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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회갱신성경연구원 원문보기 글쓴이: 정의영
창48:5절) 요셉의 두 혼혈아들 미국(美國)의 유명한 미식축구 선수인 하워드 워드. 그리고 플뢰르 펠르랭. 프랑스 전 장관, 우리나라 농구 선수 문태종은 모두 혼혈아(混血兒)든지, 아니면 어려서 외국으로 입양(入養)되었던 이들인데, 이제는 모두 운동선수나 혹은 장관으로 성공을 해서 유명하게 되었고, 한국인들의 사랑을 받게 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어렸을 때, 부모가 없거나, 혹은 혼혈아(混血兒)라고 해서 어떤 의미에서 우리나라에서 버림을 받다시피 했지만 각 분야에서 성공해서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 세계적으로 유명한 기업체가 있는데, 만일 그 기업의 후계자 중에 흑인 혼혈아가 끼어 있다면, 모두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렸을 때, 읽은 동화 중에<소공녀>는 이런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영국(英國)에서 귀족(貴族)이고, 엄청난 부자(富者)인데, 아들이 미국(美國)인 여자를 사랑하는 바람에 아버지의 미움을 받아 집에서 쫓겨나서 가난하게 살다가 아들을 낳고 죽었는데, 나중에 이 손자가 할아버지의 부름을 받아서 영국(英國)에 가서 그 모든 재산(財産)을 상속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구약(舊約)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집은 어마어마한 복(福)이 상속이 되는 집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복(福)의 집은 이 세상의 돈이나, 권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福)이 상속이 되는 집이었습니다.
우리가 세계적으로 큰 기업을 누군가가 상속하거나, 혹은 황제나, 대통령의 자리를 상속한다면, 대단하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福)은 기업의 복(福)이나, 권력의 복(福)과는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복(福)입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복(福)이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는데, 그 아들. 이삭에게 상속이 되었다가 그 손자 야곱에게 상속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다른 열한 아들과 함께 이 복(福)의 상속자(相續者)로 세웠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두 아들은 야곱의 피와 애굽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混血兒)들이었습니다. 이 혼혈아(混血兒)들이 당당하게 하나님의 복(福)을 상속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요셉의 두 아들은 생긴 것도 애굽인에 가까웠고, 말(言語)이나, 복장(服裝)도 완전히 애굽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이 두 혼혈(混血)손자를 아들로 입양(入養)을 해서 야곱의 아들은 열세 명이 되게 됩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들이 하나님의 복(福)을 받는 예표(豫表)가 됩니다. 즉 우리는 이스라엘의 피가 한 방울도 섞이지 않은 이방인들이지만, 당당하게 하나님의 복(福)을 상속(相續)하게 된 것입니다.
Ⅰ.할아버지가 만난 두 손자 48:1절)이 일 후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
여기서‘이 일 후’는 요셉의 경제정책(經濟政策)이 애굽에서 성공해서 7년 흉년(凶年)을 무사히 잘 마친 후를 말합니다. 그 무서운 대흉년(大凶年)이 지나간 후, 애굽인들은 정상적인 삶으로 돌아갔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고센 땅에 남아서 번성(繁盛)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요셉은 아버지 야곱이 병(病)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남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놀라게 되는 것은 할아버지 야곱과 요셉의 두 아들이 이때 처음 만난다는 사실입니다.
어떻게 된 연유(緣由)인지 알 수 없지만, 야곱이 늙어서 병(病)들게 되었을 때에야 비로소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을 찾아오게 되었습니다. 왜 요셉은 두 아들로 하여금 할아버지 야곱을 더 일찍 만나게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우리가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애굽인과 이스라엘 사람들은 별로 섞이지 않고, 교류(交流)도 없이 따로 살았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요셉이 애굽에서 낳은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사실은 이스라엘인의 피와 애굽인의 피가 절반씩 섞인 혼혈아(混血兒)들이었지만, 실제로는 애굽인에 더 가까웠다는 사실입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어머니가 애굽인이고, 애굽 제사장(祭司長)의 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어려서부터 애굽 말을 썼고, 애굽인의 옷을 입었으며, 모든 것을 애굽인처럼 하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자기 두 아들을 아버지 야곱에게 데리고 온 것은 무슨 큰 기대를 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래도 야곱이 아들의 할아버지니까 돌아가시기 전에 인사라도 드리게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데리고 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왔을 때, 아버지 야곱은 아들 요셉과 전혀 상의도 없이 엄청난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보면, 아무리 믿음이 좋은 요셉이라 하더라도 자기 아버지가 얼마나 큰 복(福)을 줄 수 있는 분이신지 잘 몰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요셉의 두 혼혈아(混血兒)들 문제를 오래전부터 생각을 하고 있었고, 이 두 손자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너무 늦기 전에 자기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 야곱에게 온 것은 천만다행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요셉의 두 아들이 할아버지 야곱을 보지 못한 가운데, 야곱이 죽었더라면, 이 두 아들은 완전히 애굽인으로 살다가 죽었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셉의 이 두 아들은 할아버지 야곱을 만남으로 완전히 인생이 달라졌고, 복(福)이 달라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단순히 세상의 복(福)을 받는 사람이 아니라, 당당하게 하나님의 복(福)을 받는 자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보면,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와서 말씀을 들을수록 우리의 복(福)은 달라지고, 그 축복(祝福)의 스케일(scale)도 달라지게 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때 야곱은 이미 너무 노쇠(老衰)해서 자리에서 잘 일어나지도 못하고, 겨우 힘을 내어 침상에 앉아서 요셉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우리는 요셉이 너무나도 믿음이 좋아서 완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습니다. 요셉도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늘의 복(福)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그 동안에도 자기 아들들을 데리고, 아버지에게 와서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더 들었어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그 자체가 복(福)을 받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심으로 어마어마한 천국(天國)의 복(福)을 상속(相續)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아무리 훌륭한 인격을 가졌고, 훌륭한 믿음을 가졌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빈 깡통을 차게 됩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옛날 하나님께서 자기를 벧엘에서 만나시고, 복(福)을 주신 말씀을 들려주었습니다. 48:3-4절)요셉에게 이르되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내게 나타나사. 복을 주시며. 내게 이르시되 내가 너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게서 많은 백성이 나게 하고. 내가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주어 영원한 소유가 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이전에 가나안 땅 루스’는 야곱이 하나님을 만났던 벧엘을 말합니다. 야곱은 형(兄) 에서를 피해서 도망치다가 벧엘에서 돌을 베개하고, 잠을 자던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야곱도 이 체험을 하기 전에는 하나님을 잘 몰랐고, 부모의 하나님을 믿어주는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마치 하나님은 그림의 호랑이 같이 실제적인 분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빈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야곱에게 복(福)을 주시면서 생육(生育)하고, 번성(繁盛)하며, 그에게 많은 백성이 태어나고, 그들이 가나안 땅을 소유로 받게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주셨던 축복(祝福)의 핵심(核心)은 야곱과 그 자손들이 하나님의 복(福)을 상속(相續)하는 자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福)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붙드는 자가 상속(相續)하게 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의 복(福)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은가? 아니면, 하나님의 복(福)을 가지는 것이 더 좋은가? 늘 생각을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의 복(福)은 아무리 좋아도 고갈(枯渴)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福)은 무한히 우리에게 공급이 될 뿐만 아니라, 먼저 우리 자신의 삶을 아름답게 만들어줍니다. 야곱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복(福)을 두 손자에게 상속시켜 주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두 손자를 야곱이 자기 아들로 입양(入養)했기 때문에 요셉의 몫이 다른 아들들보다 갑절로 많아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48:5절)내가 애굽으로 와서 네게 이르기 전에 애굽에서 네가 낳은 두 아들 에브라임과 므낫세는 내 것이라. 르우벤과 시므온처럼 내 것이 될 것이요” 원래 야곱의 아들은 열두 명이었습니다. 이 열두 명의 아들이 야곱의 복(福)을 공동(共同)으로 상속(相續)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자기 손자인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승격(昇格)시켜서 자기들의 삼촌들 즉 르우벤이나, 시므온처럼 자기 아들이 되게 했습니다.
정상적으로 요셉의 두 아들은 야곱의 손자(孫子)이기 때문에 요셉의 축복(祝福)의 몫을 나누어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야곱은 그렇게 하지 않고, 므낫세와 에브라임 손자(孫子)를 자기 아들로 입양(入養)함으로써 이 두 혼혈(混血) 손자는 손자가 아니라, 아들이 되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이스라엘에서 각각 한 지파(支派)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요셉의 두 아들이 가입(加入)됨으로 열세 지파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레위 제사장(祭司長)지파(支派)이기 때문에 빠지게 되어서 결국 이스라엘은 열두 지파(支派)가 됩니다.
결국 하나님은 요셉에게 다른 아들의 갑절의 복(福)을 주셨습니다. 요셉은 처음 하나님의 말씀 때문에 형들로부터 많은 미움을 받고, 노예로 팔려 왔지만, 끝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붙듦으로써 가족들을 모두 다 살리고, 애굽 사람들까지 다 살리게 합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말씀을 끝까지 붙들고, 충성해서 믿음으로 승리(勝利)했기 때문에 다른 아들의 갑절의 복(福)을 받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편안하게 아무 탈 없이 살면, 그 정도의 상(賞)을 받는 것으로 그칠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고난을 받는데, 관심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현대인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세상의 복(福)을 많이 가지고, 편안하게 살려고 하는데, 이렇게 해서는 하나님의 복(福)을 받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많은 환난(患難)을 당하면서 많은 어려움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부흥(復興)을 일으키면, 다른 사람들의 갑절의 복(福)을 받게 됩니다. 이때 강(强)한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게 되고, 이 세상에서도 가장 능력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우리가 힘든 길에서 믿음으로 승리(勝利)했을 때, 하나님은 그 열매를 갑절이나 축복(祝福)해 주시는 것입니다. 야곱은 요셉에게 그의 어머니 라헬이 어떻게 죽었는지 이야기했습니다. 48:7절)내게 대하여는 내가 이전에 밧단에서 올 때에. 라헬이 나를 따르는 도중 가나안 땅에서 죽었는데. 그 곳은 에브랏까지 길이 아직도 먼 곳이라. 내가 거기서 그를 에브랏 길에 장사하였느니라(에브랏은 곧 베들레헴이라)"
야곱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기 위해서 20년 하란 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라헬은 야곱을 따라 함께 가나안 땅에 오던 중에 길에서 아이를 낳다가 죽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하란에 있었더라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었는데, 하나님의 복(福)을 찾아서 가나안 땅으로 오다가 중간에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라헬을 중간 길에서 묻지 않고, 에브랏이 상당히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나안 땅까지 운구(運柩)해서 가나안 땅 에브랏에 묻었습니다. 이것을 보면 야곱의 식구들은 하나님의 복(福)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은 살아서 오지는 못했지만, 그의 시신(屍身)은 결국 가나안 땅까지 왔습니다.
이들은 모두 하란 땅에서 잘 사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죽는 한이 있어도 하나님의 약속(約束)을 붙들었던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은 하란을 떠나서 약속(約束)의 땅으로 가는 과정과 같습니다.
우리는 약속(約束)의 땅으로 가는 과정에서 사랑하는 식구를 잃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살다가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Ⅱ.야곱의 축복 요셉은 두 아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찾아 갔을 때, 야곱은 임종(臨終)을 눈앞에 두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이미 너무나 늙어서 눈이 어두워서 앞을 잘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함께 온 두 젊은이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요셉은 이 아이들이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자기에게 주신 두 아들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야곱은 이 두 손자를 자기 품에 안고, 축복(祝福)을 했습니다.
48:10절)이스라엘의 눈이 나이로 말미암아 어두워서 보지 못하더라. 요셉이 두 아들을 이끌어 아버지 앞으로 나아가니.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입 맞추고 그들을 안고”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에게 입을 맞추고, 그들을 끌어안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그 두 손자를 자신의 무릎 사이에 세우고, 축복(祝福)을 했습니다.
야곱이 다 큰 손자(孫子)를 자기 다리 사이에 세우고, 축복(祝福)한 것은 아마 아들로 입양(入養)하는 의식(儀式)이었던 것 같습니다. 요셉의 두 아들은 애굽에서 태어났고, 어머니가 애굽인이며, 애굽어(語)를 사용했으므로 실제 애굽인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의 피는 절반이 이스라엘의 피가 흐르고 있지만, 문화적(文化的)으로나, 언어적(言語的)으로나, 사고방식(思考方式)은 애굽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이 할례 받지 않은 두 손자를 자기 무릎 사이에 세움으로 그들을 진정한 이스라엘의 자손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신약(信約)시대에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예수님의 제자들이 설교하니까 많은 사람들이 회개(悔改)하고, 세례를 받았고, 어떤 때에는 하루에 삼천 명이나, 세례를 받기도 했습니다.
이때 예수 믿는 사람들 중에는 이스라엘 자손이라고 하지만, 거의 이방인(異邦人)의 피가 섞인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신약(信約) 교회(敎會)의 중심인물들이 되었고, 얼마 가지 않아서 사도 바울의 전도(傳道)를 통해서 예수를 믿은 이방인 교회는 세계 교회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방인(異邦人)이지만,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서 엄청난 복(福)을 받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므낫세와 에브라임의 복(福)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았을 때, 그들에게 성령이 임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요, 백성으로 인정하시는 표시(標示)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해서 성령의 불이 임하는 바람에 온 세상은 성령의 불덩어리처럼 변했습니다. 옛날 로마시대에는 입양(入養)이 엄청난 복(福)이었습니다.
이 당시에는 자식(子息)이 없는 왕(王)이나, 귀족(貴族)들이 노예 중에서 똑똑한 사람을 택해서 훈련시킨 후에 아들로 입양했는데, 그렇게 입양(入養)되면, 그는 아버지의 지위(地位)와 재산(財産)을 상속하게 됩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의 자녀(子女)가 되었고, 하나님의 모든 것을 물려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장차(將次) 하나님의 모든 나라와 재산(財産)과 영광(榮光)을 물려받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너무나도 많은 것을 가지고 계시므로 우리가 나라를 하나씩 차지한다 해도 부족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살면서 가장 복(福) 받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자격을 얻는 것입니다.
48:15-16절)그가 요셉을 위하여 축복하여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 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시오며. 이들로 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 이들이 세상에서 번식되게 하시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요셉의 두 아들에게 넘겨 준 것은 많은 재산(財産)이나, 돈이 아니었습니다. 야곱은 두 손자(孫子)에게 자기가 한평생 살면서 체험했던 하나님, 특히 자기가 가장 어려울 때, 자기를 지켜주셨던 하나님, 그리고 그의 아버지와 그의 할아버지가 믿음으로 살면서 능력주시고, 복(福)을 주셨던 그 하나님을 복(福)으로 물려주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보면‘내 조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섬기던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지켜 주셨던 하나님’이라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땅에서 믿음으로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秘決)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지켜주셨기 때문이라는 강조의 말입니다.
야곱은 두 손자에게 바로 그 하나님을 유산(遺産)으로 물려주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아브라함과 이삭을 믿음으로 살게 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곧 너에게도 그렇게 해 주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처럼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어느 왕(王)보다 더 높은 능력과 권세를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도저히 살아남을 수 없는 기근(饑饉)과 전쟁(戰爭)에서 살아남았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려운 일을 당할 때마다 더 많은 하나님의 복(福)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계셨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곧 그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축복(祝福)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설교로 듣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설교(說敎)는 하나님의 축복(祝福)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그렇게 능하게 하셨고, 그렇게 승리(勝利)하게 하셨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렇게 능력 있게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삭은 어렸을 때, 하나님께 제물(祭物)로 바쳐질 뻔 했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죽지 않고 살아났습니다. 그래서 이삭의 신앙은 죽음을 넘어선 체험(體驗)의 신앙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그 죽음의 고비에게 지키셨던 것처럼, 우리들의 생명도 이 사망(死亡)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지키실 것입니다. 야곱은 또한 자기가 체험(體驗)한 하나님을 아들에게 주기를 원했습니다.
즉‘나의 출생으로부터 지금까지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모든 환란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라고 했습니다. 야곱이 체험한 하나님은 자기가 이 세상에서 태어날 때부터, 그를 기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물론 야곱을 키운 자는 그의 부모(父母)입니다. 그러나 야곱은 다른 어느 누구보다 신앙적(信仰的)인 연단(鍊鍛)을 많이 받았으며, 그런 연단(鍊鍛)을 통해 믿음이 성숙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신앙을 자라게 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비뚤비뚤하고, 모난 우리의 신앙을 보석(寶石)같이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財物)을 물려주면,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나라 재벌(財閥)2세나 3세 중에서 실패(失敗)한 경영자(經營者)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복(福)은 그렇지 않습니다.
내가 발견하고, 깨달은 하나님을 복(福)으로 물려주면, 곧 그 복(福)을 받은 자도 그런 위대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두 손자에게 부모의 영적(靈的)재산(財産)을 모두 다 물려주었습니다.
48:16절)내 이름과 내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하게 하시오며.”여기서 이름을 빌려준다는 것은 그 사람의 신용(信用)을 빌려준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과 이삭의 이름으로 칭(稱)하게 한다는 것은 아브라함이나, 이삭만한 믿음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은행(銀行)에서 나의 이름으로 돈을 빌리면, 잘 빌려주지 않지만, 집을 가진 사람이 담보(擔保)를 서면, 돈을 빌려줍니다. 마찬가지로 에브라임이나, 므낫세는 미미한 존재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보고, 그만한 복(福)을 빌려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원하기만 한다면, 얼마든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같이 위대한 삶을 살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아브라함이나, 이삭은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두 손자에게 자기 이름 야곱만이 아니라, 그 아버지 이삭과 그 할아버지 아브라함의 이름까지도 마음대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야곱이 이 두 손자에게 야곱과 이삭과 아브라함의 믿음의 분량(分量)을 다 주는 것입니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이 세 사람을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다는 뜻입니다. 사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이름을 합친 것보다 더 능력 있는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간구하면, 간구하는 모든 것이 응답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을 의지하기만 한다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을 합친 것보다 더 위대한 믿음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Ⅲ.오른손의 축복 야곱이 두 손자를 축복(祝福)할 때에는 눈이 어두워서 앞이 거의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아버지에게 오른 손으로 큰 아들 므낫세 머리 위에 얹도록 하고, 왼손으로 작은 아들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도록 해서 아버지께 데리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야곱은 손을 어긋나게 해서 오른손을 왼쪽에 있는 에브라임의 머리에 얹고, 왼손을 오른쪽에 있는 므낫세의 머리에 얹어서 엑스 자 형으로 해서 축복(祝福)을 했습니다.
우리의 손은 두 개가 있지만, 오른손과 왼손은 힘에 차이가 있습니다. 거의 보통 사람들은 오른손이 왼손에 비해서 더 힘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왼손잡이들은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왼손잡이들 중에서 예능계나, 체육 활동에 두드러진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그 강(强)한 오른손으로 자기들을 붙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혹시 왼손은 힘이 약(弱)해서 놓칠 수 있을지 몰라도 오른손은 워낙 힘이 있으므로 어떤 것도 하나님의 손에서 빼낼 수 없다고 믿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오른손으로 축복(祝福)을 해 달라고 말하지 않고‘세게 기도해 주세요.’라고 합니다. 여기서‘세게 기도를 해 달라’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더 큰 복(福)을 빌어 달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을 위하여 기도를 하다보면, 정말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납니다. 그의 마음이 너무나도 아름답고, 너무나 귀한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기도할 때, 더욱 힘을 써서 간절하게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기도해 주어야 되겠는데, 너무나 믿음이 없어서 억지로 기도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그럴 때는 왼손의 축복(祝福)밖에 되지 않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려고 애쓰는 사람은 사람이 보기에도 간절히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고, 어떻게 하든지 그가 잘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이렇게 차별해서 축복(祝福)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축복(祝福)이 다 같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장남(長男)이라고 해서 잘난 체하는 형보다는 하나님은 동생을 더 축복(祝福)하실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같은 하나님을 믿노라 하면서도 잘난 체하고, 교만(驕慢)한 자에게 하나님은 왼손으로 복(福)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가난하고, 겸손(謙遜)하며, 거짓 없는 믿음으로 간절히 사모하는 자에게 더 강(强)한 손으로 붙들어 주시고, 복(福)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야곱은 요셉에게 보너스의 복(福)을 더 주었습니다. 이것은 야곱에게는 정말 특별(特別)하고, 가치(價値) 있는 땅인데, 요셉에게 주었습니다. 48:22절)내가 네게 네 형제보다 세겜 땅을 더 주었나니. 이는 내가 내 칼과 활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서 빼앗은 것이니라.”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전쟁(戰爭)해서 땅을 빼앗았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전쟁(戰爭)을 해서 아모리인으로부터 땅을 빼앗은 적이 있던 것 같습니다. 고대(古代)에는 돈을 주고, 땅을 사는 것보다는 이런 식으로 전쟁(戰爭)해서 차지하는 것을 훨씬 더 가치(價値)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해서 가나안 땅에서 땅을 차지하기 전에 야곱은 이미 4백 년 전에 전쟁(戰爭)해서 빼앗은 땅이 있었습니다. 야곱은 그것을 요셉에게 보너스로 주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서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요셉의 해골(骸骨)을 그곳에 묻는 것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가장 용감(勇敢)한 자에게 주는 상(賞)이었습니다. 즉 전쟁(戰爭)에서 가장 용감(勇敢)한 자에게 가장 중요한 상(賞)을 주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목숨을 걸고, 싸운 자에게는 가장 명예(名譽)로운 상(賞)을 주어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침노하는 자가 빼앗게 되어’있습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싸운 자에게 최고의 상(賞)이 주어질 것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믿음을 합친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오른손의 축복(祝福)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야곱이 가나안 땅에서 돈을 주고, 산 땅이 아니라, 활과 칼로 빼앗은 땅을 복(福)으로 받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 바랍니다. |