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을 보러가기 전, 학군단에서 지급되는 전투화와 전투복, 전투모 등을 지급받고 힘겹게 기숙사로 돌아와 다시 부랴부랴 대학로에 도착하였다. 서둘러 도착했지만, 그만 출구를 잘못 나가 성대 주변만을 한참이나 맴돌다 드디어 도착한 소극장 축제(돌아다니다 개그맨도 만나고 매우 신기했다). 그곳엔 이미 많은 학우 분들이 와계셨다. 조금 기다린 뒤 연극을 보러 극장 안으로 들어갔다.
내가 연극을 처음 접한 것은 학부 오티에서 접한 연극동아리의 공연이었다. 작년에 보고 올해도 보았으니 그래도 두 번은 경험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극장에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극장은 매우 작았고, 또한 무대와 객석은 정말 가까운 거리였다. 이렇게 가까운 곳에서 내가 TV에서 봐 낯익은 배우가 연기를 한다고 생각하니, 굉장히 흥분되었다.
극은 신사 박동만의 출연으로 시작되었다. 멋지게 등장한 박동만은 집 주인 이점순과 과거의 연이 있던 인물이다. 이점순은 남편과 30년 전 사별하여 국밥집을 운영하며 딸 셋을 키웠고, 20년 전 아내와 사별한 박동만은 아들들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이점순의 집에 거주하게 된다. 이점순의 집에서 함께 살게 된다. 그리고 둘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러다 점순의 병으로 점순이 세상을 뜨게 되고, 점순의 막내딸이 점순이 세상을 뜨기 전에 만들던 스웨터를 완성시켜 박동만에게 전해주며, 극은 끝나게 된다. 극 중에서 점순이 죽게 될 거라는 것은 모두가 알겠지만, 자고 일어나서 가슴이 아프다는 것을 보면 알게 된다.
극 중 남편 없이 악착같이 살기 위해, 남에게 약하게 보이지 않기 위해 일부러 욕을 하는 욕쟁이 할머니 점순을 따라하는 박동만. 연극은 처음부터 재밌는 요소를 가지고 관객에게 계속해서 즐거움을 주었다. 그리고 바람둥이이지만, 자신의 연인인 이점순여사에게 최선을 다하고 정말 좋아하는 박동만의 모습을 보며, 할아버지, 할머니시지만 굉장히 멋지게 보였다. 가을이 되면서 극 중의 재밌는 요소들도 조금씩 사라져 가고 극은 점점 흥미롭게 진행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여기저기서 훌쩍 거리는 소리도 들리기 시작했다. 나도 가슴 속에 있던 감정들이 오랜만에 기지개를 켰다. 봄에 만나 여름, 가을을 걸쳐 겨울이 되어 박동만과 이점순의 만남은 끝이 났지만, 그들의 사랑은 이제 막 시작되는 것 같다.
사랑을 하게 되면 서로에게 얻는 것도 잃는 것도 있겠지만, 박동만과 이점순은 사랑하여 잃는 것보다 얻은 것이 많게 느껴진다. 박동만은 지금까지 아들자식들과 연락을 끊다시피 하고, 의지할 가족이라곤 한 명도 없었다. 그러다가 이점순을 만나 이점순이 운명하였지만 이점순의 막내딸이 박동만에게 아버님이라고 하여 새로운 가족 구성원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이점순은 욕쟁이 억센 할머니에서 마음 여린 소녀 같은 모습으로 극에서 볼 때 굉장히 어려진 것 같았다. 또 박동만의 정성스러운 마음을 받는 그녀는 정말 행복해보였다. 아내를 위해 계란찜을 하는 모습, 아내를 위해 운전면허에 도전하는 것. 박동만이 아니었다면 점순은 이런 기회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인생의 황혼 끝자락에서 만난 어느 늙은 부부는 이렇게 모두의 가슴을 적시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가 되었다. 연극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인간은 나이가 많고 적음을 떠나서 똑같은 인간이라는 다시 한 번 알게 되었다. 사랑할 때 가장 아름답고 행복해 보인다는 것. 그리고 나이는 정말 인간이라는 명사 앞에 단순한 숫자에 불과한 것 같았다. 늙은 부부의 뜨겁고 정열적이진 않지만, 정말 소중하고 따뜻한 마음을 그려낸 작품을 접할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 더불어 내 가슴속에 눈물 한 방울도 함께 닦을 수 있어서 내 감정의 정화가 이루어진 것 같다.
첫댓글 인간은 인간이다. 그렇군
올 겨울은 따뜻한 사랑과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