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울림
임병식 rbs1144@daum.net
“아이고 다행이다.”
이것은 어디서 내가 직접 들은 말이 아니다. 우연히 배달된 신문을 읽다가 마주친 문구이다. 신문은 통상적으로 어떤 사건이나 내용을 전달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기사는 달랐다.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게 하였다. 그래서 대번에 시선을 모으고 읽어보게 되었다.
내용은 복잡하지 않다. 연세대학교 내에서는 2년 가까이 분쟁이 있었던 모양이다. 청소노동자들이 ‘생활임금 보장’과 인원 감축 반대’를 내세워 시위를 이어온 것이다.
기사를 보면 그 중심에는 노조 분회장인 김현옥(69세) 씨가 있다. 이들은 최소한의 임금보장과 인원 감축을 반대하며 학교 당국을 향해 손팻말을 드는 한편으로 소형 앰프를 동원하여 종종 구호를 외쳤다.
사회의 대표적인 약자로서 계란으로 바위 치는 식이지만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아니 되는 절박함이 있었다. 개선사항을 수차례에 걸쳐 학교 당국에 요구했지만, 오불관언, 들어주지 않았다.
그들은 하는 수 없이 피켓에다 ‘인간답게 살고 싶다. 생활임금 보장하라’,‘인원 감축, 학내구성원 안전할 권리 무참히 짓밟힌다.’ 등을 쓰고 시위에 나섰다.
이를 두고 대부분 교수와 학생들은 응원을 해주었지만, 일부 학생들은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들은 학습권 방해를 이유로 고소하기에 이르렀다. 바로 ‘아이고 다행이다’라는 발언은 그 결과를 받아보고 한 말이었다. 학내 소란 문제는 일찍이 불송치 처분이 나왔고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이 남았는데 이것을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이다.
김현옥 노조위원장이 이 학교에 청소노동자로 들어온 것은 2008년이었다. 이전에는 미싱 일만 30년을 했다. 그는 노조 활동을 싫어했다. 그런데도 노조위원장이 된 건 학생들이 먼저 다가와 “노동조합이 필요하다”라고 손을 내밀어 주었기 때문이었다. 해서 얼떨결에 중책을 맡게 되었다.
여기서 잠깐, 내가 이 기사에 필이 꽂힌 이유가 있다. 바로 아들이 이 문제와 관계가 되는 것이다. 지금 희망제작소 소장직을 맡은 아들은 일찍이 그곳의 사외이사를 하고 있었다. 그때 대표적 대학교 비정규직인 청소노동자 문제에 눈을 돌려 힘을 써왔다.
해마다 외주를 주어 근로계약을 체결하는 불편과 이에 따른 고용 불안정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 자체에서 자회사 형태로 노조를 설립하는데, 앞장섰다. 그리하여 마침내 경희대학교에서 소위 ‘경희모델’이라는 것을 출범시켰다. 이 제도는 이제는 전국의 모든 대학교에서 활용한다. 그로 인해 문재인 정부가 출범 시에는 인천공항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바꾸는 추진위원회에도 들어가 활동했다.
우리나라는 뭐니 뭐니 해도 갑질이 문제다. 강자에게는 관대하고 약자에게는 가혹한 것이 사회현실이다. 이것이 시정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경제적으로 부유해지고 문화가 꽃핀다고 해도 선진국이 되기는 어려울 것이다.
우리 사회는 현재 가치관이 많이 전도되어 있다. 자기만 잘살면 된다는 생각,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생각, 약자는 무시해도 된다는 생각이 팽배해 있다.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오죽했으면 서울대 석좌교수 최재천 선생 같은 경우는 서울대 학생들을 향해 ‘자기만 잘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라’라고 했을 것인가.
알고 보면 연세대 청소노동자 문제도 약자를 무시하는 갑질에서 비롯된 것이다. 학교 당국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교내에서 외치는 소리가 시끄럽다고 고소를 하고 ‘수업권 침해’을 들어 손해 배상 청구 소송을 낸 것은 얼마나 이기적이며 공감력이 떨어진 것인가.
약자를 생각하라는 것이 아니다. 사회구성원으로서 그 정도의 공감력이 없다는 말인가. 그래서야 어찌 더불어 살기를 바란단 말인가.
그에 비하여 다수 학생이 응원하고 사건을 접수한 경찰이 죄가 안 된다며 불송치 하고, 법원이 무죄판결을 내린 것은 잘한 일이 아닌가 한다. 아직도 사회 구석구석이 문제가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건전하고 올바른 사회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생각에 안도가 된다.
김현옥 씨가 손해 배상 청구 소송 패소판결이 나온 후 한 일이 인상적이다.
“소송을 낸 학생들을 원망하지 않아요. 노동이고 권리고 몰랐던 걸 알려준 것도 연세대학생이었고, 결국 학생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기 때문이에요.”
이 사건을 대하면서 새삼스럽게 공감 능력과 사람이 살아가며 필요한 마음의 힘이 무엇일까를 생각해 보게 된다. 그러한 공감 능력이란 타인의 감정을 타인의 입장에서 이해하고 수용하며 이에 맞추어 행동하거나 반응하는 능력이다. 사람은 대인관계를 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존재이기에 이것은 살아가면서 매우 중요하다.
남들이 똑같이 생각하고 느끼는 것을 공유하지 못한다면 이단아가 될 수밖에 없다. 심리학에서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다섯 가지 요소라고 한다.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유지하는 주의집중력, 생각하는 사고력, 감정을 인식하는 감수성, 행동하는 힘, 그리고 치유력이다. 이 모든 것은 결국 가족관계, 친구 관계, 직장 관계 전반에 걸쳐 교류하는데 필요한 요소이다. 고소를 한 학생들은 인간관계에 필요한 인성 면에서 결여된 점이 있는 것 같아 씁쓸함을 준다. 그래서인지 상대적으로 ‘소송을 낸 학생들을 원망하지 않는다’라는 김현옥 씨의 말이 크게 울림을 준다. (2024)
첫댓글 인력 용역 즉 근로자 파견은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의 인건비 절감책으로 상례화되어 있어 파견근로자는 고용불안과 저임금에 노출되어 있는 실정입니다 그나마 공공기관들의 자회사 근로자들은 형편이 조금 나은 편이지만 파견근로자와 정도의 차이는 있을 뿐 역시 갑질에 노출되고 있습니다 연세대 청소노동자들의 사례에서 보듯 우리사회 밑바닥에서 일하는 근로자들은 대부분 비정규직인데다 근로여건마저 열악하기 짝이 없는 가운데 소외당하고 멸시받기 일쑤지요 경희모델은 그런 바닥층 근로자의 정규직화에 선구가 되었으니 노동사에 기록될 획기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대기업의 협력업체 근로자들이 노조를 결성하자 원청 노조에서 핍박을 가하는 사례를 목격한 적이 있습니다 상생의 도는 공감 분위기 조성도 중요하지만 냉정하게 접근해보면 인정에 의지할 바가 아니라 철저한 법적 제도적 장치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국가의 간성으로 자라야할 우수대학 학생들이 사회에 대한 공감능력을 갖지 못하고 자기 개인 안위와 출세에만
신경을 쓴다면 우리사회는 건전하게 발전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점을 아프게 바라봤습니다.
훌륭한 모델을 만든 주환님의 혜안에 참으로 든든하고 희망을 느낌니다.
경희모델을 통하여 약한 약자의 편이 되었으니 참으로 천만대군을 만나는 기쁨이었겠습니다.
우수한 대학생들이 정의롭지 못하고 이기주의에 빠진다면 결국 저도 죽고 나라도 희망이 없을 것입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남을 배려할줄 모르는 인성으로 성적만 올려서 좋은 곳에 취업하려는 생각은 고쳐져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사건을 통해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