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기지우(知己之友)의 정(情)
임병식 rbs1144@daum.net
고향 형네 집에서 올해도 김장배추김치 한통을 붙여왔다. 해마다 챙겨서 보내주는데 그런데 올해는 느낌이 좀 각별하다. 형은 연초에 작고 하여 이 세상 사람이 아닌데 여전히 보내왔기 때문이다. 그것은 물론 형수님이 보냈을 것이다. 고맙고 감사하기 짝이 없다. 이번에도 전화를 걸어 말하길 해마다 형님 보내라고 채근하는 말이 생각나서 보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다.
“금년까지만 보낼게요”
그 말에 그러시라고 당부했다. 여기서 형님이라고 한 것은 내가 평소 형에게 부르는 말을 인용한 것이다. 형은 초등학교 동창생 이지만 나이가 두 살이 더 많아 형사지 해온 사이다. 그러니 부인을 평소에 형수라고 부른다.
도착한 김치를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하다. 족히 25kg은 될 것 같다. 그것을 들어서 옮기노라니 콧잔등이 시큰해진다. ‘이렇게 생각해 주다니...’ 형과의 인연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인연은 꽤 오래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학기말에 중학교 입학원서를 쓸 때였다. 시험을 봐야 하는데도 형이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물어보니 졸업하면 진학하지 말고 집안일을 도우라고 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면사무소에 들러 내 호적등본을 떼면서 형의 호적도 함께 발급받았다. 그렇지만 끝내 시험을 보지 못했는데 형은 그 일을 잊지 않은 것 같다. 그런 일이 있는 이후로 우리 사이는 급속히 가까워졌다. 중학교를 다니면서 방학 때면 형의 집을 꼭 찾아갔다.
형은 당시 아버지와 함께 참외농사를 짓고 있었는데, 잘 익은걸 따서는 바지에 쓱쓱 문질러 건네주었다. 내 기억에 그때 먹었던 참외만큼 맛있었던 기억은 없다. 내가 고등학생 일 때, 그 마을에서 불상사가 일어나 동네 청소년들이 집단으로 입건된 일이 있었다. 그때 나는 장흥교도소에까지 가서 면회를 하고 돌아왔다. 내가 생각해 보아도 엄청안 일을 한 것이고 그로 미루어보아 무척이나 마음에 둔 형임이 분명하다.
중년과 노년을 함께 보낸 시기도 그렇지만 십대후반 한창 사춘기 시절은 서로 이성문제로 고민도 많이 했다. 그 시절을 생각하면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을 오롯이 형과 함께 성장통을 앓았다.
흔히 친한 친구를 일러 죽마고우니, 관포지교니, 금난지교니 하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나와 형과의 사이를 생각하면 지기지우(知己之友)라는 말이 걸맞지 않을까 싶다. 겉으로 보기도 그렇고 속마음도 서로 잘 통하고 이해한 사이이기 때문이다.
내가 직장을 잡고 해남 바닷가에서 근무를 하던 때였다. 집에서 농사를 짓고 있던 형이 갑자기 찾아왔다. 내가 보고 싶어서 완도 술도가에 취직을 했다는 것이었다. 나를 자주 볼 수 있는 곳을 찾다가 마침 일자리를 구했다는 것이다.
그때 만나 오랫만에 만나 세발낙지를 먹었던 기억이 새롭다. 형은 직업을 여러 번 바꾸었다. 처음에는 농부로 살다가 술도가 기술자로 일하고 나중에는 석수장이가 되었다가 일용노동자로 마지막을 장식했다.
나는 형한테는 참으로 철없는 동생이기도 했다. 구들장을 캐는 일터에 찾아가 놀다오기도 했던 것이다. 망치질이 얼마나 힘 들었을까 마는 내가 도우려들면 손사래를 쳤다. 말로는 잘못하면 파가 생겨서 버린다고 했지만 실은 내가 힘든 일을 할까봐 못하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형의 한 생은 고달픔의 연속이었다. 힘겹게 일을 했지만 형편은 나아진 것이 없었다. 거기다가 큰 자식이 잘 풀리지를 못해 마음고생이 심했다. 한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그것은 형이 통보해준 사실로 드러났다.
“우리 집을 이번에 새로 지었네. 한번 놀러오게.”
그 말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일이 풀리지 않던 큰 아들이 건설업에 뛰어들어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늘 하는 말이 집을 새로 지어드린다고 했는데 정말 약속을 지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큼지막한 동양화 한 폭을 표구하여 방문했다. 아닌 게 아니라 새집을 지었는데, 그야말로 전원주택으로 ‘언덕위의 하얀집’이었다. 나는 형의 말년을 축하했다.
한데, 호사다마인가 별로 아픈 곳이 없었는데 세상을 뜨고 만 것이다. 형과의 사이는 나뿐만 아니라 가족끼리도 친하여 아우가 먼나라 카자흐스탄에 들어갈 때는 형이 일부러 토종닭까지 잡어 먹여 보냈다.
형은 살아생전 아내가 쓰러진 것을 두고 늘 가슴아파했다. 종종 안부를 물어오고 중풍에 좋다는 바위이끼까지 구하여 보내주기도 하였다.
한데, 그런 형이 세상을 떠나고 없는데 형수가 김장김치를 챙겨 보낸 것이다. 그런 고마운 손길을 어찌 잊을 수 있을까. 형이 평소 생각한 마음을 담아서 보냈다고 하는데 나는 감격해 있지만 형은 천상에서 더 흐뭇한 마음으로 바라보지 않을까 한다.
형수의 따스한 손길위에 형의 순박한 미소가 한사코 어린다. (2023)
첫댓글 가슴이 따뜻해지다가 어느 결에 먹먹해집니다.
좋은 친구가 있다는 건 인생의 여러 행복 가운데 최고일 듯합니다.
그 사람의 친구를 보면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마음속에서 온갖 감정이 솟구치지만 이 한 마디로 대신해 봅니다.
형님은 연초에 돌아가셨는데 형수님이 올해도 김장한 배추김치를 보내주셨네요.
콧잔등이 시큰해졌습니다.
너무 고맙고 형님과의 우의를 다시 한번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