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스한 햇살과 봄바람이 불어오는 3월, 백석대학교 캠퍼스에는 수업을 듣기 위해 분주히 발걸음을 재촉하는 대학생들로 활기를 띄고 있었다. 본부동 건물에 도착했을 무렵 강영택 교수님이 미리 나오셔서 반갑게 나를 맞아 주셨다.
대학생활 이전의 삶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 어린 시절에는 이 사를 자주해서 안정적인 생활을 하기 어려웠습니다. 초등학교 는 경주, 중학교 때는 부산, 그리고 고등학교는 서울에서 다녔 으니 친구가 없었어요. 그러다 보니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았고, 소극적인 성격이 되어갔지요. 고등학교 때는 가세가 기울어서 더 어려운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 후 특수교육을 하시게 된 동기는 무엇이었는 지요? 고등학교 시절의 장래희망은 늘 교사였습니다. 남을 가 르친다는 것이 가장 매력적이었고, 즐겁게만 생각되었습니다. 특수교육과로 진학하게 된 계기는 고등학교 1학년 때 휠체어를 탄 소아마비 친구를 도와주면서 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그 친구 의 휠체어를 하교 때마다 2~3명의 친구들과 함께 밀어주었거 든요.
그때는 그저 친구를 도와주는 것이 좋았고, 때때로 아침에 제 가 데리고 등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3년 간의 고등학교 시 절이 좋은 추억으로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대학생활은 어떠하셨습니까? 한마디로 우여곡절이 많았습니 다. 어려운 가정형편에 겨우 단국대학교에 입학하였으나 곧바 로 군대에 현역으로 입대하였습니다. 제대 후 바로 복학하지 않 고 진정 내가 가야할 길에 대한 고민과 방황으로 여러 가지 일 을 하면서 지냈습니다. 결국 제자리로 돌아와 재입학을 했습니 다. 7년 동안 학교를 다니지 않았기에 미등록 재적상태였는데 재입학할 기회가 주어져 복학을 했습니다. 그 방황한 시간들을 지금 돌이켜 보면 삶에 최선을 다해 살아가기 위하여 한 걸음 물러서서 삶을 조망해 본 나날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의 바 닥을 보는 순간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고 올라갈 일만 남았다 는 것을 깨달았으니까요.
복학 후 남달리 열심히 공부하셨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도 않 았습니다. 재입학 후 저 나름대로 진로를 빨리 결정하고 싶었던 생각에 행정고시를 2년간 준비하였습니다. 이 후 당시 지도교 수님이셨던 김옥기 교수님의 조언으로 진로를 다시 특수교육으 로 바꾸고 난 뒤 더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대학 졸업 후 일반대학원 진학과 특수학교 교사로의 생활을 동 시에 하기 어렵지는 않았습니까? 그 당시 특수교사로 재직하 면서 일반대학원을 다니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어려 움을 알기에 공부만 할 결심으로 대학원만 다니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지도교수님께서 특수교육 현장 경험의 중요성을 강조하 시면서 교사생활을 권하셨습니다. 그래서 대학원과 동시에 성 베드로 학교에서 교사생활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석사 과정 졸업 후 박사과정에 입학하게 되면서 직장에서 계 속 조퇴를 하면서까지 공부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습니다. 동 료 교사들에게 짐이 되는 것도 싫었고, 학업에만 충실하고 싶었 기에 재직하던 학교에 사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나 학교 측 에서는 저의 사표를 반려하면서 공부와 일을 겸할 수 있도록 배 려해 주었습니다. 학교 측의 배려 덕분에 직장 근무와 대학원 공부를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박사과정 수료 후 한국교육개발원에 들어가게 된 동기는 무엇 입니까? 박사과정 수료 후 논문을 쓰면서 더 이상 학교생활을 병행하기 어려워 성베드로 학교의 교장선생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사직서를 제출하였습니다. 그러던 차에 한국교육개발원에 서 특수교육 전문연구원을 채용한다는 공고문을 보고 시험을 쳐서 합격하였습니다.
교육개발원에 들어가 보니, 일반교육을 연구하는 인력이 120 여명인 반면 특수교육을 연구하는 사람은 저를 포함해 단 세명 밖에 없었습니다.
교육개발원에서의 시간들은 저의 학문적 전문성을 길러준 시 간이었습니다. 1년에 한 과제만 연구하다보니 깊이 있는 연구를 할 수 있었고, 연구 결과물에 대해 연구자 간 심도있는 논의를 통해 연구의 질을 높일 수가 있었습니다. 또한, 연구방법, 통계 등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지식을 쌓게 되었습니다. 그 밖에 다양 한 교육기관과 교육행정기관, 특수교육기관 등 많은 기관을 3 년 동안 방문할 기회를 가지기도 했습니다. 그것이 저에게 있어 큰 경험이었고, 자산이 되었습니다.
교육개발원과 국립특수교육원에서의 연구활동을 비교하신다면 어떠한 차이가 있습니까? 그리고 국립특수교육원에서는 주로 어떤 활동을 하셨습니까? 1996년에 국립특수교육원의 교육연 구사로 근무하게 되었습니다. 한국교육개발원에서는 질적으로 우수한 연구 결과물을 산출해 내는데 중점을 둔다면, 국립특수 교육원에서는 현장중심의 정책연구를 수립하고 실천하며, 실질 적 성과를 산출한다는 면에 있어 기관 간 성격이 다른 것 같습 니다. 국립특수교육원에 있으면서 현장특수교육, 국제업무, 기 획업무 등을 담당하였습니다. 근무 중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아마 미국 컴퓨터 회사인 IBM사와 공동으로‘장애학생을 위한 개별화교육프로그램’소프트웨어를 개발한 것입니다.
백석대학교에 특수교육과가 개설되면서 교수로 초빙되신 것으 로 알고 있습니다. 국립특수교육원에서 정책 개발 연구를 열 심히 수행하면서도‘자유롭게 학생을 가르치면서 연구하고 싶 다’는 마음 한 편의 소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그 당시 천 안대학교(현 백석대학교)에서 교수 채용 공고가 있었고, 초빙되 어 오게 되었습니다.
대학교수로 첫 발을 내딛으면서 학생들과 하나 된 마음으로 생활을 했습니다. 함께 합숙도 하였으며, 학생들에게는 제가 인 생선배이자 교수이기도 했습니다. 특수교육과의 학생들을 지도하면서 보람과 행복감, 삶의 만 족감을 느꼈습니다. 2006년도부터 대학의 교무처장을 맡게 되면서 학교 발전을 위한 행정업무를 담당하게 되어 교수로서 학생지도와 연구에 대한 부분에 아쉬움이 남기도 하였습니다만 올해부터는 모든 보직을 벗고, 초심으로 돌아가서 연구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전념할 계획입니다.
살아오시면서 가장 보람된 일과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면 무엇 입니까? 금년 백석대학교 특수교육과는 8회 졸업생을 배출하 였습니다. 지금까지 임용시험 합격자가 210명입니다. 매년 20~30명의 학생이 공립 특수학교 교원 임용시험에 합격한 셈 입니다. 아마 사립학교에 취업한 학생들까지 합하면 그 수는 300명가량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우리 대학에 처음 입학했 을 때 지방대학에 다닌다는 열등감으로 고개를 숙이고 다니던 학생들을 자신감 넘치는 대학생으로 변화시키고, 결국 본인의 희망인 특수교육 교사로 성장시킨 것이 제 인생에서 가장 보람 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특수학교에 발령받고 2년차 되 던 해에 배변장애가 있는 학생이 있었습니다. 배변장애의 원인 이 가정에서 양변기를 좌변기로 바꾸면서부터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후로 학교에서 규칙적인 배변훈련을 통해 정상 적인 배변이 가능하도록 한 적이 있습니다. 그 일로 인하여 저 는 아무리 심한장애를 가진 학생이라도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 고, 다양한 전략과 교수 방법을 통해 지도하면 변화와 발전을 가져올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학생을 통해 특 수교육의 필요성과 가치를 깨닫게 되어서인지 그 학생이 가장 기억에 남습니다.
교수님께서 특수교육을 실천하시는데 가장 영향을 끼친 분이 있다면? 저의 대학시절 지도교수이신 김옥기 교수님이라 생각 합니다. 처음 단국대학교 특수교육과에 재입학한 후 2년간 행 정고시를 준비하면서 학교에서는 특수교육 관련 공부는 소홀히 하면서 행정고시 책만 보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교수님은 제가 찾아가면 화를 내시기도 하셨고 심지어는 쫓아내기도 하 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직접 학생도서관으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그 때 교수님이 저를 바라보면서“행정고시를 말릴 생 각은 없지만 특수교육을 공부했으면 한다. 특수교육 분야는 지 금 시작단계라 할 수 있다. 네가 할 일이 무궁무진하다”라고 간 곡히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이후 고시공부를 접고 특수교육 공 부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제가 있기까지 김옥기 교수님의 배려와 지도가 매우 컸습니다.
우리나라 특수교육을 조망하신다면? 2006년 독일에 가서 특수 교육 기관방문을 한 적이 있습니다. 독일의 특수학교, 특수학 급, 통합학급 등을 참관했는데 우리나라보다 규모도 작고 시설 도 낙후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특수교사가 장애학생들에 대 한 열의를 가지고, 여러 가지 교수-학습방법과 함께 다양한 수 업자료를 학생들에게 제시하는 것을 보고는 느낀 점이 많았습 니다.
특수교육의 발전을 위해서는 잘 갖추어진 제도와 시설보다 교사의 장애학생에 대한 열정과 열의, 그에 따른 노력이라 생각 합니다. 특수교사가 끊임없는 자기연찬과 자기개발을 통해 교 수의 질을 향상시켜나간다면 우리나라의 특수교육의 미래는 밝 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앞으로 하시고 싶은 일이 있으시다면 무엇입니까? 교수로서 부족했던 공부와 연구 활동에 매진할 생각입니다. 또한, 학생들 을 열심히 가르치면서 함께 어울릴 시간도 많이 갖고 싶습니다.
한 가지 욕심이 더 있다면 그동안 제가 연구하고 공부했던 것 을 기록으로 남기는 작업을 하고 싶습니다. 그것이 자서전이 될 수도 있겠지만, 특수교육을 공부한 사람이니만큼 특수교육학, 정신지체아교육, 교사론 쪽으로 전공서적을 집필하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국립특수교육원에 관해 한 말씀 해주십시오. 먼저, 국립특수교육원이 더 넓고 쾌적한 환경으로 청사를 아산신도시 로 이전하게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지금까지 그래 왔 듯이 새로운 청사에서 더욱 질 높은 연구와, 전문적인 연수, 최 첨단 정보화 자료 개발에 한층 더 노력해 주셨으면 합니다.
봄에는 따뜻한 바람과 함께 사람 냄새가 불어온다. 그 냄새는 피어오르는 아지랑이와 함께 사람의 마 음을 열게 한다. 학교, 연구소, 교육원, 대학교 등 수 많은 특수교육 현장을 거쳐오면서 하루하루 실 천하는 삶을 살아온 강영택교수님에게서 사람 냄새 가 봄 내음처럼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대담·글 _ 최 기 상 국립특수교육원 교육연구사
강영택 교수는 2009년, 세계 3대 인명사전 중의 하나인 마르퀴즈 후즈 후(Marquis Who's Who in the World, 27 Edition(2010))에 특수교 육 연구와 국가 및 지역사회 특수교육 발전에 대한 공헌으로 등재되었으며, 2010년 Cambridge 국제인명센터(International Biographical Centre: IBC)의 21세기 탁월한 2,000명의 지식인(2000 Outstanding Intellectuals of 21st Century 2010)에 선정되어 등재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