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백산맥 5>에 나타난 주요 사건
1. 보성조성벌교지구 계엄사령관 심재모 중위가 용공분자로 모함 받아 서울 헌병대로 구속수감됨. 유주상이 대표가 된 벌교지역 지주들의 거짓 탄원의 결과였다. 심재모 중위는 서민영 선생과 김범우의 의견을 받아 들여 고두만의 어머니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주게 된다. 염상진 군당위원장이 장악하고 있는 율어면으로 고두만의 처를 들여보내 아이를 베게 해 준다는 선한 의도였다.
사형까지 갈 수 있었던 심 중위는 서민영 선생의 노력으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고 태백산사령부로 임지를 옮기게 된다.
2. 백범 김구가 육군 포병소위 안두희에 의해 경교장에서 즉사함.
박헌영, 여윤형, 이승만과 함께 지도자의 위치에 있던 백범은 극우주의자 이승만, 극좌파 박헌영과 달리 민족주의자로 신탁을 반대하며 외세척결을 주장한다. 그러나 미군정을 중심으로 한 한민당과 이승만은 김구를 암살한다.
3. 반민특위법과 농지개혁법이 세워졌으나 빛 좋은 개살구였다.
친일세력들을 처벌하고자 세운 반민특위법이 경찰조직에 의해 해체된다. 친일세력이 중심이 된 경찰조직은 반민특위 활동을 지켜 볼 수 없었다. 국민의 8할이 소작농이었기에 무상몰수 무상분배로 농토 문제를 해결해야 했으나 지주들의 기득권이 작용하여 유상몰수 유상분배로 법이 처리되었다. 소작농들에게는 빛 좋은 개살구였다.
4. 염상진 군당위원장을 사임하고 조직개편을 이루다.
염상진은 중앙당의 지시로 군당위원장을 사임하고 보성벌교지역을 떠난다. 대신 총상을 당했지만 불굴의 의지로 자애병원에 찾아가 치료를 받은 뒤 다시 동지 곁으로 돌아온 안창민이 군당위원장으로, 하대치가 벌교책으로 임명받는다. 벌교책 자리에 강동식도 물망에 올랐으나 사사로운 감정으로 조직을 떠나 작전을 펼친 적이 있어 결국 하대치가 낙점을 받게 된다.
5. 남편을 잃은 여인들은 어김없이 성폭행을 당한다.
지주 운상을 중태에 빠지게 한 뒤 율어로 도망간 강동기의 아내 남양댁은 마름 오평동에게 수차례에 걸쳐 성폭행을 당한다. 예전에 염상구에 의해 외서댁이 그랬고, 소화 집에 머물고 있는 들몰댁도 산지기로부터 위험에 직면한다. 힘 없는 여자들은 항상 힘 있는 자들의 표적이 되었다.
"군정의 비호 아래 이승만, 한민당, 경찰이 상호 협력관계를 긴밀히 유지하며 만들어 낸 첫 번째 작품이 단정수립이고, 그 두 번째 작품이 이번 사건인 특위박멸이겠지. 그리고 사실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이미 특위는 유명무실해지지 않았나" - 이학송 기자(김범우가 잘 아는 선배)- (189)
"그분이 정말 임정을 등에 업은 권위주의자였다면 일흘넷의 나이로 서른 다섯 살에 불과한 김일성을 과연 만나러 갈 수 있었을 것인가. 그분은 권위주의자도 아니었을 뿐만 아니라 고집불통도 아니었다. 민족을 위한 대의의 길을 찾기 위해서는 객관적 지위도 개의하지 않았고, 개인적 기분도 일소한 것이 아닌가. 두 강대국의 점령과 함께 두 이데올로기가 대립하는 상황 아래서 누가 가장 바람직한 민족의 지도자였을까. 사회주의 혁명을 앞세운 극좌의 박헌영이었느가, 권력장악만을 앞세운 극우의 이승만이었는가, 좌우합작을 앞세운 중도적 여운형이었는가, 민족자주를 앞세운 포용적 김구였는가. 두 강대국이 양보 없는 대립을 하는 한 극좌나 극우의 노선은 필연적으로 민족분열을 초래하게 되어 있었다. "- 김범우의 생각-(220)
"우남은 정치를 현실 자체로만 파악하는 단견의 소유자고, 백범은 정치가 현실이면서 곧 역사라고 파악하는 거시적 안목의 소유자라는 차이를 가지고 있네. 우남은 바로 눈앞에 보이는 이익만 좇아 단정수립이다, 친일반역자들과 야합이다, 특위 습격명령이다, 백범 사살이다, 하고 역사에서 비판받을 짓만 계속하는 거고, 백범은 그와 반대로 민족 전체의 삶을 전제로 외세배격이다, 민족통일이다, 친일파 척결이다, 남북협상이다, 분단획책의 단선 거부다, 하고 객관적 명분의 길을 걸은 게 아니겠나"(2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