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나무 잎이 천천히 떨어지며 남기고 간 사소한 것들 / 김산
앞마당의 벚나무 잎이 작은 바람에도 우수수 떨어진다
큰 빗자루를 들고 떨어진 잎들을 쓸기 시작하면
바스락거리며 오그라든 당신의 지문이 조각조각 바서진다
바람과 빛과 물이 일제히 분열하며 공중으로 흩어진다
검지까지 쭉 뻗은 감정선과 손목으로 가다 끊긴 생명선
그래, 생각이 많으면 오래 살지 못한다는 말은 틀림없다
빗자루가 쓸리면서 빗자루도 아플 거라는 생각에
빗자루질을 멈추고 떨어지는 잎들을 무심히 바라보았다
겨우겨우 붙어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벚나무 잎을 보면서
어디서 불어왔는지 찬바람이 오른 뺨을 할퀴고 간다
뺨으로 누구를 때렸다거나 해코지를 했다는 소리는 금시초문
기껏해야 뺨은 누군가의 뺨을 비비거나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잠시 온기를 나누는 게 다일 뿐,
다시 빗자루를 잡고 떨어진 벚나무 잎들을 쓸기 시작한다
빗자루로 떨어진 잎의 뺨을 비비면서 언젠가 그 뺨을 타고 흘렀을
눈물의 길을 새롭게 닦아 내기 시작한다
떨어진 잎들은 결코 버려지거나 낙오한 것이 아니다
바닥에 대고 무언가 할 말이 있어 가뿐하게 하산한 것이다
더 이상 매달려 있는 것도 지겨워, 그만 놓아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놓았다
바람을 타고 먼 곳으로 날아오르는 당신의 지금을
나는,
지극히,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