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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렐라이 언덕과 촉석루 비교
로렐라이 언덕과 촉석루를 비교해 보았더니 생각할 점이 많았다. 로렐라이 언덕은 프랑크푸르트와 쾰른 사이 라인 강변에 솟은 133m 높이 언덕이다. 이 언덕을 문학으로 처음 다룬 작가는 C.브렌타노다. 그는 '로렐라이라는 처녀가 신의 없는 연인에게 절망하여 바다에 몸을 던진 후 아름다운 목소리로 뱃사람을 유혹하여 조난시키는 반인반조(半人半鳥)의 바다 요정으로 변했다'라고 했다. 그 후 하이네가 시로 썼는데 원문은 이렇다. '바람은 차고 날은 저무는데 라인 강은 고요히 흐르네. 산마루에는 저녁 햇살 눈부시게 반짝이는데, 그 뒤편에 아름다운 처녀가 눈부신 자태로 앉아, 금빛 장신구 반짝이며 금빛 머리카락을 빗고 있네. 황금빗으로 금발을 빗으며 그녀는 노래를 부르네. 그 노래는 듣는 이 모두의 가슴을 뒤흔드는 놀라운 곡조라네. 나룻배를 탄 어부들은 노래를 들으며 한없는 슬픔에 사로잡히어, 그들은 절벽을 보지 않고 바위 언덕만 바라본다네.' 이 하이네의 시는 많은 작곡가에 의해 곡이 붙여졌고, 우리나라에서 애창된 곡은 프리드리히 질허가 작곡한 곡인데 가사는 이렇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쓸쓸한 이 말이, 가슴속에 그립게도 끝없이 떠오른다. 구름 걷힌 하늘 아래 고요한 라인강, 저녁빛이 찬란하다, 로렐라이 언덕. 저편 언덕 바위 위에 어여쁜 그 소녀, 황금빛 빛나는 옷 보기에도 황홀해. 고운 머리 빗으면서 부르는 그 노래, 마음 끄는 이상한 힘 로렐라이 언덕'. 그런데 실제 로렐라이에 간 여행객들은 동상 사진을 찍어오기도 하지만, 유명한 이름에 비해 풍광은 실망스럽다고들 한다.
진주 촉석루는 어떤가? 矗石은 층층이 겹쳐진 바위를 말하니, 그 위에 세워진 누각은 이미 이름 자체가 벌써 멋진 풍광을 의미한다. 누각 아래 강물에 바위가 있으니, 이름하여 義岩이라 부르는데, 그 義岩에 얽힌 내력이 깊다.
1593년 임진왜란 당시 진주성에서 벌어진 전투는, 단일 전투로는 임진왜란 최대 규모의 전투이며 가장 많은 사상자가 나온 전투이다. 침략을 지시한 히데요시는 1차 전투에서 패전한 분풀이를 하기 위해, 부산포로 퇴각한 지상의 모든 가용 전력을 전부 모아 9만 명 넘는 숫자로 진주성을 공격토록 했다. 가토 기요마사, 구로다 나가마사, 고니시 유키나가 등 일본의 거물급 장수를 총동원시켰다. 1952년의 1차전 진주 전투에서 왜군 3만여 명이 김시민 진주목사의 3,800에게 패했기에 그 복수전을 한 것이다.
이때 조선의 태세는 너무나 미약했다. 명나라 이여송은 일본군의 의도가 명백하니 조선 측에 진주를 방어하지 말 것을 권했고, 조정은 명군이 원병을 주지 않기로 하자 진주성을 포기하라 명령했다. 도원수 권율은 진주성을 지킬 수 없다고 했고, 의병장으로 이름 떨치던 곽재우는 중과부적이라 생각했다. '차라리 자결을 하면 했지 저런 데서 개죽음은 못하겠다' 면서 진주성 구원을 포기했다. 그래 진주성에 모인 군의 숫자는 최소 3,000명, 최대 15,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김천일의 300명 의병, 경상 우병사 최경회 300명, 충청 병사 황진 500명, 진주 판관 최기필의 가솔로 구성된 의병 60여 명, 사천 현감 장윤 300명 등과 진주성이 함락되지 않을 것이라 여겨서 모인 백성 6만이다.
전체 방위 사령관은 의병장 김천일이 맡았고, 최경회와 황진, 장윤 등이 실 지휘를 맡았지만, 결국 7일 후 북쪽 문이 무너져 일본군이 난입되자, 수성장 김천일과 그 아들 김상건, 그리고 최경회와 고종후, 최기필 등은 물에 뛰어들어 자결했고, 김준민 이하 장수들 대다수는 싸우다 전사했다. 이종인은 적병 둘을 껴안고 남강에 투신했고, 목사 서예원은 도망치다가 잡혀 죽었다. 함께 싸운 6만의 백성도 희생되었다. 일본 측 자료에는 일본군이 취한 수급이 2만이 넘고, 그 외에 엄청난 수의 포로를 포획했으며, 익사한 자의 수도 헤아릴 수 없었다고 나온다. 일본군은 성안의 민간인과 살아있는 동물을 학살하고 주변을 약탈했고, 왜장들은 승리에 도취되어 남강 변 촉석루에서 술판을 벌였는데, 이 아수라장 판에 한 송이 꽃보다 아름다운 논개가 순절했다. 논개는 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끼고 술 취한 적장 게야무라 로코스케(毛谷村六助)로 추정되는 인물을 강물 바위 위로 유인해 그를 안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왜장 하나가 죽어 사기가 땅에 떨어지고, 왜군도 7일간의 전투 동안 진주성 백성들의 끈질긴 저항에 크나큰 병력 손실을 보아, 전라도 지역으로 진격을 못하고 진주에서 떠났다.
이 논개 순국 사실은 임란 후 바로 기록되지 못했다. 민간에서만 전해지다가 1620년 유몽인의 <어우야담>에 실려 세상에 알려졌다. 거기에 論介는 진주 官妓 였다고 하고, < 일휴당실기>에는 진주성 전투에서 전사한 崔慶會의 삶을 기리는 글 중에 논개로 추정되는 인물이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논개의 의거는 17세기 전반까지 나라에서 공을 인정받지 못했다. 그러나 진주 백성들이 해마다 제사를 자발적으로 행했고, 논개가 왜장을 안고 떨어졌던 바위를 의로운 바위라는 뜻으로 의암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18세기 초 경종 때 진주성민의 요청을 받은 경상우병사 최진한이 비변사에 건의하여 논개를 기리고 그 자손들을 포상하려 했다. 그러나 이미 1세기가 넘어 경상도 일대에 관문을 띄워 수소문했지만, 흔적을 찾을 길 없었다. 결국 나라에서 의암 사적비를 세워 그녀의 순국 사실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그녀를 의로운 기생이라 하여 의기(義妓)로 부르기로 하였다. 그로부터 20년 후인 1739년에는 경상우병사 남덕하의 노력으로 논개를 기리는 사당인 의기사가 의암 부근에 세워지고, 논개에 대한 추모제가 매년 나라의 지원을 받아 성대히 치러졌다.
논개에 관한 시
鄭栻 (1624)
홀로 가파른 그 바위 우뚝 선 그 여인(獨峭其巖 特立其女)
저 여인, 이 바위 아니면 어디서 죽을 곳을 얻으며(女非斯巖 焉得死所)
저 바위, 이 여인 아니면 어찌 의롭단 말 들으리(巖非斯女 烏得義聲)
한 줄기 강물 높은 바위, 만고에 꽃다우리라(一江高巖 萬古芳貞)
靑泉 申維翰(1681~1752)
<촉석루 原韻>
진양성 바깥 강물은 동으로 흐르고(晉陽城外水東流)
울창한 대숲 아름다운 풀은 모래섬에 푸르다(叢竹芳蘭綠暎洲)
천지엔 임금에 충성 다한 삼장사가 있고 (天地報君三壯士)
강산엔 손이 머물게 하는 높은 누각 있구나(江山留客一高樓)
노래 병풍에 햇볕 따뜻하니, 잠긴 교룡 춤추고(歌屛日照潛蛟舞)
막사에 서리 내려, 졸던 가마우지 걱정스럽네(劍幕霜侵宿鷺愁)
남으로 북두성 주변에 전쟁 기운 없고(南望斗邊無戰氣)
장대에 피리와 북소리 봄을 맞아 노닌다네(將壇笳鼓半春遊)
*이 시가 워낙 유명하여 이후 이 시를 次韻한 시가 300여 편이 넘는다고 한다.
정약용(1762년)
〈촉석루에서 옛일을 회상하며〉
오랑캐 바다를 동쪽으로 바라보며 숱한 세월 흘러
붉은 누각 산과 언덕을 베고 있네
그 옛날 꽃 핀 못에는 가인의 춤추는 모습 비추었고
단청한 기둥엔 장사(壯士)가 머무는 듯
전쟁터로 봄바람 불어 초목을 휘여 감고
황성에 밤비 내려 안개 낀 물살에 부딪히네
지금도 사당에 영령이 계시는 듯
한밤중에 촛불 밝히고 술잔을 올리노라
* 이 시는 1780년 경상우병사로 있던 장인 홍화보의 요청으로 정약용이 지은 것이다.
梅泉 黃玹(1855)
<義妓論介碑>
楓川渡口水猶香 풍천 입구 건너니 강물이 오히려 향기롭기에
濯我須眉拜義娘 잠깐 나의 눈썹을 씻고 의로운 낭자께 절하네.
蕙質何由能殺賊 난초 같은 몸으로 어찌 능히 적장을 죽였을까
藁砧已自使編行 낭군이 이미 항오에 들게 했기 때문이라
長溪父老誇鄕産 전라도 장수 노인들은 제 고향 출신임을 자랑하고
矗石丹靑祭國殤 촉석루 단청은 나라 위한 죽음을 제사하네.
追想穆陵人物盛 생각해 보면 선조 때에는 인물이 많았는지라
千秋妓籍一輝光 천추의 妓籍에 한 줄기 빛을 발하였네.
心山 金昌淑(1879~1962)
지난 세월 얘기하자니 울분에 눈물이 흘러
근심스레 머리 돌려 옛 강변을 바라본다.
수를 놓은 듯한 저 강산은 누구의 것이더냐
비바람에 황량한 것은 이곳 장사루로다
대독으로 호령하던 일 옛 꿈속에 아련하고,
왜놈들 멋대로 날뛰니 새로 근심이 생기는구나.
의기암 물가엔 파도가 더욱 성을 내니,
우리들은 무슨 심사로 한가롭게 노닐기나 할 건가.
卍海 韓龍雲( 1879 )
<논개의 애인이 되어서 그의 묘에>
낮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 같은 광음(光陰)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였든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데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고나.
나는 황금의 칼에 베혀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의 當年을 회상한다.
술 향기에 목마 친 고요한 노래는 獄에 무친 썩은 칼을 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바람은 귀신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픈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정한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도 더욱 슬펐다.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朝雲이냐 울음의 暮雨이냐 새벽달의 秘密이냐 이슬 꽃의 상징이냐.
삐비 같은 그대의 손에 꺾기지 못한 落花臺의 남은 꽃은 부끄럼에 醉하여 얼굴이 붉었다.
옥 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밟히운 강 언덕의 묵은 이끼는 驕矜에 넘쳐서
푸른 紗籠으로 자기의 題名을 가리었다.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이름뿐이 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 그대의 이름을 불러볼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저 꺾어지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金石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오 나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어서 끼친 恨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오 그대입니다.
나의 가슴에 ‘사랑’의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에 기념비를 세운들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
나의 노래에 ‘눈물’의 곡조를 낙인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에 祭鐘을 울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가 되오리까.
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원히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얼굴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서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는 신에게 참회를 아니한대도 사라지겠습니다.
천추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나의 웃음이 겨워서 눈물이 되고 눈물이 겨워서 웃음이 됩니다.
용서하여요 사랑하는 오오 논개여
樹州 卞榮魯(1898~1961)
<논개>
거룩한 분노는 종교보다도 깊고
불붙은 정렬은 사랑보다도 강하다
아! 강낭콩꽃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아리땁던 그 아미(娥眉) 높게 흔들리우며
그 석류 속 깊은 입술 죽음을 입 맞추었네!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흐르는 강물은 길이길이 푸르르니
그대의 꽃다운 혼 어이 아니 붉으랴
아 강낭콩보다도 더 푸른 그 물결 위에
양귀비꽃보다도 더 붉은 그 마음 흘러라
이렇게 수많은 시인묵객이 논개에 대한 시를 남기었다. 이런 시 詩碑 만들어 공원에 세우면 어떨까? 미국 CNN도 한국에 가서 꼭 가봐야 할 곳 50선에 올렸다. 그런데 막상 진주에 가면 뭔가 빠진 듯 허전하다. 논개 영정은 전각 안에만 있다. 로렐라이 동상처럼 밖에 있지 않다. 5년 전에 진주사범 출신 前 문교부 차관님 모시고 진주에 간 적 있다. 그분은 논개 비각 안에 있는 鄭栻 (1624) 선생의 漢詩를 자신이 번역한 한글 시조와 나란히 詩碑에 새겨 밖에 세우면 좋겠다고 했다. 그래야 찾아오는 사람들이 볼 수 있다 했다. 시비 제작과 설치 비용은 해주 정 씨 종친회서 내기로 하고, 진주시가 장소만 해결해 주길 원했다. 그러나 진주에 가보니, 시장은 바빠서 못 나오고 과장만 나왔다. 역사와 교육 도시 수장이 이런 형편이라 매우 허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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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로렐라이언덕과 촉석루
로렐라이언덕에 로렐라이가 있다면
진주 남강 촉석루에는 논개가 있다
부벽루 영남루 광한루 촉석루 중에
유독 빼어난 명승 절경이 촉석루다
2024.01.28.
누각과 여인
촉석루 논개
영남루 아랑
광한루 춘향
부벽루 순애
2023.11.11.
그런데 논개 초상은 다시 한번 더 수정해서 그려야 한다. 어차피 사진 없이 그리는데 이미지가 뭐 그 정도인가?
좀 더 애절하게 가슴에 닿도록 그렸으면 좋겠다.
ㅇㅇ