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다위에 떠 있는 정원같은 섬~ 여수 손죽도 트레킹♣
▶일 시: 2026년 09월 13일 (일요일)
▶코 스(1코스): 선착장- 중선배공원- 팔각정(마제봉)- 전망대(봉화산)- 돌쉼터- 지지미재- 깃대봉- 편백숲- 이대원 묘
- 삼각산- 갯가길- 몽돌해수욕장-손죽마을- 선착장
(2코스): 선착장- 손죽마을- 몽돌해수욕장- 이대원 동상- 삼각산- 갯가길- 몽돌해수욕장- 선착장(자유 여행)
▶ 출 발: 서면 배들(05:30)-서면 소방서(05:35)- 용당새마을금고(05:40)- 순천대(05:42)- 의료원(05:45)-
순천고(05:50)-오천 하나로마트(05:53)-풍덕금호(05:55)- 조은프라자(06:10)-그외 탑승 연락요망
여수 여객터미널 출발(07:30)- 손죽도 도착(08:50)-손죽도 출발(16:20)
▶준비물: 도시락,식수,간식,트레킹장비.
▶신청순 28명: 신청방 , 문자, 손전화(9884-4664)~ 배표 때문에 미리 예약 하세요(28명)
▶다음산행: . 09월27일 (꽃무릇 여행:개화상태에 따라) . 10월11일 (억새산행: 합천 황매산
. 10월25일 (단풍산행: 북한산 숨은벽능선) . 11월08일( 고군산도 섬잇길 예정)
♣♣ 섬마을 돌담 골목과 정원에 피어난 꽃~ 손죽도
손죽도는 100여 호 남짓의 인구 180명에 불과한 작고 고즈넉한 섬이다. 마을 앞으로 고운 모래가 깔린 해수욕장이 빼어난 풍경을 빚어낸다. 먼바다의 섬답게 마을 앞의 바다는 투명한 청색으로 눈부시게 빛났다. 백사장의 고운 모래는 희고 단단했다. 찰랑거리는 파도가 모래 위에 그린 선을 따라 백사장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다 청량해졌다.
손죽도의 진짜 보물은 마을 안에 따로 있었다. 먼저 돌로 지은 담 얘기부터. 섬마을에는 거센 바닷바람을 막기 위한 돌담이 흔한데, 이곳 손죽도에서는 유연하게 굽은 골목을 따라 집집마다 둘러놓은 돌담이 무슨 예술작품을 보는 듯했다. 더 놀라웠던 건 해풍 쑥을 재배하거나 김 양식으로 생계를 잇는 넉넉지 않은 살림에도 손죽도 주민들이 집집마다 훌륭한 정원을 꾸며놓았다는 것이었다. 다들 약속이나 한 것일까. 제법 너른 마당을 거느린 집들은 정원을 울창한 난대림의 숲으로 가꿨고, 손바닥만 한 정원을 가진 집도 마당에다 나무와 꽃을 심었다. 지금 섬마을의 정원마다 가을꽃들이 그득하게 피어 있다. 분재를 가꿔 내다 놓은 집도 있고, 동백만 모아서 심어둔 정원도 있다.
손죽도에는 집 마당에도, 길섶에도, 묵은 밭에도 온통 꽃들이다. 느린 걸음으로 마을을 돌아보는 일이 즐거운 건 이 때문이다. 아름드리 느티나무를 끼고 이어지는 골목의 돌담 벽에다 누군가 플라스틱 홈통을 반을 잘라서 화분처럼 길게 꽂아 놓고 거기다가 채송화꽃을 심어두었다.
손죽도 마을에서 꼭 봐야 할 곳이 초도초등학교 손죽분교다. 초등학교 건물은 마을 주민들이 80여 년 전쯤 건너편 산자락에서 바위를 깨서 손수 지게로 져 날라서 지어낸 것이다. 한쪽 벽을 돌로 붙여 우람하게 지어낸 건물이 학교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크고 단단하다. 손죽분교의 전교생은 모두 3명. 작년까지는 학생이 1명 뿐이어서 폐교위기까지 몰렸지만, 올해 2명이 입학하는 바람에 전교생이 3배로 늘었다. 바다를 굽어보는 언덕 위에 방풍림을 두르고 있는 운동장 구령대 쪽에는 회칠이 벗겨진 ‘독서는 마음의 양식’‘체력은 국력’의 구호를 받침대로 삼은 책 읽는 소녀상과 횃불 든 소년상이 나란히 서 있다. 운동장 한쪽에도 유관순 의사와 정재수 효자상, 이승복 어린이의 낡은 동상이 푸른 바다를 보고 있었다.
♣ 탐방로에서 만난 땅 이름에 무릎을 치다
손죽도 마을 뒤쪽의 숲에는 훌륭한 탐방로가 있다. 선착장 뒤쪽에서 출발해 가파른 나무덱 길을 올라 초지의 언덕과 해안의 기암절벽을 끼고 이어지는 3㎞ 남짓의 산책로다. 아찔한 벼랑을 끼고 이어지는 길에서는 코발트빛 바다가 눈부시게 반짝이고, 바람이 섬의 잔등을 타고 넘는 초지의 들판에서는 마을 뒤쪽의 반초섬과 소거문도 너머 먼바다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섬의 능선을 타고 이어지는 길에 세워진 세 곳의 전망대가 있는데, 그 자리마다 보여주는 풍경이 서로 다르다.
탐방로의 정점은 마지막 전망대를 지나 가파른 오름길 뒤에 만나게 되는 봉화산이다. 바위 정상이 아니라 바로 그 아래 바람을 타지 않는 자리에다 봉수대를 만들었다는데, 벼랑에 걷는 길을 내면서 그만 그 자취가 훼손되고 말았다. 대신 봉수대를 재현해 놓았다는 돌무더기가 영 어설프다. 봉수대 위로 바위를 딛고 서는 자리가 있다. 마을 쪽의 시야는 가리지만 섬 북쪽 일대가 한눈에 들어오는 자리인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바위를 딛고 오르는 자리가 위험하다며 여수시의 담당자가 표지판을 아예 뽑아버렸다고 했다. 하지만 딛고 올라보니 이 정도라면 그럴 것까지 뭐 있을까 싶다.
손죽도에는 섬 곳곳에 오래전부터 전해지는 땅이름이 있는데, 그걸 하나하나 짚어보면 여간 재미있는 게 아니다. 우선 주민들의 이름이 지명에 자주 등장한다. ‘온엽이네 묵전’은 온엽이라는 이름의 주민이 묵혀놓은 밭자리를 이르는 이름이다. 온엽뿐만 아니라 ‘선애네 밭넘’도 있고, ‘순열네 밭밑’도 있다. 섬 안의 비슷비슷한 지형을 구분하기 위한 이름이었으리라.
무릎을 쳤던 건 ‘독 보듬고 돈디’라는 지명이었다. 험한 바위 사이로 이어진 길을 가려면 ‘돌을 안고(보듬고) 돌아가야 한다’고 붙여진 이름이고, ‘목넘 옆걸음’은 목 너머의 바위길이 좁아서 옆걸음으로 건너가야 한다고 지어진 이름이다. 턱을 바위로 눌러 몸을 지탱하고 두 손으로 바위를 붙잡고 건너야 한다는 뜻의 ‘택걸이’도 압권이다. 배가 거기 어디쯤 바위에 걸렸던 모양이어서 붙여졌을 것으로 짐작되는 ‘배 찡긴디’란 지명은 또 어떤가. 듣는 것만으로도 험한 해안 지형이 능히 짐작되고도 남는 이름들이다.
줄곧 마을 뒷산의 능선을 따라 이어지는 탐방로는 지지미재를 거쳐 마을로 내려온다. 지지미재는 섬사람들이 삼월 삼짇날에 꽃전을 부쳐 먹으며 잔치를 벌였던 자리다. 마을 주민들은 잿마루에서 1주일 넘게 밤낮을 쉬지 않고 춤과 노래를 부르며 화전놀이를 즐겼다고 했다. 1920년대 신식 어구가 들어오면서 기계화된 어업이 성행했던 손죽도는 그때만 해도 부자섬이었다. 1940년대 손죽도에는 중선망으로 고기를 잡아내는 신식 배가 70여 척에 달했을 정도였다. 300가구에 500여 세대가 북적이며 살았던 시절의 이야기다. 그때 지지미재에서 펼쳐졌다던 화전놀이는 얼마나 흥겨웠을까.
지지미재에 번듯한 정자를 하나 지어놓은 섬사람들은 올봄에는 예전의 떠들썩한 화전놀이를 재현해보겠다고 했다. 화전놀이를 하는 날에 외지 사람들이 찾아와서 예전처럼 북적이는 잔치가 됐으면 하는 게 주민들의 바람이다. 섬에 노인들만 남은 지금도 손죽도 섬사람들에게는 풍류의 추억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 어쩌면 섬 주민들이 정성스레 정원을 다듬고 또 길섶에다 꽃을 심어 가꾸고 있는 것들도 다 이런 풍류, 혹은 전통 때문이 아닐까.
☞ 산행안내 및 섬 이야기~ 산행대장 칠선두목 (9884.4664)
첫댓글 정말 아름답네요.
가고 싶은데 근무라 아쉬운데~~~
경치를 보니 가고싶은 마음이 꿀떡같구만
정말 아쉽네~시간 남았으니 다른 근무자와 상의 한번 해 보시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