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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등대, 인공주의와 자연주의???
한국의 등대, 인공주의(人工主義)는 인간이 만든 인간위주의 생활요건과 그 문화를 일컫는 것이다.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언론, 종교, 군사 등, 모두는 인공주의에 속한다. 위와 같은 인간생활요건은 하나 같이 절대성(眞實性)이 없다. 그 때문에 오늘의 인간사회는 진실문화 10%에 거짓문화가 90%나 된다. 그 엄청난 거짓문화가 시작된 배경은 무엇일까?? 위와 같은 질문의 답은 형이상학이 정확성을 높일 것이다. 그 시작은 원시인간들의 공상(空想)에서 비롯되었다. 원시인간들에게 공상을 하게한 원인은 애니미즘(animism)이다. 아직 인지(認知)가 깨어나지 않은 원시인간들에게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자연현상은 대부분이 공포의 대상이었으며, 또한 경계의 대상이었다. 천둥번개는 말할 것도 없고, 눈비가 많이 와도, 바람이 세차게 불어도, 원시인간들에게는 항상 근심걱정의 대상이었다. 문제는 그런 자연현상들의 근원(根源)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제는 묘안을 찾기 위한 노력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원시인간들의 사고방식에는 이성과 절대성은 없었다. 그래서 공상은 무한대로 열려있는 우주공간을 달리듯 전개되었든 것이다. 그 같은 인간들의 공상의 시대가 최소한 5만년 이상 지속되었다는 사실은 인류의 발자취를 통해서 능히 알 수 있다. 그리고 인간들의 공상은 역사의 시작과 함께 거짓문화의 산실이 되었으며, 오늘의 인류사회는 인공주의가 지배하는 개판사회로 변질되었다. 그리고 그 속에는 피를 말리는 이기주의가 심각한 사회문제들을 촉발하고 있다. 우선적인 사례로는 신본주의, 법치주의, 사회주의, 자본주의를 들 수 있으며, 그런 것들이 국수주의(國粹主義)로 발전하여 전쟁의 불씨가 되고 있다.
한국의 등대, 인공주의의 생성과 사회적인 문제들을 학문(學問)을 대입해서 이해를 구한다면, 이렇게 될 것이다. 우선 사회과학과 인문과학이 그 실체(實體)라는 사실을 알게 할 것이다. 사회학과 인문학의 생성(生成)은 공상으로 부터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학문(學問)은 모름지기, 나무가 뿌리로부터 자라고, 물이 샘으로부터 흐르듯, 근원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하지만 사회학과 인문학은 물위를 떠도는 부평초(浮萍草)와 같으며, 밑 빠진 독과 같다. 밑이 없는 독은 물을 채울 수가 없다. 부평초는 뿌리 없는 수생식물로 자리를 잡지 못한다. 위와 같은 비유는 사회학과 인문학은 원천적으로 진실이 없다는 것이다. 또한 진실이 없는 것은 절대성도 없다. 환언하면, 사회학과 인문학은 인간들의 공상이 만들어낸 거짓(fiction)을 함축한 학문이다. 그때문에 인간들에게 상대기준만을 제공하며, 자기 자신은 물론, 사물의 진실을 볼 수 없게 만든다. 인류역사에 있었던 대표적인 사례로는 중세(5-15세기)에 신권주의(神權主義)가 유럽을 지배했던 것이다. 그 권위(權威)의 실체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만물은 전지전능한 신(神)에 의한 창조물이라는 거짓이었다. 그런 거짓으로 유럽사회를 1천여 년 간 지배한 주체가 있었다. 그리고 법은 사회질서를 유지하기 위한 인간생활 요건이다. 하지만, 법은 절대성이 없다. 절대성이 없는 법이 인간의 양심을 짓밟거나 군림하는 것은 뿌리 없는 사회학 때문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공산당일당이 지배하는 국가체제를 말한다. 생산과 분배에 있어서 강한인위성을 요구하는 인공주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자본주의는 빈부의 격차를 만들어 사회악을 조성하고 심화시키는 원흉이다. 위와 같은 인간생활 요건들은 하나같이 인간들의 공상에서 비롯되었으며, 거짓문화로 발전하였다, 결국 사회학과 인문학은 인류를 불행의 함정으로 내몰았으며, 무덤으로 안내하고 있다.
한국의 등대, 자연주의 철학의 위력??
한국의 등대, 소나 말은 고삐에 묶여서 살아야 제값을 한다. 인간도 동물이기는 하지만, 소나 말처럼 고삐로 묶을 수는 없다. 고등동물인 인간들은 자신들의 마음이 고삐가 되어야 한다. 인간들의 생활은 방종(放縱)은 금물이며, 인간으로서의 도리와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사회학과 인문학은 인간의 마음을 묶을 끈이 없다. 그 때문에 사회학과 인문학은 인간을 방종과 방임, 그리고 방만한 생활로 유도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인간이라면, 위와 같은 말을 절대로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인간사회를 지탱하는 힘은 기존의 정치, 사회, 경제, 문화, 교육, 언론, 종교, 군사 등이다. 그러나 위와 같은 인간생활 요건들은 사회학과 인문학에서 발현된 진실 없는 생활문화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그렇게 볼 때 오늘의 인류는 뿌리 없는 나무처럼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이를테면, 대다수가 일상적으로 거짓을 먹고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의 인류가 진실만 먹고 산다고 해도 널어나는 인구 때문에 영존(永存)하기는 힘 들 것이다. 그런데 불구하고, 거짓을 먹고 살아가는 인류라면, 앞으로 얼마를 더 살 것 인가를 이 시점에서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인류가 자연에 순응하지 않으면, 자연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등대, 자연주의철학은 자연과 인간을 소통(疏通)하게 하며, 동화되게 하는 것이다. 그 속에는 인간의 양심(良心)을 영구보존하게 하는 자연과학의 제 법칙과 제이론이 있다. 이를테면, 관성의 법칙, 만류인력의 법칙, 질량보존의 법칙, 에너지보존의 법칙, 옴의 법칙, 암페어의 법칙 등이 있으며, 그런 것들이 인간들을 방종한 생활을 못하도록 꽁꽁 동여매는 것이다. 환언하면, 자연주의철학은 절대기준이 있어서 인간들을 자연의 질서에 순응하게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자연과학에서 유리된 자연공학(自然工學)은 자연을 파괴함은 물론, 인류의 무덤을 만드는 원흉으로 전락하였다. 사회학과 인문학이 인류를 무덤으로 이끄는 안내자라면, 자연공학은 무덤을 파는 공구(工具)라는 것이다. 자연공학은 자연과학의 이단(異端)으로서 일부의 인간들에게 호사생활을 안겨주고 그런 호사생활을 확대재생산하도록 부추기기 때문이다. 그렇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정치와 교육이 나누어 먹고 사느라고, 정치가 교육(敎育)의 진실을 죽였기 때문이다. 인류에게 자연주의철학의 기능과 역할은 절대적이며, 인류의 구원과 영존(永存)을 지켜주는 방주(方舟)와 같은 것이다.
한국의 등대, 자연공학으로 인한 인류문제, 자연주의 철학이 대안??
한국의 등대, 자연공학은 자연과학을 모태(母胎)로 한다. 하지만 그 역할과 기능에 있어서는 전혀 다른 특성을 가진다. 자연과학이 인류영존(人類永存)의 길을 안내하는 자비로움이 있다면, 자연공학은 인류영존의 길을 막는 무자비한 방해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까닭이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에게 갖가지 공구(工具)을 만들게 하여 자연을 파괴하며, 남용하도록 편익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자연주의 철학은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된 학문(學問)의 효시이며, 인간과 자연 간에 소통을 위한 매체다. 이를테면, 원시인간들을 허황된 믿음으로부터 벗어나게 하였으며, 자연에 대한 호기심을 충족시키고 진실(眞實)을 일깨우기 위한 학문이 자연주의 철학이라는 것이다. 자연주의 철학의 역할의 범위는 대단히 넓고 크다. 우선 자연과학과 자연공학에 대한 이해와 인식과 판단을 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과 자연과의 관계를 괴리가 없도록 조율하는 것이다. 자연주의철학은 과히 우주를 관장한다고 할 만큼 그 역할이 차지하는 비중은 크다. 지금의 시점에서 숙고해 봐야할 것은 인간의 본질이다. 인간이라는 동물이 선(善)을 안고 태어났느냐?? 아니면, 악을 등에 지고 태어났느냐?? 하는 것이다. 그에 따른 논란이 선각자들의 일상에서는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히 고대중국의 공자학파들 사의에서 선악설과 선성설(善性說)을 놓고 적잖은 입씨름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하지만 결과가 있을 리는 없다.
한국의 등대, 인간은 자연만물의 조성물(組成物)로 자연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다가 죽어서는 자연으로 돌아간다. 위와 같은 일은 절대적이다. 가령, 죽은 자를 알미늄 상자에 담는다고 해서 그자가 존재하지 않는 천당을 갈 수 없다는 뜻도 그기에 담겨 있다. 오히려 자신을 만들어주고, 의식주를 해결해준 더없이 고마운 흙과 거리만 멀어질 뿐이다. 아무튼 인류가 지구(地球)에서 탄생할 때는 우주만물처럼 순수하고 선하게만 탄생했다. 위와 같은 인류의 탄생은 절대적이며, 그것을 보장하는 것은 우주만물이다. 그렇다면, 왜?? 오늘의 인간들은 이기적이며, 패덕(敗德)한 동물이 되었을까?? 주어진 환경을 극복하지 못한 탓이다. 무엇보다도 애니미즘(animism)을 극복하지 못한 것은 인류가 두고두고 후회할 일이다. 하지만 당시로서는 우주의 비밀들이 그대로 살아있는 형편이라 불가항력의 문제도 있었다. 예를 든다면, 고대그리스의 피타고라학파들은 BC600년경 탈레스에 의해 호박의 마찰전기와 자석의 작용을 깊이 관찰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BC400경 데모크리토스에 의해 고대원자론이 완성되기도 했었다. 그리고 아리스토탈레스에 의해 물, 불, 공기, 흙을 4원소로 규정했으며, 고대 자연과학을 집대성했었다. 하지만 AD50년경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로 인해 우주에서 진실(眞實)을 찾기 위한 고대그리스 철학자들의 노력은 무산되고 말았다. 아무튼 그런 아쉬운 문제들을 새롭게 해결해 낼 수 있는 대안은 오직 자연주의 철학뿐이다.
한국의 등대, 태양의 열과 빛의 바른 이해, 인류가치관 통일의 첩경??
한국의 등대, 1990년대의 대한민국 고등학교 물리학교과서에 태양에 관한 이런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그 일부를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태양의 중심에는 수소 같은 원소들로 차있으며, 그 온도는 1천5백만도 라고 한다. 이러한 고온에서 플라즈마상태를 이루며, 융합반응을 일으킨다” -이상- 태양에 대한 위와 같은 견해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진실(眞實)이 아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연과학의 제 법칙이나 이론으로서는 태양의 핵융합을 입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태양의 질량은 지구질량의 약10만 배로 알려져 있다. 그런 질량에 1천5백만 도의 열에 수소와 중수소는 물론, 그 어떤 가스도 존재할 수 없다. 태양열이 핵융합에 의한다면, 그 특성상 지속성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태양열이 핵융합이라면, 태양계의 중력장내에는 항상 헬륨가스로 가득 차 있을 것이다. 하지만 헬륨은 우주에 극히 미량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아무튼 다음과 같은 내용도 태양의 열과 빛이 핵융합에 의한 결과가 아니라는 점을 능히 입증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등대, 핵융합실용화에 따른 정보에 의하면, 대한민국 핵융합연구소에서는 플라즈마로 1억 도의 열을 얻었다는 소식과 함께 1억 도를 10초만 지속성을 유지한다면, 중수소 융합이 가능할 것 같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핵융합연구소(EAST)와 국제핵융합연구소(ITER)의 견해도 유사한 것으로 안다. 그렇다면, 태양열과 각 핵융합연구소가 가진 온도차는 8천5백만 도다. 위와 같은 온도차가 태양과 각 연구소의 핵융합기술의 차이인지는 알 수 없지만, 열이 가진 특성으로 볼 때 태양열이 핵융합이아니라는 것은 예측 가능한 것이다. 열은 모든 물질들의 조직과 결정을 와해(瓦解)시키는 특성이 있다. 물에 열을 가하며, 100℃에서 끓어서 증기가 되며, 열을 계속 가하게 되면, 증기는 열에 비례해서 증가한다. 증기를 물로 환원하려면, 열을 줄여야한다. 다이몬드에 열을 가하면 800℃부근에서 탄화가 시작되며, 1300∼1400℃에서 흑연으로 변한다. 위와 같이 열은 물질의 조직과 결정을 와해시키는 특성이 있다. 다시 말하지만, 태양열이 핵융합이라면, 태양은 열을 조절할 능력이 없기 때문에 태양으로서 존재할 수가 없는 것이다. 태양열은 중력(重力)이 축적된 열이며, 중력은 우주만물의 기본질서를 유지하는 힘이다. 중력은 절대중력(단체중력)과 상대중력(다체중력)이 있다. 여기서 참고가 되도록 알려주고 싶은 것이 있다. “우주에서 열과 빛을 가진 모든 성계는 자체(自體)가 감당할 수 있는 중력축적 열만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원천적으로 핵융합을 하는 성계는 없다는 뜻이다. 아무튼 태양열이 중력축적 열이라는 것을 대다수의 인류가 알게 될 때 인류평화는 그만큼 앞당겨 질 것이다.
한국의 등대, 결론.
한국의 등대, 핵융합로의 실용화에 대한 견해다. 핵융합의 실용화는 불가능하다는 전제부터 하고 싶은 심정이다. 핵융합의 조건충족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견해 때문이다. 그 조건을 수소폭탄을 기준으로 한다면, 열과 압력이다. 더 있다면, 지자기(地磁氣)가 있을 수 있다. 그렇게 놓고 본다면, 1).열. 2).압력. 3).자기력이다. 수소폭탄은 핵분열을 이용해서 열을 얻고, 그 열에 의한 대기(大氣)의 충격파로 압력을 얻어서 중수소를 융합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핵융합로에 있어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 무엇보다도 수소폭탄처럼 대기압을 대신할 압력로(壓力爐)를 만들어야 하는데 고온용(高溫用)재료가 없다는 것이다. 가령, 수소폭탄을 위한 핵융합 열이라고 해도 최소한 수만 도는 될 것이다. 그런 열을 감당해낼 내열재료는 없다. 우주에 존재하는 단체(單體) 내열재료로는 우선 탄소(3700±100℃)와 텅스텐(3410±20℃)을 들수 있다. 금속산화물은 마그네시아(MgO) 아루미나(Al2O3)등이 있으며, 이것들은 용융점 3000℃ 미만 이다. 합금내열재로는 4,000도에 견디는 고온용(TiCTaC)이 있다. 하지만 불순물의 함량이 높으면, 텅스텐만 못할 수도 있다. 아무튼 우주만물 중에는 이상의 고온용재료는 없는 것으로 안다. 그 때문에 각 연구소들이 궁여지책으로 선택한 핵융합방법에는 고열(高熱)과 입자가속기(粒子加速器)를 응용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한국의 등대, 한때 고열을 많이 취급해 본일이 있다. 그래서 그런지 1억도 라는 온도는 어쩐지 믿기지가 않는다. 하지만 방법의 차이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을 것이다. “한국의 등대“ 핵융합방법은 열은 최소화하고, 강력한 자기장(磁氣場)과 극한적인 압력(壓力)을 이용하는 것이다. 지금필요로 하는 실험은 1).열. 2).자기력. 3).압력. 위 3대 핵융합조건의 공약점(公約點)을 찾는 것이며, 원자로의 임계질량과 원자탄의 한계질량과 같은 기능으로 보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설명을 굳이 해야 할 까닭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미끼의 향내가 짖어야 큰 고기가 입질을 할 것 같아서 덧붙이는 것이다. 끝으로 하고 싶은 말은, 대한민국 3.1절을 맞는 자세가 너무 요란한 것 같은 느낌이 더는 것이다. 대한민국도 이제는 제발 뒷북치는 일은 그만하고, 앞 북치는 일에 더욱 진력 했으면 좋겠다는 것이 소망이다. 선조(先祖)놈들이 못나서 일본한테 침략 받고, 항거한날을 무엇이 좋다고 들추어내는지 알 수가 없다. 선조 놈들 잘했다고 칭찬하는 것인가??!! 그래도 할 말은 있겠지??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일깨우기 위함이라는 변명 같은 것 말이다. 3.1절과 8.15는 국경일이 아니라, 국치(國恥)일이다. 국치일. -이상-
2019년2월27일.
한국의 등대, 강무(姜茂)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