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하다/잘하다
'잘 하다'와 '잘하다'의 차이는 무엇일까? '잘'을 붙여 쓸 때와 띄어 쓸 때의 차이를 생각해 보자.
‘잘’은 부사로서 익숙하게, 능란하게, 훌륭하게 등의 뜻을 지닌 단어다. 그래서 어떤 행위가 그렇게 이루어졌을 때 쓰인다. “감자가 잘 익었다. 마음을 잘 써야지.” 등과 같이 쓴다.
‘잘하다’는 ‘바르고 착하고 떳떳하게 하다’ 또는 ‘음식 따위를 즐겨 먹다’의 뜻으로 쓰인다. “그녀는 시부모님께 참 잘한다. / 그는 술을 잘한다.”와 같이 쓴다.
‘잘되다/잘 되다, '잘나다/잘 나다’ 등도 이와 같은 무리에 속하는 말들이다.
'잘 못하다'와 '잘못하다'의 차이 또한 이들과 유사하다.
'잘 못하다’는 ‘어떤 일을 훌륭하게 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그는 노래를 잘 못한다.”와 같이 쓴다. 하기는 해도 잘은 못한다는 뜻이다.
‘잘못하다’는 ‘어떤 일을 틀리거나 그릇되게 하다’란 뜻이다. “그녀는 지금 노래를 잘못한다.”와 같이 쓴다. 즉 노래를 틀리게 부른다는 뜻이다.
그러니 ‘잘 못하는’ 것은 노력하면 되고, ‘잘못한’ 것은 고치고 사과하고 용서받아야 한다. 언제부터인가 ‘잘못한’ 사람이 더 큰소리를 치고, 교묘하게 둘러대는 모습을 흔하게 보는 세상이 되었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을 저지른다. 그래서 공자는 첫 번의 잘못은 잘못이라 할 수 없고, 그것을 고치지 않는 것이 진짜 잘못이라 하였고,[過而不改 是謂過矣] 잘못한 것 고치기를 꺼리지 말라고 하였다.[過則勿憚改] 또 소인은 잘못을 저지르면 꾸미고 얼버무려 속이려 하고, [小人之過也 必文] 군자는 잘못을 하면 그것을 남들에게 다 보이고 고치므로, 남들이 다 그를 우러러본다고 하였다.[人皆見之 更也 人皆仰之] 지금 우리의 목민관들 중에는 소인이 많을까, 군자가 많을까?
그리고 잘못을 잘못이라 반성하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더 큰 문제는 ‘잘못한’ 것을 보고 ‘잘못했다’고 꾸짖는 사람이 점차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냉소와 체념만 가득차고 생기가 없는 사회가 되어 가고 있다는 증거다. 공자는 군자도 미워하는 마음을 가질 때가 있는데, 그 첫째가 남의 잘못에 편드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하지 못하는 사회는 병든 사회다. 이런 병을 치료하지 않고는 진정한 문명국도 선진국도 이룰 수 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