살아가는 모습 잘 지켜봐 주시고 좋은 길로 인도해 주세요. 언젠가는 엄마와 저도 아버지 곁으로 꼭 갈 거예요. 그때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하는 철부지 막내의 때늦은 '사부곡(思父曲)'이 허공으로 흩어지면 옆에서는 엄니가 "*아버지, 우리가 왔어요. 애들이랑 잘 지내게 해주고 나도 아픈 데 낫게 해주고..." 하며 짝을 잃은 기러기의 애원(哀怨)이 강바람을 타고 흩어진다. 그리곤 아버지가 약주로 즐기셨던 술을 한 잔 따라 다리 난간 위에 올려놓고 엄니와 보름달을 바라보면서 육 남매 살아가는 이야기를 주절주절 들려드리며 몇 잔의 술이 흐르는 강물 위에 흩뿌려질 때면 엄닌 심심풀이로 드시던 새끼손가락 모양의 '바나나킥' 과자 몇 개를 술안주라며 강물에 띄워드린다. 그럴 때마다 지난날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며 술 한잔 옳게 따라드리지 못한 회한에 울컥! 입술을 깨물며 엄니 몰래 눈물을 훔친다.
한평생 산골에서 농사를 짓는 육 남매의 아버지. 줄줄이 달린 자식들 생각에 여름날 마을 구멍가게 들마루에 걸터앉아 어디 외상 술 한잔하고 싶은 마음 가져보셨으랴! 허기를 달래며 밤낮으로 농사일에 매달려도 가을에 도지를 물고 빌어온 쌀을 갚고 나면 겨우 겨울나기 양식밖에 안 되는 소작농인 아버지는 가끔 마을 행사나 이웃들의 경조사에서 약주를 얻어 드시곤 거나한 기분으로 흥얼거리며 집에 돌아오곤 하셨다. 집에 오시면 아비의 마음을 몰라주고 속 썩이는 자식들에게 들려주는 속마음인지, 가난한 소작농이 겪어야 하는 비애 때문인지 아버지는 그동안 참고 지내야만 했던 심경이 북받쳐 오르는지 목침을 베고 누워 두 발로 방바닥을 울리며 울부짖듯 옹알이하셨다. 때론 막내로 자란 어린 시절 그리움 때문인지, 자식으로서 못다 한 한이 맺혀서인지 하늘에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으며 눈물을 보이기도 하셨던 아버지. 아버지는 이젠 저 하늘에서 이 못난 철부지 막내의 때늦은 사부곡을 들으시곤 달맞이꽃을 피운다.
생전의 아버지는 약주를 즐기셨다. 무엇보다 엄니의 술 빚는 솜씨가 남달라 아버지는 늘 집에서 농주인 막걸리를 반주로 드셨다. 그런 지난날의 정서 때문이었을까? 읍내 아파트로 이사 온 뒤에도 아버지는 주로 집에서 약주를 하셨고 간혹 자식들이 뵈러 오며 들고 온 술과 엄니가 사다 드린 술만을 드셨다. 그리곤 아침 일찍 집 앞 강둑에 나가 밤사이 버려진 빈 병을 하나둘 모아 단지 안의 마트에서 술로 바꿔 오곤 하셨다. 그러면 엄닌 자식들에게 흉 된다며 노인정에 나가 기죽지 말라고 가끔 몇 푼의 쌈짓돈을 아버지 손에 쥐여주셨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부적을 몸에 지니듯 꼬깃꼬깃 쌈짓돈을 접어 애지중지하는 낡은 까만 지갑에 넣어두셨다. 그 뒤 아버지의 쌈짓돈은 지갑 안에서 바스러지도록 숨죽이다가 읍내 오일장인 풍물시장에 장 구경을 하러 가시는 날에 절인 생선이나 찐빵으로 바뀌어 돌아오곤 했다. 훗날 가족을 사랑하는 아버지의 그 깊은 마음 씀을 생각하니 생전에 엄니에게 드리는 용돈이 아버지의 쌈짓돈이다, 라는 철부지의 짧았던 생각에 마음이 저리다.
일산 큰형님 댁에서 세수 여든아홉으로 삶을 마감하신 아버지. 벽제 승화원에서 한 줌 재가 되어 그토록 그리워하던 우리 집에 들러 삼우제를 올리고 집 앞 호수에 영면하셨다. 그 뒤 밤이면 베란다에 나가 호수를 바라보며 아버지와 무언의 인사를 나눈다. 그럴 때면 아버지는 먼 하늘에서 생전에 마지막 뵈었던 야윈 표정으로 내려다보시는 듯하여 눈시울이 붉어진다. 마지막 숨을 거두시기 하루 전까지 '엄니 곁으로 오고 싶다'라는 아버지의 마음을 외면한 죄스러움과 '죽으면 고향 부모님 곁에 묻히고 싶다'라는 생전의 간절한 바람을 들어드리지 못한 회한에 '언젠가는 하늘에서 아버지와 꼭 다시 만날 거예요'라는 기도로 용서를 구한다.
아버지는 유달리 면 음식을 좋아하셨다. 그런 연유일까? 아버지는 내가 일하는 일터 맞은편에 오래된 제면 공장을 가끔 찾아오셨다. 왕복 시오리가 넘는 거리인데도 팔순을 훌쩍 넘긴 연세에 늘 지팡이를 짚고 걸어서 찾아오셨다. 그럴 때마다 엄닌 "뭘 얼마나 아끼겠다고 그 먼 길을 걸어서 힘들게 고생해요" 하며 핀잔을 주기도 했지만, 아버지는 고집을 쓰고 꼭 내가 일하는 맞은편 제면 공장에서 4kg이나 되는 무거운 국수 다발을 사 들고 집으로 향하셨다. 그때마다 잠시 길거리에 멈춰 서서 길 건너에서 일하는 내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하셨던 아버지. 그땐 아버지가 '그저 습관처럼 국수를 사러 오셨구나' 싶어 바쁘다는 핑계로 먼발치서 흘끗 바라만 보곤 하던 일에 몰두했다. 아버지가 하늘로 떠나신 뒤 그때 아버지는 막내인 내 모습이 보고 싶어 제면 공장까지 찾아오셨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버지가 내민 달맞이꽃을 몰라본 철부지. 제면 공장 이십여 미터 옆에 오래된 짜장면집도 있었는데, 잠시 일손을 놓고 달려가 '아버지 국수는 저녁에 제가 집에 들어갈 때 차에 싣고 갈 테니까 저에게 주시고, 오셨으니 짜장면이라도 드시고 놀이 삼아 쉬엄쉬엄 걸어가세요'하는 작은 마음 씀도 보여드리지 못한 철부지. 요즘도 일터에서 가끔 길 건너 제면 공장을 바라볼 때면 길거리에 멈춰 서서 물끄러미 이 못난 막내를 바라보시던 아버지 모습이 떠올라 가슴엔 뜨거운 *서리꽃이 핀다.
" 아버지...!
늦둥이 막내에게 무언의 사랑을 보여주신 아버지. 그런 아버지의 마음 씀도 모른 척 무시하며 상처만을 안겨드린 못난 철부지는 면 음식을 유난히 좋아하시던 아버지께 그 값싸고 흔한 짜장면도 기쁜 마음으로 사드리지 못했습니다. 아마 삶이 끝나는 그 순간까지 아버지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외면한 죄로 한겨울 나목 같은 마음으로 아버지를 떠올릴 듯합니다. 기꺼이 죗값을 치르겠다고, 아버지가 방바닥을 두 발로 울리면서 할머니 할아버지를 울먹이며 찾으셨듯이 저 또한 아버지가 계신 하늘로 돌아가는 그날까지 속죄 또 속죄하며 살아가겠습니다.
" 아버지, 그래도 이 막내가 믿음직해 보이시죠? 하늘에서 꼭 지켜봐 주세요.
엄마가 아버지 곁으로 가시는 그날까지 잘 보살피고 살갑게 마음 써 드릴게요."
다리 난간에 기대어 아버지께 추모 인사를 올린 엄니와 나는 다시 오던 길을 따라 집으로 타박타박 발길을 옮긴다. 달은 중천에서 배웅하고 별빛을 타고 엄니와 내 가슴속에 피었던 달맞이꽃을 꿈속에서라도 보고 싶은 밤이다.
※모두가 헐벗고 가난했던 시절, 매년 어린이날이 돌아와도 자식들에게 선물 하나도, 용돈도 한 번 주지 못했다, 는 어미의 한(恨). 어미는 그 아픔을 가슴에 묻어둔 채 팔순이 훌쩍 넘도록 잊지 않으셨다. 지난날 당신이 못다 한 아픔을 마음의 빚이라고 여기며 사랑으로 승화시켰다. 불혹을 갓 넘긴 철부지 열두 살 소년은 차마 그 돈을 쓸 수 없어서 언젠가는 꼭 필요한 일에 쓰기로 다짐하곤 수년간 지갑 속에 고이 간직했다. 그 뒤 팔순의 노모가 주신 용돈은 먼저 하늘로 떠난 아버지의 추모 성금이 되었다. 보름달을 바라보며 아버지께 회한의 눈물을 흘리던 철부지 막내는 그리움과 감사의 마음으로 오늘 밤도 생전의 아버지가 피워낸 '보이지 않는 사랑'인 달맞이꽃 한 송이를 가슴에 담는다.
00년 5월 5일
*서리꽃: 창문에 수증기 등 물기가 얼어 붙어 생기는 꽃(무늬)처럼 엉긴 자국. 즉 '뜨거운 서리꽃'이란 마음속에서 뜨거운 눈물이 울컥 치솟아 몸이 얼어붙은 것처럼 죄스러움이 온몸을 감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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