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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1-06 여리고에 가까왔을 때에(2)
여호수아 5장 13절-15절
대통령에 당선이 되면 당선인은 며칠 안으로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새로운 정부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를 구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인수위원회는 대통령 취임 전까지 현 정권으로부터 대한민국 정부의 모든 업무를 인수하게 됩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현 정부는 대통령 취임식 직전까지 정부의 모든 업무를 후임 정부에게 완벽하게 인계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신앙에서 대단히 중요한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가까웠을 때에”
여호수아가 여리고를 점령하려고 여리고의 동편 길갈에 진을 치고 있던 상황을 설명하는 말씀입니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두 가지 명령을 하셨습니다.
여호수아 5장 2절부터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아주 중요한 두 가지 명령을 내리십니다. 다름이 아니라 할례를 행하고, 유월절을 지키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명령이 참으로 이상합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리고 성이 보이는 적진 바로 앞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피부로부터 뼛속까지, 혈관 하나하나까지 느껴지는 그런 곳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필이면 그런 곳에서 할례를 행하라고 명령하신단 말씀입니까?
그렇다면 할례는 무엇입니까?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베는 것입니다. 그러니 장정들이 수술을 받으면 며칠은 거동도 할 수 없고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얼마나 어이없는 명령입니까? 전쟁터에서 장정들이 다 누워 있다면 얼마나 답답한 일이겠습니까? 만일 그때 적군들이 쳐들어오면 꼼짝 못 하고 전멸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도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이처럼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리셨다는 말씀입니다.
도대체 전쟁터에서, 싸움을 앞두고 할례가 무엇 때문에 필요했을까요?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자녀요, 그들이 하나님의 약속의 자녀라는 것을 확인하는 표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그런 의미만은 아닌 것 같습니다. 만일 그런 의미만이었다면 먼저 전쟁을 끝내 놓고 난 후에도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구태여 전투를 앞두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런 예식을 강요한 것은 단순한 예식의 차원을 떠나 분명히 또 다른 의미가 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이 무엇이겠습니까?
할례받는 것은 예식이지만, 전쟁터에서의 할례는 백성들에게 던지는 하나님의 질문이 들어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너희들이 나의 백성이라면, 그리고 나의 약속을 믿는다면 너희들의 의지나 생각을 온전히 포기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전쟁터에서 그들이 꼼짝 못하고 누워 있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큰일을 해야 하는 사람이 며칠씩이나 누워 있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모든 것을 포기한 사람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이처럼 이스라엘이 할례를 받는다는 것은 자기들의 의지와 계획을 모두 하나님께 맡기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위험을 감수하고라도 하나님을 신뢰하겠느냐? 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음에는 유월절을 지키도록 명령하셨습니다.
유월절은 어떤 의미를 지닌 절기입니까? 세계를 지배하던 바로에게서 430년 동안이나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신 분, 그러므로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다시 생각하는 절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월절은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인가를 다시 깨닫게 해주는 절기입니다.
동시에 그런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주는 절기입니다.
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해방되는 동안 자기들이 한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단지 하나님이 하라고 하는 것을 믿고, 그대로 따랐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아주 무기력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무기력한 존재가 되어 그분의 말씀을 믿고 따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같은 무기력한 존재를 통해서 놀랍고, 위대한 일을 하게 하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여리고 성을 점령하기 전에 반드시 이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야 했습니다.
이 두 가지 사건은 자신을 온전히 드리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어떤 분이시고, 나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인가를 다시 확인하는 의미를 지닌 중요한 사건인 것입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마침내 오늘 본문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하나님의 명령대로 이스라엘 민족들이 할례를 받고, 유월절도 지키었으나 이상하게도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보다도 백성을 지도하던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침묵이 궁금하고, 불안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마침내 견딜 수 없던 여호수아는 혼자 자기 진영을 빠져나가 여리고 성을 향하여 나아갔습니다. 그러나 장군 혼자서 아무도 대동하지 않고 적진까지 간다는 일은 대단한 모험입니다. 긴장이 흐르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좌우를 살피며 나아가던 여호수아는 당황스런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뜻밖에 키가 자기보다 훨씬 큰 장군을 만난 것입니다. 그런데 그분의 모습은 이스라엘 사람의 모습도 아니고, 그렇다고 여리고 인들의 모습도 아닌 전혀 생소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당황한 여호수아는 본능적으로 같이 싸울 자세를 갖추고 물었습니다.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
바꾸어 말하면 “아군이냐? 적군이냐?”는 뜻입니다.
그때 들려온 대답은 전혀 뜻밖이었습니다.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기서 사용한 “아니다”를 영어 성경에서는 'Neither' 라는 말로 표현했습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용된 'Neither'이라는 말은 어떤 부정의 뜻입니까?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너를 위한 것도 아니고, 너의 대적을 위한 것도 아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이렇게 당당한 그 사람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씀입니까? 바로 그가 직접 자기 신분을 밝혔습니다.
“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이 대목을 새 번역 성경에는 “아니다, 나는 주의 군 사령관으로 여기 왔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을 들은 여호수아는 화들짝 놀라서 땅에 엎드려 절하면서 말합니다.
“나의 주여, 나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려나이까?”
이 말씀은 “사령관님! 이 부하에게 무슨 말씀을 하려 하시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여호수아는 즉시부하가 되고, 그분은 사령관이 된 것입니다. 그러자 이제부터 사령관이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이 명령을 들은 여호수아는 즉시 그렇게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여호와의 군대장관은 다시 여호수아에게 명령을 내립니다. 6장 2절부터 5절까지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여리고와 그 왕과 용사들을 네 손에 붙였으니 너희 모든 군사는 성을 둘러 성 주위를 매일 한 번씩 돌되 엿새 동안을 그리하라. 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제 칠일에는 성을 일곱 번 돌며 제사장들은 나팔을 길게 불 것이며, 제사장들이 양각 나팔을 길게 울려 불어서 그 나팔 소리가 너희에게 들릴 때에는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 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백성은 각기 앞으로 올라 갈찌니라.”
정말 우리들의 생각으로는 어이없는 명령입니다. 좀 그럴듯한 명령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다면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0절과 21절이 바로 그 결과입니다.
“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 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백성이 각기 앞으로 나와가 성에 들어가서 그 성을 취하고 성중에 있는 것을 다 멸하되 남녀 노유와 우양과 나귀를 칼날로 멸 하니라.”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었지만 순종했더니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군대장관의 명령대로 행하였고, 그랬더니 그 성은 그렇게 처참하게 무너졌다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여호와의 군대장관이 여호수아를 찾아온 것은 여리고를 점령하기 직전의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까? 이 사건을 영적으로 어떻게 해석해야 옳은 것입니까?
바로 이제부터 여리고성의 점령 작전의 전권을 하나님께 넘기라는 말씀입니다.
여리고성을 점령하는 것은 여호수아 네가 직접 하려 하지 말고, 전쟁에 능하신 여호와께 맡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수아가 여리고성을 점령한 것은 작전권을 여호와의 군대장관에게 넘겼기 때문에 여리고 성을 점령할 수 있었다는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여호수아가 지휘권을 하나님께 넘기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까?
이 중대한 사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는 일이 그처럼 중요한 것입니까?
몇 해 전에 우리나라의 한국전력공사에서 UAE의 원자력 발전소의 공사를 수주했습니다. 이때 우리나라 대통령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이 공사를 수주할 수 있도록 도왔던 것을 우리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한국전력 공사의 수주 활동을 도운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한국전력공사가 우리나라의 공기업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한국전력공사가 이 공사를 수주하는 일은 바로 우리 대한민국이 이 공사를 수주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자면 여리고 성을 점령하는 것은 한낱 이스라엘의 문제라고만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친히 지휘하셔야 했던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원칙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가정생활을 할 때, 회사를 경영할 때, 우리 앞에 놓인 수많은 일을 우리는, 우리만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가 직접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고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가정일이든, 사업이든, 어려운 문제든 모든 것을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십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우리를 만드시고,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시고 태어나게 하신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가정을 이루게 하신 일도, 사업을 시작하게 하신 것도,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된 것도 모두가 하나님의 계획된 일이란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일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자세가 하나님을 우리 왕으로 모시고 사는 자의 바른 자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결국 하나님의 일을 하며 사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의 생각이나 고집을 포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계획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실 것인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맨 마지막엔 반드시 지휘권을 하나님께 넘겨드려야 합니다. 그리하면 그 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일을 친히 하시기 시작하십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손에서 이뤄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슨 일을 하던지 하나님의 사람은 이런 자세를 가지고 모든 일에 임해야 합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 일들을 친히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친히 감당해 주실 것입니다.
시들로우 박스터(Sidlow Baxter)가 “이 사람들을 보라(Mark these Men, 1949)”는 책에서 ‘가데스 바네아’의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정탐꾼 열두 명이 본 것은 똑같다는 겁니다.
그 열두 정탐꾼들을 그곳에서 네 개의 큰 G를 보았습니다. Grapes(포도)를 보았고, Great Cities(큰 성읍들)을 보았고, Giants(거인들)을 보았고, 그리고 마지막엔 자신들을 Grasshoppers(메뚜기)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믿음이 있는 사람 여호수아와 갈렙은 믿음 없는 사람들과는 달랐습니다.
이들은 하나의 G를 더 보았습니다. 그 하나의 G는 바로 God(하나님)이었습니다. 우리의 전능하신 하나님(God)을 여호수아와 갈렙은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전능하신 하나님을 보았을 때, 그들의 마음에는 민수기 14장 9절 말씀에서처럼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는 확신이 생겼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슨 일을 할 때마다 반드시 ‘God’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을 바라볼 때 자기들의 존재가 점점 커져 보였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위대한 존재로 보게 되니, 그 거대한 가나안 족속을 도리어 “그들은 우리들이 밥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문제만 바라보면 문제는 정말 큰 문제가 되고, 하나님을 바라보면 문제는 더 이상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일이 하나님의 일인데,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다면 이거야말로 얼마나 큰 모순이냐는 말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바로 믿음 있는 사람과 믿음 없는 사람과의 차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떤 일을 하시든지 그 일이 크고 두렵게 보이거든 시작하지 마십시오. 아직 하나님은 생각하지 않고 일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 대신 그 일을 놓고 기도하십시오. 그 일이 작게 보이고 가능하다는 확신이 들 때까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크고, 그 일이 작게 보이면 일어나 지휘권을 하나님께 넘기시고 시작하십시오. 그러면 백전백승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획을 확실히 보며 사는 사람은 지휘권을 하나님께 넘기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자기 앞에 칼을 빼 들고 떡 버티고 서 있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보자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그 자리에 엎드려 경배하며 지휘권을 넘겨주었습니다. 지휘권을 하나님께 넘기면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그 일에 대한 명령을 내리기 시작합니다.
여호수아가 지휘권을 넘겼을 때 여호와의 군대 장관은 즉각 지휘를 시작하였습니다.
“여리고 성을 하루에 한 번씩 엿새 동안을 그렇게 하라. 그리고 칠 일 되는 날엔 여섯 번을 돌고 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소리를 질러라.”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할 책임이 있습니다. “아니 그래 가지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겠습니까? 뭐 대단한 방법이 있는 줄 알았더니 그런 터무니없는 계획이었습니까?”라고 생각하면 곤란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지휘권을 넘겨준 다음에는 내 생각과 내 방법과 다르고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더라도 전적으로 그분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야 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지금은 나에게 손해가 되는 것 같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친히 하십니다.
우리가 그동안 살아보았습니다만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우리 앞에 이뤄진 모든 것을 놓고 보면 정작 우리가 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실패한 것을 돌이켜보면 모두가 내 뜻대로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 뜻을 내가 이루려고 노력하며 일생을 산 사람은 인생이 어렵습니다. 그리고 언젠가는 반드시 후회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작은 일이든 큰일이든 하나님께 맡기고 산 사람은 인생이 쉬울 것입니다. 그리고 세월이 가면 갈수록 복된 삶이 될 것입니다.
내 뜻을 이루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분이 나를 향하신 계획을 이루려고 노력한다면 그분은 하나하나 자상하게 이룰 수 있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실 것입니다. 또한, 필요한 것도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그 길에서 최선을 다하며 주님만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아직도 매사가 어렵고 힘이 드십니까?
여러분께서 하얀 돌을 집으시고, 하나님께서는 흑색 돌을 집으시고 인생의 바둑을 두신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영혼이 잘 됨같이 범사가 잘 되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여러분의 신앙, 인생, 사업, 가정, 건강까지도 하나님께 하얀 돌을 잡으시도록 하십시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지금 여리고 성 앞에 가까이 와 있습니다. 그러므로 간절히 부탁드립니다.
어떤 일이든지, 내 생애의 주도권을 주 여호와께 이양하십시다. 그리고 그분이 인도하는 길을 따라 가십시다.
그리하면 반드시 여리고는 무너집니다. 여러분의 가정 안에 있는 여리고, 내 사업안에 있는 여리고, 우리 교회 안의 여리고가 무너지고 마침내 영혼이 잘되고, 범사가 잘 되는 삶이 여러분 생애에 이루어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