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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짐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골 1:13).
그리스도 안에 있는 믿는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흑암의 권세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을 알려면 먼저 그리스도께서 골고다에서 이루신 일로 돌아가 그분의 승리를 이해해야 한다. 그분은 골고다의 십자가 위에서 악한 자의 주권과 권세를 꾸짖으셨고 공개적으로 그를 부끄럽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죽음에 합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흑암의 나라'에서 건져 내어져 승천하신 주님의 '다스리는 생명 안으로' 옮겨졌다. 골고다의 승리를 통해 당신은 이미 주님의 목적 안에 있게 되었다. 즉 흑암의 나라에서 건져 내어져 원수의 영역에서 행하지 않게 되었고 원수의 의견과 표준과 방법과 사악함을 본받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실제적인 체험이 되게 하려면 당신은 먼저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해 품으신 목적과 그분께서 이미 당신을 흑암의 권세에서 옮기셨다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흑암의 왕은 당신에게 더 이상 무엇을 요구하지 못하며 또한 당신에게 어떤 권리도 행사할 수 없게 되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시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셔서'(엡 2:6) 그분의 다스리는 생명 안에 있게 하셨다. 비록 당신에게 이러한 체험이 아주 부족하다 하더라도 결코 당신을 향해 품으신 하나님의 목적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분의 뜻이 무엇인지를 전심으로 살펴보고 그분께서 당신을 위해 계획하신 생활 안으로 인도해 달라고 간구해야 한다.
당신의 위치는 이미 '흑암의 권세'에서 옮겨졌다.그러나 체험에서 사탄은 당신 자신과 당신의 생명 안에서 어느 정도의 세력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사탄에 대해 당신은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당신의 뜻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는가? -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리스도)와 함께 일으키사 - 하늘에 앉히시니."과 일치하는가?
승리의 실제적인 길
오늘 우리가 이러한 위치를 얻었다면 이것을 체험하는 실제적인 방법을 살펴보기로 하자. 첫째, 마땅히 순전하게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 대해 깨끗한 생각을 가져야 한다. 바울은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떠나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고후 11:3)라고 말한다. 바울은 장차 일어나지 않을 일을 두려워하거나 가능성 없는 일들을 거의 염려하지 않았다. 그래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속을 '가능성이 없다'고 말할 수 없다. 하와는 본래 죄가 없었지만 속임을 당했다. 바울은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고린도의 믿는 이들을 염려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속되어 그 영역이 옮겨지고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한 이들처럼, 순수한 믿음과 깨끗한 생각 안에서 행해야 한다. 둘째, 반드시 말을 조심해야 한다(마 5:37). 그 다음으로는 사탄에게 속지 않기 위해(기회를 주지 않기 위해 - 고후 2:11) 용서해야 한다. 용서하지 않는 마음은 사탄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이 구절에서 바울은 사탄을 대적하기 위해 깨어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는 행동할 때 사탄에게 조금도 기회를 주지 않았다. 디모데전서 3장 6절은 "새로 회개한 자도 말지니 교만하여져서 마귀를 심판하는 그 심판(마귀의 심판)에 빠질까 함이라" (원문 참조) 라고 말한다. 분명히 마귀는 '교만한 자'를 심판할 권리가 있다. 이 부분에서 사도는 (어린) 그리스도인들이 사탄에게 여지를 남겨 준다면 믿는 이는 '마귀의 심판'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말한다. 우리의 원수는 하나님께서도 존중하시는 어떤 권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권리에는 믿는 이가 마귀에게 여지를 줄 때, 그 믿는 이를 심판하거나 다스리는 능력이 들어 있다. 에베소서 4장 27절은,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라고 말한다. 이 여러 구절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들을 경계하는 강한 말씀들이다.
사탄은 우는 사자와 같다
사탄은 여러 모양으로 활동한다. 베드로는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라고 말했다. 당신은 특별한 예외라서 사탄이 자신을 삼키거나 만지지 않을 것라고 확신 할 수 있는가? 만일 확신할 수 없다면, 근신하여 한 순간도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 된다. 당신의 원수는 '두루 다니고 있기' 때문에 당신은 '깨어 있어야 한다.' 그는 당신과 그리스도의 원수이다. 두루 다니며 우는 사자 같은 그의 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귀를 멀게 하고 두려워하게 한다. 대적의 부르짖음은 '혈기'를 자극한다. 그는 일종의 영이기 때문에 사람을 그의 통로로 삼아야만 한다. 그의 부르짖음은 반드시 사람의 입을 통해 나가야만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말을 삼가야 하며, 결코 사람의 압박으로 행동하거나 분람함 가운데서 일을 결정해서는 안 된다. 소란과 변론을 만날 때 기다리고 잠잠해야 한다. 원수의 부르짖음은 사람에게 합당치 않은 일들을 하게 하며 잠잠히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자 하는 것을 방해한다. 사람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들릴 때 당신은 원수가 '육신에 속한' 사람(혈육) 뒤에 숨어 있는 것을 항상 인식하고 승리의 위치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 당신의 눈이 열려 원수의 책략을 깨달아 알 수 있을 때, 당신은 혈기를 부리지 않게 될 것이고 사람들의 떠들썩함 가운데서 일하지 않을 것이다. 아, 부르짖는 사자는 아주 유용한 성도 뒤에 숨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사탄이 성도들을 통하여 일하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가 인식해야 할 중대한 문제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원수가 부지불식간에 하나님의 자녀 중 가장 좋은 두 세 사람을 자기의 목적을 위해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들이 원수에게 이용당하는 것은 다름 아닌 그의 권세와 책략을 알지 못해서인데, 이것은 사탄이 '혈기' 있는 사람 뒤에서 그를 움직여 의견을 내게 하기 때문이다(마 16:22-23). 그리고 두렵게 하는 그림과 형상을 그려서 당신으로 하여금 '우는 사자' 가 사람 뒤에 있는 것을 알지 못하게 한다. 결국 당신은 겁먹게 되고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는 지의 여부를 의심하게 된다. 당신이 혼란스럽게 되고 주님의 인도를 잃어버릴 때 악한 자는 그의 뜻대로 행하게 된다.
사탄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함
고린도후서 11장은 공중의 그 왕이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온 땅을 두루 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는 사람을 삼키려고 할 때 사자로 가장하고, 사람을 속이려고 할 때는 천사로 가장한다. 사탄은 사람을 속이는 자이다. 만일 그가 광명의 옷 - 하나님의 본성 - 을 입을 수 있다면 당신의 시력은 믿을 만한 것이 못 된다. 사탄이 사람들의 목소리 뒤에서 부르짖을 때 당신의 눈을 그것을 발견할 수 없다. 그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올 때 당신의 시력도 그것을 탐지해 낼 수 없다. 당신은 '그가 온전히 광명하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일 것이라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흑암의 왕은 "빛"과 같이 다시 말하면 하나님같이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당신은 영적 시력과 청력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더욱 많은 방법으로 그것을 시험해야 한다. 가장 안전한 시험 방법은 바로 '열매'(마 7:20)를 보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과 사탄을 영원히 나누는 기본 원칙에 대한 지식이다. 우리는 진리이신 하나님과 거짓의 아비인 사탄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고린도후서 12장 7절에서 우리는 원수가 어떻게 온 땅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지극히 경건하고 거룩한 종들을 괴롭혔는지를 별견 할 수 있다. 그는(하나님의 허락 하에) 바울을 공격했다(고후 12:7-9). "사탄의 사자를 주셨으니 … 나를 쳐서." 바울에게는 오로지 간구하는 방법 외에는 다른 길이 없었다. "내가 … 주께 간구하였더니." 이렇게 간구한 후에 그에게 능력이 임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였다.' 누가복음 22장 31절에서 우리는 사탄이 온 땅을 두루 다니며 하나님의 자녀들을 밀 까부르듯 하는 자인 것을 본다. 그는 여러가지 방법을 사용한다. 그는 '우는 사자', '광명의 천사', 공격하는 자와 밀 까부르듯 하는 자와 같이 믿는 이들을 해친다.
하나님에게는 "예"라 하고 사탄에게는 "아니다"라 함
이상에 언급된 원수의 네 방면의 일들을 처리하기 위해 믿는 이들이 마땅히 확고하게 서 있어야 할 중심적인 위치가 있다. 야고보서 4장 7절의 가르침은 매우 간단명료하다.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간단히 말하면 하나님께는 '예'라고 하고 사탄에게는 '아니오'라고 답하는 것이다. '유일하신 주 하나님과 연합한' 당신의 위치는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 위에 있어 '모든 정사와 권세보다 뛰어나다'(엡 1:21). 당신은 성령의 능력으로 굳건히 이 승리의 위치에 서 있어야 한다. 사탄의 접근과 공격에 대해 당신은 하나님과 동행할 것을 택해야 한다. 당신은 이 승리의 위치에서 사탄이 당신을 속이기 위해 당신의 환경에서 어떻게 가장하는지를 알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의 중심에서 '예'와 '아니오'의 결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한다. 당신이 영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다면 하나님께 '예'라 말하고 마귀에게는 '아니오'라 말할 수 있다. 당신은 어떻게 해야 환경에서 자유로울 수 있으며 원수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당신의 영이 그리스도와 연합하면 당신은 이미 승리 안에 있는 것이다. 그러나 원수는 억압과 답답함과 비참함으로 당신의 생각을 공격하거나 두뇌와 근육의 자극을 통해 당신의 사상과 몸을 자극한다. 이 모든 것들은 환경 안에서 벌어지고 있다. 만일 믿는 이들이 자기의 참된 위치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하나님께 속한 모든 말씀에는 순종하고, 원수에게서 온 모든 것에는 대적하는 단순한 태도를 유지한다면, 이러한 많은 공격들은 그칠 것이다. 이 '싸움'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승리의 태도를 유지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하여 둔 배의 키를 마땅히 붙잡아야 한다. '대적하는 것' 은 힘을 다해 사탄을 거절하고 그에게 순종하지 않는 것이다. 그럴 때 결국 그는 도망갈 것이다. 그러나 원수가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여 믿는 이의 의지 속에서 '예'를 얻는다고 가정해 보자. 비록 믿는 이가 속아서 원수에게 '예' 라고 했을지라도, 아! 그것은 "예'인 것이다. 그것은 원수에게 그가 속인 사람에게서 얻은 '예'의 영역 안에서 세력을 확장하고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을 주게 된다.
원수의 궤계의 폭로
그러므로 믿는 이는 원수의 궤계(詭計)를 인식해야 한다. 만일 당신이 원수의 공격을 모른다면 어떻게 그를 대적할 수 있겠는가? 그가 당신의 생각을 사로잡고 그림이나 형상으로 당신을 혼란스럽게 하여 온갖 생각을 불러일으킨다면 당신은 어떻게 그를 대적하겠는가? 그러나 당신이 그러한 것이 원수라는 것을 인식하자마자 그는 도망갈 것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계실 때 그분은 흑암의 권세들의 특성과 목적에 대한 빛을 주셨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그들의 일들을 알려준다. 그들의 일은 예나 지금이나 똑같다. 예를 들면 주님께서 악한 영들을 꾸짖으실 때, 악한 영이 사람에게서 나와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지만 얻지 못하고 양식도 없자,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들어가리라 … "(마 12:43-44)라고 말했다. 여기서 그들이 자기 '집'으로 삼아 그안에서 안식했음이 증명된다. 이 큰 빛은 그들의 상태와 애호를 우리에게 밝히 보여 준다. 그들은 휴식과 자양분을 구했다. 그들에게 사람이라는 '집'이 없다면 이 세상은 '물 없는 곳'에 불과하다. 이제 우리는 왜 사탄의 사자들이 사람의 몸속에 들어가려고 힘쓰는지 알게 되었다. 일단 그들이 어떤 거점을 발견하고 들어가면 사람의 생명 능력을 잠식해 버리고 모든 느낌과 긍휼조차도 고갈되게 하고 사람을 완전히 상실하게 한다. 이것이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진 강포가 가득한 일이다. 그것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많은 '초자연적인 체험'을 가진 사람들조차도 그들이 이미 얻은 부드러운 감정과 친절을 얼마나 잃어버리게 되는지! 이것은 사탄의 권세가 그 사람을 만질 때 무감각하게 되어 다른 사람의 필요와 느낌을 보지 못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일들이 사탄의 은밀한 활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확실하게 말해야 한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이 교회의 영적 상태를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긍휼과 온유함이 결핍되는 것은 정욕적인 생명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원수의 보이지 않는 활동들로부터 온 것이다. 원수의 이런 활동들은 주안에서 연결된 다른 성도들에 대한 긍휼과 사랑을 고갈되게 한다. 초자연적인 체험을 하고 난 다음 철저히 점검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서 나온 것들은 언제나 사람을 온유하고 섬세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당신의 말 속에 거친 표현이 없는지 주의하라. 그러한 말 속에 원수가 들어온다. 또한 원수는 믿는 이를 결박하여 그를 강퍅하고 이치에 어긋나며 돌같이 무례히 행하게 한다. 무릇 성령에게서 온 것은 우리를 자유롭게 하고 살아나게 하며, 우리에게 온유와 자비와 양심의 예민함과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을 더하신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생명 안에서 완전한 자유를 얻지 못하는 것은 환경에서 그를 자유롭게 하는 안의 성령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의 충만을 경험했지만 충만한 능력을 잃어버리는 것은 그들이 부지불식간에 환경 가운데 원수의 활동을 허락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조건
완전한 구원은 사람이 이 구원의 가능성을 인정하는가에 달려 있다. 당신은 "내가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는데도 대적이 나의 몸과 생각을 공격할 수 있습니까?" 라고 물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에는 조건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보호만을 의지하고 그 조건을 이행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된 것이다. 이것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는 동시에 또 대적이 일할 조건을 이행한다면 하나님은 사탄의 활동을 중단시킬 수 없다는 뜻이다.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게 구한 것을 그분께서 응답 하실 수 있게 하는 조건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터무니없이 속을지도 모른다.
이것은 하나님의 보호를 의지하였는데도 왜 우리가 실수들과 착각들을 하는지 말해준다. 그러한 사실들이 우리의 논리적인 생각을 혼란스럽게 하지만 우리는 왜 그런지 설명할 수는 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보호를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해 관심하지도 않고 살피지도 않고 게다가 깨어있지도 않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보호하실 수 없다. 당신은 깨어서 원수의 공격을 식별할 수 있는 안목과 능력과 지식을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이럴 때 비로소 당신은 하나님의 보호에 동역하게 된다. "하나님께로서 나신 자가 저를 지키시매 악한 자가 저를 만지지도 못하느니라"(요일 5:18). 당신이 깨어 있고, 원수를 대적하고, 그에게 기회(예 : 사람의 죄를 용서하지 않음)를 주지 않고, 그의 책략을 알 때, 당신은 자신을 지킬 수 있다. 당신이 당신의 몫을 다한다면 하나님께서도 그분의 몫을 다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마땅히 해야 할 것을 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당신을 지키실 것이다.
만일 당신이 '영에 속한 사람이라면 당신 주위를 항상 맴돌고 있는 흑암의 권세를 인식할 것이다. 이것은 당신이 영적인 세계 안에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당신이 당한 일들 중에 절반 정도는 '자연적인 것'에서 나온 것이고 나머지 절반은 '초자연적인 것' 에서 나온 것을 깨달을 것이다. 당신은 원수의 궤계를 지혜롭게 살펴보고 다음과 같이 말해야 한다. "나는 대적이 무엇 때문에 이 일을 하는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가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더라도 나는 언제나 그를 거절하고 대적하여 내게서 어떤 것도 탈취하지 못하게 하겠다." 이와 같이 당신은 순간순간 깨어 있고, 항상 '깨어 있어' 거절하는 태도를 유지하고, 당신의 노정과 대적을 분별하는 빛을 비춰달라고 주님께 끊임없이 기도하며, 한 때 당신이 굴복했던 것들을 속히 떨쳐 버려야 한다. 그 결과 당신의 영에는 유쾌한 승리가 더 증가하게 될 것이다.
흑암의 권세의 압박을 당하고 근심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생각과 몸이 비춤을 얻는 것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휴거되기를 예비하는 큰 요소이다. '성령의 보증'(고후 5:4-5)은 우리의 생각과 몸을 위한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자녀들이 부지불식간에 원수에게 많은 입지를 빼앗긴다면 그들은 어떻게 이 보증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영원히 승리하는 길
마지막으로 우리는 어떻게 해야 당신이 얻은 위치를 영 안에서 보존하고 앞에서 말한 것들을 실행하여 당신의 영이 끊임없이 승리하게 할 수 있는가에 대해 말하겠다. 당신의 혼과 몸을 공격하는 마귀를 대적함으로써 당신이 승리 가운데 행할 때, 에베소서 6장 12절에서 바울이 말한 영 안에서 '씨름'하는 것은 당신의 체험이 될 것이다. 원수는 환경안에서 당신을 공격할 수 있는 그 위치를 놓지 않으려고 한다. 예를 들면 당신의 영 안에 압력이 있을 때마다 즉시 모든 쾌활함을 잃게 되지만 그 압력이 있을 때마다 즉시 그것을 처리해야 한다. 당신은 그것을 속히 분별하여, 동시에 승리를 취하고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주님께 간구해야 한다. 영이 승리 가운데 있으면 일하기가 훨씬 쉬워진다. 그러나 압력이 있을 때 영은 즉시 하락하여 매사에 흑암이 있는 것같이 된다. 당신의 영이 승리 가운데 있을 때가 바로 당신이 '원수의 권세들을 다스릴'권세를 가진 때이다.성령은 그를 이길 수 있는 '능력'(원문은 폭파력으로 되어 있음)을 가지고 계시지만 성령은 오직 자유로운 영을 통해서만 그 능력을 나타내실 수 있다. 영 안에 있는 압력은 족히 이 권세(원수의 권세들을 다스리는 권세 - 역자 주)를 파괴하고, 원수를 대적하는 하늘의 '능력'을 저지한다. 당신의 영이 승리할 때 당신은 분명한 시력과 이해력을 갖게 된다. 당신의 영이 가려질 때 사람을 속이는 영은 당신의 생각을 혼미하게 하여 당신을 하나님의 뜻의 길에서 이탈하도록 유혹한다. 그러므로 당신의 영은 순수하게 되어야 하고, 빛이 충만해야 한다. 그럴 때만이 주님께서 당신에게 가라고 하신 길을 단순하게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