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저녁 성찬식 때, '연합 찬양대'가 부르는
183장을 따라 부르면서
듣고, 또 (자막을) 보자니까 첫 소절과 후렴의 가사 중
"나 속죄함을 받은 후~"를 모조리
"나 속죄함을 입은 후~"라고
고쳐서 부르시던데....
언제 그렇게
고쳐서 부르기로 공고가 된 것인지?
아니면 저 혼자만 모르고 있(었던)는 것인지요?
453장 후렴 마지막 부분의
"내게 부족함 전혀 없어라~"는
"내가 부족함 전혀 없어라~"라고
부르기로 한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만...
시편 23편 말씀대로
'내가'가 옳을 뿐더러
여러 차례 설교 말씀에서도 나왔다시피
'내게'라고 하는 것은 '나(개인)'를 중심으로 한 것이지만
'내가'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중심으로 한 것!
그렇지만
'나 속죄함을 받은 후'와 '나 속죄함을 입은 후'의
차이는 정말정말 모르겠거든요.
누구 아시는 분~
가르쳐 주세요!
첫댓글 오랫만에 뵙습니다 ^^ 아시는 분 어서 올려 주십시오 ~~~
저 위의 " 내가 부족한 전혀 없어라" 표기는 '부족함'이 맞지요 ?
(도대체) 어디에 '내가 부족한 전혀 없어라'고 되어 있는지요? 으흠~ [시치미 떼는 소리!]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깜짝 놀랬습니다 ^^ 인터넷 검색으로는 ' 입은 후'가 많이 나오고,
아는 자매님께 여쭤보니 역시 모르고 불렀다니..제대로 알고 싶습니다.
찬송가 495장 내영혼이 은총입어 중한 죄짐 벗고보니 / 어느날 설교자께서 중국 조선족 성악하는 여자분께 복음을 설명하시면서 / 외투를 벗고 입는 시현으로 죄사함의 은총을 표현하셨다고 들은 기억이 나며 / 모임찬양대에서는 2005년 부터 바꾸어 불렀다고 서울 찬양대에서 활동하는 딸이 대답해 주네요 / 받는다는 표현은 선물의 뜻이 강하고 / 입어라는 표현은 보호해주시고 긍휼히 여겨 주시는/ 좀 더 자상한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는 옷 입혀 주시는 모습이 / 저 에덴에서 쫏겨날 때 가죽옷을 입혀주신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 그 동정의 눈 빛과 음성을 나는 잊을 수 없겟네 라는 죄사함의 은총을 입은자로서의 행복을 다시 한번 떠 오르게
저도 성이 '方'가이신 중국의 (유명한 한국계) 소프라노에게 복음을 전하시면서, 찬송가 495장의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를 부르게 하고 (당시 쌀쌀했던 날씨에) 외투를 입었다가 벗어 보게 한 설교를 기억합니다. 그런데 벌써 2005년도에 서울 찬양대에서는 이미 '나 속죄함을 입은 후'로 바꿔 부르고 있었다니? 워매~, 하지만 쩌그 위의 고참 (같은, 서울교회 찬양대) 반주자님이랑 그 분이 여쭤 보았다는 자매님도 까맣게 모르고 계셨다니... 그럼 저는 (이 번 기회에 다시금) '귀'도 좋고, '머리'도 괜찮은 편이라는 것이 증명 되었네염. 아무튼 '리빙스톤'님의 (따님의) 정보제공으로 궁금증을 말갛게 씻게되어 감사!
책자가 나왔을 때 ' 입은후' 로 바로 고쳤었지요. 의미를 올려 주셔서 자세히 알게되어 감사합니다^^
찬양대에서 딱 두 사람 빼고는 모두 의미를 알고 있다는 후문이 ㅎㅎ
그런 깊은 뜻이 있었군요. 설명 감사합니다.'리빙스톤'님.
안 그래도 와~ 대단하시다. '느디님'님, 난 찬양 들을 때 가사까지 헤아리며 자세히 안 듣는데...
라고 생각했는데 역시 '느디님'님. (써 놓고 보니 좀 아부성의 발언같이 느껴짐 ^^::)
/'수국'님이/ 말씀하시는 '책자'란 무엇인지요? 또 (6년 전쯤에?) 고쳐 놓으셨다면 왜 엉뚱한 '동문서답'을 하셨는지요? 아무래도 머리(카락)에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오늘 미장원 노는 날이 아니면 (이 번에는) 두 분이 함께... /'바람소리'님,/ 저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부'보다 피부에 와 닿는 '아첨'을 좋아 한답니다. 참고 하셔서 다음에는 좀 더 고단위(고농도?)의 확실한 '아첨'을 부탁 ~
연합찬양대 행사 책자 입니다.
내가 여호와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며
내 영혼이 나의 하나님으로 인하여 즐거워하리니
이는 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 하심이
신랑이 사모를 쓰며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이사야 61 : 10
이 말씀이 그 가사의 답이라 생각됩니다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