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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한나 아렌트 지음, 이진우·태정호 옮김, 한길사 닷새 동안 읽었다. 하루에 백 페이지를 채 읽지 못한 셈이다. 그렇다고 꼼꼼히 읽은 것도 아니다. 그냥 읽어 나갔다. 갈피가 잘 잡히지 않아도 그냥 넘어가며 읽었다. 머리가 나쁘고 집중을 잘 못 하지만 이것도 나려니 하고 뒹굴뒹굴 거리며 읽었다. 읽으며 참 좋았던 것은 정치에 대한 근본적 시각을 갖게 해 준 점이다. 피상적으로 정치하면 정권을 잡기 위한 정당활동이나 사회운동을 생각하게 되지만, 이것 자체가 현대의 특수한 정치체제를 정치라고 생각하는 경향에서 길러진 편견임을 깨닫게 된 점이다. 사실 지금의 선거민주의의는는 과두제에 지나지 않는다. 아렌트는 정치라는 말 대신 행위라는 말로 우리는 깨운다. 행위야말로 인간과 인간이 만나 세계를 만들어가는 방식인데, 그 조건이 바로 인간의 다원성이다. 평생 그녀를 괴롭힌 근본 문제의식은 2차대전에 경험한 홀로코스트고 바로 학살을 가능하게 한 전체주의에서 비롯된다. 그녀는 그것을 용서와 처벌의 한계를 넘어선 근본악이라고 부른다. 연약한 인간이기에 용서할 수 있고, 또 용서될 수 없는 것에 대해 처벌을 할 수 있지만 처벌할 수조차 없이 닥쳐 온 것이 근본악이다. 하지만 이 책은 전체주의에 대한 책이 아니라 사람 사이의 정치 그것이 어떻게 변해왔는지 탐색하는 책이다. 그녀의 출발점은 고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로 불리는 아테네다. 그녀는 그곳에서 삶이 두 계열로 불렸음을 발견한다. 사적 삶과 공적 삶이다. 정치는 물론 공적 삶이고, 노동은 사적 삶과 관계한다. 둘의 사이에 그녀는 작업을 발견한다. 인간이 공유하는 세계의 사물을 제작하는 활동이 작업이다. 아테네인들이 그토록 중요시했던 공적 삶이 바로 행위로서의 인간의 활동을 가르킨다. 정치의 원리에서 그녀는 다양한 사람들 사이에서 각 개인이 공공을 위해 역량을 발휘하는 행위와 말의 기능을 확인한다. 그녀는 인간 활동을 세 범주인 노동, 작업, 행위가 아테네의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했으며, 이후 그것이 시대가 흐름에 따라 어떻게 이해되고 변화되어 왔는지 추적한다. 현대자본주의사회는 한마디로 노동의 예찬과, 사적 영역이 공공세계를 대신한 상황이라고 규정한다. 그녀는 이것을 세계소외라고 말한다. 그리고 인간의 행위가 생존 차원의 노동과 소비로 단순화된 상황에 대해 우려한다. 마지막으로 그녀는 행위를 회복하기 위한 사유의 필요성을 이야기 한다. 그녀가 공공의 원리로서 존경(우정), 약속, 그리고 용서를 언급한 것도 인상적이다. 다양하고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세계성을 지속하기 위해 상호에 대한 존경(우정)과 약속이 필요하고 용서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후 ‘사유’의 주제는 그녀의 정치철학 세 번째 책인 <정신의 삶>으로 이어진다. ‘지구는 가장 핵심적인 인간 조건이다.’ ‘말의 적실성이 위태로운 곳이라면 어디에서나 문제들은 당연히 정치적이 된다. 왜냐하면 말은 인간을 정치적 존재로 만들기 때문이다.’ ‘활동적 삶이라는 용어로 나는 인간의 세 가지 근본활동을 나타내고자 한다. 노동, 작업, 행위가 그것이다.’ ‘노동은 인간신체의 생물학적 과정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작업은 인간실존의 비자연적인 것에 상응하는 활동이다.’ ‘작업은 자연적 환경과 전적으로 구별되는 '인공적' 세계의 사물들을 제공해준다.’ ‘작업의 인간조건은 세속성, 다시 말해 대상성과 객관성에 대한 인간 실존의 의존성이다.’ ‘행위는 사물이나 물질의 매개 없이 인간 사이에 직접적으로 수행되는 유일한 활동이다. 행위의 근본조건은 다원성으로서 인간조건, 즉 보편적 인간이 아닌 복수의 인간들이 지구상에 살며 세계에 거주한다는 사실에 상응한다.’ ‘다원성은 모든 정치적 삶의 '필요조건'일 뿐만 아니라, '가능조건'이라는 의미에서 절대적 조건이다.’ = 차례 = 서론 제1장. 인간의 조건 제2장. 공론 영역과 사적 영역 제3장. 노동 제4장. 작업 제5장. 행위 제6장. 활동적 삶과 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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