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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화의 벗님들!
춘삼월 春三月 새생명이 움트는 만물이 태동하는 희망의 계절,
춘삼월 듣기만 하여도 포근한 바람과 기분 좋은 꽃향기가 불어옵니다.
새봄의 꽃향기 듬북 안고 희망의 꽃 피우시며 행복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삼월에는 새순이 올라오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꽂샘추위가 찾아오는 계절이기에 감기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2024-2-28 국교동창생 박희순 62년만에 만난 이야기
조동화는 날이면 날마다 하루 1만보를 작정하고 하루일과가 시작된다.
세월의 변화속에서 나이를 먹지 않으려 해도 세상의 이치는 태양이 석양에 기울 듯 70대의 삶을 살게 되얐지요.
시골에서 초등학교를 졸업후 30여명이 모임을 하여 왔으나 각자의 삶을 찾아 떠나가다 보니 대여섯명이 남아 모임을 유지했으나 그마져 한두명이 세상을 떠나 저승길에 가다보니
남은 기금은 나누고 해산, 회장과 총무만 남았다.
회장은 북부시장에서 한약건재상을 하는 동남약초 황석권사장이여.
총무였던 조동화는 아직도 회장님으로 생각하며 북부장날 종종 동남 약초를 찾아 세상이야기를 나누곤 한다.
한달전 동남약초에 들렸더니 수하리에 사는 박희순동창생이 동남약초를 방문했다는거여.
국교를 졸업후 한번도 만난적 없는 박희순!
박희순 그는 친하지는 않았지만 아직도 나의 머리에 세겨져 있기에 한번 만나고 싶다 했지.
전화번호 좀 주어 했더니 희순이 전화번호가 없다는 거여.
그러면 다음에 희순이가 방문하면 전화번호 잘 적어놔 하고 왔는데, 2/28 황석권회장으로부터 희순이가 다녀가 전화번호 적어놓았다는 전화가 온거여.
그래서 희순이와 연락이 되야 국교 졸업후 실로 62년만에 만나게 된거지.
조동화의 벗님들이여!
우리 세월은 추억이 그리운 계절이라 동창 옛 친구들만나 식사하며 옛 이야기 나누는거여.
황석권회장과 조동화 박희순 3인이 2/28 저녁 다섯시 북부시장부근 무진장갈비촌에서 삼겹살로 소주 두어잔과 저녁식사를 했지.
62년만에 만난 박희순동창생에게 호칭이 문제였다.
야 희순아 할수 없었다.
동갑내기 같으면 “야” 할수 있었지만 조심스럽게 희순이 친구 하고 불렀지.
사실 희순이는 47년생으로 세 살이나 더 먹은거야.
희순이 친구가 호칭문제는 풀어주더라고 친구끼리 형님이 어디있어, 격식 따지지 말어.
희순아! 동창생되여 형님 대접 못해 주었구나.
조동화는 6.25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친한 친구들중 나이가 한두살 더 먹은 친구들이 있는데 중학교 친구 허영수장노도 나보다 두 살 위이나 지금껏 친구로서 격의 없이 지내고 있다.
순천의 국립철도학교 정용회친구도 나보다 한 살 더 많은데 격식을 따지지 않고 지내는 사이여.
세상 살면서 종종 나이 더 먹었다고 다투는 일을 본적이 있는데,
격의 없이 가까이지내는 친구가 자연스럽지 않는가.
희순아 무엇보다도 건강이 가장 중요한 목표여.
오늘 만남은 첫째가 건강이 화두였다.
건강의 비법은 몸을 움직여 운동하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여.
우리시절에는 격렬한 운동보다 느슨한 걷기 운동이 효과적이여.
황석권회장과 박희순 조동화 3인의 감동적인 만남의 사연은 이렇게 이루어 졌다.
추억이 그리운 계절에 옛 친구들 만나 추억을 기리고,
행복합시다.
복 받읍시다.
건강합시다.
감사합시다.
<국교동창생 3인이 만나 건배를 하고 있소이다.
희순이 친구를 62년만에 만났으니 기념사진은 남기야지요.
조동화는 박희순 이름을 아찍껏 기억에 남겨 두었는데,
박희순은 조동화 이름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박희순은 농촌에서 바쁘게 살다보니, 도시로 떠나버린 조동화를 알겠어.
박희순동창생친구 수하리 시골에서 한평생 농사지으며 부모님 모시느라 고생 많이 했구나.
그러고 세택이 주배동창생의 기억이 있는지 물어 보았으나 기억이 없다했다.
건강을 생각하여 소주 한병으로 나누어 마셨다.>
<박희순 국교동창생은 47년생으로 78세 피부가 아직도 성성 하구먼.
면도를 않하고 와서 그렇지 나이는 그렇게 많이 들어 보이지 않네.
박희순은 동창인디 나이가 뭐가 중요하냐고 하면서 건강이 최고의 재산이라고 했제.
박희순은 얼굴에 주름도 별로 없고 우리보다 너댓살 덜 들여보였다.
박희순의 현재 거주지는 영등동 라인아파트에 살고 있다 했다.
박희순은 농사짓고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굴곡을 거치며 살아왔으리라.
지금까지 박희순이 살아서 만남이 이루어진것에 조동화는 감사했다.
이한장의 사진은 서울에 사는 세택친구가 박희순의 모습을 사진으로 나마 모습을 보고싶다하여 찍은 박희순의 모습이다.
박희순은 78살이나 먹으며 살았으니 옛날 같으면 장수 했다고 보아야 혀.
더욱 더 몸 관리 잘하여 100세 시대에 오래오래 세상 구경하며 행복하소. >
<북부시장에서 한약건재상 동남약초를 운영하는 황석권사장으로 국교동창회장이다.
30여명의 국교동창회는 삶을 찾아 떠나가고 대여섯명이 남아 모임을 하여 왔으나 그 마져 하늘나라로 멀리 떠난 친구가 두어명 생겨,
황혼의 세월에 작년에 해체하고 회장 황석권 총무 조동화만 남았다.
황석권회장님 뭐 큰 목표가 있겠소.
건강관리 잘하여 오래오래 만나면 되는거 아니겠는가.
건강혀야 혀.>
<스무살 홍안에 나이에 철도에 입문하여 온갖 풍상 다 겪으며 삶을 살다보니 언제까지나 머무르며 지낼줄 알았던 천직의 직장 철도에서 은퇴하여 자유인으로 석양의 노을을 바라보며
즐겁다 행복하다 꿈꾸며 인생을 음미하며 세월을 낚고 있는 조동화로구나.
나이가 들어가다 보니 추억이 그리워 지고 옛 친구들이 만나고 싶네.
내 머릿속에 각인이 되어 있으나 세월이 바빠 만나보지 못한 옛친구들이 그리워지는구나.
황혼의 시절에 매사 감사하고 감사하며 감사가 행복을 느끼는 마술사여.
교회목사님들이 마지막설교 구절에 감사합니다하는데 감사란 말이 감미롭고 달꼼한 말이지.
감사하며 삶을 살아갑시다.>
<북부시장 한쪽에 약5평정도에 자리잡은 황석권회장이 운영하는 동남약초 가게이다.
황석권회장은 약초상을 운영하며 경제적 부를 이루었으나, 요즈음은 한약의 인기가 떨어져 그져 현상유지만 할뿐이다.
옛시절에는 한약제를 싸게 구입하여 고객들에게 보약을 다려주어 팔아 많은 이득을 취하였지.
지금은 코를 골고 있지만 벌어놓은 부가 많아 잘 살고 있답니다.
황회장 건강하시오, 행복하시요>
<맛집으로 소문난 유명한 무진장 갈비촌이다.
처음 무진장갈비촌을 개업할때는 어려운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간간히 음식점을 운영하였으나, 지금은 유명한 맛집으로 발전하여 큰 부자가 된 무진장갈비촌 전면이다.
오늘 박희순이와 이곳에서 만났다.
무진장갈비촌은 음식도 잘 나오고 종업원들이 친절한 편이었다.
삽겹살을 주문하여 먹는데 계란찜도 나오고 소고기 육사시미도 한점씩 맛보도록 서비스하여 잘 먹었제.>
▼조동화가 국교6학년때 논산 관촉사 은진미륵 답사후 부여 고란사 수학여행시 고란사 뒤 낙화암 정자를 배경으로 찍은 단체사진이다.
당시 남학생 2반 여행생 2반으로 총 남자120명 여자 120명으로
여자 남자 따로 따로 단체 기념사진을 찍었는데 남학생 숫자가 총 60여명만 사진을 찍은걸 상상해보니 60여명은 수학여행에 참가하지 못했구먼.
당시 어려운 농촌 생활상을 였볼수 있소이다.
사진속 얼굴들을 살펴보니 이승에서는 볼수 없고 저세상으로 떠난 동창생이 몇 몇 보이는 구먼.
부여의 기억은 낙화생이 길거리에 널려 있어 낙화생을 사서 먹어보았지.
낙화생을 실끄러미로 뀌어서 “낙화생사시오” 하며 농부들이 여관을 돌며 팔던 그시절의 추억이 생각이 스쳐 지나가 더듬어 보았소이다.
백마강 모래사장이 넓어 부여에서는 낙화생을 많이 재배했던 시절이었다.
그시절은 땅콩을 낙화생이라고 했다네.
<지금부터 62년전 졸업사진이다.
한 장으로 된 흑백 졸업사진을 아주 오래전에 용택이가 가져와 옛추억을 느끼고자 조동화는 휴대폰으로 남학생 2개반 만 촬영하여 올려 보았다.
1개반에 60명 정도가 편성되여 있었구먼.
조동화는 6학년때 황정원선생님이 담임이었고 급장은 조종곤이었다.
황정원선생님은 피아노를 잘 치시었고 교육열의가 대단했다.
조종곤은 어디선가 목사가 되었다는 소식을 접하였는데 공식적으로 동창생들에게 흔적을 나타내지 않았다.
용택이는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북대를 나온걸로 아는데 화장품사업을 하는가 했는데 사업에 실패하여 아들 둘을 남겨두고 저세상사람이 되었지.>
<황석권회장은 나종만선생님 반이었구나.
사진속 얼굴들중 황석권회장만 선명히 확인할수 있네.
앞줄 맨좌측이 황석권회장이여.>
인생의 의미
우리는 흔히 왜 사느냐고
인생의 의미를 묻습니다.
그러나 삶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습니다.
인생은 의미를 갖고 사는게 아니라
그냥 사는 겁니다.
삶에 너무 많은 의미를 부여하지 마세요
그러면 또 하나의 굴레만 늘게 됩니다
우리 인생은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입니다.
길가에 풀꽃처럼 그냥 살면 됩니다.
"나는 특별한 존재다. 나는 특별해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에
자신의 하루 하루 삶에 만족 못하고
늘 초조하고 불안하고 후회하는 것입니다.
특별한 존재가 아님을 알면
특별한 존재가 되고,
특별한 존재라고 잘못 알고 있으면
어리석은 중생이 되는 겁니다.
내가 특별한 존재라는 생각을 내려놓고
길가에 피어 있는 한 포기 풀꽃같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한다면
인생이 그대로 자유롭습니다.
내가 남보다 잘 나고 싶고
특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인생이 피곤한 겁니다.
진정으로 자유를 원하고
행복을 바란다면
마음을 가볍게 하길 바랍니다.
그러면 스스로의 삶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삶이 별게 아닌 줄 알면
도리어 삶이 위대해 집니다.
- 출처 : 벨루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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