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발, 황등행 열차는 20시에 떠나네.(제50회)
"허너털, 너털, 너털, 어설프지만 그럴 듯 하긴 하다. 그리고 너의 입심엔 언제나 철학이 흐른다. 고상한척하며 머리가 지끈거리는 철학이 아닌 '디오게네스'적 너털거리는 철학 말이다."송민호가 말했다.
" '디오게네스 적 철학'?! 오호!! 내가 추구하는 하는 철학도 바로 그것이다. 그것은 질서가 없는 것 같지만, 해학이 넘친다. 또, 그 것을 면밀히 따지고 보면 한치의 오차도 없는 정확성이 있다. 그것을 그림으로 말하면 고흐의 그림이다. 거칠지만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그림' 말이다. 예술이나 철학이 추구하는 목적지가 뭐냐? 그것은 '인간적인 너무도 인간적인' 것이 아니냐? 그것이 또 사필귀정이라는 가장 아름다운 질서고..."김영태가 맞장구를 쳤다.
"허허허, 너희들 뭐 먹고 싶은 것 없냐? 오늘 내가 쏜다. 허허허" 허너털이 겸연쩍은 듯 허풍을 쳤다.
"가난뱅이 철학도 허너털이 무슨 돈이 있겠나? 오늘 내가 한번 뒤집어엎는다. 마침 봉투도 두툼한 것이 들어 왔거든...하하하" 박선옥의 해바라기 웃음이었다.
"헌데 말야, 방금, 허너털이 김종필을 비비꼬며 '말은 놀부! 행동은 흥부!'라고 했는데, 그 이야기를 들으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그것은 '황태성 사건'이다." 송민호가 말했다.
"5.16직후 평양의 김일성이가 밀사로 내려보낸 황태성이 말야?" 박선옥이 물었다.
"그렇다, 우린 그것을 잠시 훑어보자." 민호가 답했다.
황태성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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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성??
그는 일제시절, 경북 김천에서 동아일보 지국을 하며 독립운동을 했다. 그때 그에겐 친형제와 진배없이 지내는 박상희라는 친구가 있었다.
여기에서 박상희란? 그는 대한민국을 한 손에 거머쥔 박정희의 친형이며, 초대 중앙정보부장 김종필의 장인이다.
1930년대 말, 박정희는 대구사범을 졸업하고 경북문경에서 보통학교 교사로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 교사생활이 적성에 맞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대 일본제국의 군인이 될 것을 결심한다.
박정희 자신의 회고에도 "나는 소년시절부터 군인을 무척 동경했다. 그 시절 대구에 있던 일본군 보병 제80연대가 가끔 구미 지방에 와서 야외 훈련하는 것을 구경하고는 군인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다." 라고 할 정도로 그는 군대라는 것이 자신의 사고와 체질에 딱 맞았다.
그 타고난 소질과 적성 때문에 그는 대구사범시절, 체육과 군사교련 성적은 우수했다. 그러나 다른 성적은 하위권이었다. (1학년 때 97명 중 60등, 2학년 때 83명 중 47등, 3학년 때 74명 중 67등, 4학년 때 73명 중 73등, 5학년 때 70명 중 69등이었다.) 품행평가도 '양'이 네 번, '가'가 한 번이었다. 이 성적표는 박정희 집권동안에는 그 공개가 금지되어 있었다.
아무튼~ 당시, 박정희는 형의 절친한 친구인 황태성에게 자신의 진로 문제에 대해 조언을 구한다.
"형님, 저는 아무래도, 보통학교 훈도질로는 제 갈 길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전 군인이 될까 합니다."
"??!! 그렇다면, 말이데이, 니 만주로 가서 독립군에 들어가면 어떻겠노!? 두고 보레이, 일본 제국주의는 꼭 망한데이."
"??네, 일본이 망하다니요!? 지금 중국과의 싸움에서도 일본이 승승장구하고 있는데 그들이 망할 이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아니데이, 그놈들 욕심 때문에 꼭 망한데이, 그카니까네, 니는 지금 광복군에 들어가그레이. 그카면 우리나라가 독립이 된다면 니는 꼭 크게 쓸 곳이 있을 것이구만..." 황태성의 간곡한 부탁에 박정희는 코웃음을 치며,
"광복군엔 안 가겠습니다. 전 만주 군관학교를 가겠습니다."
"!!?? 뭐시라꼬!? 니 지금 뭐시락했노? 만주 군관핵교를 가겠다꼬? 니 지금 정신이 있나? 없나? 느그 형 상희와 내는 독립운동을 하고 있는데 니는 일본 놈 장교가 되겠다꼬!?"
"네, 저는 대 일본제국의 충성스런 장교가 되고 싶습니다. 형님들이나 독립운동 많이 하십시오." 사실 박정희는 자기 친형인 박상희나 그 친구인 황태성이가 독립운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에라이~ 천하에 나쁜 놈 같으니라꼬!? 니가 마~누구들 때문에 대구사범을 갈 수 있었노!? 니는 배은망덕 한 놈이데이! 당장 나가그레이, 꼴도 보기 싫테이!!" 하면서 황태성은 자신의 면전에서 박정희를 내쳤다. 원래 박정희 집은 너무 가난했다. 그래서 그는 보통학교 졸업 후, 상급학교로의 진학이란 꿈도 못 꾸었다.
그런데 그 형인 박상희가 서두르고 또, 황태성이의 적지 않은 도움으로 박정희는 대구사범을 갈 수 있었다. 또, 박정희는 대구사범에서 성적이 좋지 않아 관비가 아닌 사비로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그를 많이 도와준 사람들이 그의 친형도 형이지만 비교적 생활이 윤택했던 황태성이의 도움이 더 컸었다. .
아무튼~ 그런 곡절을 겪고 박정희는 일제의 만주 군관학교를 간다. 그 후, 황태성과 박정희의 관계는 단절되었다가, 해방 직후, 박정희가 고향에 돌아와 남로당에 입당 할 때 황태성은 그의 신원보증을 서 준다.
그리고 그 이듬해인 1949년 10월 대구와 경북 지역에서 인민항쟁이 일어났다. 그 와중에서 박상희는 경찰에 의해 피살당했고 황태성은 항쟁의 주모자로 몰려 피신했다가 월북하게 된다. 북으로 올라간 황태성은 그 곳에서 '무역성 부상'까지 올랐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