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長男)
임병식 rbs1144@daum.net
장남은 한 가계에서 무거운 책임을 지고 있다. 지금은 법적으로나 변화한 관행이 평등해졌지만 예전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통을 잇는 장손으로서 제사를 주관하는 관계로 대접을 해주며 재산 상속도 다른 형제와 다르게 많이 넘겨주었다. 옛날에는 딸에게는 거의 상속지분을 인정해주지 않았다.
고려시대와 조선 중기 이전만 해도 자녀상속이 아들딸 구분 않고 주어졌지만 조선후기 부터는 아들에게만 상속하는 것이 고착되었다. 그러면서 지분을 장자에게 두 배 이상 주는 것이 일반화되었다.
지금으로부터 3,40년 전만해도 아들의 존재는 절대적이었다. 대를 잇는 다는 의미 말고도 제사는 장자가 지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여 아들 낳기를 소원하였다. 그래서 아들을 못 낳으면 작은댁을 얻는 것은 별 흉이 되지 않았다. 그러한 풍습이 있었기에 본 부인은 어떻게든 아들을 낳으려고 애를 썼다. 딸을 다섯 여섯을 낳고도 아들을 못 낳으면 계속 시도를 하였다. 그러다보니 게속 딸만 일곱, 여덟을 낳은 집도 여럿이었다.
내가 직장을 잡고 담당마을에 나가 호구조사를 하던 때였다. 집집마나 막례나, 끝순이, 딸그만, 종녀, 종순등 딸이 그만 태어 나라고 비는 듯한 이름이 많은 것을 보고 신기해한 적이 있다. 그리고 어떤 가정은 아예 딸 이름을 아들이름처럼 지어놓은 것도 보았다.
예전에는 학교공부도 장남위주로 시켰다. 다른 자녀는 몰라도 장남만은 상급학교에 보내려고 애썼다. 차남이나 삼남이 머리가 좋으면 그렇지 않았지만 대체적으로 장남을 계속 가르쳤다. 집안을 일으키려면 장남이 잘 되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했다.
그렇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장남 우선주의는 사라지고 자녀중 머리가 좋은 자녀를 공부시킨다. 그리고 재산 상속도 지금은 균등 분할한다. 딸도 예외가 아니어서 다른 자녀와 똑같이 분배받는다. 그런데는 민법이 개정된 탓도 있지만 사회인식이 달라진 것이다. 그런데도 장남의 책임은 막중하다. 본인들이 그렇게 자각도 하지만 사회인식이 여전히 그러하다.
얼마 전에 큰 처남이 혼자 사는 나를 만나러 집을 찾아왔다. 막내처남이 사망하여 상을 치르고 나서인지 얼굴이 반쪽이 되어 있었다.
“매형, 이제는 우리 형제 중 나만 남았습니다. 외로운 천애 고아가 되었습니다.”
그 말에 가슴이 먹먹해왔다. 그러고 보니 큰 처남은 치상을 일곱 번이나 치른 것이었다. 장인어른과 장모님, 두 누나와 형, 그리고 여동생과 막내 동생.
그때마다 처남은 무거운 짐을 지었다. 장지를 마련하고 적잖은 치상비를 치렀다. 이번 막내가 떠날 때다 오백만원을 내어 놓았다고 한다. 장남의 책임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큰 처남은 군속으로 직장생활을 마감했다. 수송병과를 받고 군 차량을 정비하다 제대 말이 되었는데, 부대 연대장이 군속지원을 권유했다.
“자네처럼 기술이 뛰어난 사람을 그대로 제대시키기가 아깝네. 내가 추천 할테니 군속에 지원하게.”
그것이 계기가 되어 33여년의 성상을 채우고 옷을 벗었다. 안정된 직장을 잡은 바람에 부모님을 모시고 형제들을 돌 볼 수 있었다. 처남은 자동차에 관한 한 신이 되었다. 시동걸리는 소리만 들어도 어디가 문제가 있는지 알아낼 정도가 되었다.
처남은 집에 와서 제안을 하고 떠났다.
“형님을 한번도 제집에 모시지 못했는데 금년 중으로 모시려 오겠습니다. 부산에서 해마다 불꽃 축제를 하는데 늘 형님 생각이 났습니다.”
“말이라도 고맙네”
“아닙니다. 제가 꼭 모시겠습니다.”
그말을 들으니 가슴이 뭉클해왔다. 나는 그 말의 뜻을 다른데서 찾아보고 있었다.바로 집사람이 세상을 떠 염을 마친 염사가 마지막으로 상면하라고 가족을 부를 때 처남도 함께 했는데 그때 염사가 이렇게 말했던 것이다.
“20년 넘도록 침상생활을 했다는데 몸을 씻기면서 보니 욕창하나도 없이 시신이 깨끗해서 놀랐어요.”
그 말에 처남이 놀라와 했다. 아마 그 마음을 담아놓고 있다가 이번에 불쑥 제안을 한 것이 분명했다. 처남은 하룻밤 자고가라고 권유했지만 오후 해거름에 서둘러 집으로 떠났다.
“형님 식사 잘 챙겨드세요.”
따뜻이 마음 써주는 처남을 보면서 장남은 따로 태어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새삼스레 느껴졌다. (2024)
첫댓글 처남이 참으로 성실한 사람입니다. 사람됨이 '된사람'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든사람, 난사람이 있지만 된사람 많은 못하지요.
인간이란 늘 겸손하고 봉사하고 솔선수범하는 사람이 여지 떼기(信賴 )가 있는 것 같습니다.
장남이라서기 보다는 원래 됨이 된사람이기 때문에 그렇다고 봅니다.
부산 불꽃 축제 때 그간 고생 많으셨으니 처남과 즐거운 시간 많이 가지시기 바랍니다.^^
처남이 집을 다니러와서 선물을 주고 갔습니다.
와서 차로 동행했다가 다시 바래다 준다고 하니 따라나서 볼까 합니다.
변치않은 마음을 보여주니 고맙기만 합니다.
처남께서 피붙이 누님을 매부가 오랜 세월 지성으로 병수발해왔다는 걸 확연히 깨닫게 된 순간이었군요
장남에 대한 기대나 장남의 역할이 거의 와해된 시절인가 싶습니다 그래도 연세 지긋한 분들의 마음은 변함이 없어 보이지요
장남은 따로 태어나지 않는가 생가합니다. 처남은 부모님과 형제들을 떠나보내며 고생이 많았는데
여수까지 와서 식사를 대접하고 불꽃 축제 구경거리에 초대하겠다고 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